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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는 평범하게 살 수 없다-482화 (482/615)

482화 개미굴 (3)

박기태의 보고.

인천 정부가 발칵 뒤집혔다.

전조 현상이 의심된다는 말에, 김준혁은 곧바로 소집령(召集令)을 선언했다.

“……내가 안일했구나.”

홀로 남은 집무실.

김준혁이 고통스러운 듯 머리를 헝클었다.

사실 개미굴의 이상 현상은 문제가 심각해지기 전에 해결할 수 있었다.

최초에 두 마리의 여왕개미를 발견했을 때, 인천 정부가 과감하게 병력을 투입했다면 전조 현상은 사전에 차단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예방을 통해 전조 현상을 해결하는 경우는 많았다.

분명히 스스로도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대재앙을 대비하는 상황에 병력을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안일했다.

무능했다.

인지하던 문제가 산불처럼 번지고 있다는 사실은, 스스로에 대한 회의감을 들게 했다.

‘길잡이의 보고대로 정말 전조 현상이라면. 지금부터 인천 정부는 사활을 걸고서라도 반드시 개미굴을 토벌해야만 한다. 한때 대한민국에서 서울 다음으로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제주도가, 전조 현상을 간과했다가 멸망하는 사건이 있었지. 그들이 방관하는 사이에 해양 몬스터들이 밀려들어 제주도를 쓸어 버렸던 것처럼 전조 현상은 언제든 재앙으로 번질 수 있는 문제다.’

제주도의 멸망.

반면교사(反面敎師)의 예였다.

전조 현상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나, 대재앙이 아니라고 해서 무시했다가는 참담한 결말을 맞이할 수도 있다.

그것이 벌써 6년 전의 일이었다.

분명히 제주도의 일을 듣고서 김준혁은 전조 현상에 대한 경계를 강화했는데, 개미굴에서 벌어지는 일을 간과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변명의 여지는 없었다.

토벌에 제약이 많다 할지라도, 이상 현상을 발견하자마자 결단을 내렸어야 했다.

‘로만 드미트리. 그는 살아 있을까.’

박기태로부터 들었다.

그가 길잡이를 맡아 개미굴에 들어섰고, 로만 드미트리와 강민호는 도망치지 않고 개미굴에 남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김준혁이 의도한 것은 아니나 그들을 사지로 몰아넣어 버렸다.

만약 개미굴에서 전조 현상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절대 둘을 개미굴로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로만 드미트리는 세력을 동원하지 않았다.

자신과의 약속을 이행했다는 사실에, 김준혁으로서는 참담한 기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개미굴 문제로 골머리를 앓을 때, 로만 드미트리를 증명하는 것은 일거양득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시민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실격이다. 개미굴을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인식했다면, 타인에게 문제를 떠넘겨서는 안 되었다. 만약 그가 죽었다면 그것은 온전히 나의 책임이다.’

진심으로 바랐다.

로만 드미트리가 죽지 않았기를.

불가능한 일임을 알면서도, 자신과 토벌대가 도착할 때까지 버티고 있기를 바랐다.

“시장님. 준비되었습니다.”

“알겠다.”

이태성이었다.

김준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때까지도, 김준혁의 머릿속에 로만 드미트리가 토벌에 성공한다는 가능성은 존재하지 않았다.

* * *

토벌대는 곧바로 안전지대를 떠났다.

인천의 국군과 일부 헌터 길드로 구성된 토벌대였고, 그중에는 용병 길드인 청산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은 의뢰를 받았다.

헌터 길드의 주요 거래 대상은 정부다.

청산으로서는 돈을 벌 절호의 기회이면서도, 인천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도와줄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사실 그런 이유로 김준혁은 레드문과 공존했었다.

그들이 서울 진출을 위해 뒷공작을 펼친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레드문의 존재 자체는 인천에 필요악(必要惡)이었다.

물론.

지나간 일이었다.

레드문이 필요하다고 해서, 그들의 잘못마저 떠안아 줄 생각은 없었다.

개미굴로 향하는 길.

토벌대에 합류한 박기태는, 청산의 길드 마스터 구철호를 발견하자마자 분노를 토해 냈다.

“야 이 개새끼야. 이렇게 위험한 임무인 줄 알았으면 미리 말을 했어야지. 뭐? 위험할 것 같으면 텔레포트 스크롤을 써서 도망치라고? 너 때문에 잘못했으면 개미굴에서 죽을 뻔했잖아.”

“어어, 기태야. 미안하다, 정말 미안해!”

“미안하면 다냐!”

구철호가 꼬리를 말았다.

박기태와 친근한 사이이기도 하지만, 용병 길드가 의뢰 난이도를 속이는 것은 신뢰의 문제였다.

만약.

