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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는 평범하게 살 수 없다-495화 (495/615)

495화 비상 회의 (2)

이태성의 차례였다.

앞으로 가서 검을 받는데, 직원이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로만 드미트리 님께서 말씀하시길, 다른 검들은 시간적인 여유가 부족해서 기존의 검들을 강화한 형태이지만 이건 직접 제작하셨다고 합니다.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검이라는 의미죠. 지난 대결에서 검을 부러트린 것에 대한 보상이라고 하시니, 직할대장님이 잘 사용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묘하게 당당한 목소리였다.

사전에 물건의 상태를 확인한 직원은, 로만 드미트리의 실력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태성으로서는 당당함의 원천을 알지 못했고, 마음만이라도 감사하다는 생각으로 검을 받았다.

그런데.

“……뭐야 이거?”

꽉.

손잡이만 잡아도 알 수 있었다.

마치 맞춤형으로 제작한 듯 적당한 그립감에, 빛을 받아 반짝이는 날은 섬뜩한 예기(銳氣)를 분출했다.

검으로서 완벽한 형태였다. 허공에 휘두를 때마다 감탄사가 절로 나왔고, 이걸 로만 드미트리가 만들었다는 사실에 당혹스러웠다. 설마 제작 기술마저도 뛰어나단 말인가.

일단 검의 가치를 완벽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스킬을 발현했을 때 마나를 얼마나 잘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했다.

밖으로 나왔다.

무기로서는 상위 등급으로 충분해 보이나, 스킬 발현도가 낮다면 하위 등급을 책정받을 것이다.

‘난무.’

가볍게 사용한 스킬.

하지만 눈앞의 광경은 충격적이었다.

콰르릉.

콰콰콰콰콰콱!

검에서 마나가 폭발적으로 분출되었다.

상대가 존재하지 않는 스킬 발현에 불과하지만, 이태성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가상의 적은 폭발적인 마력에 갈기갈기 찢겨 나갔다.

그때부터는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비상식적인 가능성에, 이태성은 스킬 발현을 끝마치고 멍하니 검을 내려다보았다.

“설마 S등급인 건가.”

확실했다.

B등급을 사용했고, A등급도 한 번은 경험해 본 적이 있기에 단언할 수 있었다.

마나를 빨아들이며 활화산처럼 폭발시키는 능력은, S등급 외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당혹스러웠다.

로만 드미트리가 S등급을 선물했다는 사실도 믿을 수가 없는데, 문제는 이걸 그가 직접 제작했다는 사실이었다.

만약 S등급이 시중에 풀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세상에 몇 자루 존재하지 않는 명검의 출현에, 사람들은 그것을 구매하겠다고 억만금의 돈을 제시할 것이다.

그런 검을.

너무나도 일상적인 선물처럼 받았다.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이런 검을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에, 그리고 이런 검을 만들어 낸 로만 드미트리에 대한 충격에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다.

‘대체 그분의 정체는 뭐지?’

엄청난 무력과 제작 실력.

로만 드미트리를 알아 갈 때마다, 이태성의 상식이 붕괴되는 느낌을 받았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해서 사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앞으로 인천을 이끌 로만 드미트리라는 존재는 S등급을 뛰어넘는 무력을 보유한 데다, 자신에게 이와 같은 무기를 선물할 만큼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는 존재였다.

‘의심하지 말자. 우리를 위해 전쟁을 결심한 순간부터, 나는 로만 드미트리 님을 맹목적으로 따르기로 했어.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그분을 위해서 내 한목숨을 걸면 되는 거야.’

감정이 벅차올랐다.

검이 너무나도 사랑스럽게 보였다.

문득.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자신은 S등급의 무기를 받았는데, 직할대원들은 기존의 무기에서 강화한 형태를 받지 않았던가.

아마 잘해야 C등급일 터.

그것도 나쁘지 않지만, S등급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숙소로 돌아왔다.

소소한 반응을 예상했던 그는, 숙소의 상황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와.”

“이건 미쳤는데?”

“로만 드미트리 님, 감사합니다!”

직할대원들.

그들 또한, 이태성처럼 난리가 난 상태였다.

* * *

이태성의 예상대로였다.

그가 받은 무기처럼 S등급은 아니었으나, 직할대원들이 감탄할 수밖에 없는 포인트가 있었다.

시작은 박철민이었다.

“……이거 아무래도 맞춤형 무기인 것 같은데?”

박철민.

이번 승급 시험으로 B등급으로 승격한 그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특이한 검을 사용했다.

일반적인 롱소드보다는 조금 짧은 검. 근접전을 선호하는 그로서는 바로 코앞에서 이루어지는 전투에서, 날이 길어 공방을 주고받는 것에 제약이 있는 검을 선호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로만 드미트리가 선물한 검은, 박철민이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였다.

그건 다른 직할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맞네. 맞춤형 무기.”

