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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는 평범하게 살 수 없다-476화 (476/615)

476화 파격적인 행보 (2)

심장이 뛰었다.

로만 드미트리라는 사람을 만나면서부터, 강민호는 지난 며칠이 수년은 지난 것처럼 느껴졌다.

‘세상을 다스리겠다니.’

허무맹랑했다.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로만 드미트리의 발언을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런데.

격렬하게 뛰는 심장은 그렇지 않았다.

분명히 말도 안 되는 발언인데, 왠지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만 드미트리 님은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내 예상을 벗어나는 모습을 보였어. 겨우 나뭇가지 하나로 병정개미 무리를 처리했고, 언어의 장벽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주변 상황을 단번에 파악했으며, 이번에는 인천을 대표하는 거대 길드인 레드문을 혼자만의 힘으로 도륙해 버렸어.’

어느 것 하나.

일반적이지 않았다.

특히 차동철이 전승 능력을 발휘하는데도 압도적으로 찍어 누르는 모습에, 로만 드미트리가 A등급의 헌터라는 사실을 알았다.

솔직히 말해서 그것도 장담할 수 없었다.

레드문을 몰살시키면서도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상식으로는 그의 한계를 예상할 수 없음을 알았다.

로만 드미트리.

처음에는 차동철과 비슷하게 생각했다.

전승자를 대표하는 이름을 사용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지금까지의 모습을 보면 오히려 특별한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한 것은 로만 드미트리는 허언을 내뱉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병정개미 무리를 처리해 주겠다고 말할 때도, 자신을 건드리면 대가를 치른다는 발언도, 비상식적인 일련의 상황에서 그는 스스로를 증명해 냈다.

만약.

방금의 발언이 현실로 이루어진다면.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태어난 자신의 딸이, 앞으로 살아갈 날들만큼은 평화롭게 살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일반 헌터에 불과해. 이대로라면 예상 가능한 범위의 삶을 살아갈 나에게, 로만 드미트리 님의 제안은 천금과도 같아. 그분에게는 굳이 나를 선택할 이유가 존재하지 않아.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분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순간에 내가 그 자리에 있었고, 나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평생 마주할 수 없는 존재와의 인연이 생겼어. 고민할 필요도 없는 문제야. 어차피 달라질 것이 없는 삶이라면 도박을 해야만 하겠지.’

꽉.

주먹을 움켜쥐었다.

로만 드미트리를 따르겠다고 말한 순간부터, 이미 강민호의 삶은 정해졌다.

“따르겠습니다. 제가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내 곁에서, 네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정보다. 이곳 대한민국, 그리고 인천의 판도를 알고 싶다.”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였다.

어렵지 않은 문제였다.

능력이 없는 만큼 세상일에 관심이 많았던 강민호에게, 로만 드미트리는 적합한 역할을 부여했다.

“대한민국은 전 세계를 기준으로 했을 때 안전 등급이 하위인 나라입니다. 이유는 각성자의 비율이 강대국들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지며, S등급의 헌터도 백의의 마법사가 유일합니다. 그래서 대한민국 정부는 서울에 모든 것을 집중했습니다. 방어체계와 병력, 그리고 자급자족할 수 있는 모든 시스템. 대재앙이 들이닥쳤을 때 서울만큼은 지켜 내기 위한 체계를 갖추었으며, 이로 인해 각자의 독립된 명령 체계를 보유한 지방 정부들이 생겨났습니다. 서울이 모든 인원을 감당할 수 없기에 생겨난 문제인 것이죠. 그리고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지방 정부들은 사실상 그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미약한 힘을 갖추었습니다. 지난 대재앙을 예로 들자면, 그때 당시 서울을 제외한 인구의 20%가 죽었을 만큼 대한민국은 참담한 현실에 놓여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현실.

절망적이었다.

현재 중앙 정부는 외교를 통해서 국방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지만, 강력한 국방력을 갖춘 나라일지라도 자국의 안전이 우선이었다.

그로 인해 서울과 지방의 갈등은 심해지고 있었다.

대재앙에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갈 때, 서울은 일단 자신들의 안전을 확보한 뒤에 지방의 사람들을 돌보았다.

그것도 충분한 예비 병력을 남겨 둔 채.

서울에서부터 천천히 내려오는 그들의 모습에, 지방 사람들은 중앙 정부를 신랄하게 비난했다.

강민호가 말했다.

“인천 정부는 그나마 다른 지방들보다는 상황이 양호합니다. 인천 시장인 김준혁이 사람들을 집결시켰고, 지리적으로 서울과 그리 멀지 않다 보니 대재앙이 들이닥쳤을 때 다른 지방들보다는 지원이 빠릅니다. 만약 로만 드미트리 님께서 대한민국을 거점으로 세상을 다스리고자 한다면, 그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모두가 알았다.

