425화 드미트리 쟁탈전 (1)
카이로의 마담뚜.
수잔은 휘황찬란한 장신구를 찰랑거리며, 어딘가를 향해 급하게 걸음을 옮겼다.
‘급하다, 급해!’
10분 전.
그녀의 절친한 친구로부터 특급 정보를 물어 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무려 드미트리와 관련한 소식이라는 말에, 카이로의 사모님들과 티타임을 가지던 수잔은 헐레벌떡 밖으로 뛰쳐나왔다.
중매를 맡는 마담뚜들에게 정보와 스피드는 생명이다.
한순간의 타이밍에 마담뚜의 가치가 정해지기에, 수잔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절대 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이윽고.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미리 자리를 잡고 차를 마시는 친구의 모습에, 맞은편에 앉자마자 본론을 물었다.
“그래서, 허억, 무슨 일인데?”
숨을 헐떡였다.
수잔의 다급한 눈빛을 바라보며, 친구는 웃음을 보였다.
“수잔. 이번 일은 나중에 확실히 보상해 줘야 해.”
“당연하지. 나 수잔이야.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몰라?”
“알지. 은혜를 확실히 갚는 카이로 최고의 마담뚜. 그래서 말인데…… 내가 어제 잠깐 드미트리에 갈 일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정말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어. 리한나 드미트리가 자신의 둘째 아들을 혼인시키기 위해 설득하고 있다지 뭐야. 아직 확실히 정략결혼을 진행하겠다고 정해지지는 않았는데, 아들의 마음을 휘어잡을 수 있는 현명한 여자라면 그 누구든 로드웰 드미트리의 반려로 받아들이겠다는 상황인가 봐.”
“정말?!”
“그렇다니까.”
눈이 번쩍 뜨였다.
거칠게 호흡을 가다듬던 수잔은, 이게 얼마나 대단한 정보인지를 단번에 알아챘다.
‘로드웰 드미트리라니!’
드미트리.
그들의 위상은 과거와 달랐다.
한때는 평민 출신 가문에 불과했다면, 지금은 드미트리 제국을 이끄는 황가(皇家)였다.
게다가 샐러맨더 대륙 전체가 로만 드미트리를 지지하는 상황.
그야말로 권력의 핵심이었기에, 수잔이 발을 담그고 있는 사교계에서는 드미트리 삼남의 혼인은 정말 핫한 주제였다.
로만, 로드웰, 로렌.
과연 누가 그들을 차지할 것인가.
로만 드미트리와의 혼인은 황후로의 등극을 의미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형제들도 매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로만 드미트리는 가족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골육상쟁(骨肉相爭)의 경쟁 따위는 없기에, 형제들과의 혼인 또한 드미트리의 권력을 등에 업는 정말 엄청난 기회였다.
‘드디어 때가 왔구나.’
전쟁이 끝나고.
모두가 드미트리를 예의주시했다.
로만 드미트리가 당장은 황후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마담뚜들은 본능적으로 전쟁의 소용돌이가 들이닥친 이후에는 혼사 문제가 논의되리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였다. 아들을 둔 어미로서는, 위험하지 않을 때 가정을 꾸리길 바랐다.
수잔이 친구의 손을 붙잡았다.
땀으로 끈적이는 손길이었으나, 친구는 엄청난 보상을 받을 생각에 방긋 웃음을 보였다.
“고마워! 정말 고마워! 이 은혜는 반드시 갚을게.”
앞으로 며칠.
수잔은 자신의 마담뚜 인생이 걸린, 정말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 *
그 무렵.
발렌티노 후작은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정원을 거닐며 불어오는 바람이, 푸르른 하늘이, 자신이 보고 느끼는 모든 것이 행복감을 주었다.
“흐흐흐, 이게 진정한 행복이지.”
논공행상.
그 범위에는 발렌티노 후작도 있었다.
드미트리를 위해 전 재산을 쏟아부은 만큼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였고, 엄청난 금전적인 보상과 더불어 선택권을 부여받았다.
발렌티노 후작은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다른 이들은 충분히 고민하고 대답하겠다고 말했지만, 그는 그 자리에서 곧바로 자신이 원하는 바를 말했다.
“황제 폐하. 제가 감히 부탁드리건대, 만약 새로운 검을 만드신다면 지금 사용하는 디제스터(disaster)를 제게 주실 수 있겠습니까? 특별한 뜻은 없습니다. 황제 폐하가 위대한 업적을 이루는 동안 함께한 동반자라면, 제 컬렉션 최고의 보물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생각해 보라!
로만 드미트리가 디제스터를 사용하며 이룬 업적을!
검 한 자루로 대륙의 양대산맥이었던 크로노스와 발할라를 무너트렸고, 모든 음모의 흑막이었던 알렉산드르는 디제스터에 갈기갈기 찢겨 나갔다.
그렇기에 상징성이 있었다.
앞으로 로만 드미트리가 디제스터를 넘어서는 검을 만들어 낼 수는 있으나, 이와 같은 영광스러운 순간에 동반자로 존재했다는 사실은 디제스터 외에는 절대 허락되지 않는 영광이었다.
