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3화 한 번의 실수 (2)
레드문 건물.
접객실에 자리한 강민호는,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애써 감추었다.
‘……무사히 돌아가긴 틀렸구나.’
입이 바짝바짝 말랐다.
고개를 들면 마주치는 살기 어린 시선들에, 강민호는 접객실에 있는 내내 눈을 내리깔았다.
10분 전.
강민호는 로만 드미트리와 레드문 건물에 도착했다.
사실 그를 따르겠다고 말할 때만 하더라도, 로만 드미트리에게 레드문을 무너트릴 전략이 있다고 믿었다.
정면돌파는 상식적으로 불가능하지 않은가.
그런데 당당하게 레드문 건물 정문으로 들어선 로만 드미트리는, 통역 마법을 유지한 채로 상식을 찢어발기는 발언을 내뱉었다.
“레드문의 길드 마스터를 불러라. 고상호를 죽인 일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조금의 변명도.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살해 사실을 당당하게 밝히는 바람에, 레드문은 발칵 뒤집히고 말았다.
그렇게.
지금의 상황이 되었다.
일단 대화의 형식을 취했기에 접객실로 안내되었지만, 차 한 잔 내오지 않는 자리는 손님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우르르 몰려든 레드문의 길드원들. 수십의 길드원들이 살기가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상황은,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언제라도 공격할 준비를 끝냈다.
그리고 그중에는 유독 눈에 띄는 사내가 있었다.
“저렇게 의자에 편안하게 앉힐 이유가 있습니까? 일단 팔 하나 자르고 시작하시죠. 개새끼들이 제 형을 죽였다는데, 1분 1초라도 편안하게 있는 꼴을 보기가 힘듭니다.”
“길드 마스터님의 명령이 필요하다.”
“예, 압니다. 하지만 이미 스스로 자백하지 않았습니까?”
고상민.
고상호의 동생이었다.
형이 죽었다는 사실에 그의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랐고, 속에서 들끓는 분노에 무기를 만지작거렸다.
사실 그의 말처럼 팔을 하나 잘라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접객실로 불러들여 시간을 주는 이유는, 로만 드미트리가 당당하게 레드문을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비상식의 영역.
상식을 벗어난 데는 이유가 있다는 생각에, 일단 차동철의 판결을 기다리기로 했다.
강민호는 수차례 마른침을 삼켰다.
사지(死地)였다.
차라리 사냥터가 더 안전하다고 느낄 정도로, 이곳에 머무는 1분 1초가 억겁처럼 느껴졌다.
‘로만 드미트리 님은 대체 무슨 생각이지? 그리고 어떻게 이런 상황에 저리도 차분할 수가 있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로만 드미트리.
그는 의자에 편안하게 앉아 있었다.
자신을 노려보는 살기 어린 시선들을 덤덤하게 받아들이며, 오히려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는 여유까지 보였다.
그런 태도가 사람들의 심기를 건드렸던 것일까.
시간이 갈수록 숨이 막힐 듯 압박해 오는 분위기에, 더는 길드 마스터를 기다리지 못하고 사달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일촉즉발의 상황.
그때였다.
“너희들인가. 우리 상호를 죽였다는 개새끼들이.”
차동철.
그가 나타났다.
* * *
차동철이 맞은편에 앉았다.
사나운 눈빛으로 상대를 훑어보며, 그가 의자에 몸을 기댔다.
“왜 고상호를 죽였지?”
툭 던진 물음.
분위기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돌아오는 대답에 따라, 이 자리는 피로 물들 것이다.
로만 드미트리가 말했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내게 살의를 드러내기에 죽였다.”
“……뭐?”
차동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담백한 대답이었다.
고상호가 먼저 살의를 드러냈다면 정당방위라 말할 수 있겠지만, 그건 절대 차동철이 바라던 대답이 아니었다.
상대는 레드문의 본거지를 찾아왔다.
이번 일로 목숨을 부지하고자 한다면,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는 당당한 태도가 아니라 어떻게든 자비를 베풀도록 변명을 해야만 했다.
강민호가 나섰다.
“정확히는 정당방위입니다. 고상호가 예고도 없이 타인의 영역을 침범했고, 이 나라의 법도에는 침범 행위는 어떻게 처벌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곧바로 죽였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경고성으로 처벌하자, 고상호는 레드문 길드를 들먹이며 우리를 죽여 버리겠다고 했습니다. 그 결과로 그를 죽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최소한의 변명이었다.
로만 드미트리는 고개를 숙이지 않을 것이기에, 강민호는 자신이라도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차동철이 미친 사람처럼 웃어 대기 시작했다.
