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5화 통합 랭킹 (2)
케빈의 외모는 소문과 달랐다.
상대의 피를 탐하는 악귀와도 같은 생김새를 예상했는데, 눈앞의 사내는 길거리에서 흔히 볼 법한 청년에 불과했다.
정확히는 이제야 소년의 티를 벗어 낸 듯한 모습.
단순히 외형적인 위압감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지만, 케빈을 바라보는 멘데스는 입 안이 바짝 마르는 기분이 들었다.
‘첫 라운드부터 드미트리의 악귀를 만나다니.’
이번 대회.
아마 모든 참가자는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제발 유의미한 성적을 거두기 전에는 크리스와 케빈을 만나지 않길 바랐지만, 그렇다고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모두가 경계하는 존재.
드미트리의 섬광과 악귀를 쓰러트린다면 그만큼 엄청난 명예를 얻는다는 의미이기에, 마음속으로는 평탄하게 진행되길 바라면서도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 왔다.
‘다행히도 드미트리의 악귀에 대한 정보를 취급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
바르코와의 대전사 전투부터.
최근 대륙 전쟁까지.
모든 자료를 살폈다.
‘케빈은 상당히 공격적인 스타일이다. 빠르고 거칠며, 아슬아슬한 간격을 즐기는 공격 패턴으로 상대를 순식간에 궁지로 밀어 넣지. 게다가 이번 랭킹전은 진검을 사용하기에, 실제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사실은 케빈의 강점을 부각시킨다. 내가 이런 괴물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강인한 자세가 필요하다.’
꽉.
검을 움켜쥐었다.
자신에게 크로노스 제국의 자부심이 걸렸다.
1라운드 만에 탈락해 버린다면, 상대가 누구든 간에 크로노스가 몰락했다는 말이 따라붙을 것이 분명했다.
‘평정심(平靜心)을 유지해야만 한다. 상대가 폭풍처럼 몰아붙일지라도, 나는 내가 생각한 간격에서 절대 벗어나서는 안 된다. 상대가 나의 영역에 침범했을 때는 벼락같이 몰아붙이겠지만, 아슬아슬한 간격을 따라가겠다고 무리하는 순간 체계를 잃은 난전은 승패를 결정지어 버리겠지. 사람들에게 보여 주마. 크로노스를 대표하는 나 멘데스가 어떤 존재인지를.’
이를 악물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자신을 불쌍하게 바라보는 그들에게, 멘데스라는 이름을 똑똑히 각인시켜 주고 싶었다.
그때였다.
펄럭.
심판이 시작을 알렸다.
그와 동시에, 멘데스는 오라를 끌어올리며 곧바로 들이닥칠 케빈의 공격을 대비했다.
‘케빈의 패턴은 매번 같았다. 시작부터 숨을 돌릴 여유를 허락하지 않고 몰아붙이겠지. 일단은 득달같은 공격을 한 번 흘려보낸 이후에, 상대의 반응을 보면서 다음 대응 방법을 택한다.’
쿠르르르르르릉.
폭발하는 오라.
아드레날린이 미칠 듯이 분비되었다.
상대를 맞이할 준비를 끝냈는데, 눈앞에 벌어진 광경은 예상과 달랐다.
웅성웅성.
“뭐지?”
“왜 공격하지 않는 거지?”
당황하는 사람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모두의 예상과는 달리, 케빈은 시작한 그 지점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 * *
이해가 되지 않았다.
케빈의 패턴.
자료에 없었다.
항상 싸움을 주도했던 것이 케빈의 스타일인데, 가만히 지켜보는 모습에 멘데스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무슨 생각이지?’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것은 케빈이 기존과는 다른 무언가를 추구한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멘데스로서도 상황에 걸맞은 대응이 필요했다.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자신으로서는 나쁘지 않은 상황이었다.
어떤 이유든 간에 케빈이 수비적으로 대응한다면, 상황을 주도해서 빠르게 마무리하면 그만이었다.
판단을 내렸다.
예열을 끝마친 멘데스가 상대와의 거리를 조금씩 좁히더니, 순식간에 땅을 박차며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팟.
콰르르르르릉.
빨랐다.
6성 오라의 폭발력이 거리를 빠르게 좁혔고, 멘데스는 케빈의 모습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상대가 어떻게 반응한다고 한들. 그것을 차단하고, 상대의 의도를 단번에 박살 내 버리려는 속셈이었다.
열 걸음.
아홉 걸음.
여덟 걸음.
거리가 좁혀졌다.
아직은 조금 멀다고 생각되는 거리에 접근하는 순간, 멘데스는 눈을 부릅뜰 수밖에 없었다.
번뜩.
콰앙!
콰르르르르르르릉.
그야말로 본능적인 수비였다.
순식간에 공간을 관통하는 공격에, 자신도 모르게 검을 들어서 막아 냈다. 양팔이 뒤로 튕겨 나가며 속이 완전히 뒤집혔다.