그런 이유로.
갈증이 일었다.
자꾸만 디제스터로 향하는 눈길에, 남들이 대단한 보상을 바랄 때 그는 겨우 검 한 자루를 원했다.
대답은 예스였다.
앞으로 한 달 뒤, 로만 드미트리는 디제스터를 주겠다고 말했다.
“으흐흐흐흐, 디제스터를 받으면 내 컬렉션을 전시하는 박물관을 만들까? 모든 사람에게 내가 얼마나 대단한 것들을 모았는지 자랑하고 싶기는 한데, 만약 그랬다가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어떻게 하지. 그래, 박물관은 아니야. 디제스터에 흠집이라도 나면 난 분명히 잘못한 놈의 사지를 갈기갈기 찢어 버릴 거야. 하지만 자랑은 하고 싶은걸. 에라, 모르겠다. 디제스터를 받자마자, 일 년 내내 대륙 순회공연을 돌면서 일일이 디제스터를 자랑해야겠네.”
행복이 별거 있겠는가.
이게 바로 행복이었다.
금은보화를 산더미처럼 쌓아 두고도, 발렌티노 후작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쟁취했을 때 행복감을 느꼈다.
그때였다.
한참 상상의 나래를 펼칠 때, 집사가 다가와 말했다.
“후작님. 마담뚜 수잔이 찾아왔습니다.”
“수잔? 오늘은 귀찮으니까, 다음에 찾아오라고 해.”
수잔은 카이로 일대에서 유명했다.
정말 능력 있는 마담뚜였지만, 그녀가 자신을 왜 찾아왔는지는 너무 뻔했다.
‘내 딸 때문이겠지.’
발렌티노.
그는 다산(多産)으로도 유명했다.
그의 자식 중에는 이번에 혼기가 꽉 찬 여식이 있었는데, 외모도 빠지지 않는 편이라서 카이로의 귀족들이 군침을 질질 흘렸다.
하지만 발렌티노 후작은 엄격하게 주변의 유혹을 모두 차단해 버렸다.
그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이유는, 진정으로 바라는 목표가 있기 때문이었다.
‘황제 폐하는 언젠가 황후를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때, 발렌티노 가문의 여식은 매력적인 선택지가 되겠지.’
로만 드미트리.
그를 노렸다.
얼마나 황홀한 일이란 말인가.
로만 드미트리의 장인이 된다면 권력의 핵심으로 떠오를 테고, 무엇보다도 장인으로서 검 몇 자루 정도는 부탁할 수 있지 않겠는가.
물론 딸의 의견도 반영된 선택이었다.
딸은 드미트리 가문의 영웅적인 스토리를 들어서 그런지, 드미트리 가문이라면 환영이라면서 두 팔을 벌려 반겼다.
게다가 카이로와 드미트리는 형제의 나라기에, 발렌티노와 드미트리의 결합도 문제가 없었다.
고로.
마담뚜는 그리 달갑지 않았다.
샐러맨더 대륙 최고의 남자를 원하는 자신에게, 관심도 없는 잔챙이들을 들이밀 것이 뻔했다.
그런데.
“수잔이 말하길, 드미트리 가문과 관련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어서 안으로 들여라!”
드미트리가 언급되자마자, 발렌티노 후작은 표정을 싹 바꾸며 접객실로 걸음을 돌렸다.
* * *
발렌티노의 접객실.
수잔과 마주한 발렌티노 후작은, 일단 시간을 낼 가치가 있는지 들어 보겠다는 듯이 퉁명스럽게 반응했다.
“그래서, 날 찾아온 용건이 뭐지?”
수잔이 싱긋 웃었다.
발렌티노의 명성은 대단했다.
탐욕의 수집가라는 별명답게 본인이 애가 탈 때는 간과 쓸개를 전부 내줄 것처럼 행동하지만, 본인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칼같이 선을 그어 버렸다.
카이로의 대부호는 그냥 탄생한 것이 아니었다.
그 사실을 잘 알기에, 수잔은 시작부터 상대의 흥미를 강하게 자극했다.
“황제 폐하의 어머니께서, 드미트리 가문의 차남을 혼인시키길 원하고 있습니다.”
“……로드웰 드미트리를?”
“예.”
발렌티노 후작이 자세를 바꾸었다.
로드웰 드미트리라니.
군침이 도는 주제였다.
“계속 말해 봐.”
“발렌티노 후작님께서 따님의 혼인을 미루는 이유는, 이미 따님에게 어울리는 상대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겠지요. 그리고 주제넘은 예상일 수도 있겠지만, 아마 그 상대는 드미트리 제국의 황제 폐하일 것입니다. 후작님. 황후의 자리는 모두가 바라는 이상적인 목표입니다. 그 자리를 쟁취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사실 드미트리의 차남도 그에 못지않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끼익.
발렌티노 후작이 소파에 몸을 기댔다.
더 말하라는 신호였다.
자신의 천금 같은 시간을, 수잔에게 허락하겠다는 의사를 드러냈다.
