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는 평범하게 살 수 없다-494화 (494/615)

494화 비상 회의 (1)

사람의 관점은 모두 다르다.

로만 드미트리는 직할대를 구하기 위해 강하게 발언했고, 중앙 정부가 악의적으로 전쟁을 들먹인다면 그대로 쓸어 버릴 작정이었다.

사실 중앙 정부의 존재는 조금도 위협이 되지 않았다.

김준혁은 인천 정부와 중앙 정부의 전면전은 승산이 희박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전쟁이 벌어진다면 로만 드미트리 혼자서도 중앙 정부를 멸망시킬 수 있을 것이다.

시기의 문제였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영역에서, 로만 드미트리는 머릿속으로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러한 진실을.

이태성을 비롯한 직할대는 알 수 없었다.

그들의 관점은 로만 드미트리와 완전히 달랐다.

전쟁이라는 단어가 너무나도 비현실적이었기에, 인천 정부의 도발을 다르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중앙 정부와의 전면전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어. 그런데도 로만 드미트리 님이 전쟁을 언급하면서까지 강하게 나가는 이유는, 우리 직할대를 보호하기 위함이겠지. 정말 미련한 분이구나. 소탐대실(小貪大失)임을 알면서도 위험을 감수하려 하다니.’

울컥했다.

감정이 들끓었다.

그동안의 대한민국은 권력자들만의 안전을 중시했고, 이태성을 비롯한 힘이 없는 일반인들은 가족들이 죽는 광경을 지켜봐야만 했다.

그래서 검을 들었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는 강해져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자신이 생각하는 세상을 만들어 줄 김준혁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그리고 지금.

로만 드미트리의 마음에 감사했다.

직할대를 버리면 손쉽게 분쟁을 해결할 수 있을 텐데도, 자기 사람을 끝까지 버리지 않으려는 모습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이태성은 자신도 모르게 로만 드미트리에 대한 편견을 가졌다. 레드문과의 분쟁에서 특별한 보고 체계도 없이 그들을 도륙하는 잔인한 손속에, 자신이 생각하는 미래와는 그리 부합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김준혁을 믿었다.

로만 드미트리의 힘을 이용해서, 김준혁이라면 분명히 강인한 인천을 만들어 주리라고 믿었다.

이태성의 생각은 틀렸다.

로만 드미트리는 적아가 확실했을 뿐이다.

구분이 확실하기에, 적들에게는 재앙일지라도 그의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완벽한 존재였다.

‘이번 일로 확실해졌어. 로만 드미트리 님은 인천을 버리실 분이 아니야. 자기 사람을 지키겠다고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사람인데, 우리가 그분을 믿지 않으면 누가 힘을 실어 줄 수 있겠어? 인천의 미래를 위해서 로만 드미트리 님은 반드시 필요해. 설령, 내가 죽는 한이 있을지라도.’

관점의 문제였다.

로만 드미트리는 힘이 있기에 전쟁을 언급했지만, 이태성은 직할대를 위해 용기를 냈다고 생각했다.

착각(?)은 그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로만 드미트리와 조달수가 한참 대화를 주고받을 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직할대의 시선이 서로 마주쳤다.

그들의 생각도 똑같았다. 직할대를 구하겠다고 조달수 의원을 압박하는 모습. 그간의 인천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는 상황에, 그들은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간신히 억눌렀다.

결국.

조달수가 떠나갔다.

그가 내뱉은 말이 전쟁의 여운을 남겼고, 이태성은 직할대에 신호를 보냈다.

‘우리가 감당할 몫이야. 앞으로 나아갈 인천의 미래를 위해, 우리가 짐으로 남아서는 안 돼.’

더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무릎을 꿇었다.

김준혁이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데도, 결의에 찬 표정으로 소리쳤다.

“저희를 버리십시오! 저희를 위해, 로만 드미트리 님과 인천 전체가 위험해지는 것을 지켜볼 수 없습니다.”

“저희를 버리십시오!”

이태성을 따르는 직할대원들.

통했다.

직할대는 지금, 로만 드미트리를 위해 죽음을 각오했다.

* * *

이태성이 말했다.

“직할대를 위한 선택인 것은 아나, 지금 중앙 정부를 적대하는 것은 시기상조입니다. 대재앙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언젠가는 인천의 힘만으로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분명히 찾아올 테고, 인천이 대재앙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결국에 중앙 정부와 타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저희를 버리십시오. 중앙 정부의 마음을 달래고, 로만 드미트리 님의 존재를 앞세워 차라리 현재 권력에 매력적인 존재로 거듭나십시오. 그렇다면, 기꺼이 제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부디 결정을 거두어 주십시오.”

