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63화 (463/615)

463화 에필로그, 새로운 나날들 (7)

마법 통신을 끊은 직후.

헥토르의 왕실 기사단장 버틀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정말 국경을 넘으실 생각입니까? 만약 발할라가 끝까지 물러나지 않는다면, 평화롭게 해결할 수 있었던 문제가 전쟁으로 번질 수도 있습니다. 그때는 승패를 떠나서 헥토르 또한 상당한 피해를 각오해야만 합니다.”

“버틀러 기사단장님의 말에 동의합니다. 이번 문제는 어중간한 결과로는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미 사전에 논의되었던 부분이다.

하지만 막상 전쟁을 눈앞에 두자, 헥토르의 수뇌부들은 다시 한번 국왕의 의지를 확인했다.

에드윈 헥토르가 말했다.

“나 또한 평화로운 방법으로 문제가 해결되길 바란다. 어떤 이들은 이번 사건을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고 말할 수도 있으나, 그러한 생각 자체가 헥토르의 위상을 증명한다. 만약 우리가 드미트리와 같은 힘과 권력을 보유했다면. 카즈리 백작이 폭력으로 복수를 행하겠다는 생각 자체가 가능했을까? 이는 우리를 무시한 처사다. 헥토르의 백성을 건드려도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는 생각에, 그는 뒷일은 생각하지 않고 일을 저질렀다.”

세상이 변했다.

과거에는 참아야만 했으나, 현재의 헥토르는 목소리를 높일 힘을 갖추었다.

“헥토르의 역사는 패배로 얼룩졌다. 강대했던 시기에 발할라를 상대로 무릎을 꿇었고, 약소국이라고 불리며 조롱받던 시기에는 크로노스 제국의 음모에 당하고도 문제를 제기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마도 왕국으로 거듭난 헥토르는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스튜어트 남작의 일은 현재를 증명하는 예시다. 귀족인 그조차도 이렇게 부당한 일을 당하는데, 헥토르의 일반 백성들은 얼마나 많은 일을 겪겠는가. 그렇기에 나는 명확한 선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헥토르를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감히 우리를 가벼이 생각할 수 없게 만들 선례를!”

대륙 전쟁.

에드윈 헥토르는 드미트리와 같이 전쟁을 치르며, 로만 드미트리를 통해 선례의 중요성을 배웠다.

헥토르는 격동의 시기를 맞이했다.

앞으로 어떤 결단을 내리느냐에 따라 미래가 바뀔 수 있는 이 시점에, 헥토르를 증명할 사건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 상대로 발할라는 완벽했다.

아직도 스스로를 제국이라고 생각하는 발할라는 사사건건 콧대를 낮추지 않았고, 그들을 무너트린다면 헥토르는 제국의 위상을 모두 흡수할 수 있다.

물론.

희생이 따를 것이다.

하지만 평화로운 시대라고 해서 평화롭게만 살아갈 수는 없음을, 에드윈 헥토르는 잘 알았다.

“전쟁이 벌어진다면 많은 사람이 죽게 되겠지. 너희에게 묻겠다. 우리가 전쟁에서 패배할 것 같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렇다. 우리는 헥토르가 강해졌음을 알고 있다. 우리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이 정도로 강해졌다는 사실을 세상에 드러내야만 한다. 평화를 보장받는 방법은 평화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스스로를 지키는 힘이다. 드미트리 제국이 세상을 다스리며 평화가 찾아온 것처럼, 우리의 힘을 증명해 낸다면 더는 헥토르의 백성들은 고통을 받지 않을 것이다. 격변하는 세상에서, 이는 우리가 한 번은 감당해야만 하는 현실이다.”

강렬한 의지를 토해 냈다.

에드윈 헥토르의 존재감이 부풀며, 자신을 바라보는 헥토르의 수뇌부들을 압도했다.

헥토르의 별.

소국의 국왕으로 남을 존재가 아니었다.

그는 국왕의 자리에서 내려왔을 때, 헥토르가 강대국 중 하나로서 인정받기를 바랐다.

헥토르를 위해 카이로를 공격했던 것처럼.

에드윈 헥토르는 자국의 이익이 우선이었다.

“발할라가 한발 물러난다면 우리는 강대국으로서의 발판을 만들 선례를 남길 것이다. 하지만 물러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전쟁을 각오하고, 앞으로의 미래를 위해 발할라와 전쟁을 벌일 것이다.”

의지가 모였다.