“로드웰 드미트리는 한때 드미트리 가문을 대표하는 재능이었습니다. 황제 폐하가 대단한 행보를 보여 주면서 묻혔다고는 하나, 그간의 행보를 보았을 때 그는 분명히 크게 될 인물임을 증명했습니다. 이번 크로노스와의 전쟁. 로드웰 드미트리는 크로노스의 기습적인 공격을 막아 내는 엄청난 공을 세우지 않았습니까? 일단 인물 자체의 능력이 보장되는 상황에서, 로드웰 드미트리는 아르카디아행을 떠나겠다고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저보다 더 흐름에 밝으신 발렌티노 후작님이라면, 아르카디아행이 어떤 의미인지를 잘 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먼 미래를 본다면, 아르카디아로 떠난 사람들은 반드시 큰 권력을 쥐게 되겠지. 드미트리의 땅은 그 면적만큼이나 제한적이나, 아르카디아의 넓은 토지는 그만큼 엄청난 가능성을 의미할 테니까.”
“맞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로드웰 드미트리가 있습니다. 로드웰 드미트리의 성공 또한 보장되는 상황에서, 우리가 걱정해야 할 부분은 황제 폐하의 성향입니다. 이전의 선례들이 그랬듯 황제 폐하가 권력을 나누는 상황에 걱정하고 두려움을 느꼈다면, 드미트리의 형제들은 큰 화를 입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 황제 폐하는 그렇지 않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있고, 드미트리 가문의 사람들을 챙기는 성향으로 보았을 때 황제 폐하는 기꺼이 형제들의 영역을 허락할 것입니다.”
옳은 말이었다.
애초에 아르카디아행을 떠나는 일을 허락한 것만으로도, 로만 드미트리의 성향을 드러내는 예였다.
대단했다.
형제들이 아무리 몸집을 부풀려도.
본인을 넘어서지 못하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발렌티노 후작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나자, 수잔은 상대의 마음에 종지부를 찍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직 이 정보를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모두가 바라는 황제 폐하의 황후 자리를 노리는 것보다, 드미트리 가문의 차남을 노리는 것이 훨씬 승산이 있습니다. 발렌티노 가문이지 않습니까. 후작님의 여식은, 황제 폐하의 어머니를 충분히 설득시킬 만한 힘이 있습니다.”
완벽했다.
로만이든.
로드웰이든.
드미트리 가문과 사돈의 연을 맺는 것은 똑같았다.
그리고 발렌티노 후작은 상인이기에, 수잔의 말처럼 로드웰의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계산이 끝났다.
발렌티노 후작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드미트리로 가서 운을 한번 띄워 봐. 로드웰 드미트리의 혼인 상대로, 나의 딸이 어떠한지를. 만약 이번 혼인을 성공시킨다면, 내 가문을 걸고 약속하건대 네 미래를 바꾸어 주지.”
* * *
그것으로 대화는 끝났다.
곧바로 드미트리행 마차에 몸을 실은 수잔은, 잔뜩 상기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건 일생일대의 기회야.’
수많은 귀족 중.
왜 발렌티노를 택했을까.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리한나 드미트리가 매력을 느낄 만큼의 상대여야만 했다.
아무리 보상이 크다고 한들 그녀를 설득시키지 못한다면, 애초에 관심 자체를 끌어내지 못할 것이다.
리한나 드미트리가 바라는 상대는 본인의 아들을 설득할 만한 수준의 여성.
발렌티노 가문의 위상이야 말할 것도 없고, 발렌티노의 여식은 여자로서도 충분한 매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바로 보상의 규모였다.
발렌티노는 기브 앤 테이크가 확실하다.
검 한 자루를 구매하겠다고 가문의 뿌리를 뽑았던 것처럼, 원하는 것을 내주는 상대에게 확실하게 보상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렇기에 탐욕의 수집가라는 독특한 명성을 보유하고도 사람들은 그와의 관계를 선호했다.
그가 인생을 바꿔 주겠다고 말했다면, 정말 그렇게 행동할 것이 분명했다.
“이번 혼인을 성사시킨다면, 나는 대륙 제일의 중매인이 되겠지.”
웃음을 삼켰다.
정신을 차려야 할 때였다.
아직 성공한 것이 아니기에, 그녀는 드미트리로 이동하는 동안 마차 안에서 서류들을 정리했다.
어떻게 설득할지.
어떤 방법으로 어필할지.
리한나 드미트리의 마음을 녹일, 그녀의 필살기를 다각도로 고민했다.
마침내 드미트리에 도착했다.
그런데 막상 드미트리에 도착한 그녀는, 황궁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부정하고 싶은 광경을 발견했다.
“……쟤들이 왜 여기에 있어?!”
부담스러울 정도의 풍채를 지닌 여성.
그녀는 프랑크의 유명한 마담뚜였다.
빼빼 말랐으나 웃는 얼굴인 여성은, 크로노스 일대에서 상당한 성공률을 자랑하는 마담뚜였다.
그 외에 여러 여성.
각국의 마담뚜들이 모두 모였다.
그랬다.
‘빌어먹을.’
이미 먹잇감의 냄새를 맡은 마담뚜들의 전쟁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