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33화 (433/615)

433화 예술의 경지 (3)

지난 한 달.

발렌티노 후작은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

로만 드미트리의 작업이 절정에 달하는 순간을 바라보며, 그는 혹시라도 작업에 방해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숨소리마저 죽였다.

심장이 미칠 듯이 뛰었다.

마침내 새벽이 정적으로 물들고, 로만 드미트리가 밖으로 걸음을 내딛자 자신도 모르게 홀리듯 마중을 나갔다.

몸이 오들오들 떨렸다.

오랜 시간 야외에서 지내며 몸은 정상이 아니었으나, 정신이 육체적인 한계를 초월해 버렸다.

“……화, 황제 폐하. 작업을 끝내신 겁니까?”

입이 제대로 움직이질 않았다.

차갑게 얼어붙은 입으로 힘겹게 말하는 모습에, 로만 드미트리는 말없이 발렌티노 후작을 바라보았다.

상대가 바라는 바를 알았다.

발렌티노 후작.

카이로 제일의 대부호로서 소집욕을 인생의 목표로 삼는 이 사람이, 꾀죄죄한 몰골로 자신을 기다린 이유를 모를 수가 없었다.

참 재밌는 사람이었다.

사실 발렌티노 정도 되는 사람이라면 카이로에서는 고개를 빳빳이 들고 살아갈 수 있는 위치인데, 검 하나를 구경하겠다고 거지꼴로 자신을 기다리는 모습이라니.

별종일지라도 열정적인 사람을 로만 드미트리는 배척하지 않았다.

슥.

설명하지 않았다.

아무런 말 없이 검을 건네는 모습에, 발렌티노 후작은 파문이 일어난 눈빛으로 검을 바라보았다.

“……아아.”

감탄이 새어 나왔다.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검은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고, 매끄럽게 이어진 자태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숨을 막히게 했다.

이전에 만들었던 검과는 묘하게 달랐다.

외형적인 완성도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사람의 마음을 들끓게 만드는 마력에 덜덜덜 떨리는 손으로 검을 받아 들었다.

착.

매끄러웠다.

손에 감기는 느낌에, 적당한 무게에, 그리고 짜르르 울리는 마력의 파동에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비릿했다.

피가 날 정도로 씹어 대는 것을 모를 정도로, 발렌티노 후작은 검에 완전히 매료되어 버린 표정을 보였다.

사실 로만 드미트리가 디제스터 이상의 검을 만들지 못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디제스터는 완벽한 존재였는데, 단언컨대 지금 눈앞에 있는 이 검이 디제스터를 압도해 버렸다.

마력 테스트?

강도 테스트?

그딴 건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수집가로서의 감각이, 아니 길거리에서 노숙하는 부랑자들일지라도. 이 검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는 단번에 알아볼 것이다.

머릿속이 팽팽 돌았다. 사실 그는 지난 한 달의 시간이 조금도 힘들지 않았다.

밖에서 지내는 것이 춥고 불편할지라도, 로만 드미트리가 작업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모든 불만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그리고 화룡점정(畫龍點睛)을 찍듯 공개된 결과물에, 발렌티노 후작은 자신이 이곳에서 보내온 시간에 대한 감정적인 보답을 얻었다.

이것이었다.

그 누구보다도 결과물을 먼저 확인하길 바랐기에, 사회적인 위치를 내팽개치고 노숙을 택했다.

그때였다.

“검의 이름은 스피릿이다.”

“……스피릿이라니. 정말 이름도 아름다운 검이군요.”

스피릿.

단어를 머릿속에 각인했다.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고 검을 내준 로만 드미트리에게 감사함을 느끼는 순간, 발렌티노 후작은 자신도 모르게 무언가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그것은 또 다른 검이었다.

생각해 보니 로만 드미트리는 초반에 한 자루의 검을 제작한 뒤에, 그 이후에 본격적으로 스피릿에 전념했다.

그렇다면.

저 검은 무엇이란 말인가.

스피릿은 당연히 로만 드미트리가 사용할 검이기에 구매할 수 없겠지만, 저것은 다를 수도 있었다.

“……혹시 저 검도 볼 수 있겠습니까?”

눈빛이 탐욕으로 물들었다.

머릿속에 펼쳐진 상상의 나래는, 이미 로만 드미트리 컬렉션에 저 검을 추가해서 행복해하는 본인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었다.

이성이 완전히 마비되어 버렸다.

너무 충격적인 결과물을 확인하고 나니, 발렌티노 후작은 이미 알고 있었던 진실을 잠깐 잊어버리고 말았다.

“이건 확인할 수 없다.”

그건.

청천벽력과도 같은 발언이었다.

발렌티노 후작이 절망적인 표정으로 바라보자, 로만 드미트리는 덤덤한 눈빛으로 검을 회수했다.

“이미 주인이 정해진 검이다. 그러니, 가장 먼저 검을 확인할 사람도 검의 주인이어야만 한다.”

* * *

날이 밝았다.