상대가 어떻게 움직였는지 확인조차 하지 못했다.
마나의 흐름이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케빈의 공격은 어느새 자신의 공간을 찢어발기고 있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케빈은 멘데스와의 거리를 멀찍이 떨어트린 채로, 마치 화살을 발사하듯 공격을 퍼부었다.
카앙!
카카카카캉.
‘이런 미친.’
사방에서 충돌이 일었다.
가까스로 공격을 막아 내고는 있었지만, 예상과는 다른 생소한 스타일에 멘데스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이해가 되질 않았다.
케빈과 자신.
신체적인 스펙은 자신이 우위에 있었다.
그렇다면 일방적인 공격 거리는 자신이 선점해야 하는데, 자신조차도 불가능한 거리에서 케빈은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자신의 공격 거리를 완벽하게 파악해, 자신이 거리를 선점하기 전에 쇄도하면서 공격을 시도하는 것.
순식간에 공격 거리를 무용지물로 만드는 패턴이었고, 완벽한 거리 계산이 동반되지 않고서는 이론이 성립되지 않았다.
‘거리를 좁힌다.’
황당했다.
케빈을 상대로 이런 판단을 내려야 한다니.
근접 전투는 케빈의 영역이지만, 거리 계산에서 완벽하게 밀리니 이대로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타탓.
콰르르르르릉.
달려들었다.
그런데 상황은 예상과 달랐다.
분명히 달려들었는데, 그만큼 케빈과의 거리도 멀어졌다.
그러고는.
번뜩.
콰앙!
공격이 작렬했다.
케빈은 농락하듯 멘데스와의 거리를 유지했고, 조금이라도 틈을 보이는 순간 공간을 파고들면서 공격을 퍼부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이건 절대 케빈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케빈이 이런 방법으로 싸웠다는 기록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데, 마치 미꾸라지처럼 거리를 유지하는 모습에 속이 완전히 뒤집혔다.
차라리 제대로 부딪혔다면. 힘과 힘의 대결에서 패배를 시인했을 텐데, 지금의 패턴에서 멘데스는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평정심을 잃었다.
그것은 너무나도 미세한 차이였지만, 멘데스가 반걸음 앞으로 내딛는 순간 그 대가는 처참했다.
팟.
피가 튀었다.
허벅지가 베이며 다리가 비틀거렸고, 눈을 부릅뜬 멘데스는 황급히 검을 들었다.
카앙!
콰르르르르릉.
강렬한 충격.
숨이 막혔다.
이를 악물며 황급히 다음 공격을 막으려 했으나, 미꾸라지 같았던 케빈이 어느새 눈앞에 나타났다.
툭.
목에 겨눠지는 검.
케빈이 차가운 눈빛으로 자신을 내려보았다.
한쪽 무릎을 꿇은 멘데스로서는, 이 상황에서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알았다.
“……항복하겠습니다.”
그건 정말이지.
그로서는 생각하기 싫었던 최악의 결말이었다.
* * *
충격적인 패배였다.
그래도 언더독(Underdog)을 응원하는 사람들에게, 멘데스는 가장 배당률이 높은 기대주였다.
그런데 완전히 농락당해 버렸다.
대결 내내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패배를 시인하는 모습은 멘데스를 의지가 박약한 사람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하지만 실력이 있는 사람들은 진실을 알았다.
케빈이 압도적인 실력으로 멘데스를 찍어눌렀기에, 무려 6성의 검사가 일반 사람들에게는 조잡하게 보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밖으로 실려 나왔다.
허벅지에서 흐르는 피에 황급히 치료를 진행했고, 크로노스의 고위 귀족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
멘데스의 패배.
절망적이었다.
그는 진실을 확인할 안목이 없었다.
당황으로 물든 그의 시선을 바라보며, 멘데스는 허망한 얼굴로 말했다.
“보고도 모르시겠습니까? 완벽하게 패배했습니다. 방금의 대결에서, 케빈은 저를 대결 상대로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울컥했다.
화가 났다.
6성의 경지.
멘데스는 새로운 영역에 들어서면서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는데, 오늘 충격적인 현실을 마주하고 말았다.
케빈은 오라의 경지가 전부가 아님을 증명했다.
오라의 파괴력을 제대로 선보이기도 전에, 거리를 농락해 버리는 모습에 멘데스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문제는.
케빈의 의도였다.
대체 왜 케빈이 이런 방법을 택했는지를 생각하자, 단 하나의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드미트리의 악귀는 지금 크리스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경쟁 상대로 여기지 않고 있습니다. 방금의 대결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를 쓰러트리기 위해 그러한 전략을 준비한 것이 아니라, 크리스를 상대하기 위해 실험을 진행했을 뿐입니다. 이게 진실입니다. 사람들은 저를 크로노스의 희망이라고 불렀지만, 저는 로만 드미트리 황제 폐하는커녕 케빈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절망이 들끓는 목소리였다.
