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31화 (431/615)

431화 예술의 경지 (1)

평소와는 다른 하루였다.

공방에서 작업하던 대장장이들, 길거리에서 이것저것을 팔던 상인들, 그 외에도 많은 사람이 일제히 같은 장소로 몰려들었다.

이유는 다름 아닌 로만 드미트리의 작업 소식 때문이었다.

로만 드미트리가 공개적으로 검을 만든다는 소식에, 드미트리의 사람들은 관심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으로부터 1년 전.

발렌티노 후작이 본인의 컬렉션을 공개한 적이 있었다.

그때 검을 다루는 전문가들을 한자리에 불러모았는데, 그날의 평가가 사람들에게 이슈가 되었다.

“발렌티노 후작님이 왜 검의 미래가 로만 드미트리 님에게 달렸다고 말했는지 알 것 같습니다. 블레이즈(blaze)는 초창기에 만든 검인데도 불구하고, 현재 시중에서 명검이라고 불리는 검들을 모두 압살할 만큼의 능력을 갖추었습니다. 철제 무기로서의 강도와 날카로움은 물론이거니와, 마나를 받아들이는 능력은 그야말로 압도적입니다. 이런 무기를 겨우 1200골드에 낙찰받았다니. 단언컨대, 지금 시중에 나온다면 네임 밸류를 제외하고도 최소 2배 이상은 받아야 할 무기입니다.”

그야말로 극찬이었다.

콧대 높은 전문가들을 단번에 인정시킨 사건에, 사람들은 로만 드미트리의 제작 실력에 관심을 보였다.

사실 로만 드미트리의 무기는 품질만으로 평가받을 문제가 아니었다.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 갈 검사가 만들었다는 상징성과 철제 무기로 유명한 드미트리 가문의 장남이라는 위치.

품질의 최소 가치가 경매 가격에 2배 이상이라면, 희소성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리고.

로만 드미트리와 검이라는 키워드에는, 사람들이 관심을 보일 만한 한 가지 이슈가 더 있었다.

소문의 출처는 드미트리의 하인들이었다.

“대체 도련님은 공방 안에서 어떤 작업을 하시는 거지?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아무리 불을 다루는 작업이라지만, 벽이랑 천장에 그을린 자국이 있는 것은 말이 되지 않잖아. 그런데 로만 도련님이 작업을 끝낼 때면, 항상 공방 전체가 불에 탄 것 같은 흔적이 남아 있어.”

“나도 본 적 있어! 그동안 여러 공방을 정리하면서, 단언컨대 로만 도련님과 같은 흔적이 남은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어. 네 말처럼, 공방 전체가 불타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수준이 분명해.”

작업 환경을 직접 목격한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대부분은 어떻게 작업하는지를 알지 못했는데, 작업 이후 공방을 정리하던 하인들이 떠들어 대는 말들이 사람들의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했다.

생각해 보라. 불길로 넘실거리는 환경에서, 그 열기를 이겨 내고 대체 어떻게 작업한단 말인가.

탐욕의 수집가라고 불리는 발렌티노 후작과 전문가들이 극찬하는 완성도에, 하인들의 증언마저 더해지니 관심은 폭발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침내 로만 드미트리가 공방 안으로 들어섰다.

* * *

공개된 환경이었다.

공방의 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밖에서 내부의 상황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 구조였다.

일단.

화륵.

화르르르륵.

화덕에 불을 붙였다.

열기를 충분히 끌어올리면서 작업물을 정리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뜨거운 열기로 물든 공간에서 강철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에게 익숙한 모습이었다.

보호구 없이 강렬하게 꿈틀거리는 근육을 드러내 놓고 작업하는 모습은 일반적이지 않았으나, 그래도 아직은 특별할 것이 없었다.

그때였다.

화악!

화르르르르륵.

“와.”

“헉.”

사람들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격렬한 망치질에 따라 휘몰아치는 화염이, 마치 로만 드미트리를 집어삼킬 것처럼 사방으로 넘실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소문대로였다.

로만 드미트리는 화염 속에서도 뜨거움을 느끼지 못했다.

화염에 둘러싸이고도 망치질은 끊이질 않았고, 감탄을 넘어선 정적이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차츰.

작업에 빠져들었다.

로만 드미트리는 사람들의 시선을 잊은 채, 이번 작업의 본질에 집중했다.

‘알렉산드르는 마계의 힘을 기반으로 하는 존재다. 만약 마계와 전쟁을 벌인다면, 그와 같은 힘을 사용하는 존재들을 인류가 감당해야겠지. 그들에게 대적할 최소한의 기반을 갖추기 위해서는, 어둠의 마력을 무너트릴 힘이 필요하다.’

신성 무기.

그것이 바로 해결책이었다.

어둠의 마력은 일반적이지 않다.

단순히 물질적인 타격만으로는 존재를 멸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에, 본질 자체를 소멸시키는 신성의 힘이 동반되어야만 했다.