로만 드미트리가 작업을 끝냈다는 사실에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로만 드미트리는 지난 한 달 전의 약속을 이행했다.

“약속했던 검이다.”

“……감사합니다.”

무릎을 꿇은 사내.

케빈이었다.

케빈은 로만 드미트리에게서 검을 받아 들며, 감격한 얼굴로 검의 면면을 살폈다.

대단한 검이었다.

그동안 수많은 사선(死線)을 넘었기에, 로만 드미트리가 하사한 이 검의 가치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단번에 알아보았다.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일개 수하가 검을 부탁한 일을 대충 처리해 줄 수도 있었는데, 로만 드미트리는 작업하는 모습을 모든 사람에게 대대적으로 공개했다.

그때의 모습.

잊을 수 없었다.

불길에 휩싸이며 작업하는 저 결과물이 자신의 것이라는 생각에, 케빈은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꼈다.

“황제 폐하께서는 제게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하찮은 빈민가 소년에 불과했던 저를 검으로 사용하겠다고. 그때부터 이미 제 삶은 황제 폐하의 것이었습니다. 크로노스든, 마계의 악마든. 어떤 적들이 황제 폐하의 앞길을 막아선다고 한들, 저는 언제나 황제 폐하의 검으로서 존재할 것입니다.”

고개를 숙였다.

충성심을 말하는 그 모습에, 로만 드미트리는 가볍게 웃음을 보였다.

화기애애한 장면이었다.

지켜보는 사람들도 참 보기 좋다면서 속닥거리는 상황에, 혼자 웃지 못하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그는 바로.

발렌티노 후작이었다.

로만 드미트리는 약속을 이행했다.

스피릿이라는 새로운 검을 만들면서 디제스터를 약속대로 건네주었지만, 스피릿을 확인한 이후부터 디제스터의 상징성은 머릿속에 남아 있지 않았다.

물론 대륙을 정벌했을 때 사용한 검이라는 상징성은 대단했다.

문제는 사람은 욕심쟁이라서,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힐끗.

케빈의 검을 보았다.

매력적이었다.

탐스러웠다.

스피릿만큼은 아닐지라도, 그 깨달음이 일부 녹아든 검은 디제스터보다 뛰어난 검이 분명했다.

스윽.

디제스터를 보았다.

이것도 대단했다.

그런데 아쉬웠다.

힐끗.

속이 뒤틀렸다.

스윽.

이것도 분명히 좋은 선택지였다.

힐끗.

스윽.

힐끗.

스윽.

그렇게 수차례 번갈아 검을 확인하던 발렌티노 후작이, 자신의 머리를 탁 치면서 탄식을 내뱉었다.

“이런 병신 같은 새끼. 그냥 내 검도 따로 만들어 달라고 할걸. 그랬다면 저 검도 내 것이고, 디제스터도 내 것이 될 수 있었잖아.”

확실했다.

탐욕의 수집가.

그는 정말 대단한 욕심쟁이였다.

* * *

그날.

발렌티노 후작은 케빈을 찾아갔다.

만약 그 검을 판매한다면 원하는 액수만큼 돈을 지불하겠다고 말했지만, 케빈은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거절합니다. 이 검은 제 것입니다. 제가 죽지 않는 한, 이 검이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될 일은 없습니다.”

단호했다.

적의마저 느껴질 정도로 살벌한 반응에, 발렌티노 후작은 케빈 같은 인물은 절대 돈으로 회유할 수 없음을 알았다.

그야말로 한숨이 푹푹 내쉬어지는 상황이었다.

스피릿을 보지 않았다면 모르겠지만, 스피릿을 보고 나니 디제스터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몸이 되어 버렸다.

신은 가혹했다.

자신에게 욕심을 조금만 덜어 갔더라면, 발렌티노 후작은 분명히 적당히 만족하며 살았을 것이다.

그로부터 며칠 내내.

고민에 빠졌다.

계속해서 가라앉지 않는 욕망에 고통받던 그는, 주변 인맥으로부터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페티슨 백작 소식 들으셨습니까? 중요한 거래가 있었는데, 그날 늦는 바람에 거래를 완전히 망쳐 버렸답니다. 그렇다고 좋다고 웃는 꼴이 얼마나 황당하던지. 하긴, 이해는 됩니다. 인간관계 하나가 틀어진 대가로 500골드면 괜찮은 장사이지 않습니까?”

그 순간.

깨달음을 얻었다.

‘그래, 돈으로 불가능한 일은 없어.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그건 그만큼 돈이 부족하다는 의미겠지.’

삶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

정말 만약에.

케빈에게도 돈이 필요한 순간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그때 케빈이 거절할 수 없을 만큼의 엄청난 액수를 제시한다면, 제아무리 케빈일지라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까.

당장 1~2년 뒤의 미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케빈도 늙고 검을 제대로 휘두르지 못하는 순간이 찾아온다면, 평안을 원할 케빈으로서는 검의 거취를 고민할 수도 있다.

물론 본인이 먼저 늙어 죽을 가능성은 애써 외면했다.

