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39화 (439/615)

439화 통합 랭킹 (6)

크리스와의 대결.

벌써 세 번째였다.

케빈은 이전의 일들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첫 번째 대결을 치르던 그때의 케빈은, 아직 검술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초급자에 불과했다.

‘그때는 불가능한 승부라고 생각했었지. 크리스 님은 드미트리에서 알아주는 천재 검사였고, 나는 빈민가를 전전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에 불과했으니까. 그리고 처참하게 패배한 이후에 가장 먼저 내 머릿속을 장악했던 생각은, 내가 너무 한심하고 초라하다는 것이었다.’

패배.

당연한 결과였다.

스스로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케빈은 패배라는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자신의 뒤에는 로만 드미트리가 있었다.

크리스가 어떻게 움직일지, 어떤 의도로 자신을 공격해 오는지를 모두 말해 주었는데도, 케빈은 유리한 이점을 살리지 못하고 패배하고 말았다.

그 사실이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정답을 알고도 간격을 메울 수 없는 초라한 실력이라는 생각에, 겨우 이따위 수준으로 로만 드미트리의 검으로 살겠다는 꿈을 꾸었다는 사실에 정말 스스로가 부끄러워 잠자리에 들 수 없었다.

그날부터.

악착같이 훈련에 몰두했다.

앞으로의 미래에 자신이 방해되지 않기를, 더는 이러한 굴욕감을 느끼지 않기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열등감(劣等感)은 발전의 원천이었다.

크리스를 우러러보았기에 빠르게 발전하였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를 넘어서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이 생겨났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두 번째 대결이 성사되었다.

로만 드미트리가 자신보다도 크리스에게 좋은 검을 선사했을 때, 들끓는 열등감은 도저히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리고 또다시 패배했다.

이번에는 화가 났다.

사람들은 자신을 드미트리의 악귀라고 불렀다.

충분히 발전했고, 스스로도 이제는 강하다고 생각했건만, 크리스를 쓰러트리지 못했다는 사실은 엄청난 절망을 안겨 주었다.

이제는 받아들여야만 하는 현실이 되었다.

크리스가 자신보다 위라는 사실을, 로만 드미트리의 진정한 검은 자신이 아니라 크리스라는 명백한 사실을.

생각을 거듭했다.

역시 인정할 수 없었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한들, 크리스를 쓰러트리고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해 보이고자 했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조금 더 원론적인 이론을 파고들었다.

자신과 크리스의 차이가 어디에서부터 비롯되는지를, 그리고 단순히 세월의 간격으로 인한 차이를 메울 방법이 없는지를.

그건 광기였다.

인정했다.

로만 드미트리는 자신의 삶이 되었다.

결핍이 많았던 존재에게, 많은 것을 채워 준 로만 드미트리는 삶의 전부가 되어 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오늘이 되었다.

탁.

무대에 올랐다.

넓게 펼쳐진 경기장 위에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크리스의 모습이 보였다.

‘이번만큼은 반드시 승리한다.’

세 번째 대결.

절대 세 번은 패배하지 않을 것이다.

* * *

긴장감이 맴돌았다.

관중들조차 숨소리를 조심할 정도로, 크리스와 케빈의 대결은 모든 이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누가 이기든.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될 것이다.

팽팽하게 차오르는 긴장감에, 크리스가 말했다.

“케빈. 이번 대회를 준비하면서, 나는 결국 너와 이 자리에 서게 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덤덤했다.

차분하게 내뱉는 음성에, 사람들이 귀를 기울였다.

“너와의 관계는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 드미트리가 막 두각을 나타내던 시점에는 너를 주목하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았지만, 나를 바라보는 네 눈빛이, 네 태도가 언젠가는 내 자리를 노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부정하고 싶었던 진실이었다.

크리스는 애써 케빈과의 경쟁 관계를 부정해 왔으나, 아레스를 쓰러트렸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자신의 진심을 알았다.

경쟁 관계는 케빈의 발전과는 무관했다.