정말 위험한 사냥터임을 속이고 용병들을 사지로 몰아넣었다는 소문이 돈다면, 청산 길드의 용병들이 탈주하는 것은 순식간이다.

용병들이란 그렇다.

금전적인 조건과 자신의 안전 여부에 따라서, 그들은 청산에 수년간 몸을 담았다고 해도 하루아침에 소속을 바꿀 사람들이었다.

구철호가 말했다.

“기태야. 난 정말 몰랐어. 그렇게 위험한 사냥터인 줄 알았다면 당연히 널 보내지 않았겠지. 그리고 이건 정말 비밀인데, 애초에 이번 의뢰는 개인이 아니라 ‘인천 정부’에서 직접 의뢰한 거였어.”

“그게 무슨 의미예요?”

“말 그대로야. 의뢰자가 인천 정부였다고. 생각해 보면 개인이 사냥을 진행하면서, D등급 길잡이에게 몇억씩 턱턱 내놓는 게 말이 되지 않잖아. 나는 인천 정부를 믿었을 뿐이야. 그들이라면 충분히 승산이 있는 토벌대를 형성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설마 겨우 두 명만 붙여서 보낼 줄 난들 알았겠냐고. 내가 위험하면 스크롤을 사용해서라도 도망치라고 말했던 것은, 제아무리 상대가 인천 정부라 할지라도 네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내 마음이었어.”

변명이 통한 걸까.

박기태가 누그러진 반응을 보였다.

인천 정부에서 비밀리에 의뢰를 넣은 것이라면, 이번 문제는 구철호의 잘못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런데.

로만 드미트리와 인천 정부의 관계는 무엇이란 말인가.

만약 우호적인 관계라면, 겨우 둘만 개미굴에 보낸 것은 이해가 되질 않았다.

구철호가 눈치를 살폈다.

박기태가 진정되었다는 판단에, 은근슬쩍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개미굴에 들어갔다는 그 사람들. 그 사람들은 아직도 살아 있을까?”

문득.

박기태는 로만 드미트리가 떠올랐다.

강민호의 실력이라면 불가능하겠지만, 로만 드미트리는 분명 믿는 구석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만약 그가 A등급의 실력자라면…….’

S등급은 생각할 수 없었다.

전 세계 기준으로 20명도 채 되지 않는 존재.

대한민국에는 단 한 명밖에 없는 S등급 헌터가 로만 드미트리일 리는 없었다.

A등급은 가능성이 있었다.

그것도 말이 안 되는 것은 마찬가지이나, 그나마 희망 회로를 돌리면 끼워 맞출 수 있는 영역이었다.

하지만.

박기태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마 죽었을 거예요. 그가 아무리 강해도, 그 지옥에서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건 불가능해요.”

* * *

박기태가 떠난 직후.

강민호가 검을 들고 긴장한 기색을 보였다.

여왕개미의 보금자리를 중심으로 사방에 뚫린 구멍에서, 개미들이 끝도 없이 밀려들고 있었다.

캬악!

크르르륵.

‘……이렇게 죽는 건가.’

수십 마리의 여왕개미.

그들이 한 달간 개미들을 계속해서 생산해 냈다면, 파도처럼 밀려드는 개미들이 언제 끝날지 장담할 수 없었다.

천 마리? 이천 마리? 아니면 수만 마리? 끝을 알 수 없기에, 강민호는 식은땀이 흐르는 기분이 들었다.

살아야만 했다.

이대로는 죽을 수 없기에, 점점 젖어 들어가는 손으로 검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런 그와는 달리.

로만 드미트리는 여전히 담담했다.

“강민호.”

“예.”

“네가 생각하기에 이 세상의 기준으로, 어느 정도의 실력자가 나서야 개미들을 모조리 처리할 수 있을 것 같나.”

“그게…….”

잠시 고민에 빠졌다.

B등급 헌터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최소 A등급 이상이어야 하는데,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혼자서는 수많은 개미를 상대로 점점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물론 강민호의 상식을 넘어서는 A등급 헌터가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로만 드미트리의 질문에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는 전제는 단 하나밖에 없었다.

“S등급. 대한민국에서는 백의의 마법사만이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런가.”

스릉.

로만 드미트리가 검을 뽑았다.

강민호의 앞을 막아서듯, 천천히 개미들을 향해 걸어갔다.

“그 정도라면 이 세상의 기준을 판단하기에 적합한 경험이구나.”

* * *

새로운 세상.

새로운 기준이 필요했다.

로만 드미트리는 스스로를 신뢰하나, 미지의 세상에서 과신할 만큼 안일한 사람은 아니었다.

‘지난 한 달. 나는 이 세상을 공부했다. 이제는 머릿속에 많은 것이 정립되었으나, 문자로 받아들인 지식으로 세상을 판단하는 것은 멍청한 일이다. 경험이 필요하다. 그동안 공부했던 것이 사실임을 증명하는 명확한 경험이.’