“저희로 인해 인천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다들 목소리를 높였다.

그들은 걱정했다.

직할대를 살리겠다고 전쟁을 언급한 이 순간이, 훗날 인천의 발목을 붙잡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로만 드미트리로서는 황당한 광경이었다.

만약 전생이었다면.

로만 드미트리가 전쟁을 언급한 순간, 조달수가 로만 드미트리를 향해 욕설을 내뱉은 순간 케빈이 먼저 그의 머리를 날려 버리면서 전쟁의 포문을 열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생의 인연들은 달랐다.

아직은 로만 드미트리가 얼마나 강한지 모르는 그들로서는, 그동안 아무리 대단한 활약을 목격했다고 한들 상식에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숭고한 정신이었다.

그들의 희생정신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으나, 이건 신뢰의 문제라는 사실을 알았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겠지.’

전생.

드미트리 사람들과의 신뢰는 켜켜이 쌓여 갔다.

처음에는 드미트리의 얼간이로 불렸으나, 블러드 팽 사건을 시작으로 바르코 가문을 무너트리고 남부 전선을 승리로 이끌면서 맹목적인 신뢰를 얻었다.

신뢰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점점 쌓여 가던 믿음이 견고한 철옹성을 형성했고, 자신의 사람들을 확실하게 챙겨 주는 모습에 어느 순간부터는 로만 드미트리를 절대 의심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계의 위협을 마주했을 때.

상식적으로 허무맹랑한 일임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로만 드미트리 하나만을 믿고 마계 정벌에 나섰다.

이 또한.

시기의 문제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과 인천의 신뢰 관계는 두터워질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본인들이 따르는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는 알아야 하겠지.’

최소한의 믿음.

계기가 필요했다.

로만 드미트리가 말했다.

“일어나라. 지금부터 너희에게 보여 줄 것이 있다.”

* * *

자리를 옮겼다.

서울을 벗어났고, 사람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폐허로 향했다.

위험 지역이었다.

몬스터들이 득실거리는 땅에, 직할대원들은 언제 공격받을지 모른다는 긴장감에 휩싸였다.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로만 드미트리는 검을 뽑아 들더니, 손바닥을 들어 그대로 베어 버렸다.

서걱.

피가 튀었다.

본래라면 마나를 일으켜서 곧바로 지혈했겠지만, 의도적으로 피가 흥건하게 흘러내리도록 만들었다.

피 냄새가 바람을 타고 멀리멀리 퍼져 나갔다.

위험 지역에서 피 냄새를 풍기는 것은 절대적으로 금지되는 행위이건만, 로만 드미트리는 덤덤하게 냄새가 퍼져 나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윽고.

크르륵.

크르르르르륵.

몬스터들이 몰려들었다.

숫자는 무려 수백에 달했다.

다양한 등급의 몬스터들이, 의도적으로 풍긴 향기에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 일제히 몰려들었다.

로만 드미트리의 마나.

몬스터들에게는 엄청난 자극이었다.

직할대원들이 긴장한 얼굴로 무기를 들자, 로만 드미트리는 그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강함이라는 것은 상대적이다. 너희는 내게 패배하며 내가 강하다는 사실을 알았으나, 너희의 수준에서 평가할 수 있는 강함이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 순간부터 날 믿어라.”

콰릉.

콰르르르르릉.

오라를 끌어올렸다.

사람들은 알까.

로만 드미트리는 새로운 삶을 살아가며, 단 한 번도 천마검법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동안 적지 않은 피를 보았지만, 레드문이든 개미굴이든 천마검법을 사용할 가치는 느끼지 못했다.

처음이었다.

시선을 다시 돌리더니, 일제히 몰려드는 몬스터들을 바라보았다.

“인천은 나로 인해 변화할 것이다. 대재앙은 인천을 무너트리지 못할 것이며, 한낱 중앙 정부 따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탁.

걸음을 내디뎠다.

그러고는.

‘천마검법 후반부 일초식.’

일격.

마나가 폭발했다.

직할대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로만 드미트리로부터 분출되는 폭발적인 힘이 전방에 모든 생명체를 휩쓸었다.

콰앙!

콰콰콰콰쾅!

콰콰콰콰콰콰콰쾅!

