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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6화 (426/615)

426화 드미트리 쟁탈전 (2)

자리를 옮겼다.

마담뚜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인 상황에, 리한나 드미트리는 차분한 얼굴로 말했다.

“여러분이 저를 찾아온 이유는 다들 똑같은 목적 때문이겠지요.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제 두 번째 아들인 로드웰은 혼인 의사가 없다고 밝혔지만, 어미로서 그 마음을 돌리고자 합니다. 만약 여러분 중에 그 누구라도 로드웰의 마음을 휘어잡는 여인을 소개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리한나 드미트리의 이름을 걸고 반드시 보상하겠습니다.”

정중한 태도였다.

이제는 황태후(皇太后)의 자리에 올랐는데도, 그녀는 사람들을 깔보거나 하대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명성대로였다.

드미트리 가문의 안주인은 현명한 여인이었고, 그녀의 이러한 태도가 평민 출신의 드미트리가 귀족으로서 자리 잡는 과정에 큰 역할을 했었다.

사실 이번 자리도 의도적으로 만들어졌다.

로드웰 드미트리는 혼인을 추진하겠다는 어머니의 말에, 자신은 그럴 의사가 없다는 사실을 밝혔다.

평소라면 자식들의 뜻을 존중해 주었다.

하지만 머나먼 타지로 떠나는 상황에, 매번 크게 다쳐서 돌아오는 둘째 아들을 이대로 보낼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정략결혼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로드웰 드미트리에게 충분한 선택지를 보여 준다면 마음이 흔들릴 수도 있는 일.

아들과의 대화를 끝내자마자, 일부러 마담뚜들에게 정보를 흘려서 그녀들이 당장 드미트리로 달려오도록 상황을 유도했다.

마담뚜들 또한.

이제는 그 사실을 알았다.

리한나 드미트리가 정중하고 교양이 있다고 해서, 마담뚜들의 입맛대로 휘둘릴 인물은 아니었다.

“그래서, 어느 분부터 말씀하시겠습니까?”

판이 깔렸다.

시선이 집중되는 상황에, 당차게 한 여성이 나섰다.

“제가 먼저 말하겠습니다.”

풍채가 대단한 여성이었다.

휘황찬란한 의상으로 멋을 부린 여성은, 프랑크 왕국을 비롯한 주변 일대에서는 반드시 짝을 이루어 주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때마다 받은 장신구가 그녀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값비싼 장신구는 단순히 재력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실력과 위상을 드러내는 명확한 증거였다.

그녀의 이름.

조지나였다.

그녀가 마치 경쟁자들에게 선전포고하듯, 본인이 준비해 온 카드를 꺼내 보였다.

“로드웰 드미트리 님은 무려 황제 폐하의 동생이십니다. 그렇다면 그만한 자격을 갖춘 여인이어야만, 모두가 인정하고 축복하는 그런 혼인이 되겠지요. 프랑크의 왕녀이신 가브리엘라 님이라면, 단언컨대 정말 어울리는 한 쌍이 되리라고 확신합니다.”

* * *

왕녀.

국왕의 딸.

가브리엘라의 이름이 입 밖에 나오는 순간, 다른 마담뚜들은 상당히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다.

‘이것 봐라.’

‘가브리엘라라니.’

조지나가 웃었다.

다른 마담뚜들이 당황하는 이유는, 단순히 왕녀이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이 자리에 있는 분들이라면 다들 잘 아시겠지만, 프랑크 왕국은 왕실에 한해서 타국과의 혼인을 철저하게 금하는 나라입니다. 그런데도 프랑크 국왕께서 이번 혼인에 긍정적인 의사를 밝힌 이유는, 로드웰 드미트리 님이 전장에서 보여 주었던 헌신적인 모습 때문입니다. 그런 사내라면, 그것도 드미트리 제국의 차남이라면. 왕녀에 어울리다 못해 넘치는 사내임을 알기에, 제게 친히 이번 혼인을 진행해 보라는 의사를 전달하셨습니다.”

어제저녁.

프랑크가 발칵 뒤집혔다.

조지나가 드미트리 가문의 소식을 전달하자, 프랑크 국왕은 눈이 돌아간 채로 이렇게 말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어떻게든 혼인을 추진하라. 가브리엘라든, 누구든. 이 나라에서 로드웰 드미트리와 어울리는 여인이 있다면, 네 경험을 적극적으로 발휘해 로드웰 드미트리의 마음을 휘어잡아야만 한다. 이건 엄청난 기회다. 로만 드미트리 황제 폐하가 여색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상황에서, 차남의 안주인이 되는 인물은 분명히 앞으로의 미래를 주도할 수 있다.”

이건 기회였다.

드미트리를 등에 업는다면, 프랑크 왕국이 앞으로 도약할 수 있음을 국왕은 본능적으로 알았다.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있다.

크로노스와 발할라가 한번 무릎을 꿇었다고 해서, 드미트리를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의 경쟁 체계가 끝난 것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지금부터는 새로운 판도였다.

