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는 평범하게 살 수 없다-504화 (504/615)

504화 6번째 대재앙 (5)

블러드 레인 발생 직후.

이태성은 제1 방어선에서 물러났다.

곧바로 도심으로 향했고, 진법을 벗어나 활개 치는 몬스터들을 상대했다.

컹컹컹!

크르르르륵.

몬스터들이 달려들었다.

헬 하운드(hellhound)를 비롯해서 다양한 종류의 몬스터들이, 이태성을 향해 사나운 이빨을 드러냈다.

세상의 미스터리였다.

일반적인 몬스터들은 동족 외의 존재를 분명히 적이라고 인식하는데, 대재앙이 발발했을 때는 서로를 아군으로 받아들였다.

사람들은 이것이 절대자의 능력이라고 추정했다.

차원 너머의 몬스터들을 불러들이는 과정에, 그들은 절대자의 통제를 받는 것이라고 말이다.

‘단숨에 뚫는다.’

팟.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까맣게 밀려드는 몬스터들 사이를 파고들더니, 양손에 움켜쥔 검을 사방에 휘둘렀다.

‘난무(亂舞).’

파파파파팟.

키에에엑!

사방에 피가 튀었다.

헬 하운드들이 이렇다 할 반항도 못 하고 찢겨 나갔고, 이태성은 기세를 살려 무차별적인 살육을 벌였다.

뒤따라온 직할대도 다르지 않았다.

그들 중에는 몇 달 전만 하더라도 헬 하운드를 상대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존재했지만, 3개월간의 훈련으로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였다.

콰득.

퍼퍼퍼퍽.

몬스터들을 압도했다.

일사불란하게 서로를 보완하는 모습을 보이며, 그들은 이태성을 따라 차분하게 적들을 줄여 갔다.

직할대.

그들은 지옥 같은 훈련을 견뎌 냈다.

중앙 정부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은 그들을 벼랑 끝에 밀어 넣었고, 이태성을 필두로 잠을 아껴 가면서까지 합숙 훈련을 진행했다.

그 누구도 불만을 표출하지 않았다. 이태성을 비롯한 직할대원들은 대부분 대재앙으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다.

몬스터들을 향한 적의가 강력한 사람들이니만큼, 강해질 수 있다는 단 하나의 사실만으로 자신의 삶을 바칠 가치는 충분했다.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그렇기에 도심의 몬스터를 처리하라는 명령에, 그들은 조금의 의구심도 가지지 않았다.

강해졌으니까.

당연하게 몬스터들을 도맡았다.

크어어어억!

오우거가 포효했다.

같은 A등급에서도 차원이 다른 괴물.

이태성은 오우거를 향해 달려들며 마나를 끌어올렸다.

‘로만 드미트리 님은 내게 검술을 알려 주셨어. 단번에 적을 베어 버리는 극강의 검술을.’

확.

콰콰콰콱.

오우거가 몽둥이를 휘둘렀다.

간발의 차이로 공격을 흘려보내며, 이태성의 검이 번뜩였다.

‘섬전(閃電).’

팟.

극강의 쾌검.

크리스의 기술이 그에게 이어졌다.

이태성의 쌍검이 오우거의 가슴팍을 갈랐고, 오우거는 양팔을 휘저으며 고통스러운 듯 괴성을 질러 댔다.

그사이에 오우거의 아킬레스건을 베어 버렸다.

한쪽 무릎을 꿇으며 비틀거리자 팔을 베어 버렸고, 다른 팔로 막아 보겠다고 주먹을 휘두르자 다른 쪽 허벅지를 베었다.

빨랐다.

겨우 몇 초 만에 벌어진 광경이었고, 피로 물든 오우거는 자신의 약점을 완전히 드러내고 말았다.

번뜩.

머리가 날아갔다.

허무한 최후였다.

정말 까다롭기로 소문난 오우거이건만, 이태성을 비롯한 직할대는 순식간에 상황을 정리해 버렸다.

“주변을 모두 정리했습니다.”

“고생했다.”

검에 묻은 피를 털었다.

S등급의 검.

신세계였다.

A등급의 몬스터를 압도할 수 있었던 데에는, 자신의 실력을 완벽하게 받쳐 주는 검의 존재가 컸다.

수하의 말대로 주변은 얼추 정리한 상황.

하지만 아직 상대할 적들은 많았다.

도심 내부에 수많은 몬스터들이 활개 치고 있기에, 이태성은 걸음을 옮기며 다른 곳의 상황을 파악했다.

“제1, 제2 방어선. 현재 상황을 보고하라.”

[제1 방어선입니다. 이곳은 여전히 로만 드미트리 님이 혼자서 몬스터 웨이브를 막아 내고 있습니다. 대단하다고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청산과 일부 병력이 혹시 모를 변수를 대비해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만, 도저히 로만 드미트리 님이 무너질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제2 방어선입니다. 김준혁 시장님의 지휘로 현재 몬스터의 공격을 잘 막아 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조금 전에 백일이 합류했습니다. 중앙 정부를 등지고 인천에 합류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덕분에, 생각보다 더 수월하게 몬스터들을 막아 내고 있습니다.]

