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는 평범하게 살 수 없다-483화 (483/615)

483화 개미굴 (4)

토벌대의 선두는 박기태가 맡았다.

이미 한번 지나온 길이었기에, 그는 거침없이 길을 열었다.

“여기가 개미굴 초입입니다. 지금부터는 공간이 협소하니까, 선두를 맡을 병력을 따로 편성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직할대. 너희가 선두를 맡는다.”

“알겠습니다.”

일사불란한 움직임이었다.

박기태를 비롯한 직할대가 먼저 개미굴에 들어섰고, 김준혁은 일반인인데도 불구하고 그들의 대열에 합류했다.

인천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모습이었다.

보통 일반인 지휘관들은 먼발치에서 명령만 내리는 것이 대부분인데, 인천 시장은 아무리 격렬한 전장이어도 시야가 닿는 곳에 있었다.

빠르게 움직였다.

1분 1초를 다투는 상황.

사람들은 로만 드미트리와 강민호의 죽음을 확신했지만, 김준혁은 만일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만약 아직 살아 있다면. 이곳에서 지체하는 시간이 그들의 생명과 직결된다.’

얼마나 이동했을까.

갑작스럽게 전방에서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전투 준비!”

“모두 무기를 들어라!”

이태성이 소리쳤다.

박기태는 뒤로 물러났고, 이윽고 어둠을 뚫고 개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캬악!

캬아아악!

사람들의 얼굴이 당혹으로 얼룩졌다.

개미들의 숫자는 언뜻 보아도 수백 마리는 거뜬하게 넘었고, 아직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어둠에서 개미들이 끊임없이 밀려들고 있었다.

걱정했던 상황이었다.

협소한 공간이다 보니 화력을 완벽하게 발휘할 수 없는 지금, 끝이 보이지 않는 개미들의 공격은 사람들의 마음을 초조하게 했다.

그 순간.

김준혁이 침착하게 사람들의 마음을 다잡았다.

“협소한 공간은 소수가 다수를 상대하기에 이롭다. 일단 공격해 오는 개미들을 맞받아치고, 체력이 떨어지거나 부상을 당한 사람들은 후방 인원과 교체한다. 명심하라. 촌각을 다투는 상황이나, 그렇다고 조급하게 나아갈 필요는 없다. 차분하고 확실하게 개미들을 모두 소탕한다.”

“알겠습니다.”

적절한 명령이었다.

김준혁의 명령에 선두 병력이 자리를 잡았고, 곧바로 들이닥치는 개미들을 향해 무기를 휘둘렀다.

콰득.

캬악!

크르르륵.

전투가 시작되었다.

인간과 개미가 서로 뒤얽히며 피가 튀었고, 첫 공방은 인간들이 압도적으로 개미들을 학살했다.

직할대는 모두 특급 헌터 이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은 개개인이 모두 병정개미 무리를 감당할 만큼의 전투 능력을 보유했기에, 수백 마리의 개미가 달려든다고 해서 흔들리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특히.

이태성이 발군이었다.

쌍검을 사용하는 이태성은 대열을 이탈하더니, 개미가 득실거리는 공간에서 일방적으로 학살을 벌였다.

‘난무(亂舞).’

파파파파팟.

경악스러운 광경이었다.

이태성의 존재를 몰랐던 사람들은, 인천 정부가 보유한 고수의 실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직할대의 선전에도 개미들은 물러나지 않았다.

살의를 번들거리며 죽이겠다는 기세보다는, 마치 무언가에 쫓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들은 앞선 개미들을 짓밟으면서까지 꾸역꾸역 밀려들었다.

이상했다.

특이점을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은 김준혁이었다.

‘개미들의 반응이 이상하다. 침입자를 처리할 의도라면 차례로 공격해야 하는데, 개미들은 앞선 개미의 공격을 방해할 정도로 꾸역꾸역 밀려들고 있다. 설마 뒤에 무언가가 있다는 의미인가.’

순간.

하나의 가능성이 떠올랐다.

불가능했다.