에드윈 헥토르의 열망에 매료된 사람들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목소리를 높였다.

“국왕 폐하의 명을 따릅니다!”

“국왕 폐하의 명을 따릅니다!”

“국왕 폐하의 명을 따릅니다!”

그 순간.

헥토르는 하나가 되었다.

그렇게 왕실에서 떨어진 명령에, 헥토르의 군대가 발할라의 국경을 넘어 버렸다.

* * *

헥토르의 결단.

발할라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거침없이 진군하고 있다는 보고에, 발할라의 수뇌부가 흔들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전쟁이라도 벌어진다면 큰일입니다. 헥토르는 과거의 헥토르가 아닙니다. 에드윈 헥토르 국왕이 대마법사로서 인정받으면서, 천공을 비롯한 수많은 마법사가 헥토르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제 마도 왕국이라고 불립니다. 엄청난 마법 전력을 갖춘 그들과 전쟁이 벌어지는 순간, 발할라는 승리를 장담할 수 없습니다.”

“맞습니다. 게다가 에드윈 헥토르는 전쟁에 능통한 인물입니다. 대륙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그가 전쟁을 주도한다면,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다들 불안에 떨었다.

발할라는 여전히 제국이라 불렸다.

하지만 그들의 현실은 예전과 같지 않았다.

아직도 강력한 국력을 갖추었으나, 양대 산맥이라 불리던 시절처럼 헥토르를 압도할 수는 없었다.

시선이 집중되었다.

황제의 몫이었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현명한 선택을 내렸던 그라면, 무엇이 옳은지 말해 주리라고 믿었다.

발할라 황제가 말했다.

“우리는 궁지에 몰렸다.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지라도, 우리에게 물러나는 선택지는 허락되지 않는다.”

“황제 폐하!”

“지나온 과거가 앞으로의 미래를 말한다. 발할라가 어떻게 제국을 건국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나. 한때 발할라는 남부 밀림에 틀어박힌 일개 왕국에 불과했으나, 당시 강대국이었던 헥토르를 무너트리면서 제국으로 도약할 발판을 마련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발할라 제국이 헥토르를 상대로 조금이라도 나약한 모습을 보인다면, 우리가 헥토르의 위상을 빨아들였듯 그와 똑같은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그래서 스튜어트 남작을 내세운 사과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각자의 입장이 달랐다.

헥토르는 헥토르를 위해서, 발할라는 발할라를 위해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판단을 내렸다.

에드윈 헥토르가 기어코 국경을 넘은 것처럼, 발할라 황제 또한 발할라의 미래를 생각해야 했다.

“우리 모두 전쟁이 최선의 해결책이 아님을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전쟁을 바라지 않기에, 헥토르의 행보는 발할라를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 우리가 그 어떤 선택지도 감당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헥토르는 감히 발할라의 국경을 넘지 않았겠지. 고로 물러나지 마라. 우리는 현 시간부로 헥토르와의 전쟁을 준비할 것이며, 발할라가 건재하다는 사실을 세상에 증명할 것이다.”

서로의 욕망이 타올랐다.

상대의 의도가 뻔하다면.

그에 응해 줄 것이다.

발할라 황제 또한, 산전수전을 경험한 끝에 이 자리에 오른 인물이었다.

“믿어라. 발할라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전쟁.

평화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 * *

발할라 국경.

최전방 방어 진지.

국경 수비대의 지휘관인 아넬카 백작이 전방을 바라보았다.

멀리서 펄럭이는 헥토르의 깃발에, 그는 비장한 표정을 보였다.

“이제 전쟁은 피할 수 없게 되었구나.”

조금 전.

상부로부터 명령이 떨어졌다.

되도록 전쟁을 피하길 바랐으나, 발할라는 이미 결단을 내린 상태였다.

[헥토르가 사정거리에 들어오는 순간 곧바로 선제공격을 가하라. 헥토르는 이미 발할라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고, 발할라는 강력한 대응으로 제국의 저력을 증명할 것이다.]

슥.

손을 들었다.

아넬카 백작의 신호에, 마법사들이 일제히 마법을 준비했다.

일촉즉발의 상황.

상부의 명령대로 사정거리에 들어오는 순간 공격을 시도할 것이며, 그때부터는 그 어떠한 타협도 허락되지 않는다.

어느 한쪽이 항복을 시인해야만 끝나는 싸움.

