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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는 평범하게 살 수 없다-470화 (470/615)

470화 새로운 시작 (3)

그 시각.

인천 정부.

사람들이 일상적인 나날을 보내고 있을 그때, 인천 정부에서는 격한 음성이 오가고 있었다.

“……여전히 대통령은 요지부동입니다. 쉘터의 안전이 최우선이며, 각 정부에 병력을 파견하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빌어먹을 새끼.”

검은 정장의 사내.

인천 시장 김준혁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래, 매번 똑같은 패턴이지. 병력을 분산하는 것은 위험하다. 서울을 제외한 다른 지역의 어려움을 모르지는 않으나, 서울이 무너지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개새끼들. 무조건 본인들만의 안전을 챙기는 속셈이 뻔히 보이는데도, 뻔뻔하게 대한민국의 미래를 들먹이다니. 그 녀석들에게 서울을 제외한 다른 지역의 사람들은 똑같은 국민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겠지.”

대재앙 이후.

대한민국은 변화를 맞이했다.

대통령은 서울을 중심으로 중앙 정부를 형성했고, 서울 이외의 지역은 각자 독자적인 명령 체계를 부여했다.

혼란스러운 상황을 즉각적으로 대처하려는 조치였다. 언뜻 보기에는 사람들의 안전을 생각한 현명한 판단처럼 보이나, 그 실상을 아는 사람들의 생각은 그렇지 않았다.

책임 전가.

알아서 생존하라는 의미였다.

필요할 때는 중앙 정부의 이름 아래 힘을 모아야 하지만, 막상 대재앙이 들이닥쳤을 때는 쉘터의 안전이 확보될 때까지 독자적인 생존을 강요했다.

그런 이유로 인천 정부라고 불렸다. 이곳의 시장인 김준혁은 인천 전체를 손아귀에 쥐었지만, 누구도 그것을 권력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책임을 떠안아야 하는 자리.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생각하자, 김준혁은 좀처럼 감정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5번째 대재앙이 끝나고 수년의 시간이 지났다. 주기가 길어질수록, 대재앙은 항상 우리가 예상한 범주를 넘어서는 모습을 보였지. 이번에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지금처럼 수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으로 대비한다면, 인천에 사는 사람들은 죽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최근에 전조(前兆) 현상마저 일어나고 있습니다. 6번째 대재앙은 머지않은 미래에 들이닥칠 겁니다.”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우리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6번째 대재앙이 들이닥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선택지가 없지 않나. 대한민국의 중앙 정부는 서울을 중심으로 실력자들을 끌어모으고 있고, 인천과 같은 각 지자체는 그들의 시야에서 벗어난 지 오래다. 많은 사람이 죽고 나서야, 대통령은 뒤늦게 민생을 돌보려고 하겠지.”

머리가 아팠다.

앞으로 다가올 폭풍.

그것을 막아 낼 자신이 없었다.

수년 전 대재앙이 인천을 휩쓸었을 때, 김준혁은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죽어 나가는 광경을 목격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건물이 즐비한 도시는 일상을 되찾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환상에 불과했다.

“매번 재앙이 들이닥칠 때마다 도시는 쑥대밭이 되었다. 백의의 마법사가 복구 마법으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돌려놓았지만, 지금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풍경은 사실 수많은 시체가 켜켜이 쌓여서 만들어진 공동묘지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이대로는 안 돼. 반드시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지난 5번째 대재앙과 같은 모습으로 6번째 대재앙을 맞이할 수는 없다.”

시장의 자리.

그가 바라는 건 막강한 권력이 아니다.

이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사람들이 살아갈 공간을 만들어 내고 싶었다.

그때였다.

똑똑.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와.”

비서였다.

방금 보고하던 수행원과는 다르게, 무뚝뚝한 인상의 비서가 말했다.

“오늘 도시에 들어온 신원미상자에 대해 보고할 것이 있습니다. 그의 신원을 보증한 사람의 말에 의하면, 그는 무소속의 절정 헌터라고 합니다.”

절정 헌터.

표정이 변했다.

김준혁이 비서를 바라보며 말했다.

“무소속의 절정 헌터라고? 지금 당장 신원보증인을 불러라. 내가 직접 그 사실을 확인하겠다.”

* * *

시장과의 독대.

흔치 않은 기회였다.

처음으로 인천 시장을 마주한 강민호는, 간단하게 본인을 소개한 뒤에 자신이 경험한 상황을 말했다.

