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는 평범하게 살 수 없다-485화 (485/615)

485화 트러블 (2)

당혹스러운 대답이었다.

정확히는, 인천으로서는 해서는 안 될 말이었다.

문태준이 차갑게 말했다.

“딱 한 번, 방금 내뱉은 말을 번복할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이후에는 상황을 돌이킬 수 없습니다.”

경고였다.

로만 드미트리는 외국인이기에 대한민국의 사정을 모를 수도 있지만, 인천 시장인 김준혁은 다르다.

지금이라도 엎지른 물을 주워 담으려는 노력을 보인다면. 로만 드미트리의 가치를 생각해서, 단 한 번은 기회를 주겠다는 자비를 베풀었다.

그런데.

김준혁은 침묵을 지켰다.

무언(無言)으로 로만 드미트리의 뜻에 힘을 싣는 상황에, 문태준은 황당하다는 듯이 웃음을 보였다.

“이거 참, 재밌는 상황이네요. 김준혁 시장님은 6년 전의 참극을 잊으셨나 봅니다.”

“……잊지 않았기에 결단을 내렸을 뿐입니다.”

“설마 단 한 명의 존재로 대재앙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대재앙(大災殃)은 세상천지에 몬스터가 폭주하는 시기를 말합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이번 개미굴 사건처럼 몸을 웅크리고 있던 몬스터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인간들을 공격합니다. 6년 전의 인천은 그렇게 멸망했습니다. 성벽이 무너지고, 내부로 들어선 A등급의 몬스터를 막지 못해 수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로만 드미트리 님이 설령 대단한 고수라고 한들, 겨우 인천의 지원을 받고 몬스터들의 공격을 모두 막아 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물론 지난 대재앙과는 다르겠지요. 개미굴을 토벌했듯이 인천이 감당하지 못했던 적들을 처리해 주겠지만, 겨우 그 정도일 뿐입니다.”

사납게 쏘아붙였다.

중앙 정부의 조사관들.

지방에서는 그들을 악마라고 불렀다.

중앙 정부를 등에 업고 지방을 감시, 중앙 정부에 이득이 될 만한 부분들을 어떻게든 뜯어내는 존재기에 그들은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다.

문태준은 무려 십 년간 조사관으로 활동했다.

자신이 내뱉는 발언이, 자신이 내뱉는 경고가 어떤 의미로 작용할지 너무나도 잘 알았다.

“현실을 직시하십시오. 대한민국에 S등급 헌터는 백의의 마법사 단 한 명, 그리고 A등급 헌터는 30명이 채 되지 않습니다. 그들이 왜 대부분 서울에서 활동하는 것 같습니까? 아무리 대단한 실력자라고 한들, 겨우 한 명일 때는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몬스터들이 범람하는 시기에는 A등급 몬스터들이 수십 마리가 동시에 들이닥치는데, 아무리 대단한 실력자라고 한들 그걸 어떻게 혼자서 막을 수 있겠습니까? 김준혁 시장님의 의지는, 로만 드미트리 님의 발언은. 이 대한민국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울타리를 벗어나겠다는 의미입니다.”

문태준이 로만 드미트리를 보았다.

현실을 욱여넣었다.

로만 드미트리가 이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하는지 그 현실을 보여 주었다.

로만 드미트리가 말했다.

“안전의 대가가 불합리한 통제라면, 인천 정부는 중앙 정부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좋은 일이 아닙니까? 우리를 선례로 삼으십시오. 그렇게 대단하게 떠들어 대는 말처럼, 중앙 정부의 도움을 받지 않은 이 인천 정부가 앞으로 어떤 결말을 맞이하는지 지켜보십시오.”

도발이었다.

대놓고 심기를 건드리는 발언에, 문태준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분명히 진실을 말했는데도.

로만 드미트리는 오만방자했다.

“앞으로의 미래를 확신한다면, 인천 정부를 본보기로 삼으면 그만입니다.”

뚝.

이성이 끊어지는 기분이었다.

방금의 발언.

참을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섰다.

아무리 탐이 나는 인재라고 한들, 로만 드미트리와 같은 발언을 허락할 수는 없었다.

문태준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인천 정부의 뜻은 잘 알겠습니다. 오늘을 기억하십시오. 인천이 6년 전 그날을 다시 되풀이했을 때, 일개 개인을 믿었던 선택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깨닫게 되실 겁니다. 그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걸음을 홱 돌렸다.

밖으로 빠져나가는 문태준은, 나가는 그 순간까지도 분노 어린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 * *

쾅!

문을 강하게 닫았다.

집무실을 나오자마자 문태준이 전화를 걸었다.

달칵.

[어떻게 됐어?]

“인천 정부가 제대로 미쳤습니다. 그들은 로만 드미트리를 따르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앞으로 중앙 정부와는 별개의 노선으로 가겠답니다. 의원님. 일벌백계(一罰百戒)가 필요합니다. 제아무리 대단한 실력자라고 한들, 이런 사례를 허락한다면 백의의 마법사와 같은 독자적인 세력이 생겨날지도 모릅니다.”