희망적인 소식이었다.

이태성은 울컥하는 감정이 들었다.

6년 전.

인천은 무너졌다.

황폐해진 도시에서 김준혁은 인천을 재건하겠다고 다짐했고, 장래가 찬란했던 이태성은 그 다짐 하나만 믿고 충성을 맹세했다.

사람들은 말했다. 현실 개념이 없는 멍청한 새끼라고.

하지만 지금 인천만의 힘으로 대재앙을 막아 내는 상황에, 이태성은 피가 끓어오름을 느꼈다.

‘시장님이 옳았습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도시를 만들어 냈습니다. 사람들이 미련하다고 비난했던 그 꿈은, 결코 불가능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김준혁.

그리고 로만 드미트리.

그들의 꿈을 위해 살아갈 것이다.

그게 이태성이 살아가는 삶의 목적이었다.

이렇게 살아가다 죽는다고 한들, 이태성은 조금의 후회도 남지 않을 것이다.

“가자.”

“예.”

걸음을 옮겼다.

불타오르는 도시 사이로, 직할대는 그렇게 끝없는 싸움을 이어 나갔다.

* * *

그 시각.

조달수는 의원들을 위한 개인 객실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큭큭큭, 내 그럴 줄 알았다니까. 대통령님은 예외를 허락하지 않는 분이야. 서울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그분이, 그렇지 않아도 분란을 일으키는 인천을 도와주려고 하겠어? 자업자득이지.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 멍청이가 자기 무덤을 판 거야.”

“맞습니다. 인천은 이제 끝났습니다.”

맞은편.

문태준이 있었다.

문태준의 맞장구에 신이 났는지, 조달수는 조잘조잘 떠들어 댔다.

“이런 거 보면 인간의 삶이란 참 재밌어. 인천이 중앙 정부와 등을 돌린 상황에서, 하필이면 인천 근방에 몬스터 웨이브가 발생하다니. 하늘이 인천을 버린 거지. 인천의 힘으로 몬스터 웨이브를 어떻게 막아 낼 수 있겠어?”

“그건 불가능합니다. 로만 드미트리가 S등급 헌터일지라도, 홀로 전부를 감당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 내가 그래서 인천을 이해할 수 없었던 거야. 대한민국,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중앙 정부에 반발하는 사람들이 어디 한둘이었겠어? 모두가 중앙 정부의 독재에 불만을 가지지만, 그런데도 속내를 숨기고 겉으로는 충성을 맹세하는 이유가 뭐겠어? 대재앙이란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수천, 수만 마리의 몬스터가 들이닥치는 상황은 세력을 형성하지 않고서는 버틸 수가 없기에, 이 대한민국의 사람들은 현실을 수긍할 수밖에 없었던 거지. 로만 드미트리. 그 병신 같은 새끼는 그걸 간과했어. 지가 강하면 뭐 얼마나 강하겠어. 기껏해야 몬스터 수백 마리를 처리하고서는, 숨을 헉헉거리면서 몬스터들에게 사지가 물어뜯기겠지.”

샴페인을 마셨다.

들떴다.

밖은 혼란스러웠지만, 이렇게 여유를 즐길 때면 권력자로서 엄청난 희열을 느꼈다.

대재앙.

나쁘지만은 않았다.

서울의 안전만 확보된다면, 조달수에게는 정말 살기 좋은 세상이었다.

“태준아.”

“예.”

“앞으로 잘해. 이번 인천과 같은 사건이 또다시 발생한다면, 그때는 널 내버려 두지 않을 거니까.”

“명심하겠습니다. 절대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문태준이 냅다 엎드렸다.

그로서는 기사회생이었다.

로만 드미트리가 공공의 적으로 떠오른 덕분에, 문태준은 다시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다행이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대재앙과 같이 자신의 실수도 쓸려 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10분 뒤.

“조달수 의원님. 대통령님이 비상 회의를 소집하셨습니다.”

“뭐? 회의가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무슨 일인데?”

“그게……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조달수 의원님을 콕 찍어서 당장 회의에 참석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갑작스러운 회의.

조달수가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왠지 모르게 불길한 기분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 * *

예감은 적중했다.

굳은 표정의 김정태를 뒤로하고, 정보부장이 앞으로 나섰다.

“백일이 배신했습니다.”

“뭐?”

“배신이라니?!”

의원들이 당황했다.

백일은 오랜 세월 중앙 정부와 협력했다.

든든한 우방이기에 그동안 백의의 마법사를 존중했건만, 그들의 배신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들은 인천을 배척하는 중앙 정부의 태도를 문제 삼으면서, 조금 전에 인천으로 텔레포트 마법을 사용했습니다. 중앙 정부로서는 엄청난 손실이나, 백일의 부재로 무너질 만큼 서울은 약하지 않습니다. 비상 회의를 소집한 진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인천 근방에 몬스터 웨이브가 발생했습니다. 인천이 결사 항전으로 버틴다면 잘해야 하루 정도를 버티리라고 예상했지만, 상황이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지금 보여 드리는 장면은 패밀리어(Familiar) 마법으로 촬영한 것입니다.”