혼란한 세상.

대한민국과 같은 약소국을 집어삼킬 방법.

“사람들의 울타리가 되어 주십시오. 로만 드미트리 님에게 그만한 힘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낸다면, 사람들의 민심(民心)은 자신의 안위만을 챙기는 중앙 정부가 아닌 로만 드미트리 님을 향할 것입니다.”

* * *

로만 드미트리가 세력을 형성하려는 이유는 간단했다.

10번의 대재앙.

앞으로 어떤 위험이 들이닥칠지 몰랐다.

미지의 적을 상대할 때, 가장 우선시되는 요소는 일단 내부의 분란 요소부터 차단하는 것이었다.

‘전생에도 같았다. 마계와의 전쟁 당시에 가장 문제가 되었던 부분은 알렉산드르와 같은 마계의 끄나풀이었고, 인류는 하나가 되지 못했기에 절망적인 시기를 보냈다. 내부의 변수는 그 무엇보다도 먼저 차단해야 하는 문제. 대재앙을 막는 것은 그 이후의 일이다.’

물론.

평화로운 방법도 존재했다.

로만 드미트리가 세력을 형성하고 대한민국 정부, 나아가 다른 나라들과 협력 관계를 맺는다면 인류는 힘을 합칠 수 있다.

그러나 그건 로만 드미트리의 성향과는 맞지 않았다.

로만 드미트리는 군림해야만 하는 존재이기에, 앞으로 다가올 적을 상대하는 과정에서 명령 체계의 이원화(二元化)는 바라지 않았다.

정점.

그 자리에 오를 것이다.

전생처럼 자신을 받아들인 존재들에게는 그 영역을 인정할 것이나, 분란의 요소를 보이는 존재들은 짓밟아 버릴 것이다.

그렇게 10번의 대재앙을 모두 막아 내고 나면.

이 세상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은 절대자와 만나는 순간, 어떤 식으로든 인류의 문제는 결말을 맞이할 것이다.

‘절대자는 신에 버금가는 존재다. 그와 대적하는 상황이 찾아온다면, 나는 그를 쓰러트릴 수 있도록 계속해서 나를 단련해야만 한다. 천지인 그 이상의 단계. 현재에 만족하며 머무르는 순간, 나는 예상하지 못한 벽에 부딪히고 말겠지.’

마왕.

그를 쓰러트리고 로만 드미트리는 허망함을 느꼈다.

더는 넘어설 벽이 없다고 생각했으나, 절대자의 존재는 로만 드미트리에게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했다.

차원 전체를 다스리는 능력.

강력할 것이다.

새로운 경지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로만 드미트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할 것이다.

그때였다.

설명을 끝내고 대답을 기다리던 강민호는, 핸드폰 화면에 떠오른 메시지를 발견했다.

“……로만 드미트리 님. 인천 시장 김준혁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레드문 사건으로 로만 드미트리 님을 직접 만나고 싶다는데, 이걸 어떻게 할까요?”

김준혁.

그와의 만남은 바라던 바였다.

로만 드미트리가 말했다.

“인천 시장에게 연락해라. 나를 만나려거든, 이곳으로 직접 찾아오라고.”

* * *

1시간 뒤.

김준혁이 찾아왔다.

로만 드미트리를 마주하는 상황에, 그는 예의를 갖춘 모습으로 말했다.

“강민호 님으로부터 한 달의 기한을 들었지만, 사안이 워낙 심각하다 보니 부득이하게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예, 알고 있습니다.”

상대는 한 세력의 수장.

예의를 갖추었다.

적의를 드러낸 차동철과는 다르게, 먼저 예의를 갖춘 김준혁을 적대할 이유는 없었다.

“아시다시피 레드문은 인천을 대표하는 거대 길드입니다. 레드문이 먼저 영역을 침범하고 적의를 드러냈다고는 하나, 레드문과 같은 길드가 하루아침에 멸망한 것은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수일 내로 중앙 정부에서 조사관을 보낼 것입니다. 그들은 사건의 경위를 파악해 가해자를 찾으려 할 테고, 숨기려고 한들 로만 드미트리 님이 특정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서로 통성명은 마친 상태였다.

그도 로만 드미트리의 이름이 특이하다고는 생각했으나, 특별히 말을 덧붙이지는 않았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번 사건은 정당방위의 영역입니다. 하지만 로만 드미트리 님이 홀로 레드문을 쓸어 버린 실력자라는 사실을 중앙 정부가 알아낸다면, 어떻게든 문제를 만들어 억압하려 할 것입니다. 매력적인 제안의 형태든, 거절할 수 없는 협박의 형태든. 실력자를 놓치려 하지 않을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안하겠습니다. 인천 정부와 손을 잡으십시오. 중앙 정부가 법적인 문제를 제기한다면, 그 모든 것을 감당하고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직접 찾아온 목적이었다.

