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1화 변화하는 인천 (4)
승급 시험장은 중립성(中立性)이 보장된다.
중앙 정부에 소속되었다고는 하나, 전 세계에서 통용되는 등급을 관리하는 집단이니만큼 외부의 개입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식의 영역. 문태준의 명령이 떨어지자, 승급 시험장은 문제가 생기지 않는 수준에서 직할대의 상대를 배정했다.
고승철.
그도 그런 경우였다.
B등급에서 실력자로 유명한 그는, 직할대 소속인 박철민을 상대했다.
‘분명히 죽여 버리라고 했지.’
상대는 C등급.
솔직히 만만했다.
이 바닥에서 박철민 정도면 충분히 실력자라고 평가받지만, 강함을 평가하는 기준은 항상 상대적이었다.
자신을 상대로 C등급 헌터? 막말로 10초 안에 끝낼 수 있는 상대다.
B등급 심사를 준비했다면 나름대로 스스로에 대한 자신이 있겠지만, 그 자신감의 영역 또한 B등급의 문턱을 간신히 넘는 정도일 것이 분명했다.
“준비하겠습니다.”
무대에 올랐다.
죄책감은 없었다.
중앙 정부가 명령했으니,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나중에 문제가 생기지 않게, 적당히 놀아 주다가 죽여 버리자.’
팔락.
“시작.”
신호가 떨어졌다.
고승철이 곧바로 달려들었다.
처음에는 전력을 발휘하지 않았고, 박철민의 공격을 적당히 받아 주면서 치열한 그림을 만들고자 했다.
그래야 문제가 제기되더라도 변명할 것이 있었다.
상대가 워낙 강렬하게 공세를 퍼부으니, 자신으로서는 그에 대항하다가 실수로 ‘살인’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그런 변명.
그런데.
카앙!
카카카카캉!
‘뭐야?!’
고승철이 눈을 부릅떴다.
분명히 적당히 받아 줄 생각으로 공격을 시도했는데, 막상 돌아오는 반격은 숨이 막힐 정도였다.
박철민의 공격 하나하나가 예리하게 파고들었다.
안일한 마음가짐이 긴장으로 물드는 데는 10초도 걸리지 않았고, 어느 순간부터 고승철은 전력을 다해서 공격을 막아야 했다.
팟.
콰르르르르릉.
공격이 스쳐 지나갔다.
숨이 막혔다.
상위 스킬을 퍼부어도 박철민은 흔들림이 없었고, 특별히 스킬을 사용하는 것 같지 않은데도 박철민의 공격은 위협적으로 치고 들어왔다.
고승철로서는 진실을 알지 못했다. 수라 검법과 수라 심법은 스킬과는 다른 형태다.
상대를 공격하는 일련의 행위 모두를 통제하는 수법이며, 그렇게 몰아붙이자 스킬을 주고받는 형태의 싸움이 익숙한 고승철은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치열한 승부.
전력을 다해 대항하던 고승철은, 팔이 튕겨 나가며 그만 검을 놓치고 말았다.
척.
“끝난 것 같습니다만.”
목에 겨누어진 검.
담담한 박철민의 표정에, 고승철은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패배를 인정합니다.”
그제야 알았다.
직할대.
그들의 승급 지원은 발악 따위가 아니었다.
* * *
박철민과 같은 현상은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졌다.
시험장 대기실.
거대한 화면에 떠오른 글자에, 사람들이 동요하는 기색을 보였다.
[C등급 박철민, B등급으로 승급 성공]
[D등급 고요환, C등급으로 승급 성공]
[C등급 민찬기, B등급으로 승급 성공]
.
.
.
승급 성공 소식이 쏟아졌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보통 승급 심사란, 10명이 도전하면 2~3명 정도만 성공할 정도로 어려운 관문이다.
그런데 동시다발적으로 성공했다는 소식이 전달되자, 대기실의 사람들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웅성웅성.
“이런 미친.”
“인천 정부의 헌터들이 이 정도로 강했어?”
“단 한 명도 실패하질 않는데?”
조금 전.
직할대의 행보는 모두에게 소문이 났다.
인천 정부가 본격적으로 움직이는 상황에, 사람들은 대한민국에서 외톨이 취급을 받는 인천의 헌터들이 어떤 결과를 받아 올지 관심을 보였다.
그런 이유로 모두가 화면을 주시하고 있었다.
상식대로라면 대부분이 탈락하리라고 예상했건만, 화면에 떠오른 정보는 상식을 부정했다.
성공의 연속.
충격적이었다.
특히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은,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단번에 알았다.
“……상황이 재밌게 돌아가는데? 알잖아. 중앙 정부에 찍힌 사람들은, 승급 시험을 치를 때 부당하게도 해당 등급의 실력자로 배정된다는 거. 성질이 더러운 문태준 조사관이라면 분명히 특별한 지시를 내렸을 텐데, 지금 인천 정부는 그런 핸디캡을 이겨 내고 전부 통과해 내고 있어.”
“그럼 단순히 승급 성공이 아니라, 그 이상의 실력자라는 의미겠네.”