문태준의 말처럼.

백의의 마법사는 특별한 존재였다.

S등급 헌터가 대단한 것은 사실이지만, 백의의 마법사라고 할지라도 혼자서 대재앙에서 살아남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그는 중앙 정부와 공생 관계를 맺었다.

하지만 최초의 S등급 헌터라는 상징성 때문에 많은 자유를 허락해 준 탓에, 지금에 이르러서 백의의 마법사는 중앙 정부의 통제를 벗어난 존재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때의 일.

중앙 정부의 치부였다.

대한민국을 손안에 쥐고 있으면서도, 눈엣가시 같은 백의의 마법사 때문에 몇몇 의원들은 불만이 상당했다.

통화기 너머.

의원이라고 불린 인물이 말했다.

[그래. 네 말처럼, 세력을 갖추는 것이 절대적인 상황에서 일개 개인에게 휘둘릴 이유는 없다. 로만 드미트리라는 녀석을 확실하게 본보기로 삼아라. 이 대한민국 땅에서 다시는 중앙 정부의 권위를 넘보지 못하도록, 허튼 생각을 하는 녀석들이 어떤 미래를 맞이하게 되는지를.]

“알겠습니다.”

문태준의 눈빛이 사납게 변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벌써부터 앞으로의 그림이 그려졌다.

“대재앙이 찾아올 때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습니다. 한 달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 안에, 인천의 숨통을 틀어막겠습니다.”

* * *

문태준이 떠나간 자리.

김준혁은 복잡한 표정을 보였다.

로만 드미트리의 발언에 힘을 실었으나, 자신의 선택이 옳다는 확신은 존재하지 않았다.

“앞으로가 걱정되는 건가.”

담담하게 들려오는 음성.

김준혁은 본심을 숨기지 않았다.

“……예. 중앙 정부는 대한민국의 전부입니다. 이 작은 땅덩어리에 실력자라고 할 만한 사람들 대부분이 중앙 정부에 소속되어 있는데, 그들과 척을 지는 것이 옳은지 확신이 서질 않습니다. 만약 인천의 힘으로 감당하지 못하는 현실이 들이닥친다면. 배수의 진을 쳐 버린 지금의 상황을 후회할 날이 찾아올지도 모릅니다.”

이해되는 발언이었다.

하지만.

로만 드미트리가 이 세상에 대해 알아 가면서, 가장 먼저 결정한 것이 중앙 정부를 버리는 일이었다.

로만 드미트리가 말했다.

“대한민국의 시스템은 참으로 기형적이다. 중앙 정부는 오로지 수도인 서울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면서, 서울이 차지하는 것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부’로 서울보다 수십 배는 더 큰 나머지 땅덩어리에서 막강한 권력을 발휘한다. 인천은, 그리고 지방 정부는. 그 일부에서 벗어나야만 진정한 평화를 되찾을 수 있다. 언제나 최우선이 아닌 상황에서 중앙 정부에 목을 매달고 있으면, 독자적이지 못한 체계는 매번 삼자의 선택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만약.

중앙 정부가 합리적인 선택을 하거나, 불합리할지라도 사람들의 안전을 보장해 줄 수 있다면.

로만 드미트리는 다른 길을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문태준의 발언만 봐도 그랬다.

문태준은 김준혁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인천 정부를 대우해 주겠다는 것이 아니라, 서울의 안전을 확보하고 난 뒤에 도와주는 순서에서 배제하겠다고 말했다.

최우선이라 할지라도 서울과는 다르다는 의미다.

이미 순서가 정해진 체계에서, 그들을 따를 이유는 조금도 존재하지 않았다.

인천.

이곳을 시작점으로 삼았다.

앞으로 새로운 드미트리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로만 드미트리는 불합리한 체계를 허락하지 않았다.

“힘이 없다면 불합리할지라도 참는 것이 맞다. 그러나 내가 존재하기에, 인천은 앞으로 중앙 정부의 힘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김준혁이 마른침을 삼켰다.

오만방자했다.

문태준이 분노할 만큼 로만 드미트리는 허황된 발언을 내뱉었으나, 인천을 최우선으로 하겠다는 그 말을 맹목적으로 믿어 보고 싶었다.

실현만 가능하다면 그보다 나은 미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에. 김준혁은 로만 드미트리를 따르겠다는 마음가짐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

“……알겠습니다. 앞으로 최선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고개를 숙이는 김준혁.

특이한 인물이었다.

일반인에 불과하나, 그는 일반적이지 않은 삶을 살았다.

앞으로 새로운 인천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김준혁과 그의 사람들은 필요한 존재였다.

로만 드미트리가 말했다.

“직할대를 불러라. 최소한의 기반을 갖추기 위해서, 지금부터 직할대의 수준을 끌어올릴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

관계의 시작은, 먼저 신뢰를 형성하는 것이었다.

* * *

며칠이 흘렀다.

그동안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일 때면, 서울에서 비롯된 한 소문에 시끌벅적 떠들어 댔다.