A등급 헌터.

그를 영입할 생각이었다.

중앙 정부와 문제가 생긴다고 할지라도, 김준혁은 인천의 안전을 위해서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물론.

레드문을 쓸어 버린 상대의 성향을 생각했을 때, 절대 강압적으로 나갈 생각은 없었다.

“인천 정부와 손을 잡는다는 의미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희는 로만 드미트리 님에게 그 어떠한 구속력도 발휘하지 않을 것이며, 이곳에서 생활하는 동안 필요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다만, 단 하나의 약속이면 충분합니다. 6번째 대재앙이 찾아왔을 때 인천 정부와 같이 이곳을 지켜 주십시오. 물론 제가 말씀드린 것은 제안일 뿐이며, 만약 거절하실지라도 로만 드미트리 님의 뜻을 존중하겠습니다.”

합리적인 제안이었다.

최소한의 요구.

레드문의 참담한 모습을 지켜보며, 김준혁은 로만 드미트리를 구속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한발 물러났다.

상대의 영역을 존중했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힘이기에, 상대를 굳이 굴복시킬 이유는 없었다.

김준혁은 대답을 기다렸다.

현재의 자신으로서는 최선의 제안이라 믿었다.

그런데.

“거절하겠습니다.”

로만 드미트리의 대답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 * *

인천 정부.

강민호를 통해 많은 정보를 들었다.

다른 지방 정부처럼 불안전한 것은 확실하나, 그래도 김준혁을 중심으로 나름대로 자리를 잡은 곳. 인천 시민들은 김준혁을 믿었다.

지난 대재앙 때 인천의 사람들이 수없이 죽어 가는 상황에도, 김준혁은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괜찮은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뿐.

로만 드미트리는 인천 정부라는 울타리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

“대한민국은 기형적인 나라입니다. 수도인 서울을 지키기 위해 병력을 집중시켰고, 더는 포용하지 못한 국민은 외면했습니다. 그동안 알아본 바에 의하면 지방 정부는 중앙 정부가 면피하기 위한 존재일 뿐입니다. 대재앙이 찾아와 지방이 쑥대밭이 되었을 때, 지방 정부의 존재를 들먹이며 그래도 중앙 정부는 노력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면피책. 그런 인천 정부가 저를 위해서 무얼 해 줄 수 있다는 겁니까.”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인천 정부는 로만 드미트리 님의 안전을 보장해 드릴 수 없습니다.”

김준혁이 참담한 심정을 삼켜 냈다.

그도 알았다.

합리적인 제안이라고는 하나, 그것이 로만 드미트리에게 이득이 되는 제안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만약 로만 드미트리 님 개인의 이익을 위한 일이라면, 인천 정부보다는 중앙 정부가 더 좋은 선택지임은 분명합니다. 그들은 실력자들을 확실히 우대하니까요. 그런데도 제가 이런 제안을 말씀드린 이유는 일련의 사건에서 구속되지 않길 바라신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사실 A등급 헌터라면 세상 어디에서도 이보다 좋은 조건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중앙 정부 또한, 로만 드미트리 님에게는 최상의 선택지가 아니겠지요.”

“알고 있다면 제가 왜 거절했는지 동의하십니까.”

“예. 다만, 인천 정부가 받아들일 수 있는 제안을 해 온다면 저희는 긍정적으로 검토할 의향이 있습니다.”

집요했다.

김준혁은 어떻게든 희망의 끈을 붙잡았다.

강직한 인물이었다.

대재앙.

하루아침에 세상이 멸망할 수 있는 상황에서, 김준혁은 일반인인데도 불구하고 로만 드미트리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사실 로만 드미트리에게는 그 어떠한 조건도 매력적이지 않았다.

대한민국 정부, 혹은 강대국. 그들이 어떤 제안을 해 오든 간에, 이 세상 전체를 다스리려는 로만 드미트리의 목적과 부합하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그런 이유로.

김준혁을 불러들였다.

강민호에게 그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의 미래는 자신과 같이할 수 있음을 알았다.

로만 드미트리가 말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제가 바라는 요구 사항을 말하겠습니다. 저는 앞으로 인천 정부와 함께할 의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단 하나의 조건이 동반되어야만 합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반색하는 김준혁.

열망에 타오르는 그의 눈빛에, 로만 드미트리가 담담하게 반응했다.

“당신, 그리고 인천 전부를 제게 주십시오. 인천 정부가 저를 따르겠다고 말한다면, 제가 인천의 안전을 보장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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