“그렇지. 게다가 그 인원이 무려 30명이라는 거야.”
둘의 대화.
사람들의 귀를 쫑긋 세웠다.
인천이 판도를 뒤엎고 있었다.
몰락하리라고 예상되던 인천이, 파격적인 행보로 중앙 정부에 정면으로 대응했다.
그렇다면.
사람들의 관심은 한곳으로 집중되었다.
“만약 이태성마저 성공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단언할 수 있었다.
A등급.
그것의 의미는 특별하다.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한 사내가, 모두에게 들으라는 듯이 말했다.
“인천의 상황이 뒤바뀌겠지. 로만 드미트리에 이어 새로운 A등급의 실력자는, 그들이 지방 정부 중에서는 최강의 전력을 갖추었다는 의미일 테니까.”
* * *
그 시각.
이태성은 승급 시험을 진행하고 있었다.
처음 상대의 이름을 들었을 때, 그는 문태준이 어떤 수작을 부렸는지 알아차렸다.
‘A등급 헌터 조민우. 창귀(槍鬼)라고 불리는 고수가, 겨우 A등급 심사를 보기 위해 나타나다니.’
조민우는 유명한 실력자였다.
무려 10년 전.
4차 대재앙에서 신들린 창술을 선보였던 그는, 그로부터 몇 년 뒤에 A등급으로 승격하면서 창귀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이런 승급 심사 자리에는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었다.
보통 해당 등급의 하위 인물들이 승급 심사를 맡는데, 조민우는 이태성이 감당할 수 없는 상위의 실력자였다.
만약 한 달 전이였다면.
싸울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조민우를 마주하는 지금, 이태성은 모두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콰앙!
콰르르르르릉.
“크윽.”
조민우가 쭉 밀려났다.
그가 인상을 찌푸리며 앞을 바라보는 순간, 어느새 코앞에 치고 들어온 이태성이 사납게 몰아붙였다.
카앙!
콰콰콰쾅!
공격이 쉴 틈 없이 작렬했다.
쌍검을 사용하는 이태성은 공격이 서로 맞물리도록 몰아붙였고, 하나를 막아도 또 다른 하나가 공격해 들어오는 상황에 조민우는 머리가 핑핑 돌아가는 것을 느꼈다.
당황으로 얼룩진 조민우의 표정. A등급 헌터를 이렇게 몰아붙인다는 사실에, 이태성은 전신에서 전율이 일었다.
‘로만 드미트리. 그분은 차원이 다른 존재야. 그것만이, 직할대의 비약적인 성장을 설명할 수 있어.’
지난 한 달.
강민호의 가르침은 충격적이었다.
로만 드미트리가 아무런 대가도 없이 베풀었다는 수라 검법과 수라 심법은, 이태성의 근간을 완전히 뒤흔들 정도로 엄청난 기술이었다. 이태성은 수라 심법을 배우고 겨우 몇 시간 만에 마나를 컨트롤했다. 그것을 오라로 발현해 스킬이 아니라 수라 검법을 펼쳤을 때, 쌍검에서 폭발적으로 일어나는 힘에 자신이 강해질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때부터.
로만 드미트리를 맹목적으로 믿었다.
처음에는 그의 존재에 의문이 있었으나, 그는 인천 따위를 노리기에는 너무나도 특별한 존재였다.
다행이었다.
그런 존재가 인천을 마음에 들어 했다는 것이.
김준혁 시장이 충성을 맹세한 존재가 로만 드미트리라는 사실이.
수련에 몰두했다.
이태성을 비롯한 직할대 전원은 강해질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고, 한 달 동안 잠을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훈련장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않았다.
지금의 무력은 그 대가였다.
아무리 노력한다고 한들 이만큼 강해지는 것은 불가능한데, 로만 드미트리의 가르침은 불가능의 영역을 허물었다.
팟.
피가 튀었다.
조민우의 얼굴에 생겨난 상처에, 그가 표정을 와락 일그러트렸다.
“이 새끼가.”
웬만해서는 참으려고 했다.
상부에서는 최대한 실수를 가장해서 죽이라고 했으나, 이태성은 어중간하게 상대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조민우의 표정이 변했다.
지금부터는 다를 것이다.
“약속하지. 넌 곱게 죽지 못할 거야.”
귀행(鬼行).
그를 A급으로 만들어 준 스킬을 발현했다.
* * *
확.
파팟.
사라졌다.
조민우가 갑자기 이태성의 사각을 파고들더니, 채 반응하기도 전에 번개같이 창을 뻗었다.
콰앙!
콰르르르르릉.
엄청난 충격이었다.
이태성은 간발의 차이로 공격을 막아 냈으나, 조민우는 계속해서 귀행을 사용하며 이태성의 사각을 파고들었다.
콰앙!
콰콰콰쾅!
창귀 조민우.
A등급 헌터부터는 각자만의 무기가 있다.
그들의 명성은 허황되지 않았으며, 모두에게 인정받을 만한 실력을 갖추었기에 A등급의 자격을 확보할 수 있었다.
