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6화 비상 회의 (3)
판이 깔렸다.
반란이라는 의도가 명백한 단어가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았고, 조달수는 계획한 대로 한발 물러났다.
“문태준 조사관. 상황을 설명하도록.”
“알겠습니다.”
끼익.
문태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피투성이였던 얼굴은 간단하게 치료를 끝마친 상태였고, 그는 복수심이 들끓는 눈빛으로 회의에 참석한 의원들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 순간을 기다렸다. 중앙 정부의 조사관으로서 탄탄대로의 삶을 살아가던 그가, 오늘처럼 참담한 하루를 경험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로만 드미트리에게 머리채가 붙잡혀 테이블에 처박혔고, 자신의 든든한 배경이라고 생각했던 조달수 의원에게는 뺨을 맞았다.
그 모든 일들.
로만 드미트리의 탓이었다.
조달수 의원의 신뢰를 되찾기 위해서라도, 문태준은 반드시 복수를 성공시키겠다고 거듭 다짐했다.
문태준이 말했다.
“이번 사건의 경위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사건은 한 달 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개미굴 토벌에서부터 비롯됩니다. 저는 그때 ‘레드문 학살 사건’의 범인이 로만 드미트리라는 사실을 알아냈고, 그에게 면죄부를 대가로 중앙 정부에 합류할 것을 권했습니다. 죄는 중할지라도 A등급 이상의 실력자는 대한민국에 필요한 존재니까요. 그런데 인천 정부와 로만 드미트리는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나왔습니다. 그들은 무고한 사람들을 죽인 일을 정당방위라 주장하며, 앞으로 중앙 정부와는 별개의 노선으로 움직이겠다는 반역도들의 발언을 내뱉었습니다.”
명백한 사실과 일말의 거짓.
적당히 섞었다.
문태준은 올바른 일을 행했으며, 모든 문제는 인천 정부와 로만 드미트리의 소행인 것처럼 만들었다.
“그리고 오늘 사건이 터졌습니다. 인천 정부 소속의 헌터들이 승급 심사를 진행했고, 그 과정에서 A등급 헌터인 조민우가 사망했습니다. 저희로서는 조민우와 같은 귀중한 인재가 죽은 사건에 잔인한 손속을 문제 삼을 수밖에 없었고, 인천 정부와 로만 드미트리는 이번에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말하길, 본인들의 잘못은 조금도 없으며 저희가 잘잘못을 따져 묻는 행위를 적의로 받아들인다고 했습니다.”
설명이 계속될수록 의원들의 표정이 굳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참석한 자리다.
하지만 조달수와 문태준의 의도처럼, 프레임을 씌운 인천의 모습은 반란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슥.
“이 얼굴을 보십시오. 로만 드미트리가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매뉴얼대로 행동하는 저에게 폭력을 행사했으며, 이번 일을 문제 삼는다면 전쟁을 벌이겠다는 발언까지 내뱉었습니다. 의원님들. 인천은 선을 넘었습니다. 로만 드미트리는 대한민국 전체를 무너트리려는 재앙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만약 대재앙 이전에 이런 분란의 씨앗을 남겨 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대한민국, 아니 세계의 오랜 역사는 내부의 문제야말로 그 어떤 것보다도 치명적임을 증명합니다.”
얼굴의 상처는 적나라했다.
포션을 사용하지 않고 간단하게 치료를 한 이유는, 의원들에게 확실한 증거를 보여 주기 위함이었다.
의도는 완벽하게 통했다.
콰앙!
“이런 미친 새끼들이 감히 반란을 일으켜?”
용산구 의원 명성호.
그가 분노를 터트렸다.
* * *
명성호가 말했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의원직에 오르고, 지난 십수 년간 감히 중앙 정부의 사람을 건드렸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게 당연한 일입니다. 중앙 정부는 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한 집단인데, 반란의 의도가 없다면 무슨 이유로 건드리겠습니까? 일벌백계해야만 합니다. 절대 용납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그가 스타트를 끊었다.
다른 의원들도 말을 덧붙였다.
“제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천에 그들만의 사정이 있다고 한들, 적법한 절차 없이 중앙 정부의 사람을 건드린 것은 위법입니다. 이대로 인천 정부와 로만 드미트리를 내버려 둔다면 중앙 정부의 위신이 떨어질 것입니다.”
