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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는 평범하게 살 수 없다-492화 (492/615)

492화 변화하는 인천 (5)

문태준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수하의 보고를,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조민우가 패배했다고? 아니, 죽었다고?”

“예. 이태성과의 승급 심사에서 조민우가 죽었으며, 현재 인천의 직할대로 알려진 서른한 명의 인원이 전부 승급 시험에 통과했습니다. 이를 어떻게 처리할까요. 일단 인천으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붙잡아 놓은 상태지만, 인천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처벌할 명분은 없습니다.”

“이런 미친.”

현기증이 일었다.

서른한 명의 합격.

그것만으로도 충격적인데, 문제는 중앙 정부의 귀중한 인재인 조민우가 사망했다는 사실이다.

‘조민우는 금천구 의원 조달수의 사람이야. 이번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 어렵게 힘을 빌렸는데, 조민우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린다면 난리가 나겠지. 빌어먹을.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지? 정보부에서 파악한 바로 이태성이 조민우를 쓰러트리는 것은 불가능한데, 그를 포함한 직할대 전원이 승급 시험에 통과하다니. 인천에서 내가 모르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어.’

입이 메말랐다.

중앙 정부의 조사관이 지방을 상대로 대단한 권력을 발휘한다지만, 조달수와 같은 구의원(區議員)들은 얘기가 달랐다.

구의원이라고 해서 금천구에 조달수를 포함한 ‘의회’가 구성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또한 대한민국의 기형적인 구조에서 비롯되었는데, 구의원은 대한민국 대통령의 명령만을 받드는 존재로서 한 구역을 도맡아 운영했다.

고로.

조달수는 금천구의 왕이었다.

문태준은 그를 뒷배경으로 삼았는데, 이번 일로 그가 애지중지하는 조민우가 죽고 말았다.

‘조달수 의원은 절대 이번 일을 그냥 넘어가지 않겠지. 문제는 내가 이번 일을 추진했기에, 이대로 있다가는 내가 모든 책임을 뒤집어쓸 수도 있어.’

간단한 문제였다.

대한민국에서 서른 명도 되지 않는 A등급 헌터가 죽은 상황에, 조달수 의원의 권력과도 직결되는 소중한 인재가 죽어 버린 상황에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를 희생양이 필요했다.

그것이 자신과 같은 조사관일지라도 피할 수 없었다.

조민우의 죽음으로 금천구의 힘은 약해질 것이기에, 분노라도 해소할 것이 분명했다.

막막했다.

어떤 방법으로도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면 문태준으로서는, 조달수의 분노를 최대한 다른 방향으로 돌릴 필요가 있었다.

문태준이 말했다.

“이태성. 그를 지금 당장 고의 살해 혐의로 체포해.”

* * *

이태성은 다른 장소로 옮겨졌다.

승급 시험장에서 창고로 쓰던 공간이었는데, 그곳을 임시 취조실로 만들었다.

흉흉한 분위기였다.

수도 가디언(guardian)들이 지키고 있는 상황에, 문태준은 취조실로 들어가 이태성을 만났다.

탈칵.

“이태성. 지금부터 우리가 하는 모든 대화는 녹취된다는 사실을 명심해라. 단도직입적으로 묻지. 너는 대체 왜 승급 시험관인 조민우를 고의로 살해한 거지?”

“……고의로 죽일 의도는 없었습니다. 상대가 살수를 펼치기에, 저는 그에 대항했을 뿐입니다.”

“그렇겠지. 그렇게 말해야겠지.”

문태준이 씰룩였다.

이태성은 결백할 것이다.

조민우에게 명령을 내린 당사자기에 문태준은 진실을 알고 있었지만, 지금부터 그따위 진실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이태성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자신의 죄를 떠안을 존재로서, 그리고 A등급의 실력자인 그를 처리함으로써 인천 정부의 힘을 약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일거양득(一擧兩得).

위기를 기회로 삼았다.

문태준이 말했다.

“당시 상황을 지켜보던 시험관이 말하더군. 둘의 싸움은 시험의 영역이었는데, 네가 갑작스럽게 조민우의 머리를 날려 버리는 극악무도한 수를 사용했다고. 이태성. 그게 네가 이 자리에 있는 이유야. 원래 승급 심사라는 것이 싸우다 보면 분위기가 험악해질 수 있지만, 누구도 상대의 머리를 날려 버릴 만큼 잔인한 수를 사용하지는 않아. 그걸 우리는 고의로 살해했다고 생각하며, 네가 죽인 사람이 하필이면 A등급 헌터 조민우라는 것이 문제야. 그는 대한민국에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인재거든.”