실현 가능성이 매우 떨어지는 일이지만, 김준혁은 상황에 맞는 대응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무모하게 전진하지 말고 자리를 고수하라.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개미들은 조급하게 달려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자리를 고수하고 침착하게 대응한다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김준혁의 존재.

그가 전장에 함께하는 이유였다.

일반인에 불과하나 전투를 읽는 능력을 타고났고, 사람들은 그의 명령을 맹목적으로 따랐다.

전투가 반복되었다.

얼마나 많은 개미를 처리했는지 계산할 수 없을 정도로, 협소한 통로는 어느 순간부터 개미들의 사체로 가득 차올랐다.

이태성을 비롯한 직할대원들의 얼굴이 피로 물들었다.

중간에 후방 인원들과 교체하면서 적절하게 체력을 관리했고, 청산과 같은 헌터들의 도움으로 피해는 크지 않았다.

한바탕 폭풍이 지나갔다.

더는 개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때였다.

박기태가 소리쳤다.

“무언가가 또 다가오고 있습니다!”

척.

척척.

무기를 드는 사람들.

긴장한 기색을 보이던 그들은, 어둠을 뚫고 나타난 무언가를 확인하고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설마.”

눈을 부릅뜨는 박기태.

확실했다.

무언가의 정체는 죽었다고 생각했던 로만 드미트리였다.

* * *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전투 내내 침착함을 유지하던 김준혁조차도, 로만 드미트리의 생존에 말을 잃고 말았다.

‘설마 했는데.’

만일의 가능성.

그것은 로만 드미트리의 존재였다.

만약 그가 죽지 않고 개미들을 일방적으로 학살하고 있다면, 그를 피해 도망친 개미들이 안쪽에서 도망치듯 달려들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너무나도 허무맹랑한 가설이었다.

그래서 금방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는데, 그런 자신을 비웃기라도 하듯 로만 드미트리는 너무나도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소름이 돋았다.

지금의 상황.

그것은 하나의 사실을 의미했다.

‘로만 드미트리는 최소 A등급 헌터다. 아니, 어쩌면 그런 예상조차도 상식적인 기준에 불과하다.’

생각해 보면.

로만 드미트리는 자신의 실력을 밝힌 적이 없었다.

처음에는 병정개미 무리를 처리한 성과에 B등급이라 판단했고, 이후 레드문을 학살해 버리는 파격적인 행보에 A등급임을 확신했다.

그런데 지금은 A등급인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최소 A등급이라는 사실은 증명되었지만, 전조 현상을 홀로 해결할 정도라면 그 이상일 가능성도 있었다.

S등급.

갈증이 일었다.

만약 S등급의 실력자라면, 로만 드미트리가 인천을 집어삼키겠다는 포부를 이해할 수 있었다.

‘S등급의 실력자는 국가의 국력을 판단하는 척도. 대한민국은 중앙 정부가 막강한 권력을 발휘하는 나라지만, 그들조차도 백의의 마법사를 완벽하게 통제하지 못하고 겨우 협력 관계를 맺었지. 백의의 마법사에게는 중앙 정부의 통제를 벗어날 힘이 있다. 로만 드미트리가 백의의 마법사와 동급의 실력자라면, 그 한 명의 존재로 인해 인천은 전혀 다른 위치에 오를 수 있다.’

찰나의 시간.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이 뒤얽혔다.

사람들이 침묵으로 물들었다.

모두 경악한 얼굴로 로만 드미트리를 바라보고 있는 그때, 그가 뚜벅뚜벅 김준혁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길이 열렸다.

이태성을 비롯한 직할대는 김준혁의 곁을 지켰지만, 로만 드미트리는 개의치 않다는 듯이 김준혁을 바라보았다.

“약속했던 대로 개미굴을 토벌했습니다.”

뚝, 뚝.

검에서 핏물이 떨어졌다.

사람들이 추측했던 일이 진실임을, 로만 드미트리 스스로가 밝혔다.

흔들리는 김준혁의 눈빛.

그에게 현실을 말했다.

“그러니, 지금부터는 당신이 결정을 내릴 차례입니다.”