드미트리 제국을 필두로 권력의 중심에 서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작점에서 새로운 경쟁을 통해 권력을 쟁취해야만 한다.

고로.

로드웰 드미트리는 매력적인 먹잇감이었다.

프랑크 국왕의 전폭적인 지원에, 조지나는 당연히 가브리엘라를 내세웠다.

“로드웰 드미트리, 가브리엘라 프랑크. 두 남녀의 결합은 새로운 미래를 의미합니다. 프랑크 국왕께서는, 이번 혼인이 성사된다고 해서 프랑크의 규율에 예외를 두지 않겠다는 뜻을 명확히 밝히셨습니다.”

비장의 무기였다.

마담뚜들이 당황한 진정한 이유.

프랑크 왕실이 타국과의 혼인을 진행하지 않는 이유는, 프랑크가 여왕을 인정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몇몇 폐쇄적인 나라는 여자가 왕위에 오르는 것을 엄격하게 금하는데, 프랑크 왕국은 왕의 자식이라면 성별과 서열을 가리지 않고 누구든 왕위에 오를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그 말이 무슨 의미이겠는가.

가브리엘라의 어머니는 프랑크 왕국에서 나름대로 명망이 높은 가문이었고, 그로 인해 지금도 서열에서 그리 밀리지 않았다.

그런 그녀에게 드미트리라는 배경이 생기는 것이다.

단번에 서열 1위로 도약할 힘을 갖추는 것이며, 그때는 드미트리가 프랑크를 집어삼킬 수도 있다는 위험성을 의미했다.

그걸 알고도.

혼인을 받아들였다.

크로노스 제국과의 전쟁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보였던 로드웰 드미트리라면, 현 황제가 진심으로 아끼는 동생이라면.

드미트리와 프랑크의 결합은 그리 나쁘지 않은 미래라고 생각했다.

‘내 생각도 같아. 로만 드미트리는 절대 크로노스 제국과 같은 정치를 펼치지 않을 인물이야. 각자의 영역을 존중하는 그의 성향을 생각한다면, 드미트리와 피를 섞는 것은 엄청난 기회겠지.’

“……이상입니다.”

설명을 모두 끝냈다.

싱긋 웃음을 보인 조지나가, 당당한 걸음걸이로 본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기선을 제압했다.

다른 마담뚜들이 어떤 무기를 준비해 왔다고 한들, 프랑크를 통째로 바치는 자신을 넘어서지는 못할 것이다.

그때였다.

“이번에는 제가 말하겠습니다.”

빼빼 마른 여성.

크로노스의 마담뚜인 멜리사가 나섰다.

* * *

멜리사가 말했다.

“제가 추천해 드리고 싶은 분은 벨라트로 가문의 빅토리아 님입니다.”

일개 가문.

프랑크 왕실을 넘볼 수 없는 조건이건만, 가문을 듣는 순간 조지나의 얼굴이 빠르게 굳어 버렸다.

‘이 요망한 년이?!’

의도는 명백했다.

멜리사가 묘한 웃음을 보이며, 자신의 발언을 이어 나갔다.

“벨라트로 가문의 가주이자 빅토리아 님의 아버지이신 벨라트로 백작님은, 현 크로노스 제국 황제 폐하의 외삼촌이 되십니다. 알렉산드르의 음모에 나라가 휘청거릴 때, 목숨을 걸고 드미트리와 같이 혁명을 이끌었던 분이죠. 만약 빅토리아 님과의 혼인을 추진한다면, 이는 크로노스와 드미트리 두 제국의 완벽한 결합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빅토리아 님은, 크로노스 사교계에서도 그 외모를 인정할 정도로 상당한 미인입니다. 그렇죠, 조지나?”

힐끗 조지나를 보았다.

도발이었다.

가브리엘라의 유일한 단점은 외모가 평범하다는 것이기에, 일부러 그녀를 지적하며 단점을 부각했다.

“……그렇지요.”

조지나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리한나 드미트리가 보는 앞에서 화를 낼 수는 없었다.

붉어지는 얼굴에 연신 부채질을 해 댔고, 멜리사는 승리했다는 듯이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었다.

“드미트리는 제국입니다. 제국의 품격에 어울리게, 빅토리아 님과 같은 화려한 꽃이 그 곁을 지켜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앞으로 로드웰 드미트리 님이 아르카디아에서 하실 모든 일에, 크로노스 제국은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완벽했다.

크로노스의 황제.

크로이트 가문의 유일한 생존자였던 조웰슨은, 크로이트를 지지하던 사람들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황제의 자리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외삼촌인 벨라트로 백작은 그 중심에 있었던 사람이다.

조웰슨이 무너지지 않도록, 크로노스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적극적으로 나섰던 인물이기에, 그의 장녀와의 혼인은 사실상 크로노스 제국과의 결합을 의미했다.

그런 의미로.