당황스러웠다.

대체 이게 무슨 얘기란 말인가.

의원들이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화면을 바라보자, 인천 근방에서 촬영한 영상이 재생되었다.

[콰앙!]

[콰르르르르르르릉!]

[키엑, 키에에에엑!]

전장이었다.

격렬한 순간을 화면에 담은 것이었고, 로만 드미트리로 추정되는 사내가 몬스터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로만 드미트리의 무력에 감탄했다.

역시 S등급의 헌터라고 생각하던 사람들은, 시간이 갈수록 표정이 딱딱해지는 것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상했다.

로만 드미트리는 혼자였다.

그런데 수천, 수만 마리의 몬스터를 상대하면서도, 그는 압도적으로 상대를 도륙하고 있었다.

정보부장이 말했다.

“지금 보는 그대로입니다. 몬스터 웨이브가 시작되고 벌써 3시간이 지났습니다. 인천의 전력으로는 슬슬 한계가 드러날 타이밍이라고 생각했지만, 황당하게도 인천은 로만 드미트리 단 한 명의 힘으로 몬스터 웨이브를 막아 내고 있습니다. 다들 궁금하실 겁니다. 이게 가능한 일인지. 정보부장으로서 확실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세계 제일의 S등급 헌터조차도 할 수 없는 일을, 로만 드미트리가 해내고 있습니다.”

비상식의 영역.

조금씩 떨리는 목소리는, 로만 드미트리의 모습이 얼마나 충격적인지를 증명했다.

* * *

조달수가 말을 잃었다.

입이 바짝 말랐다.

로만 드미트리의 무력.

충격적이었다.

그것을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과는 별개로, 이 상황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단번에 알았다.

“조달수 의원.”

“예, 대통령님.”

김정태였다.

상황을 지켜보던 그가, 싸늘한 얼굴로 조달수를 바라보았다.

“3개월 전. 조달수 의원이 로만 드미트리에 관해서 보고했었지. 그가 인천 정부를 등에 업고 중앙 정부에 반기를 들었으며, S등급 헌터라고는 하나 그리 경계할 인물이 아니라고. 그런데 저 영상을 보고도 그때와 똑같은 보고를 할 수 있나. 그리 경계할 인물이 아니라던 그 거지 같은 보고를?”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는 말은 집어치워! 로만 드미트리가 저 정도로 강한 인물이었다면, 나는 대한민국의 안위를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그를 회유하려 했을 것이다. 그런데 조달수 의원 개인의 잘못된 판단으로 우리는 귀중한 인재를 잃어버렸다. 자,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지? 알아보니 인천 정부와의 분란도 문태준 조사관 개인의 악감정으로 비롯된 일이라던데. 인천이 만약 대재앙을 버텨 낸다면, 그 이후에 벌어지는 일들은 조달수 의원이 감당해야 할 것이다.”

싸늘했다.

조달수는 판세를 읽었다.

로만 드미트리가 생각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확인하자, 김정태는 은근슬쩍 자신을 손절하려 했다.

책임의 전가.

사건의 진위를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에게 모든 걸 떠넘겼다.

조달수는 분노가 치밀었지만, 그렇다고 반발할 수는 없었다.

‘김정태는 잔인한 인물이다.’

그의 눈 밖에 나는 순간.

서울에서 살아갈 수 없다.

의원일지라도 하루아침에 죽을 수가 있기에, 조달수로서는 납작 엎드릴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멍청해서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절대, 대통령님께 피해가 가지 않게 잘 마무리하겠습니다.”

슥.

시선을 돌렸다.

김정태는 완전히 발을 뺐다.

인천을 외면하고도.

그들을 버리리라고 명령하고도.

그는 자신의 책임은 없는 것처럼 굴었다.

회의장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얼어붙는 상황에, 갑작스럽게 한 사내가 문을 열고 나타났다.

쾅!

“큰일 났습니다!”

익숙한 패턴이었다.

대재앙이 발발한 시기.

불행을 실은 급보는 익숙했다.

사내가 소리쳤다.

“인천에 S등급 몬스터가 나타났습니다!”

“뭐?”

조달수의 표정이 환해졌다.

이건 희소식이었다.

언젠가는 S등급 몬스터를 서울이 감당해야겠지만, 인천 근방에 나타났다는 의미는 로만 드미트리의 죽음으로 직결되었다.

생각해 보라. 몬스터 웨이브만으로도 버거울 텐데 S등급의 몬스터가 나타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제아무리 로만 드미트리일지라도 절대 버티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잘못을 묻어 버릴 수 있다.

어차피 중앙 정부가 회유하지 못할 존재라면, 김정태 또한 나쁜 결론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사내가 다급한 이유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리고 서울 근방에도 몬스터 대군과 S등급 몬스터가 나타났습니다! 아무래도 전조 현상으로 주변에 숨어 있던 몬스터들이, 대재앙을 기점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 같습니다!”

평화가 깨졌다.

중앙 정부는 더는 방관자가 아니었다.

인천과 똑같이.

그들도 지금부터는, 살아남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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