“정식 재판을 요청합니다. 제 행동은 명백한 정당방위였습니다.”

“정당방위라. 만약 네가 중앙 정부의 소속이었다면, 너의 그러한 변명은 받아들일 여지가 있었겠지.”

상대의 약점.

그의 소속이었다.

인천 정부 소속이라는 사실이, 문태준의 말에 힘을 실었다.

“인천 정부는 중앙 정부에 대놓고 반발하는 반역을 저질렀어. 너희는 독자적인 노선을 걷겠다고 말했지만, 그것은 단순하게 별개의 영역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문제지. 왜냐고? 대한민국 그 어디에도 인천과 같은 지역은 없어. 인천만이 유일하게 중앙 정부의 명령에 항명했으며, 그렇기에 나는 이번 사건이 항명의 연장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이지. 중앙 정부에 반발심을 가진 너희가, 중앙 정부의 귀중한 인재를 고의적으로 죽인 극악무도한 사건.”

“그, 그게 무슨!”

“그러니까 어서 자백해. 그것이 진실이라고. 진실을 말한다면, 나름대로 감옥에서 나쁘지 않은 삶을 살게 해 주지. 하지만 계속해서 진실을 부정한다면, 너는 북쪽 지역으로 추방될 거야.”

북쪽.

한때는 북한이 있었던 그 땅은, 최초의 대재앙이 발발하던 시기에 폐허가 되어 버렸다.

더는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에는 몬스터들만이 득실거렸고, 대재앙이 발발할 때마다 북쪽에서 밀려드는 몬스터들로 인해서 대한민국은 철원을 중심으로 방어벽을 형성했다.

그곳으로의 추방은 고통스럽게 죽으라는 의미.

살의로 번들거리는 문태준의 눈빛에, 이태성은 진실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상대는 이미 정답을 정해 두었다.

어떻게든 원하는 대답을 들으려는 모습에, 이태성은 말을 삼키며 침묵을 지켰다.

‘인천의 소행이라고 말한다면, 문태준은 중앙 정부를 내세워서 인천 정부를 쓸어 버리려 하겠지.’

그건 허락할 수 없었다.

차라리.

죽을 것이다.

인천은 로만 드미트리라는 새로운 희망이 나타났고, 김준혁은 드디어 강인한 인천을 만들겠다는 꿈을 이루어 가고 있었다.

그 꿈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자신도 그와 함께 인천이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었지만, 자신의 행동으로 인한 결과를 인천 전체가 떠안는 것은 싫었다.

스스로에 대한 원망이 들었다.

자신이 더 강했더라면.

조민우를 죽이지 않고도 쓰러트릴 실력자라면, 이와 같은 상황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

계속되는 침묵.

이태성의 의지가 전달되었다.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문태준은 이태성을 죽여 이번 일을 마무리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바깥에서 가디언이 신호를 보냈다.

끼익.

“무슨 일이지?”

“인천에서 로만 드미트리가 문태준 조사관님을 만나겠다고 찾아왔습니다.”

“로만 드미트리?”

의외의 이름이었다.

한 달 전부터 자취를 감추었던 그가, 갑자기 서울에서 모습을 드러내다니.

문태준이 웃었다.

“재밌네. 당장 안내해. 어디, 로만 드미트리 그 거짓말쟁이의 낯짝을 확인해 봐야겠어.”

* * *

익숙한 광경이었다.

문태준과 로만 드미트리, 김준혁.

서로를 마주 보며 앉은 상황에, 문태준이 비릿하게 웃었다.

“그동안 어디에 계셨습니까? 뭐, 그건 이번 사건과 무관한 일이니 굳이 대답을 듣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인천 정부 소속의 이태성이 대한민국의 소중한 인재인 A등급 헌터 조민우를 고의로 살해한 혐의는, 그 어떠한 변명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중범죄입니다.”

끼익.

다리를 꼬았다.

이곳은 서울이다.

중앙 정부의 안방이라는 사실은, 문태준에게 무한한 힘을 부여했다.

그런데.

“같잖은 소리를 지껄이는군.”

“……뭐라고?”

로만 드미트리가 차갑게 반응했다.

머릿속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하대에, 문태준은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상대를 쏘아붙이려 했다.

그 전에.

로만 드미트리가 먼저 말했다.