A등급의 영역은 그런 의미였다.
개개인이 일인군단이라 불릴 만큼의 괴물들. 제아무리 이태성이 발전했다고 한들, 조민우는 수년 전에 A등급에 오른 존재였다.
번뜩.
콰콰콰쾅!
이태성을 몰아붙였다.
살의(殺意)를 숨기지 않았다.
테스트라는 주목적을 배제하고, 조민우는 노골적으로 이태성을 죽이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팟.
“크윽.”
팔뚝이 베였다.
조민우의 계속되는 공격에 이태성의 전신이 피로 물들었고, 수라 검법과 수라 심법을 훈련한 이태성으로서도 조민우의 공격을 완벽하게 막아 낼 수는 없었다.
싸움은 수치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엄청난 기술을 배웠다고 한들, A등급 헌터인 조민우와의 간격을 단번에 줄이지는 못했다.
‘빌어먹을.’
이태성의 속이 타들어 갔다.
이대로 패배한다면.
직할대는 와해될 것이다.
그건 허락할 수 없었다.
이 혼란한 세상에서, 김준혁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직할대의 존재는 반드시 필요했다.
콰앙.
콰콰콰콰콱!
공격이 밀려들었다.
조민우의 창이 사방을 장악했다.
빠득.
이를 악물었다.
상대가 살의를 대놓고 드러낸 이상, 자신도 목숨을 걸지 않고서는 절대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일격에 승부를 본다.’
일촉즉발의 상황.
이태성의 눈빛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어떤 이들은 이태성을 천재라고 불렀다.
전승자도, 선택받은 자도, 그렇다고 특별한 배경을 갖추지 못했는데도 스스로의 힘으로 B등급을 확보했다.
그렇다면.
그런 그가 수라 심법과 수라 검법을 배우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평범한 강민호조차 C등급을 만든 기술이다.
이태성은 한 달간 단순한 훈련만이 아니라, 새로운 기술을 자신의 스킬에 녹여 내는 것을 연습했다.
두 검을 거두었다.
때를 기다렸다.
상대가 코앞에 다가왔을 때, 이태성은 순간적으로 공간을 파고들며 두 검을 동시에 뽑아 들었다.
‘수라 검법, 발검(拔劍).’
번뜩.
공간이 갈라졌다.
살의에 가득 찬 조민우의 표정이 충격으로 얼룩졌다.
푸확.
분수처럼 뿜어지는 피.
조민우의 머리가 그대로 날아갔다.
* * *
끼익.
대장간의 문이 열렸다.
안에서 연기가 자욱하게 흘러나왔고, 로만 드미트리는 상체를 드러낸 채로 바깥공기를 들이마셨다.
“고생하셨습니다.”
김준혁이었다.
그는 로만 드미트리의 상체를 보고는 놀랐다.
고된 작업으로 빨갛게 물든 상체는, 인간의 육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오밀조밀한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로만 드미트리는 김준혁이 건네는 겉옷을 입으면서 담담하게 물었다.
“그동안 별일은 없었나.”
“……문제가 생겼습니다.”
조금 전.
하나의 소식이 인천 정부를 강타했다.
김준혁은 당장 병력을 소집하면서, 로만 드미트리가 예고한 시간이 되었기에 대장간을 먼저 찾았다.
김준혁이 말했다.
“로만 드미트리 님과의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직할대장 이태성을 포함한 직할대원 서른 명이 승급 시험에 지원했습니다. 그런데 조사관 문태준이 수작을 부린 모양인지 시험 상대들이 전부 살수를 펼쳤고, 이태성이 상대인 A등급 헌터 조민우를 살해했습니다. 아시다시피 A등급 헌터의 죽음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문제입니다. 현재 승급 시험은 모두 중단된 상태이며, 중앙 정부의 통제하에 이태성이 고의로 살해한 죄목으로 끌려간 상태입니다.”
조민우의 죽음.
문태준으로서는 예상하지 못한 일일 것이다.
조민우를 잃은 것은 엄청난 손해였기에, 그들로서는 반드시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래서 이태성을 끌고 갔다.
그렇지 않아도 중앙 정부에 반기를 든 인천 정부 소속이기에, 그를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그런데 로만 드미트리는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직할대가 모두 내 시험을 통과했다는 의미인가.”
“……그렇습니다.”
“서울로 안내하라.”
먼저 걸음을 옮겼다.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던 김준혁은 뒤이은 목소리를 들었다.
“직할대는 이제 나의 사람이다. 지금부터는 내가 그들과의 약속을 이행할 차례다.”
순간.
소름이 돋았다.
왜인지는 알 수 없으나, 덤덤한 그의 목소리가 문제를 문제가 아닌 것처럼 만들었다.
김준혁이 뒤따라가며 소리쳤다.
“알겠습니다.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서울로 향할 것이다.
대한민국 사람들에게는 수도라고 불리는 그곳이, 인천 사람들에게는 적진(敵陣)으로 통용되는 그곳이.
지금은 그리 두렵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