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9화 파격적인 행보 (5)
분위기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방금까지는 그래도 예의를 갖추며 말하던 문태준이, 삐딱하게 다리를 꼬며 김준혁을 바라보았다.
“시장님, 일 참 재밌게 하시네.”
인천 정부의 소행.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인천 바닥에 대한 이해도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건 애초에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레드문은 겨우 1~2시간 만에 몰살을 당했습니다. 인천 정부도 나름대로 숨겨진 전력을 갖추었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으나, 레드문을 이렇게 짧은 시간에 처리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미지의 세력’이 이번 일에 개입했다고 이해할 수 있겠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레드문은 인천에 필요한 존재입니다. 언제 대재앙이 들이닥칠지 모르는 상황에서, 인천을 끔찍하게 생각하는 인천 시장님이 자중지란(自中之亂)을 일으킬 리가 없지 않습니까.”
타당한 주장이었다.
병력의 손실을 걱정해서 개미굴 토벌도 뒤로 미룬 김준혁인데, 이렇게 갑작스럽게 레드문과 전쟁을 벌일 이유는 존재하지 않았다.
의심이 부풀었다. 차갑게 자신을 훑는 문태준의 눈빛에, 김준혁은 담담하게 말했다.
“그래서 이번 일을 벌였습니다. 조사관님과 똑같이 안일하게 생각하는 레드문의 같잖은 태도 때문에 말입니다.”
“그게 무슨 의미입니까.”
“처음에는 레드문이 인천의 미래를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인천 정부에 사람을 심어 두고, 인천의 인재들을 길드로 빼돌렸습니다. 거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인재들의 미래가 반드시 인천에 얽매일 필요는 없으니까요. 문제는 레드문이 서울 진출을 위해서, 인천의 물자를 몰래 빼돌리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인천의 미래를 위해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 분란만 일으키는 이들을 조사관님은 어떻게 처리하시겠습니까?”
문태준이 흠칫했다.
서울 진출.
문태준과 관련한 일이었다.
레드문의 위법 행위를 지적당하자, 김준혁의 의도를 알 수 없는 그로서는 함부로 말할 수가 없었다.
“……처벌해야겠지요.”
“맞습니다. 그래서 레드문을 찾아갔습니다. 적당하게 잘못을 물어 처벌할 생각이었으나, 그들이 적반하장으로 먼저 공격하면서 전면전으로 번졌습니다. 그 결과가 조사관님이 확인하신 내용입니다.”
“예, 알겠습니다. 그게 모두 사실이라면, 대체 처음에는 어째서 보고를 그렇게 하셨습니까? 인천 정부가 최초로 레드문의 몰살 사실을 알렸을 때, 마치 외부의 소행인 것처럼 말하지 않았습니까?”
말꼬리를 물었다.
확실히 의문스러운 부분이었다.
하지만 김준혁은, 의문을 완벽하게 해소시킬 필요가 없음을 알았다.
“저희의 마음이 바뀌었을 뿐입니다. 이 사실을 묻어 두려고 했으나, 조사관님이 이렇게 일찍 찾아오신 것을 보고 진실을 밝혔습니다.”
“크흠.”
문태준이 못마땅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로서는 머리가 복잡할 것이다.
인천 정부의 힘이 생각보다 강하다는 사실에, 그리고 자신의 위법 행위를 지적당한 지금의 상황에. 그 정도면 충분했다.
김준혁이 인천 정부의 소행으로 밀고 나간 순간부터, 문태준으로서는 단순히 외부의 세력뿐만 아니라 김준혁의 의도를 파악해야만 한다.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질 수도 있으나, 적어도 로만 드미트리와 약속한 한 달의 시간은 확보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문태준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인천을 얕보는 그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 한 번쯤은 인천의 존재를 드러낼 필요가 있었다.
“……일단 알겠습니다. 위법 행위를 저지르고 먼저 공격까지 했다면, 인천 정부로서는 레드문과 전면전을 벌일 수밖에 없었겠지요. 이번 일은 그렇게 보고하겠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조심하십시오. 이토록 극단적으로 처리하는 일이 잦아진다면, 아무리 독자적인 명령 체계를 부여했다지만 중앙 정부에서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미리 말씀드리지 못했는데, 앞으로 상납금을 10% 늘리겠다는 대통령님의 명령이 있었습니다.”
김태준의 눈이 커졌다.
이건 받아들일 수 없는 발언이었다.
“상납금을 늘리겠다니요.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상황에, 인천으로서는 상납금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건 인천의 사정일 뿐입니다. 명심하십시오. 독자적인 명령 체계에는 그만한 의무가 따릅니다. 만약 중앙 정부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면, 인천은 대재앙이 들이닥쳤을 때 후순위로 밀릴 것입니다.”