* * *

토벌대는 인천으로 복귀했다.

큰 피해 없이 엄청난 성과를 거두었지만, 사람들은 그것이 자신들의 공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로만 드미트리.

모두의 관심사였다.

집무실로 돌아온 김준혁 또한, 로만 드미트리의 말을 되새겼다.

“……그에게 인천을 넘기는 것이 정녕 옳은 일일까.”

실력에는 의문이 없었다.

다만.

의도가 의심스러웠다.

S등급의 실력자라면 강대국에서도 엄청난 대우를 해 줄 텐데, 겨우 인천 하나를 요구하는 모습을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처음에는 실력만 있다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상식을 벗어나는 실력을 보이니, 그동안 생각했던 것들이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창밖을 바라보았다.

평화로운 도시의 모습에, 김준혁은 5번째 대재앙이 들이닥쳤던 6년 전의 순간이 떠올랐다.

‘인천으로서는 몬스터들의 공격을 감당할 수 없었지. 시야를 빼곡하게 메울 정도로 수많은 몬스터들보다, A등급이라고 평가받는 몇몇 몬스터가 인천을 쑥대밭으로 만들었어. S등급의 대재앙도 아니고 겨우 A등급일 뿐인데. 인천은 그것조차 감당하지 못하고 많은 사람을 잃었지.’

그날.

김준혁은 목이 터져라 중앙 정부에 연락했다.

제발 A등급 몬스터를 처리할 실력자를 보내 달라고 말했지만, 그들은 서울의 안전이 최우선이라면서 그로부터 열흘 뒤에나 지원 병력을 보냈다.

당연히 인천은 쑥대밭이 되었다.

그동안 같이 힘겹게 인천을 일구었던 사람들이 모두 죽어 버린 상황에, 김준혁은 피눈물을 흘리며 지금보다 강한 인천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지금.

달라진 것은 많지 않았다.

이태성과 같은 실력자들을 보유했지만, 그때와 똑같은 상황을 막아 내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그게 인천의 한계야.’

대한민국.

약소국이다.

실력자들은 대한민국에 소속되는 것도 원하지 않는데, 그중에서도 겨우 일개 도시에 불과한 인천에 남겠다는 실력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태성이 특이 케이스일 뿐이다.

김준혁이 밤잠을 이루지 못하며 아득바득 발악했건만, 인천이라는 배경의 한계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로만 드미트리.

그는 다르다.

정말 S등급 헌터라면, 그 한 명의 존재로 인해 인천은 완전히 다른 미래를 맞이할 수 있다.

그때였다.

똑똑.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이태성이 김준혁을 찾았다.

* * *

이태성은 자리에 앉지 않았다.

복잡한 표정으로 창밖을 내려다보는 김준혁의 모습에, 그를 찾은 본론을 말했다.

“6년 전 그날을 기억하십니까? 그날. 하나뿐인 동생을 잃은 저는 죽을 생각이었습니다. 밤낮이 수도 없이 바뀌는 동안 몬스터들과 싸우는 것을 멈추지 않았고, 그렇게 저는 점점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 제 눈에 시장님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일반인 지휘관들, 아니 헌터 출신의 지휘관들조차 대재앙이 들이닥치면 도시를 버리고 도망칩니다. 하지만 전선에 끝까지 남아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는 시장님의 모습에, 저는 시장님과 같은 사람에게 왜 힘이 허락되지 않았는지 하늘을 저주했습니다.”

들끓는 감정을 삼켜 냈다.

그날 죽지 못했던 이태성은, 마음속에 김준혁이라는 사람을 받아들였다.

“그 지옥 같은 순간에서 인천은 살아남았습니다. 시장님은 인천을 떠나지 않고 재건을 선언하며, 인천 시민들의 마음에 희망을 불어넣었습니다. 시장님. 그날, 저를 영입하려던 중앙 정부의 제안을 거절한 이유는 시장님의 의지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시장님이라면, 그때와 같은 참사를 반복하지 않는 강인한 인천을 만들리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어떤 선택을 내리든 따르겠습니다. 저 이태성은 시장님, 아니 인간 김준혁을 위해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절절한 목소리였다.