이번 대회를 준비하며 케빈을 낱낱이 분석했건만, 멘데스는 수련의 상대로 쓰이다가 패배했다.
드미트리의 섬광.
그를 상대로 거리를 점령하지 못하면 순식간에 목이 날아간다는 소문이 있는 만큼, 케빈이 무슨 의도로 멘데스를 상대한 것인지는 뻔히 보였다.
수련의 일종이었다.
크리스를 상대로 빠르게 거리를 좁히기 위해, 크리스와의 적절한 거리를 판단하기 위해, 케빈은 멘데스에 크리스를 투영했다.
멘데스.
그 또한 천재라고 불리는 종류의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절망적인 감정을 추스를 수가 없었다.
“사람들의 예상은 틀렸습니다. 이번 대회는 드미트리를 제외한 나라가 얼마나 많이 최상위 랭커를 차지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최상위 16개의 자리 중 단 하나라도 드미트리를 제치고 올라서는 존재가 있다면, 그 정도의 업적만으로 우리는 박수를 보내게 될 것입니다.”
고위 귀족의 눈빛이 변했다.
그제야 알았다.
드미트리 제국.
대륙을 통일한 그들은, 이제 과거의 위상으로는 넘볼 수 없는 그런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을.
* * *
그 시각.
다른 무대에서는, 모두의 예상과 부합하는 결과가 연출되었다.
“하압!”
팟.
콰르르르르르릉.
기세는 좋았다.
프랑크 내에서는 나름대로 프랑크 제일검이라고 불리는 존재였고, 5성의 오라를 폭발시키면서 기선을 제압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의 승리를 예상하지 않았다.
상대는 드미트리의 섬광이라고 불리는 크리스이기에, 얼마나 버틸지가 사람들의 관심사였다.
그리고 예상대로.
번뜩.
퍽.
단 3초.
프랑크 검사가 비틀거렸다.
무언가 번뜩이는가 싶더니, 뒷덜미를 강타당한 검사가 바닥에 고꾸라지고 말았다.
“21번째 경기, 크리스 승리.”
“우와아아아!”
“역시 크리스다!”
사람들이 난리가 났다.
엄청난 환호성을 보내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크리스는 덤덤한 얼굴로 무대에서 내려왔다.
‘이 정도의 승리로 도취 될 필요는 없다.’
대륙 전쟁.
드미트리의 검사들은 완전히 다른 영역에 들어섰다.
오라는 파괴력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나, 오라 혁명이 일어나면서부터 검사 개인의 기본기가 매우 강조되었다.
케빈과 멘데스의 대결이 그러했다.
둘은 오라의 파괴력만 따지고 보면 그리 차이가 나지 않지만, 케빈은 로만 드미트리의 곁에서 일반 사람들은 경험하지 못할 많은 것들을 보고 들었다.
그렇기에 케빈과의 대결은 이번처럼 쉽게 마무리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그와의 대결을 준비하지 않았다.
스스로를 단련할 뿐, 케빈의 존재를 대비하지 않아도 승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두에게 증명할 생각이었다.
그런 이유로 승부를 빠르게 결정지었다.
굳이 길게 끌 이유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때였다.
무대에서 내려와 걸음을 옮기려는데, 저 멀리 다른 무대에서 엄청난 환호성이 들렸다.
‘1라운드부터 이렇게 환호를 받을 경기가 있었던가.’
호기심이 동했다.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모습에, 그리고 심상치 않은 환호성에 경기를 주관하는 직원에게 물었다.
“지금 저기서 어떤 경기가 진행되고 있는 거지?”
“저쪽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발할라 제국의 레이먼을 아십니까? 한때 대륙 랭킹에 이름을 올렸던 인물인데, 죽었다고 알려진 그가 이번 대륙 전쟁에서 아이른 남작을 따르겠다며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알고 보니 그동안 은둔 생활을 하며 검술에만 매진했던 것이지요. 6성의 경지에 실력도 상당하다 보니, 크로노스의 멘데스와 더불어 상당히 기대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그리고 그의 상대는…….”
사실.
레이먼의 이름값만으로는 이 정도의 관심을 받을 수 없다.
아무리 대단한 실력자라고 한들, 이번 대회의 주인공은 레이먼과 같은 인물들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1라운드 라인업이 뜨자마자 그의 경기에 사람들이 몰려든 이유는, 바로 그의 상대가 특별하기 때문이었다.
레이먼의 상대.
그는 바로.
“에드윈 헥토르 왕자입니다. 그가 1라운드부터 강자를 만났습니다.”
마법사들의 참전.
사람들의 관심사는, 현재 대륙 제일의 마법사라고 평가받는 에드윈 헥토르가 어떤 결과를 보여 주느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