처음 그와의 대결에서 케빈이 승리하겠다는 강한 열망을 표출하면서부터, 크리스에게 케빈의 존재는 단순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자신을 뛰어넘으려고 할 존재.

그 시기가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은 몰랐지만, 케빈은 악착같이 노력해 자신의 앞에 섰다.

‘과거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구나.’

그때의 케빈.

빈민가 소년에 불과했던 케빈.

검조차 제대로 휘두르지 못했던 케빈.

황당할 정도로 기본적인 검술을 배우면서도, 자신을 상대로 끝까지 독기를 표출하던 미친 녀석.

인정했다.

경쟁자다.

그리고 경쟁은 발전의 밑거름이었다.

자신은 경쟁자를 처참하게 짓밟아,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단계로 나아갈 것이다.

“나는 너를 포함한 그 누구에게도 내 자리를 내어 줄 생각이 없다. 케빈. 이것은 너를 비롯한 나의 위치를 넘보는 모든 이들을 위해 마련한 자리다. 날 쓰러트려 스스로를 증명하거나, 아니면…….”

스릉.

검을 뽑았다.

사람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완전히 압도되어 버린 상황에,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세 번의 패배로 내 존재 가치를 빛내거라.”

문답무용(問答無用).

더는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펄럭.

심판의 신호가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서로를 마주 보던 두 존재가 서로를 향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 * *

크리스와 케빈의 대결.

사람들이 기대한 그림이 있었다.

명성에 어울리는 그런 대결을 기대했으나, 막상 경기장 위에서 펼쳐진 상황은 상상 그 이상의 격돌이었다.

팟.

콰르르르르르르릉.

선공은 크리스였다.

순식간에 공간을 찢어발기는 빠른 공격에, 케빈은 회피하는 동작 없이 오라로 휘몰아치는 공간을 파고들었다.

몸에 생채기가 생겨났다.

사방에 핏물이 흩뿌려졌으나, 급소를 노리는 공격은 완벽하게 차단하며 달려드는 속도를 멈추지 않았다.

통제의 영역.

시작부터 전력이었다.

사정거리에 들어선 케빈이 번개같이 검을 휘두르자, 눈 한 번 껌뻑일 시간에 수차례의 공방을 주고받았다.

카앙!

카카카카카캉!

공격이 막히면.

어김없이 급소를 공격해 왔다.

케빈이 공격을 흘려보내며 반격을 시도하자, 크리스는 케빈의 존재감을 찍어 누르는 속도와 파괴력으로 공격을 퍼부었다.

머리 위, 왼쪽, 오른쪽, 하체를 가리지 않고 퍼붓는 공격에 세상이 복잡하게 뒤엉켰고, 반격을 시도한들 크리스는 틈이 보이지 않았다.

쿠르르르르르르릉.

압도적인 존재감이었다.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케빈은 일방적인 경기력을 보였지만, 크리스의 검술은 그런 케빈조차도 찍어 누르고 있었다.

오라의 차이였다.

실력에서 크리스를 압도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오라의 파괴력은 케빈과 크리스의 차이를 만들었다.

무엇보다도 근접에서 빠르게 이루어지는 전투를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크리스의 모습은, 케빈의 변칙성을 단번에 차단했다.

콰앙!

콰콰콰콰쾅!

오라가 작렬했다.

근거리에 들어선 케빈을 몰아붙였다.

강렬한 충돌이 일어날 때마다, 케빈의 몸이 들썩이면서 뒤로 밀리는 모습을 보였다.

‘강하다.’

크리스.

드미트리의 섬광.

기억 속의 존재는 또다시 발전했다.

첫 번째 대결의 크리스보다도, 두 번째 대결의 크리스보다도, 자신이 성장하는 것 이상으로 발전하는 크리스의 존재는 케빈을 강하게 짓눌렀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크리스가 제자리를 걷는 그런 부류였다면, 이렇게 세 번째 대결을 치르기도 전에 무릎을 꿇었을 것이다.

번뜩.

파파파파팡!

공간이 찢겨 나갔다.

