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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는 평범하게 살 수 없다-512화 (512/615)

512화 달라진 상황 (4)

부산의 최종 방어선.

성벽 너머로 몬스터들이 새카맣게 밀려들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바닷물이 이곳까지 도달하지는 않았지만, 육지에 모습을 드러낸 흉측한 모습의 몬스터들은 몬스터 웨이브라는 이름에 걸맞게 파도를 형성했다.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다리가 떨리는 광경이었다.

참혹한 순간을 앞에 두고, 차영민은 중대장들을 불러들여 명령을 내렸다.

“지금부터 마법 폭탄을 사용하라. 우리가 보유한 마법 폭탄 전부를 사용해도 좋다. 적들이 성벽에 도달하지 못하도록 막아라.”

“……벌써 말입니까?”

“그래.”

중대장들이 당황했다.

마법 폭탄.

마법 기술력의 집합체다.

이름 그대로 마나석을 기반으로 해서 만든 마법 폭탄인데, 파괴력은 확실하나 워낙 고가의 물건이다 보니 함부로 사용할 수 없었다.

부산 정부는 대재앙을 대비해서 수백 개의 마법 폭탄을 쌓아 두었다.

언뜻 보면 상당한 양인 것 같겠지만, 지금껏 대재앙을 경험한 사람들은 수백 개의 마법 폭탄 정도로는 이틀도 버티기 힘들다는 사실을 알았다.

밤낮을 가리지 않는 몬스터들.

그들을 상대로 물자는 바닥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보통은 적절하게 분배해서 사용했다.

레드 타임이 끝나고도 약 보름은 지나야 중앙 정부의 도움을 기대할 수 있기에, 최대한 몸으로 막다가 정말 위험할 때만 마법 폭탄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그것이 기본적인 매뉴얼이다.

부산의 중대장들은 그동안 그렇게 훈련했건만, 아직 최종 방어선이 위태롭지도 않은 시점에 차영민은 마법 폭탄의 사용을 허락했다.

차영민이 말했다.

“이틀 뒤. 인천 정부에서 지원을 약속했다. 우리의 목적은 그때까지 버티는 것이고, 물자를 아꼈다간 몬스터 웨이브에 그대로 쓸려 버릴 수도 있다. 그러니 마법 폭탄의 사용을 주저하지 마라.”

“알겠습니다.”

“명령을 따르겠습니다.”

믿기진 않았다.

인천이 도와준다는 약속 자체도.

그들이 부산의 문제를 해결해 준다는 사실도.

하지만 차영민의 명령에는 이유가 있으리라는 생각에, 부산의 중대장들이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

그러고는.

“마법 폭탄을 사용하라!”

“적들을 공격하라!”

콰릉.

콰르르르르르릉.

마법 폭탄을 발동시켰다.

마나석에 힘을 불어넣자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고, 안에 새겨진 마법이 활화산처럼 분출되었다.

[썬더 캐논(Thunder Cannon)]

[썬더 캐논]

[썬더 캐논]

상대는 해양 몬스터.

막 바닷물에서 벗어난 상태였기에, 전기 계열의 마법 폭탄이 일제히 작렬했다.

빠지지지지직.

콰앙!

콰콰콰콰쾅!

몬스터들이 그대로 휩쓸렸다.

엄청난 파괴력에 몬스터들이 비명을 질러 댔고, 선두에서 달려들던 몬스터들은 새카맣게 타서 바닥에 쓰러졌다.

하지만 그들의 자리는 금방 다른 몬스터들로 메워졌다. 동족들이 죽었다는 사실은 전혀 개의치 않았고, 동족의 시체를 짓밟으며 꾸역꾸역 밀려들었다.

중대장들은 계속해서 마법 폭탄의 사용을 지시했다. 초반부터 전력을 다한 만큼, 제아무리 몬스터 웨이브일지라도 성벽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대재앙은 한두 시간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순식간에 백여 발의 마법 폭탄을 사용했다.

그런데도 대재앙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한 중대장이 절망 어린 표정을 보였다.

