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는 평범하게 살 수 없다-489화 (489/615)

489화 변화하는 인천 (2)

시험 결과는 모두에게 공개되었다.

[E등급 강민호, C등급으로 2단 승급 성공]

대기실 화면에 떠오른 내용이었다.

그래서일까.

시험을 끝내고 밖으로 나온 강민호는, 하이에나 떼처럼 몰려드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강민호 님! 혹시 시간이 되신다면 저랑 잠깐 차 한잔하실까요?”

“사일런스(silence) 길드에서 나왔습니다. 강민호 님을 정식으로 영입하고 싶은데, 대화 한번 나누시죠.”

“정말 대단하십니다. E등급에서 D등급도 아니고 무려 C등급으로 2단 승급을 성공시키다니! 최근에 유례없는 성과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저희 길드 마스터님께서도 강민호 님과 같은 인재라면 두 팔 벌려 반기겠다고 말씀하신 만큼, 제가 강민호 님이 바라는 모든 조건을 맞추어 드리겠습니다.”

난리가 났다.

영입 제안을 해 오는 사람들.

그들은 승급 시험장 특유의 문화였다.

일명 삐끼라고 불리는 그들은, 대기실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강민호와 같은 인재들이 나타날 때마다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강민호로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수년 전에 승급 시험을 볼 때는 아무도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는데, 지금은 언뜻 보아도 십수 명이 넘었다.

사실 당연한 결과였다.

E등급에서 C등급.

C등급 자체도 고평가를 받지만, 한 번에 2단 승급을 할 정도라면 특별한 근거가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런데 강민호에게 명함을 내미는 사람 중, 강민호의 마음을 휘어잡는 내용도 있었다.

“천검 길드입니다. 지난번에도 연락했었지만, 로만 드미트리 님의 선택과는 별개로 강민호 님을 반드시 천검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고액의 연봉은 당연히 보장해 드리며, 천검의 제안을 수락한다면 따님과 같이 서울에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곧 대재앙이 들이닥칠 겁니다. 앞으로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천검의 영역에서 가족의 안전을 챙기십시오.”

천검.

대한민국 3대 길드.

그들은 강민호에 관해 따로 조사한 모양인지, 딸의 안전이라는 정말 혹할 만한 제안을 해 왔다.

정말 좋은 조건이었다.

고액의 연봉에 서울에 자리를 잡는 것은, 강민호가 E등급 헌터로 전전하던 시절에 꿈처럼 생각했던 일들이었다.

처음 로만 드미트리를 만날 때도 꿈을 이루겠다는 목적으로 접근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로만 드미트리를 통해 변화를 맞이한 강민호는, 그의 곁에 머물러야 자신이 강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강자로서의 삶. 이전에는 체감할 수 없었던 영역이었다.

그런데 C등급 헌터마저도 무너트린 상황에, 강민호는 스스로가 강해져서 딸을 지키겠다는 또 다른 꿈이 생겼다.

강민호가 단호하게 말했다.

“제안은 감사합니다만, 모두 거절하겠습니다.”

걸음을 돌렸다.

사람들이 애타게 부르든 말든, 강민호는 로만 드미트리가 있는 인천으로 향했다.

* * *

그 시각.

이태성은 강민호의 소식을 들었다.

“……정말 2단 승급에 성공하다니.”

대단한 성과였다.

특히 승급 시험의 상대.

기명준은 악질로 유명했다.

C등급의 실력자로서 그는 기분이 내키는 대로 행동했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도전자들을 불구로 만드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게다가 실력 또한 출중한 인물. 강민호의 상대로 기명준이 선택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강민호의 2단 승급은 실패로 돌아갈 줄 알았다.

결과는 반대였다.

충격적이었다.

단순히 3분을 버티는 것이 아니라, 기명준이 쓰러져서 병원에 실려 갔다는 말을 들었다.

‘로만 드미트리는 대체 무슨 마법을 부린 거지?’

한 달 전.

그리고 지금.

강민호는 완전히 달라졌다.

이태성이 따로 알아본 결과 한 달 전의 강민호는 분명히 E등급에 어울리는 수준이었는데, 그 짧은 시간에 C등급으로의 승격에 성공했다.

로만 드미트리가 기적을 만들어 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강민호의 2단 승급으로 우리는 변명할 명분을 잃어버렸어. 만약 실패한다면, 강민호도 성공한 일을 실패한 우리를 직할대에서 배제하겠지. 그건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야. 하지만 강민호가 성공했다고 해서 우리도 성공할 수 있을까? 직할대원들을 떠나서, 당장 나조차도 A등급으로의 승급이 불가능하겠지.’