콰릉.

콰르르르르릉.

마나를 끌어올렸다.

사방에서 달려드는 개미들을 향해 걸어가더니, 그들과 맞닥트리는 순간 로만 드미트리 또한 땅을 박찼다.

번뜩.

파파파팟.

선두의 개미들이 갈기갈기 찢겨 나갔다.

단단한 외피가 두부처럼 잘려 나감과 동시에, 로만 드미트리는 어느새 개미들로 득실거리는 공간을 파고들었다.

개미들이 사납게 반응했다. 그들로서는 분명히 로만 드미트리가 먼 거리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갑작스럽게 눈앞에 나타난 것처럼 느껴졌다.

푸확.

사방에서 피가 튀었다.

감각적으로 반응하기도 전에, 로만 드미트리의 검이 개미들의 육체를 찢어발겼다.

캬악!

캬아아악!

개미들이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공포라는 감정이 배제되어 있는 듯, 그들은 동족들이 죽는 모습에도 꾸역꾸역 밀고 들어갔다.

그 숫자는 정말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다.

멀리서 보면 검은 파도가 밀려드는 것처럼 압도적인 광경이었으나, 검은 파도는 로만 드미트리와 마주치는 순간 검붉은 색깔로 물들어 버렸다.

번뜩.

머리를 들이밀면.

머리가 날아갔다.

앞발을 휘두르면.

앞발이 날아갔다.

십수 마리의 개미가 동시다발적으로 공격해도, 그들의 육체가 찢겨 나가는 결말은 다르지 않았다.

콰앙!

콰르르르르르릉.

사방이 증발했다.

로만 드미트리가 걸음을 내딛는 족족, 그곳에 존재하는 개미들의 생명이 사그라졌다.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로만 드미트리를 상대로는 일개미와 병정개미의 구분 또한 의미가 없을 정도로, 일개미든 병정개미든 공격 한번 막아 내지 못하고 죽는 신세는 똑같았다.

어차피 손쉬운 존재들일 뿐. 겨우 몇 분의 시간이 지나지 않았는데도, 벌써 로만 드미트리 뒤로는 수많은 사체가 쌓여 갔다.

위험 요소?

존재하지 않았다.

시각적으로는 상당히 위험해 보였지만, 사방에서 들이닥치는 공격 모두 로만 드미트리의 영역 안에 있었다.

피할 필요도 없었다.

공격하는 모습 그대로 베어 버렸다.

단단한 앞발이 갈라지며 몸이 두 동강이 났고, 이빨이 부서지며 머리가 날아갔다.

갈증이 일었다.

더.

더, 더.

이들이 강력하기를 바랐다.

미지의 세계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 로만 드미트리는 전생에 대한 감정과는 별개로 혹시 새로운 강자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매번 치열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자신의 전력을 쏟아붓고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대. 피가 마르고 가시밭길을 걸어가는 험난한 삶일지라도, 그때만큼 자신이 살아 있다고 느껴 본 적은 없었다.

결국.

로만 드미트리는 그런 존재였다.

평화로운 삶에서는 부각되지 않는, 평범하지 않게 살아야만 삶의 의미를 찾는 존재.

모순적이었다.

평화로웠던 전생의 삶을 되찾길 바라면서도, 로만 드미트리는 그 과정이 부디 험난하기를 빌었다.

번뜩.

콰득.

도륙했다.

존재감을 분출했다.

어느새 천 마리가 넘어가는 개미들을 도륙했을 때, 상황을 지켜보던 여왕개미들이 참지 못하고 달려들었다.

여왕개미는 B등급 몬스터다.

하루에 백여 마리의 개미들을 산란하는 능력을 떠나서, 단순히 단단한 외피와 날카로운 이빨은 B등급으로 분류될 정도로 강력한 몬스터다.

그러나 그뿐.

여왕개미의 신세도 다르지 않았다.

일개미처럼, 병정개미처럼.

로만 드미트리의 검이 그들의 육체를 갈았을 때, 단단하다 평가받았던 외피는 검붉은 피를 뿌려 댔다.

푸확.

키에에엑.

개미들이 비명을 질렀다.

압도적이었다.

세포에 각인되듯 전염되는 공포에, 그들은 뒤늦게 로만 드미트리가 감당할 수 없는 존재임을 알았다.

‘이게 사람들이 말하는 재앙의 수준이라면…….’

콰직.

바닥에서 부들대는 여왕개미의 머리를 짓밟았다.

이제는 판단이 섰다.

‘지금부터 망설일 이유는 없다.’

눈앞의 개미들을 모조리 도륙한 이후.

로만 드미트리는 자신의 계획을 거침없이 진행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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