“그게 사실이야?”

“내가 헛소리를 할 사람으로 보여? 지금 그것 때문에 중앙 정부에서 난리가 났어. 중앙 정부는 레드문 멸망 사건으로 적법하게 로만 드미트리를 처벌하려고 했는데, 인천 정부가 중앙 정부에 선을 그으면서 앞으로는 통제를 따르지 않겠다고 말했다니까.”

“인천 시장이 단단히 미쳤네. 중앙 정부의 통제를 따르지 않겠다는 의미는, 위급한 상황에서 도움도 받지 않겠다는 의미잖아. 대체 무슨 자신감이지? 세계 각국에서 전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대재앙이 머지않았다는 의미인데, 설마 인천의 병력만으로 대재앙을 감당하려는 건가.”

“인천도 끝난 거지 뭐. 한때는 김준혁이 인천의 미래라는 말도 있었지만, 겨우 일반인에 불과한 사람이 뭘 할 수 있겠어. 권력 놀이에 심취해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것이 분명해.”

중앙 정부와의 분리.

그것을 희소식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었다.

대한민국의 국력은 서울에 집중되었다는 사실을 알기에, 사람들은 단번에 본질이 무엇인지를 파악했다.

게다가 소문에 부응이라도 하듯.

중앙 정부는 인천 소속 길드들에 공문을 돌렸다.

[……이러한 이유로 앞으로 중앙 정부는 인천을 지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인천에 소속되어 있는 길드들도 마찬가지다. 인천 정부와 협력하는 길드들의 경우, 앞으로 중앙 정부에서 따로 의뢰를 넣지 않을 것이며 대재앙이 발발하더라도 그들은 중앙 정부의 도움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소문이 확실해졌다.

중앙 정부가 인천을 버렸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일이기에, 인천의 길드들로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괜히 인천 정부와 관련되었다는 이유로 손해를 볼 수도 있는 일.

몇몇 길드들은 다른 지역으로의 이전을 알아보았고, 다른 지역들 또한 두 팔 벌려 길드들의 입성을 반겼다.

용병 길드 청산.

그들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C등급 용병이자 청산을 이끄는 구철호는, 상당히 고민스러운 얼굴로 수뇌부들에게 말했다.

“김준혁 시장이 대체 왜 그랬을까. 그렇게 멍청한 인물이 아닐 텐데.”

“길드장님. 인천은 이제 난파선(難破船)입니다. 인천에서의 기반을 지키겠다고 끝까지 버티다간, 용병들을 다루는 청산이 망하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벌써 용병 업계에서는 인천 길드들의 의뢰를 받지 말라는 의견이 팽배하지 않습니까. 인천 시장이 내린 결정 하나에, 우리까지 휘말릴 이유는 없습니다.”

“당장 길드를 이전하시죠. 청산의 규모라면, 지방에서는 두 팔 벌려 반길 것이 분명합니다.”

구철호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도 알았다.

인천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그러나 힘겹게 일군 기반이 아까웠고, 무엇보다도 그는 김준혁이라는 사람을 상당히 신뢰했다.

아마 그건 인천에 터를 잡은 사람들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이곳에서 1~2년 지낸 사람들은 외부의 입김에 후후 날아가겠지만, 6년 전 참극을 경험한 사람들은 김준혁의 가치를 알았다.

그는.

강직한 사람이다.

현명한 사람이다.

아무런 생각 없이 일을 벌일 만큼, 무모한 사람이 절대 아니었다.

‘겨우 로만 드미트리 한 명을 믿고 일을 벌인 거라면, 이번에는 시장님의 선택이 잘못되었습니다.’

고민 끝에.

구철호는 결론을 내렸다.

벌써 짐을 싸고 있는 다른 길드처럼, 자신도 좋은 조건으로 청산을 받아 줄 지역으로 이동해야 할 것 같았다.

아무리 혼란을 이용해 돈을 버는 직업이라지만. 그래도 이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살아남기를 바라는 사람들이다. 일

말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어떻게든 인천에 남으려고 했겠지만, 중앙 정부의 선택은 인천의 절망적인 미래를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그때였다.

자신의 결정을 말하려는데, 아까부터 회의실 한편에서 심각한 얼굴로 있던 박기태가 입을 열었다.

“우리 인천에 남으면 안 됩니까?”

“그게 무슨 소리야?”

박기태는 청산의 소속이 아니다.

하지만 구철호를 따라 움직이기로 했고, 덕분에 이 자리에 함께할 수 있었다.

사람들의 의문스러운 시선.

박기태는 그 시선을 마주하며 말했다.

“아무래도 마음이 걸려요. 김준혁 시장같이 똑똑한 사람이 왜 그런 선택을 했겠어요? 로만 드미트리. 이유는 그 단 한 명밖에 없어요. 그리고 이 중에서 유일하게 로만 드미트리를 직접 경험한 사람으로서, 저는 인천을 떠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생각 없이 내뱉는 소리가 아니다.

지난 며칠.

박기태는 이런 말도 안 되는 결론을 내린 이유가 있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