실낱같은 가능성이었다.

그런 기회가 찾아왔을 때, 그 기회를 확실하게 쟁취하기 위해서는 만반의 준비가 필요했다.

수뇌부들을 불러모았다.

그들이 모인 자리에서, 발렌티노 후작은 말했다.

“나는 당분간 상단 일에 전념할 것이다. 그리고 발렌티노를, 이 가문을 대륙 제일의 부자로 만들 것이다. 역사상 유례없는 규모의 재산을 보유한. 한때 재력을 7성의 오라처럼 휘둘렀던 골든 뱅크를 뛰어넘는 그 이상의 부를 말이다.”

사람들은 예상이나 했을까.

이날의 결심이.

정말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갑작스러웠던 이 말이, 발렌티노 가문의 부흥기를 이끌 것이라는 사실을.

훗날.

사람들이 말했다.

원래 성공하는 사람과 미친놈은 한 발자국 차이라고 말이다.

* * *

일련의 상황.

로만 드미트리가 공개적으로 검을 만든 상황에, 발렌티노 후작과 다른 감성에 빠진 사람이 있었다.

“……세월이 빠르구나.”

로메로 드미트리.

그가 서재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헨드릭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황제 폐하는 한때 드미트리 제일의 대장장이라고 불렸던 가주님의 경지를 아득히 뛰어넘으셨습니다. 그분이 만드는 검은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영역이며, 저 또한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있습니다. 참 세상일은 알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드미트리 가문은 가주님 이후로 대장간의 대가 끊겼다는 예상이 지배적이지 않았습니까.”

자신을 넘어섰다는 말.

듣기 좋았다.

드미트리 가문의 근본은 대장간에 있기에, 로메로 드미트리는 항상 삼남 중 한 명은 대장장이로서의 명맥을 이어 주기를 바랐다.

그런데 현실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나마 로드웰 드미트리가 의욕을 보였지만, 사실 그것은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님을 알았다.

그렇다고 강요할 수도 없었다.

대장간의 일.

아무리 그것이 근본이라고 한들, 귀족의 작위를 얻으면서 주변 시선이 좋지 않았다.

천박하다며 바라보는 시선들.

그래서 늘 마음에 응어리처럼 남았던 감정이 있었는데, 아픈 손가락이라고 생각했던 장남이 그 대를 이어 주었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기쁠 수밖에 없었다.

한때.

로메로 드미트리는 드미트리의 전부였다.

모두가 그를 떠받들었던 때가 있었지만, 지금도 로메로 드미트리를 그리워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가끔 과거의 순간을 회상할 뿐. 로메로 드미트리가 다시 드미트리를 다스리길 바라진 않았다.

웃음이 나왔다.

뒷방늙은이가 되어 버렸다는 사실이, 그로서는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의 기쁨을 부여했다.

“좋구나.”

날이 맑았다.

그날.

로메로 드미트리는 쉬이 잠자리에 들지 못했다.

그 또한 한 명의 아버지로서, 오늘의 일을 두고두고 추억하고 기억할 것이다.

* * *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드미트리의 연무장.

로만 드미트리의 일로 사람들이 들썩이던 지난 한 달, 그곳과는 멀리 떨어진 공간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모습을 드러낸 이가 있었다.

아침 일찍부터 해가 저무는 시간까지.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도록 검을 휘두른 존재는, 로만 드미트리가 작업을 끝내고 며칠이 지난 오늘도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를 보냈다.

훅.

훅, 훅.

일정한 간격.

일정한 힘.

눈빛이 매섭게 빛났다.

수도 없이 휘둘렀던 동작이었지만, 크리스는 한순간도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황제 폐하를 제외한 그 누구를 상대로도 패배하지 않을 것이다.’

이번 대회.

크리스와 케빈이 참전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이미 사람들 사이에서는 둘 중 누가 승리할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

크로노스와의 전쟁 이전만 하더라도 대부분은 크리스의 승리를 예상했다.

하지만 이번에 케빈이 아레스를 무너트리며, 현재는 오히려 케빈의 손을 들었다.

용납할 수 없었다.

목표를 넘어서지 못할지언정, 자신이 누군가의 발판이 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훈련에 열을 올렸다.

얼마 남지 않았다.

예정한 기간이 코앞에 다가온 상황에, 크리스는 단 하루도 허투루 보낼 여유가 없었다.

그때였다.

“크리스 님! 크리스 님!”

저 멀리.

병사 한 명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크리스 앞에 도달한 그는 헐떡거리는 숨을 간신히 진정시키더니, 힘겨운 얼굴로 말을 내뱉었다.

“지, 지금 엄청난 일이 벌어졌습니다!”

“침착하고 본론을 말해라.”

침착할 수 없었다.

드미트리를 강타한 하나의 소식.

그것은 크리스, 그리고 대륙의 판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일이었다.

“사실 조금 전에…….”

그렇게 시작된 얘기.

때는 1시간 전.

에드윈 헥토르가 드미트리를 방문하면서, 사람들을 충격에 빠트릴 문제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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