지난 3년은 정말 평화로운 세월을 보냈건만, 서로의 이권을 확보하기 위해 발할라와 헥토르는 평화를 무너트렸다.

병사들이 긴장한 기색을 보였다.

그때였다.

마침내 헥토르가 사정거리에 들어선 순간, 명령을 내리려던 아넬카 백작을 막아서는 목소리가 들렸다.

“전군 공…….”

“지휘관님! 전투를 중단해야 합니다!”

갑작스러운 상황이었다.

말이 끊긴 아넬카 백작이 병사를 바라보자, 병사는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드, 드미트리 제국으로부터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지금 당장 발할라와 헥토르는 전쟁을 중단하고 국제회의에 응하라는 드미트리의 명령입니다.”

드미트리.

그 이름 하나에, 아넬카 백작으로서는 공격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 * *

드미트리.

그곳에 협상 테이블이 마련되었다.

발할라 황제와 에드윈 헥토르 국왕이 자리한 상황에, 이번 자리를 주관한 크리스가 말했다.

“상황은 알겠습니다. 그래서, 각국이 진정으로 바라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크리스.

그는 이와 같은 문제에 황제의 전권을 일임받았다.

로만 드미트리를 대체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기에, 에드윈 헥토르는 예의를 갖춘 어투로 말했다.

“간단한 문제입니다. 카즈리 백작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발할라가 그 사실을 인정하고 진정성 있게 사과하는 태도를 보인다면, 헥토르 왕국은 문제를 더는 크게 만들지 않을 것입니다.”

“헥토르 국왕. 그런 태도가 문제인 것이다. 발할라는 단순히 이번 문제에서 우리의 책임이 없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헥토르는 개인의 문제를 국가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의도가 불순한 것이 확실한데, 우리가 어찌 헥토르의 요청을 받아들일 수 있겠나.”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가해자가 가해자다운 태도를 보여 주지 않는데, 일을 평화적으로 해결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

일련의 상황.

크리스는 판도를 읽었다.

어떤 이유로 이렇게까지 되었는지를 파악했다.

‘서로 한 걸음도 물러서기 싫다는 것이겠지. 문제를 제기한 순간부터, 두 국가는 자존심 때문에라도 물러설 수 없어. 만약 그랬다간 스스로가 약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꼴이 될 테니까.’

이해했다.

이들의 상황을.

문제는 상황을 해결하는 과정이었다.

크리스가 말했다.

“로만 드미트리 황제 폐하는 법도를 어기지 않는 한 어떤 일이든 개입하지 않습니다. 이번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정당한 절차를 걸쳐서 전쟁이 벌어졌다면, 드미트리는 두 국가의 문제를 방관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왜 이런 자리를 마련했다고 생각하십니까?”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에드윈 헥토르.

그는 상황이 이렇게 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만약 정당한 절차를 밟았다면.

분명히 전쟁으로까지 직결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카즈리 백작과 스튜어트 남작의 갈등은 사실 매우 사소한 것이기에, 적당한 판결로 마무리되었을 확률이 높았다.

에드윈 헥토르는 그 사실을 알고 일을 빠르게 진행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는다면, 헥토르의 의지를 보여 줄 수 없기 때문이었다.

드미트리가 개입하지 않았다면.

헥토르는 끝을 보았을 것이다.

“전쟁을 벌일 정도의 문제라면 반드시 드미트리의 판결을 받았어야 합니다. 그 과정을 통해서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그때부터는 전쟁을 벌여도 좋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 세상의 법도입니다. 개인의 삶은 개입하지 않지만, 적어도 국가 간의 문제는 어느 정도의 가이드라인이 존재해야 올바르게 나아간다는 사실에 법도를 정해 두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강제되는 조항은 아니나, 단 한 번도 이에 어긋나는 일을 벌이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3년의 평화는 그렇게 이루어진 것입니다.”

에드윈 헥토르를 보았다.

그는 대단한 인물이다.

단언컨대 차세대를 이끌어 갈 미래의 영웅이지만, 그 또한 드미트리의 영역에 포함된 존재다.

고로.

그의 장난질에 놀아날 생각은 없었다.

“다들 대답해 보십시오. 여러분들은 지금 드미트리의 법도를 어기려는 것입니까?”

드미트리의 이인자.

크리스가 사나운 기세를 보였다.

상대는 각국의 수장들.

하지만 그들을 압박할 수 있을 만큼, 크리스는 3년 전과는 완전히 다른 위치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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