문태준이 비열하게 웃었다.
상납금을 언급하자 바뀐 분위기에, 그는 다시 주도권을 빼앗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문태준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대재앙은 언제 들이닥칠지 모릅니다. 그러니 인천의 미래를 위해, 언제나 그렇듯 현명하게 판단하십시오.”
* * *
문태준이 물러난 자리.
김준혁은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아무것도 없는 빈 곽에, 그는 신경질적으로 바닥에 내던졌다.
툭.
“참 거지 같네.”
대재앙 이후 20년.
세상은 지옥으로 변해 버렸다.
상식보다는 비상식이 통용되었고, 사람들을 돌보아야 하는 대통령은 안전을 빌미로 협박까지 내뱉었다.
문태준의 협박은 빈말이 아닐 것이다. 실제로 지난 5번째 대재앙이 들이닥쳤을 때, 대통령은 평소에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정적들을 제거해 버렸다.
너무나도 쉽고 간단한 방법이었다. 지원을 후순위로 밀어 버리자, 뒤늦게 찾아간 현장엔 살아 있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다.
인천 또한.
피할 수 없는 미래였다.
만약 중앙 정부가 인천을 외면해 버린다면, 거리와 상관없이 이곳은 버려질 것이 분명했다.
“……로만 드미트리. 그는 왜 이런 쓸모없는 도시를 바라는 걸까.”
문득.
로만 드미트리의 모습이 떠올랐다.
담담하게 내뱉는 음성이 주는 무게감에, 낭만을 잃어버린 김준혁조차도 순간적으로 헛된 희망을 꿈꾸었다.
만에 하나 그가 정말로 개미굴을 소탕해 온다면.
인천의 안전을 보장해 줄 만큼의 힘을 갖추고 있다면, 김준혁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와의 미래를 만들어 갈 것이다.
‘그때는 검은 속내가 있더라도 상관없어. 인천을 통해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울지라도, 인천의 안전만 보장해 준다면 나는 그를 위해 내 모든 것을 바칠 거야.’
헛된 희망임은 알았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을 만났으나, 그때마다 절망적인 현실을 경험했다.
대재앙.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몬스터들은 국가 단위가 아니고서야 감당할 수 없기에, 사람들은 각자 자신들만의 세력을 형성했다.
김준혁이 목을 매는 중앙 정부조차도 세계 기준으로는 자신들의 안위를 장담하지 못하는 약체에 불과했다.
매번 강해지는 대재앙의 규모를 생각했을 때, 어쩌면 그들의 도움은커녕 대한민국 자체가 멸망해 버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입이 썼다.
김준혁은 복잡한 생각들을 미루어 두고, 비서를 불러 말했다.
“10분 뒤. 인천의 수뇌부들을 소집하라. 중앙 정부에서 상납금을 10%를 늘렸으니, 그에 대해 논의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지금은 현실에 집중할 차례였다.
앞으로 어떤 미래가 찾아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타인에게 모든 문제를 떠안길 생각은 없었다.
희망은 잠깐일 뿐.
김준혁은 다시 현실에 녹아들었다.
* * *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그로부터 약 한 달.
인천의 용병 길드, 청산(靑山)의 대기실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용병들로 인해 시끌벅적했다.
“아 씨발, 좆 같아서 카드 못 치겠네. 이게 말이 돼? 저번 판은 내가 스페이드 플래시였는데 풀하우스가 나오고, 이번에는 내가 풀하우스인데 포카드가 나와? 에라이, 이 씨발련들아!”
팍.
카드를 내던졌다.
낄낄낄 웃는 사람들의 웃음소리에, D등급 헌터인 박기태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짜증이 치밀었다.
최근 의뢰도 변변치 않은 상황에서 돈마저 날려 버리자, 더는 사람들과 웃으며 카드를 칠 수 없었다.
밖으로 나왔다.
담배를 물고 잠시 속을 진정시키려는데, 누가 옆에서 불을 붙여 주었다.
칙.
“길드장님?”
“많이 잃었나 보네?”
“아무리 봐도 밑장빼기 하는 애가 있어요. 그냥 발렸으면 아무 말도 안 하겠는데, 풀하우스를 주고 포카드는 너무 하잖아요.”
“그래, 그래. 화날 만하네.”
상대는 청산의 길드장.
구철호였다.
구철호는 같이 담배를 피우더니,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에 임무 하나 맡을래?”
“뭔데요.”
“개미굴 탐사, 비용은 1억. 어때?”
순간.
박기태가 담배를 문 채로 굳어 버렸다.
1억이라니.