“그와 만난 것은 우연이었습니다. E급 사냥터를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굳이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로만 드미트리가 허락했기에, 오히려 그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사실을 부각해야만 했다.

“사실 아직도 얼떨떨합니다. 마나 측정기로 확인되지 않아서 일반인이라고 확신했는데, 겨우 나뭇가지 하나로 병정개미 다섯 마리를 순식간에 도륙해 버렸습니다. 그제야 저는 그가 절정 등급 이상의 헌터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대한민국 문화에 무지한 것을 보아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것 같지만, 그의 실력만큼은 진짜입니다.”

“……나뭇가지 하나로 병정개미 무리를 처단하다니. 정말 나뭇가지로 처리한 것이 확실합니까?”

“확실합니다.”

김준혁이 감탄했다.

병정개미.

상당히 까다로운 몬스터다.

단단한 외피에 땅굴을 이용하는 습성은, 무리를 형성했을 때 더욱 파괴적인 위력을 발휘한다고 알려졌다.

그런데 그런 병정개미를 나뭇가지 하나로 처리하다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만약 신원보증인의 말이 사실이라면…….’

마른침을 삼켰다.

상식을 벗어나는 실력자.

그것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김준혁이 말했다.

“아시다시피 절정 등급의 실력자들은 각 정부가 반드시 영입하길 바라는 인재입니다. 물론 이 사실이 알려진다면 중앙 정부에서 접근해 오겠지만, 인천 정부에서도 절정 헌터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래서 혹시 무리한 부탁이 아니라면, 그분과 중간에서 다리를 놓아주실 수 있습니까?”

“지금은 불가능합니다.”

“‘지금은’이라는 말은, 나중은 가능하다는 의미입니까?”

“예. 그분께서 말하길, 앞으로 한 달간은 그 누구도 본인에게 접촉하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정부와의 대화를 차단하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이곳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만약 경고를 어기고 접근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후의 일은 장담할 수 없다고 했으니, 인천 정부에서 그분을 영입할 의도라면 지금은 선을 지키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진심 어린 조언이었다.

문제는.

인천 정부에게 한 달의 시간은 너무 길다는 점이었다.

‘나를 찾아와 절정 헌터를 언급한 그 순간부터, 어떤 식으로든 절정 헌터에 대한 정보가 누설될 것은 분명하다.

중앙 정부, 각종 헌터 길드가 절정 헌터에게 접근하겠지. 그런데도 나는 한 달의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 옳을까.’

딜레마였다.

상대를 배려한답시고 기다렸다가, 다른 세력이 먼저 절정 헌터를 낚아챈다면 그보다 우스운 일은 없었다.

하지만.

“알겠습니다. 한 달간은 절대 접근하지 않겠습니다.”

김준혁은 한발 물러났다.

나뭇가지 하나로 병정개미 무리를 쓰러트린 실력.

보고 체계를 예상하고 선을 그은 태도.

본능이었다.

그와의 관계가 틀어졌다간, 앞으로 좋지 않을 것이라는 본능적인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생각은 없었다.

슥.

“제 개인 연락처입니다. 혹시 인천 정부의 힘이 필요하거나, 아니면 개인적으로 연락할 일이 있다면 언제든 이곳으로 연락 주십시오. 그리고 그분이 인천에서 생활하는 동안 불편함이 없도록 모든 물자는 인천 정부에서 지원하겠습니다. 부담을 가지실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으로부터 한 달 뒤에, 딱 한 번만 만남의 자리를 주선해 주신다면 반드시 크게 보상하겠습니다.”

단 한 번의 만남.

최소한의 요구였다.

강민호로서도 충분히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혹시 그분의 이름을 알 수 있겠습니까?”

순간.

강민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는 아직 로만 드미트리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

* * *

김준혁의 예상대로였다.

정보를 보고받은 지 겨우 10분도 지나지 않아, 로만 드미트리에 관한 정보가 밖으로 누설되었다.

정부 건물 계단.

한 사내가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방금 특종을 들었습니다. 오늘 인천으로 한 명의 신원미상자가 들어왔는데, 그가 무려 절정 헌터라고 합니다. 그것도 무소속인!”

[무소속의 절정 헌터라니. 확실한가.]

“확실합니다. 제가 언제 이런 정보로 거짓을 말한 적이 있습니까? 인천 정부로 보고 전화가 걸려 왔고,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 신원보증인과 김준혁이 독대를 하고 있습니다. 인천 시장이 직접 움직일 정도면 예사 인물이 아닌 것은 확실하겠죠.”

