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화 6번째 대재앙 (1)
미국 LA.
한가로운 오후였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다니면서 일상적인 하루를 보내는 그때, 엄마의 손에 이끌려 가던 한 아이가 하늘을 바라보았다.
“엄마. 저기 봐.”
“응?”
고개를 들었다.
아이가 가리킨 곳을 확인하는 순간, 엄마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도, 도망…… 꺄악!.”
콱!
검은 그림자가 엄마를 그대로 낚아챘다.
허공에 떠오르자마자 엄마의 연약한 육신이 갈기갈기 찢겨 나갔고, 그것을 시작으로 햇살이 내리쬐던 도시가 어둠으로 물들었다.
수백, 수천 마리의 괴물이었다.
인간의 형태를 한 그것은 날개를 펄럭이며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했고, LA의 평화로운 분위기는 더는 찾아볼 수 없었다.
웨에에에에엥!
비상벨이 울렸다.
미국.
세계 제일의 강대국은 도시마다 전담 대응팀을 만들었고, 몬스터가 출몰했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빠르게 대응했다.
LA 전담 대응 2팀의 수장.
스티븐은 까맣게 물든 하늘을 바라보며 무전기를 들었다.
“C등급 몬스터 하피(harpy)가 무리를 지어 도시를 공격했다. 육안으로 수천 마리의 하피가 확인되는 것을 보아 전조 현상으로 추정하며, 일단 LA 전담 대응 2팀을 동원해 상황을 해결하겠다. 중앙 본부에서는 전조 현상의 근원지가 어디인지 확인함과 동시에 지원 병력을 부탁한다. 말린.”
“예.”
바로 옆.
대응팀 팀원이 있었다.
스티븐은 무전을 종료하더니, 말린이라 부른 사내를 지나치며 검을 뽑아 들었다.
“뒤를 부탁한다. 사람들의 안전을 확보하면서 몬스터들을 처리하도록.”
“알겠습니다.”
팟.
스티븐이 앞으로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하피들이 몰려 있는 공간을 파고들더니, 그는 닥치는 대로 하피들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푸확.
캬아아아아악!
A등급 헌터 스티븐.
앞으로 2~3년 안에 S등급 승격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그는 미국에서도 실력자로 분류되는 존재였다.
확실히 스티븐의 무력은 발군이었다.
그는 수십 마리의 하피들을 도륙하고도 멈추지 않았고, 말린을 비롯한 수백 명의 팀원도 전투에 가담해 사람들의 안전을 확보했다.
일차적인 진압.
미국을 강대국이라고 부르는 이유였다.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이렇게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만큼 그들의 능력은 대단했다.
그때였다.
하피의 머리를 날리며 또 다른 상대를 찾던 스티븐이, 문득 하늘에서 엄청난 힘의 파동을 느꼈다.
팟.
콰르르르르릉.
“크윽.”
파멸적인 광선이 지상을 소멸시켰다.
스티븐은 간발의 차이로 피했고, 창백한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거대한 존재.
방금까지 상대했던 하피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거대한 괴물이, 고층 건물만 한 양쪽 날개를 펄럭이며 스티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피 퀸(harpy queen)이라니.”
소름이 돋았다.
그제야 알았다.
S등급 몬스터 하피 퀸의 출몰.
스티븐이 무전기를 들어 말했다.
“S등급 몬스터가 출몰했다. 전조 현상이 아닌 대재앙이 시작되었을 확률이 매우 높다. 다시 한번 말한다. S등급 몬스터 하피 퀸이 출몰했으니, 빠르게 병력을…….”
그 순간.
콰앙!
콰콰콰콰콰쾅!
파멸적인 힘이 재차 지상에 작렬했다.
스티븐으로서는 더는 보고를 이어 갈 수 없었다.
그의 죽음이, 본격적인 대재앙의 시작을 알렸다.
* * *
미국의 소식.
한국은 곧바로 비상 소집령을 선포했다.
대통령 김정태를 필두로 중앙 정부의 의원들이 소집되었고, 그들은 전달받은 정보를 빠르게 보고했다.
“대통령님. 미국 LA에서 S등급 몬스터인 하피 퀸이 출몰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시카고, 뉴욕, 휴스턴 등에서도 몬스터들이 출몰하는 것으로 보아, 이건 6번째 대재앙이 발발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스페인의 마드리드에서도 S등급 몬스터인 엘리멘탈 골렘(elemental golem)이 출몰했습니다. 지금껏 경험했던 대재앙과는 다릅니다. 아무리 대재앙이라고 해도 시작부터 S등급 몬스터가 여럿 출몰하는 경우는 없었는데, 이번 대재앙은 벌써 2마리의 S등급 몬스터가 나타났습니다. 레드 타임을 고려한다면 얼마나 많은 S등급 몬스터가 나타날지 예상할 수 없습니다.”