눈으로 제대로 확인할 수 없는 공격들이 사방에서 치고 들어왔고, 케빈은 보고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예민한 감각에 포착되는 무엇인가를 반응해 낼 뿐이었다.

방금도 마찬가지였다. 크리스의 공격이 바로 코앞을 스쳐 지나갔다.

분명히 자신이 먼저 공격했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후의 상황은 아무렇지도 않게 공격을 받아치며 반격을 시도하는 크리스의 모습이었다.

팟.

고개를 틀었다.

얼굴에서 피가 튀었다.

오라로 보호했는데도 얕게 찢겨 나가는 상처에, 케빈은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상대의 모습을 포착했다.

더 과감해야만 한다.

더 무모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차이를 허물 수 있다.

크리스는 명백히 자신보다 강했지만, 생사를 건 무대에서도 자신이 약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천마검법 전반부 일초식.’

콰앙!

콰르르르르르르르르릉.

강하게 몰아쳤다.

공격해 오면 공격해 오는 대로, 조금도 물러나지 않겠다는 듯이 크리스의 존재를 밀어붙였다.

눈빛은 광기로 번들거렸다. 이 순간을 얼마나 고대했던가.

처음 패배했을 때의 자신은 감히 크리스에 비할 존재가 아니었지만, 지금은 숨을 죽이는 사람들의 관심처럼 충분한 승산이 있었다.

이길 것이다.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콰앙!

콰콰콰콰콰쾅!

반격은 거셌다.

크리스의 오라가 폭발적으로 일어났으나, 서로의 존재가 뒤얽힐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크리스와 케빈은 한 치의 물러섬도 없었다.

자존심의 문제였다. 결과와 내용. 둘 모두를 쟁취하기를 바랐다.

결과론적으로 승리했다는 것이 아니라, 내용부터 상대를 압도하기를 바랐다.

팽팽했다.

피를 흘릴수록.

격렬하게 부딪힐수록.

머릿속이 맑아졌다.

케빈은 광기로 물든 얼굴로 상대와 부닥치며, 자신이 왜 크리스를 목표로 삼았는지를 떠올렸다.

수십 번의 공격.

수십 번의 방어.

단 한 번도 허용하지 않았다.

모조리 맞받아치는 이 존재를 무너트렸을 때야말로, 로만 드미트리가 자랑스럽게 여길 최강의 검이 되리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런 이유로 크리스를 목표로 삼았다.

열등감은 상대가 뛰어나기에 비롯되는 감정이었고, 케빈의 세상에서 크리스는 그 누구보다도 찬란히 빛나는 존재였다.

번뜩.

팔뚝이 베였다.

점점 피로 물드는 상황에, 케빈은 확신했다.

이번 대결.

자신은 분명히 승리할 것이다.

* * *

두 번째 패배 이후.

케빈은 고민에 빠져들었다.

단순히 검을 더 휘두르고, 악착같이 노력하는 것만으로는 크리스를 넘어설 수 없음을 알았다.

‘변화가 필요하다.’

크리스는 노력하는 천재였다.

재능에 안주하는 부류가 아니라 자신만큼이나 노력하기에, 자신이 아무리 발전한들 크리스와의 차이는 메워질 수 없었다.

두 번째 대결의 결과는 현실을 말해 주었다.

이전과 똑같이 살아가는 것만으로는 승리할 수 없다는 사실에, 케빈의 고민은 시간이 갈수록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힘.

스피드.

검술.

모든 부분에서 뒤처졌다.

일반적인 범주에서는 크리스를 넘어설 강점이 존재하지 않았으나, 단 하나만큼은 그를 앞섰다.

변칙(變則).

틀을 벗어나는 것.

케빈은 그 사실에 집중했다.

천마검법은 정말 대단하고 강력한 무기이나, 파괴력의 대결에서 크리스를 넘어설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자신은 로만 드미트리가 아니다.

일격에 로만 드미트리만큼의 파괴력을 보인다면 정공법을 택하겠지만, 똑같은 무기를 보유했다고 로만 드미트리처럼 싸울 수는 없었다.