“어쩌면 이건 대한민국에 악감정을 지닌 타국의 수작질일지도 모릅니다. 상황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로만 드미트리라는 실력자가 갑작스럽게 나타나서는, 아무런 이득도 없는 인천 정부에 자리를 잡았다는 것이. 인천은 중앙 정부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킬 만한 세력이 아닙니다. 비상식적인 그들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처벌합시다. 대재앙이 시작되기 전에, 병력을 이끌고 가서 그들을 쓸어 버려야 합니다.”
다들 분노를 표출했다.
문태준의 얼굴.
그것이 문제였다.
자신들도 문태준처럼 공격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중앙 정부의 의원들은 적의를 드러냈다.
하지만.
모두가 무조건 처벌하자는 것은 아니었다.
성동구 구의원 이재식이 말했다.
“여러분들의 뜻은 잘 알겠습니다. 이번 일은 확실히 일벌백계할 문제이나, 지금 알려진 바로는 로만 드미트리는 무려 S등급의 헌터입니다. 그리고 승급 심사에서 통과한 인천 소속 헌터들의 실력도 상당합니다. 그런데 무슨 수로 그들을 처벌할 생각입니까? 물론 중앙 정부의 힘을 동원한다면 그들을 쓸어 버리는 것은 가능하나, 인천이라는 하나의 도시를 공략하기 위해 큰 피해를 감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재앙이 코앞입니다. 대통령님의 말씀처럼, 우리는 지금 몸을 사려야 할 때입니다.”
딜레마였다.
반란이 명백하다고 한들, 그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인천이 아니라 대재앙이었다.
대한민국 내부에서 내란을 벌이는 사이에 대재앙이 일어난다면, 그때는 문제가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당연히.
이재식의 발언은 예상 범주에 있었다.
상황을 지켜보던 조달수가 입을 열었다.
“예, 이재식 의원님이 걱정하는 바는 동의합니다. 시기의 문제입니다. 로만 드미트리는 그것을 알고 의도적으로 도발했으며, 일단 대재앙을 버티기 위해서 현재의 전력을 보존하려는 생각이겠지요. 중앙 정부는 이와 같은 예시를 남겨서는 안 됩니다. 인천 정부와 로만 드미트리를 처벌하되 중앙 정부의 전력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단 한 명의 도움이면 충분합니다.”
순간.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한 사람을 보았다.
회의실 한편.
백색의 로브를 입은 중년인이 있었다.
“백의의 마법사님이 힘을 보태 준다면, 인천의 반역도들을 단번에 쓸어 버릴 수 있습니다.”
* * *
백의의 마법사.
그는 미스터리한 존재였다.
20년 전.
최초의 대재앙에 대한민국이 멸망의 위기를 맞이했을 때, 사람들 앞에 백색의 로브를 펄럭이는 한 존재가 나타났다.
그때만 해도 각성이 익숙하지 않은 시절이었다.
S등급이니 A등급이니 하는 구분도 없었던 그때, 그는 엄청난 마법으로 대한민국을 멸망의 위기에서 구해 주었다.
훗날.
그는 대한민국 최초의 S등급 헌터로 분류되었다.
사람들이 말하길, 대한민국이 현재까지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공이 매우 컸다.
“백의(白衣)의 마법사는 대한민국의 희망이다.”
국민적인 영웅.
그에 대한 평가였다.
대재앙이 발발할 때마다 그는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서 싸웠고, 사람들은 그 모습에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
대한민국이 대통령을 중심으로 중앙 정부를 형성한 지금.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면서도 백의의 마법사를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이유는, 그에 대한 국민의 인식과 백의의 마법사가 상상을 초월할 만큼 강하기 때문이다.
S등급.
천외의 경지다.
단순히 A등급보다 강해서 S등급을 책정한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기준으로는 평가할 수 없을 만큼 강하기에 S등급으로 분류되었다.
같은 S등급일지라도 실력의 차이는 컸다.
백의의 마법사는 그중에서도 상위의 실력자라고 평가받기에, 대한민국에서 중앙 정부를 제외하고는 유일하게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했다.
백일(白日).
백의의 마법사를 따르는 단체다.
실력 있는 마법사들 상당수가 백일에 소속되어 있기에, 백의의 마법사는 그야말로 일국에 비할 존재였다.
고로.
조달수의 계획에 반드시 필요했다.