“내가 사용하던 거랑 똑같은데?”

“언제 이런 걸 만드셨지?”

지난 한 달.

로만 드미트리는 대장간에서 살았다.

자신과 강민호, 이태성의 검은 직접 제작했지만, 직할대원 서른 명의 검을 제작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상태가 좋은 검들을 강화시켰다.

스킬 발현도가 높도록 마나를 불어넣었고, 몬스터의 외피를 단번에 갈라 버리도록 날카롭게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을 감탄시킨 포인트는, 직할대 개개인의 특성을 고려하는 것이었다.

일 대 다수의 대결.

로만 드미트리는 직할대를 상대했다.

그때 그들의 특징을 머릿속에 기억해 두었고, 선물할 사람에 맞춰서 특징적인 부분들을 부여했다.

박철민은 조금 짧게.

누구는 조금 길게.

누구는 두껍게.

배려였다.

그들을 위한 검을 만드는 상황에서, 어쭙잖은 결과물을 내놓는 것은 장인의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게다가.

“와, 스킬 발현도도 미쳤어.”

“이 정도면 B등급은 충분히 받겠는데?”

“로만 드미트리 님은 제작 실력마저도 대단하구나.”

난리가 났다.

맞춤형 무기인 데다, 이태성과 같은 고수가 아니라면 평생 사용해 볼 수도 없는 B등급의 무기였다. 직할대원들로서는 감격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직전에 자신들을 위해 전쟁마저 불사했던 분이 이런 무기를 준비했다는 사실에, 그들은 충성심이 울컥울컥 치밀었다.

그 광경을.

이태성이 목격했다.

로만 드미트리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면서, 동시에 확고한 의지가 생겨났다.

‘우리는 로만 드미트리 님에게 받기만 하고 있어. 처음에는 인천을 차지해 개인의 이득을 도모하려는 줄 알았지만, 내가 확인한 그분의 능력은 일개 도시와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야. 실제로 인천에 터를 잡고 그분이 실질적으로 이득을 본 건 없어. 우리에게 기술을 전수하고 무기를 선물하는 등, 전적으로 그분이 손해를 보았을 뿐이지. 그러니까, 감사함을 아는 인간이라면 그분을 위해 무엇이든 해야만 해. 그것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일지라도.’

이태성이 소리쳤다.

“모두 오늘을 기억하라! 로만 드미트리 님이 우리를 위해 전쟁을 결심하고, 우리를 위해 값진 선물을 한 오늘을!”

그날.

인천은 하나가 되었다.

그들이 완벽하게 하나로 뭉친 그날이, 대한민국에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 아직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 * *

김준혁이 말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직할대를 구해 준 것도, 직할대를 위한 선물을 구해 준 것도 전부 감사합니다.”

인천으로 돌아오고.

로만 드미트리가 검을 나누어 주라고 명령하자, 김준혁은 그 일을 모두 처리하고 다시 로만 드미트리를 찾았다.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전에는 이태성과 마찬가지로 로만 드미트리에게 특별한 의도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했지만, 지금은 그딴 것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믿었다.

앞으로 그를 위해 살아갈 것이다.

짧은 시간이라고는 하나, 김준혁은 자신의 인생을 바치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로만 드미트리가 말했다.

“직할대는 앞으로 인천의 근간이 될 것이다. 그들이 강해져야만 내가 없는 전장에서도 인명 피해가 생기지 않을 것이며, 인천이 이 세상의 중심으로 거듭날 수 있겠지. 다만, 아쉬운 점은 너의 존재다. 너에게도 직할대와 같은 기술을 전수해 주려고 했으나, 너도 알겠지만 네 육체는 마나를 받아들일 수 없는 몸이다.”

“……알고 있습니다.”

김준혁이 씁쓸한 표정을 보였다.

강민호와 직할대가 비약적으로 강해지는 동안, 김준혁은 따로 가르치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저주받은 육체.

김준혁의 진실이었다.

무림에서 살아가던 시절, 기를 받아들일 수 없는 몸을 사람들은 저주받은 육체라고 불렀다.

그건 어떤 방법으로도 해결할 수 없었다.

로만 드미트리 또한 해결할 방법을 알지 못했고, 무림의 사람들은 어차피 수명도 짧은 저주받은 존재는 어릴 때 미리 목숨을 끊어야 한다고도 말했다.

그 사실을 김준혁은 수년 전에 알았다.

그도 스스로가 강해져서 대재앙에 대항하고 싶었지만, 애초에 마나를 받아들일 수 없는 몸이기에 스킬조차도 몸이 거부 반응을 일으켰다.

각성에 수차례 실패한 이후. 그는 행정가로서의 길을 택했다. 몸이 아닌 머리로도, 이 혼란스러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한동안 고민했었다.

김준혁의 쓰임새를.