크로노스 제국을 언급했다.

프랑크를 의미하는 가브리엘라보다, 빅토리아가 얼마나 나은 선택지인지를 강조했다.

설명을 끝낸 멜리사가 한 발 물러났다.

리한나 드미트리는 상당히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두 마담뚜가 추천한 여인들에 대해 평가했다.

“생각 이상으로 대단한 분들을 추천해 주시니, 저로서도 생각이 깊어지는군요. 이어서 말씀하실 분은 없으신가요.”

정적이 맴돌았다.

앞선 인물들이 너무 강적이었다.

발렌티노 후작을 회유한 수잔으로서도, 참담한 얼굴로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 * *

수잔이 고개를 숙였다.

짜증이 치밀었다.

‘가브리엘라에 빅토리아까지. 이년들이 아주 작정했구나.’

두 마담뚜.

조지나와 멜리사는 수잔보다도 더 유명한 존재들이었고, 본인들의 영역에서 동원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를 선보였다.

그것도 단 하루라는 짧은 시간에 말이다.

처음에는 정보의 선점과 발렌티노 후작 정도의 배경이라면 무조건 성공하리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입을 뗄 수 없었다.

‘무조건 패배야. 앞선 두 존재를 이길 수 없어.’

발렌티노.

대단한 존재다.

카이로 제일의 대부호고, 발렌티노 가문과의 결합은 분명히 상당한 메리트가 있었다.

하지만.

가브리엘라와 빅토리아는 국가 규모의 혼인이기에, 발렌티노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메리트를 부여했다.

게다가 드미트리 제국은 돈이 아쉬운 나라가 아니지 않은가.

발렌티노가 카이로 제일의 대부호라면, 드미트리는 그 가문 자체만으로도 대륙 제일의 대부호라 할 수 있었다.

실수였다.

이럴 줄 알았다면, 카이로 왕실과 관련한 여인을 내세워야만 했다.

‘끝났어.’

드미트리에 도착한 순간.

수잔은 본능적으로 알았다.

정보를 선점하지 못했다면, 카이로에서만 발휘되는 자신의 인맥으로는 조지나와 멜리사를 이길 방법이 없었다.

그래도 일단 운이라도 띄워 봐야만 했다.

발렌티노 후작을 찾아가 변명이라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최선을 다했다는 증거를 남길 필요가 있었다.

그때였다.

수잔이 입을 열려는데, 문밖에서 음성이 들렸다.

“에드윈 헥토르 왕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안으로 들여도 되겠습니까?”

의외의 인물이었다.

에드윈 헥토르라니!

당황하는 마담뚜들과는 다르게, 리한나 드미트리는 차분한 얼굴로 들어오라는 의사를 전달했다.

그러자.

끼익.

문이 열리고.

에드윈 헥토르가 나타났다.

* * *

정말 에드윈 헥토르였다.

의외의 인물이 등장했다는 사실에, 마담뚜들은 동요한 눈빛으로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리한나 드미트리가 말했다.

“여기까지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아닙니다. 중요한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인데, 고생이랄 것이 있겠습니까.”

순간.

마담뚜들의 시선이 뒤엉켰다.

그녀들은 본능적으로 알았다.

리한나 드미트리는 에드윈 헥토르의 등장을 알고 있었고, 그렇다면 사전에 이미 참석을 예고했다는 의미였다.

문제는 헥토르가 이곳에 등장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에드윈 헥토르는 중매인이 아니고, 무엇보다도 그에게는 혼인을 내세울 만한 여자 형제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 말은.

이 자리와는 연관이 없었다.

마담뚜들이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자, 에드윈 헥토르가 말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본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황태후께서 드미트리 가문의 차남인 로드웰 드미트리 님의 혼인을 바란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헥토르에는 마침 그분에게 어울리는 여인이 있습니다. 캐서린 헥토르. 제 동생을 감히 추천해 드리고자 합니다.”

“……캐서린 헥토르?”

“그게 누구지?”

마담뚜들이 수군거렸다.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그녀들은 본인들의 영역이 아니더라도 각국 주요 인물들의 가족 관계도는 줄줄이 꿰고 있는 편이었는데, 캐서린 헥토르라는 이름은 단언컨대 단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했다.

만약 에드윈 헥토르에게 비슷한 나이대의 여자 형제가 존재했다면, 그가 등장했을 때 경계심이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캐서린이라니.

대체 누구란 말인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한 듯, 에드윈 헥토르가 말을 덧붙였다.

“익숙하지 않은 이름일 겁니다. 캐서린은 헥토르의 방계(傍系) 출신입니다. 얼마 전까지는 그 존재를 모르고 있다가, 최근에야 새롭게 가족으로 받아들인 저의 어여쁜 동생이지요.”

그 말에.

마담뚜들의 눈빛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확실했다.

방계를 내세웠다는 것은.

에드윈 헥토르가, 어떻게든 이번 혼인을 쟁취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음을 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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