그런 이유로 대장장이들에게 신성 무기를 제작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신성 무기의 대량 보급이 마계와의 전쟁을 준비하는 첫 번째 단계였다.

화르르르르륵.

기억에 빠져들었다.

알렉산드르의 힘이 어땠는지, 그 힘을 무너트리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이 적절한지를.

끊임없이 되새겼다.

지켜보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반복적으로 강철을 두드리는 행위였지만, 모든 행동 하나하나에 로만 드미트리의 고뇌가 녹아들었다.

그야말로 무아지경(無我之境)의 경지였다.

격렬하게 타오르는 화염에 머리가 휘날렸고, 몸은 빨갛게 달아올랐지만, 망치질은 일정하고 끊김이 없었다.

‘나는 무기에 신성력을 더하지 않을 것이다.’

작업 도중.

성수를 들이부어야만 진정한 신성 무기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로만 드미트리가 제작하려는 것은 대장장이들에게 해결책을 제시하는 예시일 뿐, 신성력이라는 틀에 맞출 생각은 없었다. 헨드릭은 훌륭한 대장장이다.

로만 드미트리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어둠의 마력에 대항할 무기를 만든다면, 그 과정과 결과물만으로도 충분히 답을 찾을 것이다.

화르르르르륵.

불길이 거세졌다.

시간의 개념은 잊었다.

충분히 준비되었다는 판단에, 로만 드미트리는 본격적으로 멸(滅)의 기운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무림에도 알렉산드르와 같은 미지의 힘을 사용하는 존재들이 있었다. 전생과 현생의 공통점은 힘의 근본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든, 그 존재를 유지하는 근본은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 멸의 기운으로 완벽하게 소멸시킨다면, 알렉산드르와 같은 존재들도 결코 버틸 수 없을 것이다.’

콰앙!

화르르르르륵.

불길이 사방으로 튀었다.

멸의 기운을 받아들인 불길이 격렬하게 저항하며, 공방 밖에서도 열기를 느낄 만큼 엄청난 열기를 토해 냈다.

로만 드미트리는 불길을 강하게 휘어잡았다.

강철을 내리칠 때마다 폭발하는 화염이 공방 전체를 불태웠지만, 화염에 둘러싸인 로만 드미트리는 망치질을 멈추지 않았다.

카앙!

카앙, 카앙!

엄청난 광경이었다.

결렬하게 들끓는 화염 속.

로만 드미트리는 한 발자국도 물러나지 않은 채, 끝을 알 수 없는 자신과의 싸움을 이어 나갔다.

* * *

1시간 전, 카이로스.

드미트리가 난리가 난 그때, 발렌티노 후작은 카이로스의 대저택에서 상심한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기대하지 않았다면 아쉽지도 않았을 텐데.”

드미트리 쟁탈전.

마담뚜 수잔의 권유로 그 치열한 싸움에 참전했던 발렌티노 후작은, 절망한 얼굴로 죄송하다고 말하는 수잔을 만났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각국의 마담뚜들과 에드윈 헥토르는 쟁쟁한 후보들을 내세웠고, 아무리 카이로의 대부호라고 불리는 자신일지라도 승산은 낮았다.

문제는 이미 기대했다는 것이었다.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치던 발렌티노 후작으로서는, 와르르 무너져 버린 꿈에 상실감이 대단했다.

이 얼마나 슬픈 일이란 말인가.

가족을 끔찍하게 아끼는 로만 드미트리라면 사돈인 자신도 챙길 테고, 그렇다면 은근슬쩍 새로운 검을 또 요구할 수 있다는 기적의 행복 회로를 열심히 돌렸지만, 그것은 헛된 망상으로 끝나고 말았다.

마음이 헛헛했다.

상실감에 몸부림치던 발렌티노 후작은, 이럴 때마다 찾는 장소가 있었다.

“하아, 언제 봐도 아름답구나.”

바로 자신의 보물 창고.

컬렉션을 살펴보는 일이었다.

블레이즈와 써드 노-네임.

로만 드미트리의 아름다운 창조물을 바라보고 있자, 깊이 차오르던 상실감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발렌티노 후작에게는 매번 뜻깊은 시간이었다.

블레이즈와 써드 노-네임에 혹시라도 먼지가 묻었을까 봐 세심하게 겉면을 닦았고, 이 예술 작품이 자신의 것이라는 생각에 매 순간 감탄했다.

이때만큼은.

온전히 본인만의 시간이었다.

어떠한 문제에 직면해 있어도, 컬렉션을 한번 확인하고 나면 마음을 다잡고 새로이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똑똑똑.

“후작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문밖에서 하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순간적으로 짜증이 치밀었다.

자신이 보물 창고에 있는 동안은 하늘이 무너져도 절대 방해하지 말라는 것이 발렌티노 가문의 불문율인데, 발렌티노에서 오랫동안 일한 하인이 감히 그것을 어기다니.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벌을 내리고 싶었다.

하지만 불문율을 알고도 보물 창고의 문을 두드린 것에는 이유가 있다는 생각에, 발렌티노 후작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꾹꾹 억누르며 말했다.