“크크크큭, 진짜 미치겠네. 너네 설마 사과하려고 찾아온 게 아니었어? 지금 레드문의 일원을 죽여 놓고서 뭐? 정당방위라고?”
콰앙!
책상을 내리쳤다.
단단한 책상이 단번에 부서지며, 차동철이 살벌한 눈빛을 보였다.
“그래, 한 집단을 운영하다 보면 가끔 이런 일이 벌어지곤 하지. 주제도 모르고 날뛰는 녀석들. 레드문에게 정당방위를 운운하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니야. 너희가 잘했든 못했든, 레드문의 일원이 죽었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보복해야만 하는 의무가 있어. 그런데 우리의 분노를 달래 주기는커녕 정당방위를 운운하다니. 재밌네. 스스로 사지를 찾아오는 멍청이들이라니.”
스릉.
주변에 대기하던 길드원들이 무기를 잡았다.
상황이 악화되었다.
로만 드미트리의 당당한 태도가 사람들의 심기를 제대로 건드렸다.
“외국인이라 이쪽 사정을 잘 모르나 본데, 대한민국은 서울을 제외하고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어. 이곳 지방에서는 그따위 법도가 안전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의미지. 참 안타까워. 나와 같은 절정 헌터라서 그만한 대우를 해 줄 생각이었는데, 지금부터는 그럴 수가 없게 되었어. 레드문은 나를 중심으로 한 울타리야. 나의 사람을 죽였으니, 나는 너를 본보기로 삼아 레드문을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를 인천 바닥에 똑똑히 증명해 주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명령을 내리려는 그때, 로만 드미트리가 담담하게 반응했다.
“그게 너희들의 선택인 건가.”
레드문을 찾은 이유.
간단했다.
그들에게 선택지를 주고자 했다.
고상호의 잘못을 인정한다면.
그것으로 상황은 마무리되었을 것이다.
고상호 한 명의 죽음으로 레드문은 무사했겠지만, 차동철은 방금 스스로가 선을 넘어 버리고 말았다.
그렇다면 굳이.
구구절절 설명을 덧붙일 이유가 없었다.
이미 차동철의 얼굴은 악귀처럼 일그러진 상태였다.
“건방진 새끼. 너는 오늘 곱게 죽지 못할 거야.”
그 순간.
“공격해!”
“죽여!”
파파파팟.
주변에서 대기하던 길드원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동시다발적으로 달려들었다.
* * *
수십 명.
말이 수십이지, 건물 내부의 좁은 공간에서 그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달려드는 것은 엄청난 광경이었다.
빽빽했다.
도망칠 공간이 보이지 않는, 레드문의 길드원들은 단숨에 로만 드미트리를 죽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스릉.
로만 드미트리가 검을 잡았다.
레드문으로 향하며 강민호에게 받은 것이고, 강민호는 겨우 E등급밖에 하지 않는 하급 무기를 구해 와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는 나름대로 로만 드미트리를 보호하겠다고 바로 옆에 섰다.
눈앞으로 들이닥치는 광경에, 무사하기는커녕 살아 돌아가는 것조차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번뜩.
퍽.
선두에서 달려들던 길드원의 머리가 날아갔다.
시각적으로 그 사실을 받아들이자마자, 동시다발적으로 뒤이어 달려들던 길드원들이 피를 흩뿌렸다.
파파파팟.
푸확.
“……?!”
강민호가 눈을 부릅떴다.
그의 귓속으로 담담한 목소리가 들렸다.
“뒤로 물러나라. 지금부터는 내 역할이다.”
팟.
콰르르르르릉.
로만 드미트리가 앞으로 치고 나갔다.
레드문의 길드원들은 충격적인 광경에 경악하면서도, 로만 드미트리를 발견하자마자 이를 악물면서 사방에서 공격을 시도했다.
그들의 공격은 단 하나도 먹히지 않았다.
시각적으로 반응했을 때는 공격이 이미 튕겨 나간 상태였고, 공격 범위에 포함되는 순간 끔찍한 통증이 일어났다.
“크악!”
“악!”
사방에서 피가 튀었다.
검을 휘두르려면 팔이.
달려들려고 하면 다리가.
뭘 해 보기도 전에 육체가 찢겨 나갔다.
로만 드미트리는 그에 그치지 않고 길드원들의 사이를 파고들었고, 맞닥트리는 족족 상대를 찢어발겼다.
특별히 마력을 사용하지도 않았다.
정말 일말의 마나만을 사용했을 뿐인데, 로만 드미트리는 마치 양 떼 사이를 활보하는 늑대처럼 무지막지한 모습으로 살육을 벌였다.