A등급.

높디높은 벽이었다.

B등급으로 승격한 후에 A등급을 목표로 치열하게 훈련했지만, 스스로도 아직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A등급부터는 정말 특별했다.

홀로 일인군단(一人軍團)이라 불릴 정도의 괴물들이었고, 전 세계의 국가들도 A등급 이상부터 국가의 국력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생각했다.

A등급이 얼마나 많은지.

S등급을 얼마나 보유했는지.

A등급으로 올라가는 순간부터, 단언컨대 B등급 때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

“……미치겠네.”

막막했다.

직할대를 나가고 싶지는 않았다.

김준혁의 사람으로서 끝까지 남고 싶었지만, 로만 드미트리는 기존의 인천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파격적인 기준을 제시했다.

이렇게 도태되어 버릴 것인가, 아니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벽을 넘을 것인가.

선택의 갈림길.

이를 악물었다.

스스로 해결할 방법은 없었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불가능을 현실로 만들어 낸 근거를 알아내야만 했다.

‘로만 드미트리를 찾아가자.’

그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 * *

이태성의 계획은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강민호가 말했다.

“로만 드미트리 님은 대장간에 들어가셨습니다.”

“……대장간이요?”

“예. 직접 무기를 제작할 계획이며, 기간은 대략 한 달 정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황당한 대답이었다.

무기 제작이라니!

대재앙 이후.

현대 화기들의 가치는 떨어졌다.

몬스터들에게 통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몬스터들의 외피는 현대 화기에 강력한 모습을 보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구시대적인 무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스킬을 사용해서 마나를 머금은 무기는 몬스터들의 외피를 단번에 갈라 버렸고, 그때부터 기존의 체계들이 급격하게 변화했다.

20년이 흐른 지금.

헌터들이 무기를 얻는 방법은 2가지였다.

사냥터에서 몬스터들이 사용하던 무기를 빼앗거나, 아니면 몬스터들의 부산물과 마나석 등을 활용해서 새로운 무기를 만들어 내는 것.

스킬에 적합한 무기는 두 가지 방법으로만 구할 수 있었다.

덕분에 무기 제작이 발달했다.

대장장이와 연구원 같은 직업군의 가치가 급격하게 상승했고, 사람들은 스킬의 위력을 증폭시키는 효과에 따라서 무기에도 똑같은 등급을 매겼다.

S부터 F까지. 이태성이 사용하던 검도 B등급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당장 시중에서 구하려면 수십억은 내뱉어야 하는 엄청난 가치의 물건이지만, 로만 드미트리를 상대하는 과정에서 허무할 정도로 쉽게 부서지고 말았다.

머릿속에 혼란이 일었다.

로만 드미트리가 무기를 만들어 내는 것은, 이태성의 상식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확실한 겁니까? 아시다시피 무기 제작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대재앙 이전부터 뛰어난 제작 기술을 보유했던 사람들이, 무려 수십 년간 새로운 세상에 걸맞은 기술을 갈고닦아야만 겨우 B등급 이상의 무기를 만들어 냅니다. 그래서 A등급부터는 천문학적인 액수가 책정되는데, 로만 드미트리 님이 대체 어떻게 무기를 만들어 내겠다는 겁니까?”

로만 드미트리의 강함?

인정했다.

전승자나 선택받은 자와 같은 특별한 과거가 있다면, 그의 강함은 비상식적이지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제작의 영역은 다르다.

그것은 오랜 세월을 녹여 내야 하며, 겉으로 보기에 20대밖에 되지 않는 로만 드미트리가 장인들의 영역을 넘보는 것은 불가능했다.

강민호로서는 이태성의 의문을 완벽하게 해소할 수 없었다.

그도 로만 드미트리에게 그렇다는 말만 들었을 뿐, 정확한 내막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그야 저도 모르겠습니다. 확실한 건, 로만 드미트리 님을 뵙고자 한다면 한 달 뒤에 찾아오십시오.”

한 달.

로만 드미트리가 정한 기한이었다.

그때 가서 해답을 구한다면, 승급하지 못한 직할대원들은 단칼에 잘려 나갈 것이다.

자비를 베풀 것이라는 기대는 없었다.

레드문 사건과 같은 행보를 본다면, 로만 드미트리는 내뱉은 말에 여지를 허락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막막한 상황.

이태성은 걸음을 돌리지 못했다.

한참을 고민하던 그의 눈에, 강민호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어떻게 2단 승급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면.