“들어와.”

“죄송합니다. 방해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번 일은 보고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상했다.

알고도 문을 두드렸다니.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그때, 하인은 발렌티노 후작을 충격에 빠트리는 발언을 내뱉었다.

“로만 드미트리 황제 폐하가 공개적으로 검을 제작하고 있다는 정보를 들었습니다. 만약 이 시기를 놓친다면, 언제 이런 기회가 다시 찾아올지 모르기에 감히 발렌티노 후작님의 시간을 방해했습니다.”

* * *

하인의 처벌?

그딴 건 없었다.

결단을 내린 하인에게 큰 상을 내린 발렌티노 후작은, 다급하게 워프 게이트로 걸음을 옮겼다.

‘이 사실을 이제야 알았다니!’

눈물이 핑 돌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로만 드미트리다.

단언컨대 대륙 최고의 장인이라고 생각하는 인물이 공개적으로 작업을 진행하는데, 그 광경을 놓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했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만약 그런 참담한 일이 벌어진다면, 이번만큼은 그 어떤 것으로도 자신의 헛헛한 마음을 달랠 수 없을 것이다.

걸음을 서둘렀다.

최대한 빨리 드미트리로 가야만 했는데, 잔인하게도 신은 그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았다.

“죄송합니다만, 차례를 기다리셔야 합니다.”

“빌어먹을!”

워프 게이트.

마법 문물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먼저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인해서 발렌티노 후작은 최소 4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말을 들었고, 그때부터 미친 듯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검을 제작하는 작업은 하루 이틀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분명히 최소 열흘 이상은 걸리겠지만, 발렌티노 후작은 시작 단계부터 끝까지 모든 광경을 눈에 담고 싶었다.

그런데 4시간이라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대기 시간과 이동 시간을 고려하면, 이건 정말 발렌티노 후작의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발기는 일이었다.

한 1분 기다렸을까.

결국은 참지 못한 발렌티노 후작이, 줄을 헤치고 나가더니 바로 다음 차례 인물에게 말을 걸었다.

다행히도 상대는 익숙한 얼굴이었다.

“페티슨 백작! 내가 정말 급한 일이 있는데, 차례를 내게 양보해 줄 수 없겠나. 만약 내 사정을 배려해 준다면, 이번 일은 나중에 확실히 보답하겠네.”

발렌티노 후작의 보상.

흘려들을 이야기가 아니었다.

페티슨 백작도 평소라면 기꺼이 차례를 양보했겠지만, 이번만큼은 그럴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

“죄송합니다만, 중요한 선약이 잡혀 있습니다. 발렌티노 후작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약속 시각을 준수하는 것이 신뢰의 기본이라는 것을요. 차라리 저 말고 다음 차례인 분에게 부탁을…….”

“100골드.”

“예?”

“부족한가? 그럼 200골드.”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직 머릿속으로 이해하지 못했다.

단순히 자리를 양보하는 것에 그 큰돈을 주겠다는 것인데, 이번만큼은 양보할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

그런데.

“500골드.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기꺼이 양보해 드리겠습니다, 발렌티노 후작님.”

연이은 부탁을 거절하기에, 500골드는 너무나도 큰 액수였다.

* * *

500골드의 지출.

과했다.

블레이즈를 1200골드에 낙찰받았을 때는 물질적인 가치라도 남았지, 이번에는 단순히 자리를 양보받기 위해서 엄청난 액수를 사용했다.

발렌티노 후작과 같은 대부호일지라도 무시할 수 없는 액수였지만, 그는 애초에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사고 회로 자체가 달랐다.

‘이건 단순한 자리 양보가 아니라, 내가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는 추억과 경험을 사는 것이다.’

1분 1초라도.

로만 드미트리의 모습을 빨리 눈에 담고자 했다.

설령 아무것도 남지 않는 무형(無形)의 가치일지라도, 발렌티노 후작이 아득바득 돈을 모으는 이유는 이와 같은 상황에서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하기 위함이었다.

덕분에 곧바로 워프 게이트를 이용할 수 있었다.

순식간에 드미트리로 이동한 발렌티노 후작은, 로만 드미트리가 작업하고 있다는 장소로 걸음을 서둘렀다.

쿵쿵쿵.

심장이 뛰었다.

피가 미친 듯이 끓어올랐다.

마침내 현장에 도착한 발렌티노 후작은, 가로막는 사람들을 헤치고 나아갔다.

미리 자리를 선점한 이들.

그들을 물리치는 것은 만만치 않았다.

어떤 이에게는 호통을.

어떤 이에게는 물리적인 수단을.

어떤 이에게는 돈까지 내밀었다.

발렌티노 후작의 얼굴이 땀으로 흠뻑 물들고 나서야, 그는 공방이 보이는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화륵.

화르르르륵.

타오르는 불길.

불길에 휩싸인 로만 드미트리.

눈앞에.

“……아아.”

발렌티노 후작이 상상으로만 떠올렸던 그 순간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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