겨우 30초.
길드원은 벌써 십수 명이 죽어 버렸다.
분노를 토해 내며 달려들던 고상민도,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미친.”
퍽.
그게.
마지막 기억이었다.
고상민조차 머리가 날아가자, 그제야 레드문의 길드원들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았다.
“마, 말도 안 돼.”
“이건 너무 강하잖아.”
상식 밖.
마나 측정과 같은 과정은 필요하지 않았다.
직접 경험하는 상황이, 순식간에 죽어 나간 사람들의 흔적이.
로만 드미트리가 괴물임을 인정했다.
그때였다.
강민호가 소리쳤다.
“로만 드미트리 님!”
번뜩.
콰르르르르르르릉.
머리에서 벼락이 내리쳤다.
로만 드미트리가 그것을 쳐 내자, 차동철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로만 드미트리를 바라보았다.
“……네 이름이 로만 드미트리라고?”
* * *
짧은 공방.
로만 드미트리의 실력을 파악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순식간에 십수 명을 도륙해 버리는 무력에, 차동철은 수하들만으로는 처리할 수 없음을 알았다.
번뜩.
콰르르르르르르릉.
기습이었다.
그것을 발견한 강민호가 로만 드미트리를 부르며 경고했고, 다급한 음성이 무색할 정도로 차동철의 공격은 허무하게 막히고 말았다.
벼락처럼 떨어진 공격. 강렬하게 폭발하는 마나가 로만 드미트리의 검과 닿자, 마치 그대로 파훼되는 것처럼 단번에 흩어지고 말았다.
당혹스러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러한 사실을 떠나서, 차동철을 황당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었다.
“……네 이름이 로만 드미트리라고?”
순간.
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다.
“세상에 드미트리의 성을 사용하는 존재가 있다니. 너 또한 헌터라면,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지 않을 텐데.”
“내 이름이 잘못되었다는 건가.”
“설마 모르고 사용했다고? 정말 같잖은 녀석이구나.”
차동철의 발언.
로만 드미트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로만 드미트리라는 이름 전체가 아니라, 드미트리에만 반응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였다.
차동철이 말했다.
“세상에는 우리가 사는 지구 외에도 수많은 차원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차원에서 대단한 업적을 이룬 존재들은, 차원의 경계를 넘어 지구에도 영향력을 미치지. 그렇게 다른 차원의 기억을 받아들인 존재를 우리는 전승자(傳承者)라고 부른다. 로만 드미트리. 그 이름은 그래서 잘못되었다. 드미트리는 전승 능력에서도 최상위 등급이라는 것을 정상적인 헌터라면 모르지 않을 텐데.”
전승 능력.
차원 너머의 기억을 물려받은 사람들.
그들에게 ‘드미트리 제국’에서 비롯된 능력은 최상위 등급으로 분류되었다.
실제로 세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전승자 중에, 일부 최상위 실력자들은 드미트리의 기억을 물려받았다.
그래서 웃음이 나왔다.
드미트리를 성으로 쓰는 것.
조롱받아 마땅한 사유였다.
전승자의 능력이 드러나면서부터, 기존에 드미트리와 같은 특수한 이름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능력을 구분하기 위한 명목으로 모두 개명되었다.
드미트리를 예외로 두려는 조치였다. 그런데 겨우 자신과 같은 B등급 헌터가 감히 드미트리를 성으로 쓰다니. 세상이 비웃을 일이었다.
사실 강민호 또한 로만 드미트리의 이름을 듣고 의문이 들었지만, 고상호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차마 그에 관해 물어볼 수가 없었다.
차동철이 말했다.
“로만 드미트리! 네 실력은 인정한다. 그 짧은 시간에 십수 명을 도륙할 실력이라면, 과거의 나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실력자겠지. 하지만 너는 큰 실수를 저질렀다. 네가 갈망하며 감히 이름에 올린 드미트리의 능력을, 모두가 손에 넣길 간절하게 바라는 전승 능력을 나는 얻었다.”
콰릉.
콰르르르르르릉.
마나를 끌어 올렸다.
차동철이 사나운 눈빛을 보였다.
“내 전승 능력은 드미트리 제국의 병사 로드니. 마계 정벌에도 나섰던 영웅의 힘을 나는 받아들였다. 네가 얼마나 허무맹랑한 일을 벌였는지, 드미트리의 전승인 내가 증명해 주마.”
파팟.
빠르게 달려드는 차동철.
그 순간 로만 드미트리는 보았다.
차동철이 발현하는 힘.
그것은 바로 수라 심법, 그리고 수라 검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