“문태준 조사관. 인천을 향한 너의 적의(敵意)가 명백한데도, 왜 내가 너와의 관계에서 예의를 지켰다고 생각하나. 네가 가진 권력 때문에? 중앙 정부의 존재 때문에? 아니다. 우리의 대화에 많은 목숨이 달렸기 때문이다. 세력을 짊어진 사람들의 언행에는 그만한 책임이 따르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신중하게 말하라는 소리다. 네 말에, 너의 사람들이 모두 죽을 수도 있으니까.”

시선을 주었다.

따로 부르지 않았는데도, 김준혁은 본인이 나설 차례임을 알았다.

“직할대 소속의 헌터들은 모두 바디캠(body camera)을 착용합니다. 그것으로 촬영한 영상은 곧바로 저에게 전송되며, 그 덕분에 승급 시험장에서 시험 영상을 공유하지 않아도 당시의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게 바로 그 자료입니다. 영상을 확인하면, 이태성이 조민우를 살해하기 전에 이미 조민우가 노골적으로 살의를 드러낸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문태준 조사관님에게 묻겠습니다. 대체 누구의 고의입니까? 먼저 죽이려고 달려드는 사람을 상대로, 이태성은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옳은 일입니까?”

슥.

자료를 넘겼다.

문태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누명은 상대의 증거를 배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데, 이렇게 증거를 확보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모든 게 예상 밖이었다.

로만 드미트리의 태도.

김준혁의 증거.

당황하는 그때, 로만 드미트리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인천이 파악한 정보는 명확하다. 중앙 정부는 그동안 인천 정부를 노골적으로 견제했으며, 시험 도중에 인천의 귀중한 인재인 이태성을 살해하려는 의도를 보였다. 그리고 그것이 실패로 돌아가자 이번에는 이태성에게 그 죄를 떠넘겼지. 문태준 조사관. 나는 지금부터 중앙 정부의 행태를 인천을 향한 선전포고로 받아들이고자 한다. 이에 대해서 너는 어떻게 생각하지?”

* * *

숨이 콱 막혔다.

당혹스러웠다.

로만 드미트리가 내뱉은 그 말은, 인천 정부와 같은 약자에게 허락되지 않는 영역이었다.

‘인천 녀석들은 미친 것이 분명해. 그렇지 않고서야, 감히 중앙 정부를 상대로 선전포고를 입에 올리다니!’

선전포고.

소름이 돋았다.

사실 적당히 협박하면 상대가 물러날 줄 알았다.

그것이 그동안의 상식적인 일 처리였건만,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상황이 흘러가지 않았다.

분노가 치밀었다.

이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눈빛에, 문태준이 폭발하는 분노를 표출했다.

콰앙!

“지금 뭐 하자는 거야?!”

목소리를 높였다.

상대의 협박에 쫄 이유는 없었다.

대한민국이라는 작은 땅덩어리에서, 중앙 정부는 감히 대적할 수 없는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자랑했다.

인천?

그따위 것들은 하루면 쓸어 버릴 수 있다.

“이런 미친 새끼들. 역시 내 예상이 맞았어. 너희는 처음부터 중앙 정부를 상대로 반역을 저지를 의도였고, 그래서 이태성을 시켜 조민우를 죽인 거겠지. 너희가 그렇게 행동하고도 이 대한민국에서 무사할 것 같아? 기대해도 좋아. 곧바로 상부에 연락해서 너희의 만행을 보고할 것이고, 대통령님은 너희와 같은 극악무도한 무리가 날뛰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지. 로만 드미트리. 너 같은 사기꾼의 협박이 먹히는 것도 여기까지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만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그 말. 선전포고로 받아들이겠다.”

“마음대로…….”

콱.

콰앙!

갑작스러운 상황이었다.

로만 드미트리의 말을 무시하려고 했는데,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그의 얼굴이 테이블에 처박혔다.

콰직.

테이블이 부서졌다.

얼굴에서 피가 튀었다.

수도 가디언들은 황급히 무기를 뽑아 들려고 했지만, 그들은 마법이라도 걸린 것처럼 움직이지 못했다.

강력한 살기(殺氣).

몸이 굳어 버렸다.

대적할 수 없는 포식자를 눈앞에 두고, 가디언들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로만 드미트리가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딱 10분 주지. 내 사람들을 데려와. 그리고…….”

콰득, 콰드드득.

“크아아아악!”

문태준의 얼굴을 바닥에 뭉갰다.

깨진 테이블 조각이 얼굴에 박히며, 문태준은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질렀다.

“이 녀석보다 위에 있는 상급자를 데려와. 일개 조사관 따위가 아닌, 전쟁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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