[알겠다. 만약 그 정보가 사실이라면, 우리 레드문(Red moon) 길드에서 그 공을 잊지 않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내의 표정이 환해졌다.

그는 인천 정부에 소속되어 있는 수많은 끄나풀 중 하나.

앞으로 다가올 대혼란에, 레드문과 같은 인천의 주요 길드와 연을 트는 것은 엄청난 성과였다.

다만.

그로서는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강민호의 경고.

인천 시장과 강민호의 독대를 직접 들을 수는 없기에, 로만 드미트리가 한 달간 자신에게 접근하지 말라는 경고는 보고할 수 없었다.

사실 알았어도 문제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간단한 문제였다.

실력자를 쟁취하는 과정에서, 그 어떤 세력도 절대 한 달을 기다리지는 않을 테니까.

* * *

그로부터 며칠.

로만 드미트리는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한 달.

강민호에게 그 시간을 고지한 이유는, 앞으로 살아갈 세상을 충분히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언제까지고 마법으로 언어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분명히 언어가 통하지 않는 불가피한 상황이 찾아올 것이고, 그때마다 환경적인 요인에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무능력한 것이다. 새로운 세상을 파악하는 것. 앞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적응의 첫 단계.

학습이었다.

전생과는 달랐다.

그때는 육체에 각인된 기억으로 많은 문제를 해결했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큰 노력이 필요했다.

물론.

그때와는 달리 시작점부터 강력한 무력을 갖추었다.

어떤 적을 만난다고 한들 쓰러트릴 자신은 있었지만, 로만 드미트리는 어떠한 상황에도 방심하는 요소를 허락하지 않았다.

차원의 경계를 넘어왔다. 미지의 세상에서 앞으로의 미래를 예상할 수 없다면, 스스로가 행할 수 있는 범위에서 완벽하게 준비할 필요가 있었다.

그것이 바로.

로만 드미트리였다.

강민호에게 학습에 필요한 여러 자료를 부탁한 뒤에, 단 한 발자국도 빌라 밖으로 벗어나지 않았다.

지식은 빠르게 쌓였다.

상단전이 열린 육체.

뇌가 비약적으로 발달했다.

겨우 며칠에 불과하나, 일반인들은 감히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지식을 미친 듯이 빨아들였다.

그러던 중.

로만 드미트리는 의문점이 들었다.

‘신은 나를 본래의 세계로 돌려보낸다고 했다. 내 영혼이 더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유일한 방법이기에, 지금 내가 존재하는 이 세상은 전생의 먼 미래라는 의미겠지. 하지만 세상 그 어디에도 무림에 관련한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세상이 환상 속의 존재로 거론된다는 것은, 내가 사라진 이후 그들이 멸망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겠지.’

무림의 멸망.

충격적인 미래였다.

과거 황실에서 무림인 말살 정책을 펼치긴 했으나, 백중혁이 존재하기에 그들의 계획은 무산되었다.

앞으로 천천히 알아가야 할 문제였다.

과거에 어떠한 미련이 남아 있는 것은 아니나, 적어도 자신이 일구었던 마교가 무너진 배경에 대해서는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황당하게도 이 세상에 무공은 존재했다.

그것은 중원 무림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강하게 만들어 준 시스템에서 파생된 갈래였다.

사람들은 그것을 스킬(skill)이라 불렀다.

로만 드미트리로서는 시스템을 경험해 보지는 못했으나, 샐러맨더 대륙의 방식을 터득했던 것처럼 그것들도 차차 공부할 생각이었다.

이번 삶.

아직은 정리되지 않았다.

어떻게 살아갈 것이지, 삶의 목표가 무엇인지.

불안정한 삶의 흐름에서, 로만 드미트리는 지식을 쌓아 가며 흔들리지 않도록 중심을 잡았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강민호로부터 받은 책들을 하나씩 읽어 가던 그는, 낯선 방문자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

똑똑.

“계십니까?”

목소리.

발걸음.

강민호가 아니었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

상대는 자신의 존재를 강요하듯, 한 번 더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똑똑.

“레드문 길드에서 왔습니다. 이곳에 계신다고 들었는데, 직접 얼굴이나 보고 얘기하시죠.”

목소리만 들어도 그냥 물러날 것 같지 않았다.

만남을 통보하는 어투.

거슬렸다.

로만 드미트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민호가 주었던 예비 통역 스크롤을 찢으며, 로만 드미트리는 차가운 얼굴로 현관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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