생각을 바꾸었다.

자신만의 무기가 필요했다.

그것은 엄청난 변화였다.

빈민가의 소년이었던 케빈은 로만 드미트리가 알려 주는 방법에 따라 수련을 했고, 천마검법을 배웠을 때도 그는 틀 안에 존재했다.

변칙적인 성향과는 다르게 철저하게 타인의 가르침을 통해 탄생한 존재였다.

케빈이 자신을 가두었던 틀을 벗어던졌다.

스스로가 고민하고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리는 순간, 그동안 배웠던 것들을 속에서 하나로 만들어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그렇게.

그는 자신만의 무기를 만들어 냈다.

아레스를 상대하던 상황에는 미완성이었던 그것이, 이번 대회를 준비하며 완벽한 결과물로 변했다.

그 결과.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에드윈 헥토르가, 자신을 상대로 무릎을 꿇었다.

* * *

팟.

콰르르르르르르릉.

기회였다.

크리스가 연달아 공격을 몰아치는 순간, 그것들을 흘려보낸 케빈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단 일 격.

이 공격에 승부를 봐야만 했다.

크리스에게 유의미한 타격을 주지 못한다면, 치열한 접전의 결말은 자신의 패배로 끝날 것이다.

‘마나를 역류(逆流)시킨다.’

쿠르르르르릉.

내부가 들끓었다.

단전의 마나를 폭발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단전으로 마나를 모두 회수해서 마나를 꾹꾹 억눌렀다.

일반적이지 않은 방법이었다. 역류는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는 것이며, 내부에서 일어나는 급격한 변화에 케빈의 육체는 비명을 질러 댔다.

엄청난 통증이었다. 일반 사람들이면 내부가 찢겨 나갈 정도의 고통과 충격이었지만, 귀혼마공의 재생력이 역류를 버텨 냈다.

그러고는.

‘천마검법의 구결에 따라 단숨에 폭발시킨다.’

실제로는 찰나의 순간에 불과했다.

1초.

아니, 그 이하의 시간대.

크리스의 공격을 흘려보내고 무언가를 시도하는 행위 안에, 케빈의 내부에서는 변화가 일어났다.

쿠르르르르르르릉.

단전의 마나가 뒤엉켰다.

나아가려는 마나와 역류시킨 마나가 한데 뒤엉키더니, 케빈이 원하는 순간에 강력한 폭발을 일으켰다.

‘천마검법 전반부 삼초식.’

이 공격으로.

에드윈 헥토르를 무너트렸다.

이번에는 전력을 다했다.

역류하던 마나가 분출되기 시작하자, 전신에 마나가 폭발하며 케빈이 순간적으로 공간을 파고들었다.

콰앙.

파파파파파파팟.

강력한 폭발!

중원 무림의 방식과 알렉산드르의 방식이 조화를 이루었다.

단전을 이용해 마나를 다루면서도, 알렉산드르의 분출이 온몸에 폭발력을 더했다.

그것은 단숨에 크리스와의 거리를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상대와의 거리를 순식간에 좁혀 버렸고, 마치 세상을 부서트릴 것처럼 이글거리는 오라가 분출되었다.

단 일 격.

그 누구도 반응할 수 없는 속도였다.

이것을 완성했을 때, 세상에서 로만 드미트리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존재도 막을 수 없다고 확신했다.

번뜩.

공간을 갈랐다.

끝났다.

사람들은 인식조차 하지 못할 시간의 영역에서, 케빈의 강력한 일격이 그대로 크리스의 몸을 베어 버렸다.

그 순간.

“……!”

눈을 부릅떴다.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을 보였다.

극성으로 끌어올린 귀혼마공의 예민한 감각조차, 자신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파악하지 못했다.

푸확.

피를 분수처럼 뿜어냈다.

찰나의 순간.

크리스의 공격이 공간을 관통했다.

그것은 로만 드미트리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파악하지 못한, 그야말로 극강(極強)의 쾌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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