이태성.

불쌍한 아이였다.

당시 C등급 헌터였던 이태성은, 김준혁에게 충성을 맹세한 이후로 피나는 노력 끝에 B등급의 자격을 확보했다.

승급 당시에도 말이 많았다.

중앙 정부에서 다시 한번 엄청난 제안을 해 왔지만, 이태성은 김준혁을 따른다는 이유는 숨긴 채 그들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한참을 대답하지 못했다.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김준혁이, 무언가 결정을 내린 눈빛으로 이태성을 바라보았다.

“그래. 네 말대로다. 나는 반드시 그 어떠한 위협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인한 인천을 만들 것이고, 로만 드미트리라는 사람이 악인(惡人)인지 선인(善人)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고, 그런 사람이 인천을 원한다는 사실이 중요할 뿐이다.”

결단을 내렸다.

고민은 길었지만, 마음을 먹은 순간부터 망설임은 없었다.

“지금부터 나는 인천 시장의 자리를 내려놓고, 로만 드미트리가 인천을 떠나지 않도록 모든 것을 바칠 것이다.”

* * *

다음 날.

김준혁은 로만 드미트리를 찾아갔다.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인천의 안전을 보장해 주신다면, 인천 시장의 자리를 기꺼이 내놓겠습니다.”

고개를 숙였다.

예를 보이며, 아랫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김준혁.’

로만 드미트리는 그가 마음에 들었다.

김준혁은 열망이 확실한 사람이고, 무엇보다 개미굴을 토벌하는 과정에서 그의 강인한 모습을 보았다. 아무런 힘도 없이 전장에 존재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만약 그에게 일말의 힘이라도, 일말의 권력이라도 허락되었다면 대한민국의 판도는 지금과 같지 않았을 것이다.

로만 드미트리가 말했다.

“지금부터 인천은 나의 것이다. 그러나 인천 시장의 자리는 필요하지 않다. 이 도시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김준혁 시장’이라는 존재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네가 앞으로도 인천 시장의 역할을 맡되, 너는 나의 명령을 따라야 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지난 레드문 사건은 어떻게 처리했지?”

자연스러운 하대였다.

곧바로 상황을 받아들이는 모습에, 김준혁은 로만 드미트리에게 특별한 과거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김준혁이 말했다.

“중앙 정부가 진실을 알면 상황이 복잡해질 수도 있다는 판단에, 일단 인천 정부의 소행이라고 말해 두었습니다. 문제는 이번 개미굴 토벌입니다. 지난 레드문 사건은 직할대만 대동했기에 진실을 감출 수 있었지만, 개미굴 토벌은 헌터 길드들이 연관되어 있어 불가능합니다.”

되도록 진실을 감추고 싶었다.

로만 드미트리를 필두로 인천이 자리를 잡으면 모르겠지만, 벌써 중앙 정부에 존재가 드러났다간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른다.

전조 현상을 홀로 쓸어 버릴 정도의 실력. 중앙 정부로서는 눈이 돌아가서 영입하려고 할 테니, 일단 진실을 묻어 버릴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다.

그런데.

“어째서 진실을 감춘 거지?”

“……중앙 정부는 대한민국을 주도하는 세력입니다. 그들의 관심을 받으면 곤란해지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직.

김준혁은 로만 드미트리를 알지 못했다.

문태준과의 일은 오로지 그의 판단이었고, 로만 드미트리는 그런 그림을 바라지 않았다.

로만 드미트리가 말했다.

“레드문 사건, 개미굴 토벌. 모든 진실을 사람들에게 공개하라. 내 존재가 드러나는 것부터가, 인천이 변화를 맞이하는 시작점일 것이다.”

낭중지추(囊中之錐).

로만 드미트리는 애초에 숨지 않았다.

드러내는 것에 익숙했고, 드러냄으로써 판도를 뒤흔들었다.

그것이 바로.

로만 드미트리의 본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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