‘백의의 마법사는 그야말로 정의를 행하는 존재. 대한민국을 나락으로 빠트리는 악인들을 허락하지 않지. 그런 그에게 로만 드미트리는 악인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크다. 갑작스럽게 나타나서는 대한민국 내부에 혼란을 일으키고, 마치 의도적인 것처럼 중앙 정부를 적대하는 행동은 대재앙을 앞둔 지금 대한민국에 해가 될 것이 분명하지. 간단한 문제야. 백의의 마법사가 힘을 보태겠다고 말한다면, 중앙 정부는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인천 정부와 로만 드미트리를 쓸어 버릴 수 있어.’
완벽한 계획이었다.
백의의 마법사는 정의의 대명사다.
지난 20년간 정의를 위해 살아온 그라면, 로만 드미트리를 잡을 무기로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로만 드미트리. 너는 나를 잘못 건드렸어.’
조달수가 말했다.
“로만 드미트리는 명백한 악입니다. 이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그와 같은 악이 활개 치게 내버려 둘 수는 없습니다. 도와주십시오. 백의의 마법사님이 도와주신다면, 중앙 정부 또한 힘을 보태겠습니다.”
웃음을 삼켰다.
계획대로 될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상황에, 백의의 마법사는 침묵을 지켰다.
진중한 것이 아니었다.
짜증이 치밀었다.
조달수의 요청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사람들은 모르는 진실.
그것은 며칠 전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 * *
며칠 전.
미국에서 마법 교류 일정을 끝마치고 돌아온 백의의 마법사는, 수하로부터 황당한 보고를 들었다.
“다시 말해 봐. 이름이 로만 드미트리라고?”
“예. 현재 새로운 S등급 헌터일 것으로 추정되는 사내의 이름이 로만 드미트리입니다. 그는 대한민국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레드문을 멸망시키고 전조 현상을 해결했으며, 현재는 문태준 조사관과의 대립으로 중앙 정부와 사이가 급격하게 나빠지고 있습니다. 이를 어떻게 할까요. 대재앙을 앞둔 상황에서, 로만 드미트리와 인천을 이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습니다.”
백일의 목적.
대한민국의 수호다.
정확히는 정의를 행하는 것에 있기에, 로만 드미트리의 존재가 거슬릴 수밖에 없었다.
“……씨발.”
“예?”
“아니야.”
수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씨발이라니.
귀를 의심했다.
점잖고 항상 온화하던 백의의 마법사가 설마 욕을 사용했단 말인가.
그로서는 믿을 수 없는 일이기에 되물었고, 백의의 마법사는 마치 그런 욕 따위는 하지 않았다는 듯이 손사래를 쳤다.
지금 그로서는 지난 20년간 쌓은 이미지는 생각할 수 없었다.
로만 드미트리라는 이름을 들은 순간부터,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현기증이 일어나 토를 할 것만 같았다.
‘설마 아니겠지.’
걸음을 옮겼다.
동명이인일 수도 있지 않은가.
전승자와 같은 능력으로 인해, 이 세상 사람들은 드미트리가 특별한 존재임을 알고 있었다.
고로.
로만 드미트리의 이름을 사용하는 사람이 나타날 수도 있다.
사람들은 그것이 황제의 이름임을 모르지만, 이 세상은 어떤 일이 벌어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어쩌면 로만 드미트리의 전승자일지도 몰라. 드미트리 사람들의 능력을 물려받은 사람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고 있는 지금, 로만 드미트리의 능력이라고 물려받지 말라는 법은 없잖아. 그렇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영입해야만 해. 로만 드미트리의 능력을 일부라도, 정말 조금이라도 물려받은 존재라면 그는 지금까지의 기준을 파괴할 만큼 강할 테니까.’
인천으로 향했다.
확인해야만 했다.
로만 드미트리의 정체를.
그가 대장간에 들어갔다는 말을 들었지만, 일단 인천에 머물면서 그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불안했다.
대장간에 있다는 사실도 마음에 걸렸다.
그렇게 며칠이 흐르고.
마침내 대장간에서 나와 서울로 향하는 로만 드미트리의 모습에, 백의의 마법사는 벼락이라도 맞은 기분이 들었다.
“아.”
부르르.
몸을 떨었다.
확실했다.
로만 드미트리였다.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로만 드미트리는 자신이 기억하는 외형과 동일한 모습으로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런데 백의의 마법사는 대체 어떻게 로만 드미트리의 모습을 알고 있는 걸까.
전승자는 기억 일부를 전달받을 뿐, 백의의 마법사처럼 많은 사실을 알지는 못했다.
간단한 문제였다.
그는 전승자가 아니었다.
로만 드미트리를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전승 능력이 아니라 전생에 그를 경험해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의 전생.
그 이름은 바로 알렉산드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