인천 시장이라는 상징성으로 남겨 두기에는, 그는 그 이상의 가치가 있었다.

“그래. 너는 직할대처럼 스스로의 힘으로 몬스터와 싸울 수 없다. 네가 휘두른 나약한 일격은, F등급 몬스터의 외피조차 베어 내지 못하겠지. 하지만 내가 살아가던 세상에는 주변의 편견과 스스로의 한계를 이겨 낸 존재가 있었다. 스스로가 불가능하다면, 다른 것들을 활용하면 되는 법이지.”

무림 정벌 당시.

마교를 괴롭혔던 존재.

결국에는 백중혁을 마주해 머리가 날아갔지만, 저주받은 기재는 충분히 대단한 모습을 보였다.

“지금부터 너에게 진법을 알려 주겠다.”

* * *

진법.

매우 현묘한 수법이다.

제갈세가 출신의 제갈소운은 저주받은 육체를 타고났는데, 그는 자신의 한계를 이겨 내고 진법을 발전시켰다.

진법은 자연물과 인공물을 현묘한 이치에 따라 배치하고 특별한 효과를 내는 방법이다.

마교도들을 미로에 빠트리고, 스스로 공멸하게 만들면서 그는 전쟁에서 큰 활약을 펼쳤다.

물론.

백중혁을 만난 날 그의 행보는 막을 내렸다.

하지만 제갈소운의 활약을 인상 깊게 보았던 백중혁은, 한때 진법에 관해서 공부한 적이 있었다.

‘전생에서는 진법이 필요하지 않았지.’

새로운 세상.

샐러맨더 대륙에는 마법이 존재했다.

진법과 같은 현묘한 이치가 아니더라도 마나를 활용해 여러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었고, 마법이라는 훌륭한 대체재가 있기에 진법을 사용할 일이 많지 않았다.

남부 전선에서 헥토르를 상대할 때 몇 번 활용했으나, 마법사들을 휘하에 두며 진법은 머릿속 한편에 잠시 미루어 두었다.

그런데.

김준혁이라면 얘기가 달랐다.

무공도, 마법도 익힐 수 없는 그에게 진법은 새로운 가능성을 의미했다.

“진법은 복잡하고 어려운 공부다. 내가 가르친다고 해서, 네가 배울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다. 어쩌면 진법을 배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저주받은 육체라고 할 수 없지. 머리만큼은 확실히 천재의 범주에 들어가야, 간신히 간단한 진법을 발현하는 것이 가능할 테니까. 네 생각은 어떻지? 진법을 배울 의향이 있나?”

그 물음.

고민할 가치조차 없었다.

김준혁은 항상 강함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

저주받은 육체에 열망을 표출할 수 없을 뿐이지, 그런 기회가 생긴다면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김준혁이 소리쳤다.

“배우겠습니다. 어떻게든 제 것으로 만들어 내겠습니다.”

강렬한 열망.

웃었다.

열망이 있는 자들은 언제나 보기 좋았다.

로만 드미트리는 무심하게 책상 위로 무언가를 던졌다.

툭.

“틈틈이 기록해 둔 것이다. 네 것으로 만들어라. 만약 성공한다면, 일반인에 불과한 너에게도 너만의 무기가 생길 것이다.”

* * *

그 시각.

중앙 정부에 비상이 걸렸다.

조달수가 비상 회의를 소집했고, 몇 시간 뒤에 중앙 정부를 구성하는 주요 인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용산구 의원.

명성호가 인상을 찌푸리며 회의실로 들어섰다.

“대체 무슨 일입니까? 비상 회의가 의원의 권한이라지만, 이렇게 느닷없이 비상소집이라니요.”

“일단 자리에 앉으십시오. 금방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그만한 이유가 있어야 할 겁니다.”

속속들이 도착하는 의원들.

다들 무거운 엉덩이만큼이나, 이 상황을 그리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모두 착석했다.

일단 구의원들이 일차적으로 안건을 살펴보고, 그것을 토대로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비상 회의에 필요한 과반수가 자리한 상황.

조달수가 자리에 앉았다.

‘로만 드미트리. 너는 실수를 저질렀어. 감히 중앙 정부를 상대로, 구의원인 나 조달수를 상대로 전쟁을 들먹였다면 그 대가를 치러야겠지. 대재앙은 결코 인천 정부의 방패막이 되지 못해.’

로만 드미트리는 생각했을 것이다.

중앙 정부와의 격돌.

그건 대재앙 이후의 일일 것이라고.

일단 전력을 보존해서 대재앙을 버텨 보자고 판단했겠지만, 그건 자신을 너무 우습게 본 행동이었다.

조달수가 마이크를 잡았다.

“지금부터 비상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비상 회의의 안건은 바로 로만 드미트리, 인천 정부의 반란입니다.”

반란.

강력한 단어가, 그의 복수심을 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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