“일단 수도의 병력을 동원해 방어 체제에 돌입했습니다. 저희에게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빗발치는 보고.
김정태는 침착하게 반응했다.
절망적인 상황이나, 그렇다고 대한민국이 당장 멸망할 문제는 아니었다.
“정보부장.”
“예.”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은 어떻지.”
가장 중요한 건 바로 대한민국이었다.
세계 각국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하든 간에, 그것이 대한민국 발등에 떨어진 불길은 아니었다.
정보부장이 말했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특별한 징조가 없습니다. 아무래도 이번 대재앙에서 레드 포인트(red point)는 피한 것 같습니다. 미국의 도시들이 중점적으로 공격당하는 것으로 보아, 레드 포인트는 미국이나 S등급 몬스터가 출몰한 스페인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레드 포인트.
대재앙이 반복되면서 습득한 정보인데, 대재앙은 유독 공격의 강도가 심한 나라가 존재했다.
그것을 사람들은 레드 포인트라고 불렀다.
레드 포인트는 대재앙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끝날 때까지 엄청난 공격을 받으며, 대재앙의 끝을 알리는 ‘보스 몬스터’ 또한 레드 포인트에서 출몰했다.
고로.
그나마 안심할 문제였다.
대한민국이 레드 포인트로 정해졌다면, 약소국의 전력으로는 며칠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김정태가 말했다.
“대한민국이 레드 포인트가 아닐지라도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지금으로서는 언제 어디서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알 수 없다. 정보부를 비롯한 각 의원은 대한민국의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조금이라도 문제가 발생한다면 즉각적으로 대응해 문제의 여지를 차단하라. 명심하라. 5번의 대재앙이 반복되는 동안, 안일하게 대응한 몇몇 나라는 멸망이라는 최악의 결말을 맞이했다. 대한민국이 그들과 똑같은 결말을 맞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 어느 때보다도 조심할 필요가 있다.”
“명심하겠습니다.”
“명을 따르겠습니다.”
강인한 목소리였다.
의원들을 한 번에 휘어잡는 카리스마에, 사람들은 김정태에게 충성심을 보였다.
그때였다.
일단 비상 회의를 마무리하려는데, 회의실에 난입한 정보부원이 절망적인 현실을 말했다.
“급보입니다. 인천에서 몬스터 웨이브가 발생했습니다!”
몬스터 웨이브(monster wave).
그것은, 대한민국이 대재앙의 위협에 직면했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 * *
분위기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갑작스럽게 몬스터가 출몰하는 현상.
그것이 바로 몬스터 웨이브였다.
파도처럼 몬스터가 끊임없이 밀려든다는 의미기에, 의원들 몇몇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몬스터 웨이브라니. 이제 대한민국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인천이면 수도 근방입니다. 그들이 무너지는 순간, 서울이 공격받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빠르게 병력을 보내야 합니다. 인천을 중심으로 몬스터 웨이브를 막는 것이 손실을 줄일 방법입니다.”
합리적인 해결책이었다.
일단 일차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그 이후의 상황을 대비해야 했다.
그런데.
김정태가 발언한 의원들을 싸늘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건가?”
“그, 그게 무슨…….”
“언제나 그랬듯, 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해서는 원칙대로 행동해야만 한다. 레드 타임(red time). 대재앙이 발발한 시점부터 첫 3일간은 세계 각국에서 몬스터들이 출몰한다. 그리고 그 몬스터들과 보스 몬스터를 모두 처리해야만, 우리는 비로소 대재앙의 위협을 막아 냈다고 표현하지. 그런데 레드 타임의 첫날이 아직 지나가지도 않은 시점에 수도의 문을 열고 인천을 도와주라는 건가. 인천은 수도 인근일 뿐, 그곳이 수도는 아니다. 우리가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는 의미다.”
차가운 반응이었다.
수도 사람들은 말했다.
김정태는 현명한 대통령이라고.
그가 존재하기에, 수도에 머무는 사람들은 대재앙이 들이닥쳐도 안전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방 사람들은 달랐다.
수도와 지방 사이를 나누는 명확한 벽에, 지방 사람들은 위험에 고스란히 도출될 수밖에 없었다.
지방 사람들에게는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이라고 불리는 사내.
그가 대통령 김정태였다.
김정태는 당황하는 의원들에게서 시선을 거두며, 자신을 따르는 대다수에게 확고한 목소리로 말했다.
“수도가 뚫리면 대한민국도 끝이다. 우리는 레드 타임이 끝날 때까지는 이곳 서울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에 집중할 것이다. 차라리 잘된 일이다. 인천 정부와 로만 드미트리. 그들은 중앙 정부의 일에 반발하고 반란을 일으켰다지. 그들의 멸망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좋은 예시가 될 것이다.”
웃었다.
의자에 몸을 파묻으며, 그가 잔인한 면모를 드러냈다.