소멸(消滅).

그것은 상식을 완전히 부서트리는.

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 * *

인천으로 돌아왔다.

숙소에 한데 모인 직할대원들은, 서로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다들 넋을 잃은 표정을 보였다.

“……대체 내가 뭘 본 거지?”

“몬스터 수백 마리가 일격에 소멸했어.”

“이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단 한 번의 일격.

상식을 무너트렸다.

로만 드미트리는 스스로를 증명하는 자리를 만들었고, 단번에 수백 마리의 몬스터를 소멸시키는 모습에 직할대원들은 충격을 받았다.

이건 말이 되지 않았다. 로만 드미트리가 피 냄새로 유인한 몬스터 중에는 상위 등급도 있었는데, 그런 몬스터조차도 F등급 몬스터처럼 일격에 쓸려 갔다.

천외(天外)의 경지.

일반적인 등급으로는 그것을 표현할 수 없었다.

사람들이 말하는 S등급조차도, 로만 드미트리가 보여 준 일격에는 한참이나 모자랐다.

그제야 알았다.

전쟁을 언급했던 모습.

상대를 압박하기 위한 협박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진심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비현실적인 상황이구나.”

이태성이었다.

생각을 거듭할 때면 실없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생각해 보면 로만 드미트리는 자신의 힘을 단 한 번도 숨기지 않았다.

레드문과의 분란에 그들을 단번에 쓸어 버리고, 개미굴을 혼자만의 힘으로 토벌했으며, 처음 문태준이 중앙 정부를 앞세워서 압박했을 때도 강하게 맞받아쳤다.

모든 언행은 강력한 힘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일개 개인에 불과한 존재가 인천을 달라고 말했던 것도, 그 관계가 인천에 전적으로 유리하기에 시종일관 당당할 수 있었다.

의문이 해소되었다.

비상식적이라고 생각했던 행동들이, 말도 안 되는 무력을 전제로 한다면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

이태성이 말했다.

“우리는 이번 사건으로 두 가지의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첫 번째는 로만 드미트리 님은 인천을 버리지 않는다는 거다. 본인을 따르는 사람들을 잃을 바에, 중앙 정부와의 전쟁을 결단하신 분이다. 우리는 적어도 그분에게 토사구팽(兔死狗烹)은 당하지 않을 것이며, 고로 시장님을 모시는 것만큼이나 로만 드미트리 님에게 충성심을 보일 필요가 있다.”

직할대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가 동의했다.

심적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했던 부분들이, 단 한 번의 사건을 계기로 마음을 완전히 열었다.

“두 번째, 더는 로만 드미트리 님의 힘을 의심하지 마라. 그분의 힘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섰다. 강민호에게 수라 심법과 수라 검법을 아무렇지도 않게 가르쳐 주었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기술의 전수를 허락해 주었던 것처럼. 그분이 살아가는 세계에서 강함의 기준은 일반적이지 않다. 그러니 앞으로는 로만 드미트리 님을 맹목적으로 따라라. 인천의 미래를 위해, 우리는 우리가 따르는 두 존재를 신뢰해야만 한다.”

“동의합니다.”

“저도 이번 기회로 로만 드미트리 님을 진심으로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분위기가 끓어올랐다.

다들 격양되었다.

인천의 미래.

희망적이었다.

로만 드미트리와 같은 존재가 인천을 이끈다는 사실에, 그들은 기쁜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인천 정부의 직원이 직할대 숙소를 찾았다.

“지금부터 로만 드미트리 님께서 직접 제작하고 강화한 검을 나누어 드리겠습니다. 직할대 서른한 명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것이니, 차례로 나와서 본인의 검을 받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검이라고?”

“우리에게 검을?”

직할대원들이 웅성거렸다.

이태성은 문득 지난 기억이 떠올랐다.

생각해 보니, 로만 드미트리는 검을 만들겠다고 지난 한 달간 대장간에 틀어박혀 있지 않았던가.

사실 큰 기대가 되지는 않았다.

로만 드미트리의 무력을 확인한 지금, 강해질 시간도 부족했을 그가 제작 실력마저 뛰어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태성은 직할대원 전체에게 말했다.

“로만 드미트리 님의 마음이다. 품질이 어떻든,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라.”

“알겠습니다.”

“당연히 감사히 받아야죠.”

그는 몰랐다.

아직도.

전생에 비하면 본인들의 신뢰는 한참 부족하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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