정답은 바로 눈앞에 있었다.

로만 드미트리가 아닐지라도, 당사자는 분명히 그 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이태성이 말했다.

“정말 실례되는 부탁인 것을 알지만, 혹시 2단 승급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제게 설명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간곡한 목소리.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태성은 강민호를 바라보았다.

* * *

이태성의 발언.

강민호는 놀랐다.

이태성이 자존심을 버릴 줄은 몰랐지만, 그렇다고 지금과 같은 상황을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로만 드미트리는 대장간에 들어가기 전.

강민호에게 이렇게 말했다.

“만약 이태성이 너에게 도움을 구한다면, 네 의지로 적합한 판단을 내려라. 네가 이태성을 등을 맡길 동료로 생각한다면 모든 것을 알려 주고, 그렇지 않다면 단칼에 선을 그어라.”

로만 드미트리는.

이태성의 행동을 예상했다.

그리고 선택권을 맡겼다.

강민호는 이태성을 바라보며 고민에 빠졌다.

‘내 판단에 따라 수라 검법과 수라 심법을 알려 주라는 의미겠지. 이태성과 직할대원들. 그들이 그만한 가치가 있을까?’

자신보다는 뛰어난 사람들이다.

강민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강함을 떠나서 로만 드미트리에게 유용한 인물인가였다.

‘이태성은 로만 드미트리 님의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없어. 그는 인천 시장 김준혁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사람이고, 그것은 근본적으로 나와는 다른 차이를 만들어 내겠지. 그렇다고 그가 믿을 만하지 않은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그것에 대한 대답은 아니오야. 서울에서 현실적으로 매력적인 제안을 해 오는 상황에서도 김준혁에게 충성을 맹세한 사람이야. 김준혁의 사람이라는 의미는, 김준혁이 로만 드미트리 님을 따른다면 그 또한 든든한 아군으로 남는다는 거겠지.’

앞으로의 미래.

인천에 직할대 같은 인재들이 필요했다.

자신과 다르지 않았다.

확고한 목적을 위해 자존심을 버리는 모습에, 강민호는 길게 고민하지 않을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제가 2단 승급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아니,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둘씩 인천을 떠나가는 그때.

인천에서는 변화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 * *

일련의 상황.

인천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중앙 정부의 조사관 문태준은 분노한 기색을 보였다.

콰앙!

“청산, 그 녀석들은 대체 뭐 하는 새끼들이야? 겨우 C등급이 이끄는 길드 주제에 뭘 믿고 인천에 남아?”

“……죄송합니다.”

수하가 고개를 숙였다.

지난 며칠.

문태준이 대놓고 인천 정부를 저격하면서, 문태준은 당연히 며칠 안으로 인천의 길드들이 전부 다른 지역으로 떠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청산이라는 길드는 인천에 남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물론 청산을 제외하고는 전부 인천을 떠나면서 인천의 전력을 약화시키겠다는 목적 자체는 성공했지만, 청산과 같은 예외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심기를 매우 불편하게 만드는 소식이 들렸다.

“강민호는 또 뭐야? 아무것도 아닌 녀석인 줄 알았는데, 어떻게 2단 승급에 성공한 거야?”

“……승급 시험장에서도 그 이유를 모르겠다는 입장입니다. 수년 전 자료를 확인했을 때 강민호는 분명히 E등급 시험도 겨우 통과했는데, 이번에는 C등급 헌터 기명준을 오히려 쓰러트리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병신 같은 새끼. 겨우 인천 출신 헌터에게 패배하다니.”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혹시라도 청산으로 인해, 강민호라는 헌터로 인해, 인천이 반등의 계기를 만들지 않기를 바랐다.

문태준이 말했다.

“단순히 경고만으로는 안 되겠어. 인천을 경제적으로, 그리고 군사적으로 압박해. 대재앙이 찾아오는 날 인천도 같이 멸망할 것이라고, 대한민국 전체가 인천을 멀리하도록 만들어 내라고. 알겠어?”

“알겠습니다.”

“그런데 로만 드미트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거야?”

인천에서의 만남 이후로.

로만 드미트리는 경계 대상이 되었다.

그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는데, 최근 며칠 로만 드미트리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조사한 바로는 대장간에 머무는 것 같은데, 그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대장간?”

문태준으로서는 알 수 없었다.

대장간.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로만 드미트리가 무기를 제작한다는 가능성은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다.

“대체 거기서 뭘 하는 거야?”

그때만 해도.

문태준은 로만 드미트리의 행보를, 그리고 인천의 변화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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