“지금은 푹 쉬는 것이 좋을 것이다. 대재앙이 마무리되기 전에, 이런 여유는 흔하지 않을 테니까.”
* * *
그 시각, 인천.
김준혁도 상황을 파악했다.
“몬스터 웨이브가 발생했습니다. 척후병(斥候兵)의 보고대로라면 앞으로 30분 안에 인천에 몬스터들이 도착할 것이며, 그 규모는 완벽하게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크다고 했습니다.”
비서의 말.
절망적인 소식이었다.
김준혁은 그 사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최대한 대재앙이 피해 가길 바랐으나, 그렇다고 이와 같은 상황을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탈칵.
마이크를 켰다.
이것을 통해 말한다면, 인천 시민 전부가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인천 시장 김준혁입니다. 조금 전. 인천 근방에 몬스터 웨이브가 발생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대재앙이 시작되었습니다. 인류를 파멸로 몰아넣은 6번째 대재앙이며, 우리는 지난 20년간 반복했던 것처럼 또다시 살아남기 위해서 싸워야만 합니다. 동요하지 마십시오. 침착하게 대응하십시오. 우리는 그동안 대재앙을 준비해 왔고, 겁을 먹는 것으로는 그 어떠한 문제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차분한 음성이었다.
문제를 문제가 아닌 것처럼 만드는, 김준혁은 그렇게 평화롭고 담담한 음성으로 말을 이어 나갔다.
[지금부터 인천 시민 여러분들은 각자 배정된 위치로 이동하십시오. 전투에 가담하지 않는 일반 시민들은 쉘터(shelter)로 이동하고, 자경단(自警團)은 일반 시민들을 보호해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쉘터에 도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그리고 명심하십시오. 쉘터 밖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든 절대 밖으로 나오지 마십시오. 통상적으로 대재앙은 레드 타임이 끝난 이후를 기점으로 보름이면 최소한의 안전을 확보하게 됩니다. 그 안에는 불안하더라도 인천 시장인 저를 믿고 자신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십시오. 스스로를 통제하고 인내하십시오. 인천 시민 여러분들에게 약속드리겠습니다. 저는 절대 여러분들을 버리고 도망치지 않습니다. 그러니…….]
마이크를 잡았다.
종료하는 버튼에 손을 올린 채, 마지막 말을 내뱉었다.
[보름 뒤에 뵙겠습니다.]
툭.
마이크를 끊었다.
김준혁은 잠시 말없이 마이크를 바라보았다.
이번 대재앙.
시작부터 S등급 몬스터가 두 마리나 출몰했고, 인천 근방에서 대한민국 최초로 몬스터 웨이브가 발생했다.
아마 자기중심적인 중앙 정부와 본인들이 살기에도 급급한 다른 지방 정부들은 도와주지 않을 것이다.
과연.
인천만의 힘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세상의 상식으로는 불가능한 일임을 알지만, 김준혁은 이번만큼은 상식을 부정하고만 싶었다.
‘지난 3개월. 우리는 치열한 시간을 보냈어.’
로만 드미트리.
그를 믿었다.
그와 함께한 시간에, 인천에는 희망의 불길이 번져 나갔다.
‘처음에는 일말의 의심이 있었지. 제아무리 S등급 헌터일지라도, 수백 마리의 몬스터들을 단번에 소멸시키는 강력한 일격을 목격하고도. 과연 로만 드미트리, 단 한 명을 믿고 중앙 정부와 별개로 대재앙을 감당하는 것이 맞는 일인지. 하지만 지금은 달라. 그분을 알아 갈수록 인천을 지켜 줄 존재는 중앙 정부가 아니라 그분이라는 확신이 생겼어. 그분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인천의 안전을 장담하지 못하겠지.’
“후우.”
숨을 골랐다.
심장이 뛰었다.
피가 끓어오를수록, 그의 표정은 차갑게 느껴질 정도로 차분해졌다.
“우리가 살아남는다면, 대한민국의 판도는 완전히 뒤바뀌겠지.”
품에서 권총 한 자루를 꺼냈다.
탄창을 확인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끼익.
집무실 밖.
이미 직할대들이 모여 있었다.
김준혁은 덤덤하게 그사이를 걸으며, 바로 옆에 따라붙는 박철민에게 물었다.
“로만 드미트리 님은?”
“이태성 직할대장과 같이 제1 방어선에 계십니다.”
“그런가.”
더는 말할 것이 없었다.
3개월 전부터 지금까지.
대재앙이 들이닥쳤을 때, 인천이 어떻게 대응할지 수도 없이 시뮬레이션 훈련을 진행했다.
고로.
“우리는 제2 방어선으로 간다.”
“알겠습니다.”
대재앙은 시작되었다.
인천의 안위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자신은 인천 시장으로서, 살아서 다시는 이곳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