외면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평소라면 덥석 받아들였겠지만, 앞에 붙은 개미굴 탐사라는 단어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개미굴 탐사라면, 이번에 인천 정부가 포기한 곳이잖아요. 여왕개미 두 마리가 수개월 간 개미를 생산했으면 그쪽은 아마 생지옥일 텐데. 대체 어디서 이번 토벌을 맡은 거예요?”
“어디가 아니야. 개인이 진행하는 토벌이지.”
“날 죽일 생각이네. 나한테 원한이 있는 게 분명해.”
고개를 홱 돌렸다.
보상은 매우 탐이 났지만, 이런 임무에 목숨을 걸었다간 살아남을 수 없다.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구철호가 말했다.
“그래, 정말 위험한 임무이기는 하지. 그런데 문제는 선수금이 일억이라는 거야. 임무를 모두 끝마치면 2억을 더 준다니까, 일단 괜찮은 파티인지 한번 따라가 봐. 만약에 정말 개미굴을 토벌할 수 있을 것 같으면 끝까지 따라가고, 그게 아니라면 중간에 텔레포트 스크롤로 도망치더라도 아무런 책임을 묻지 않을게. 상대는 네 전투 능력을 바라지 않아. 길잡이로서 널 고용하려는 것을 보면, 그래도 분명 만반의 준비를 했을 거야.”
“쓰읍.”
박기태.
그는 길잡이였다.
모든 헌터들이 전투에 특화되지는 않았다.
개미굴과 같은 복잡한 사냥터에는 길잡이들이 필요하기에, 박기태는 그 능력을 살려 길잡이로서 살았다.
듣다 보니 나쁘지 않았다. 선수금만 먹고 끝내더라도 1억을 확보할 수 있기에, 박기태는 한참을 고민했다.
이윽고.
박기태가 신발로 담배를 비벼 끄며 말했다.
“돈만 잃지 않았어도 거절하는 건데. 그래서 어디로 가면 되는 건데요?”
* * *
약속 당일.
박기태는 얼굴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느꼈다.
개미굴 정도면 집단 파티를 예상했는데, 막상 눈앞에 나타난 사람들은 겨우 두 명뿐이었다.
“반갑습니다. 저는 E등급 헌터인 강민호라고 합니다. 이쪽은 로만 드미트리, 제가 모시는 분이며 아직 등급 시험은 보지 않아서 무등급입니다. 청산 길드에서 의뢰받은 박기태 님 맞으시죠?”
“박기태가 맞기는 합니다만…….”
목적지는 개미굴.
그것도 여왕개미가 무려 두 마리나 있는 개미굴이라면, 상식적으로 B등급 이상의 헌터들로 구성된 대규모 파티여야만 한다.
그렇게까지 해도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임무.
그런데 겨우 E등급 헌터와 무등급 헌터가 이 자리에 나오리라고는, 이들을 만나기 직전까지도 상상하지 못했다.
현기증이 일었다.
구철호가 자신을 엿 먹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자리를 피했다.
혹시 몰랐다.
자신이 모르는 대단한 업적을 이루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황급히 두 사람의 정보를 확인했다.
헌터 데이터베이스.
그곳에는 두 사람에 관해 이렇게 나왔다.
[로만 드미트리]
-정보 없음
[강민호]
-E등급 헌터
-E등급 임무 다수 성공
“……염병.”
욕이 치밀었다.
로만 드미트리는 정보 자체가 나오지 않았고, 강민호라는 사람은 E등급 임무만 전전하는 밑바닥 출신. 도대체 이해가 되질 않았다.
무려 선수금을 1억이나 내건 의뢰인데, 대체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사람들이 나온단 말인가. 이건 묏자리가 분명했다.
괜히 따라나섰다가는 명을 재촉하는 길이겠지만, 박기태는 도저히 1억이라는 돈을 포기할 수 없었다.
‘기태야, 기태야. 멍청하게 행동하지 말자.’
1억.
마른침을 삼켰다.
헌터들은 고액을 받는 직군이지만, 수백억을 벌어들이며 떵떵거리며 사는 사람들은 모두 B등급 이상이었다.
D등급인 박기태로서는 너무나도 큰돈. 한참을 고민하던 박기태는 품속에서 마법 스크롤을 꺼냈다.
‘일단 개미굴까지 같이 가야만 선수금을 받을 수 있어. 그래. 내게는 마법 스크롤도 있고, 길드장님이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도 했잖아. 일단 따라가자. 선수금만 받고 도망치면 되는 거야.’
옳은 선택임은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미 마음속으로 현실을 받아들였다.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하고, 궁지에 몰리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칠 것이다.
자리로 돌아갔다.
자신을 바라보는 두 사내의 시선에, 박기태는 애써 웃음을 보였다.
“가시죠. 지금부터 개미굴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