“……이걸 대체 어떻게 막으라는 거야.”

몬스터 웨이브.

처음 경험해 보았다.

절망적인 현실을 직면해 보니, 마법 폭탄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하루도 채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만약 중앙 정부를 기다렸다면.

부산은 그대로 멸망했을 것이다.

차영민의 판단을 믿었다.

아니, 믿어야만 했다.

이틀 뒤.

인천이 도와준다는 약속 하나만이, 부산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 * *

인천의 쉘터.

그것은 지하에 있었다.

비상시를 대비해 지하에 거대한 공간을 만들었고, 민간인들은 삼삼오오 모여 불안한 표정을 보였다.

한 사내가 말했다.

“……우리가 정말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그냥 공격받은 것도 아니고, 인천 근방에 몬스터 웨이브가 생성되었잖아요. 대한민국 역사상, 일개 도시가 중앙 정부의 도움을 받지 않고 몬스터 웨이브를 막았다는 것은 들어 본 적이 없어요.”

그들은 바깥 상황을 몰랐다.

김준혁 시장은 본인을 믿어 달라고 말했지만, 몇몇 사람들은 불안감에 잠식될 수밖에 없었다.

사내의 말에.

비슷한 생각을 지닌 사람들이 동조했다.

“솔직히 힘들겠죠. 하루 이틀은 버틸지 몰라도, 끝나지 않는 지옥은 인천 전체를 무너트릴 거예요.”

“저는 김준혁 시장님을 진심으로 존경하지만, 중앙 정부를 배척하는 선택은 섣불렀다고 생각해요. 지방 사람들이 괜히 중앙 정부의 부당함을 감수하는 게 아니잖아요. 이와 같은 상황에서 국가 규모의 전력이 나서지 않는다면, 인천과 같은 일개 도시로는 절대 대재앙을 버텨 낼 수 없어요. 우리는 우리의 무덤을 팠고, 지금으로서는 중앙 정부의 바짓가랑이를 붙잡는 것이 유일하게 살아남을 방법이겠죠.”

절망적이었다.

외부와 차단된 공간.

자신의 목숨을 타인에게 맡긴 사람들로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한 기색이 심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불만이 있다고는 하나, 대다수는 그러한 감정을 애써 억눌렀다.

중년의 사내가 말했다.

“여러분. 김준혁 시장님을 믿읍시다. 그분이 선택한 로만 드미트리 님을 믿읍시다. 김준혁 시장님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인천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본인을 믿고 기다려 달라고 말했던 그분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우리가 도움은 되지 않을지언정 김준혁 시장님의 발목을 붙잡지는 맙시다.”

“옳은 말입니다. 우리는 안전한 공간에 있지만, 힘이 있는 사람들은 밖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습니다. 그들의 노력을 의심하기보다는, 우리 모두 두 손 모아 인천의 생존을 기원합시다.”

정말 기나긴 시간이었다.

밤낮이 바뀌는 것을 확인할 수도 없는 공간에서, 인천 시민들은 불안한 마음을 애써 억눌렀다.

혈기왕성한 사람들은 밖에 나가서 싸우자고도 주장했다.

김준혁은 민간인들의 무분별한 죽음을 막기 위해서 쉘터에 보냈지만, 전장에서 직접적으로 싸우지 않는 일이라도 도와주고 싶었다.

정말 불안하고 초조한 시간이었다. 그

들은 로만 드미트리와 같은 지도자를 경험해 보지 못했다. 강자의 통치를 받아 보지 않았기에, 언제나 기다림의 끝은 절망적이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되었다.

사람들이 동요했다.

이토록 조용하다는 사실이 이상했다.

“……설마 인천의 병사들이 모두 죽어 버린 게 아닐까요? 몬스터들이 지하 공간을 발견하지 못해서 우리는 무사한 거고요.”

승리의 가능성은 배제했다.

비현실적이니까.

몬스터 웨이브를 벌써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분명히 지금쯤이면 절망적인 소식이 도달해야 하는데, 너무나도 조용한 상황에 상상력이 몸을 부풀렸다.

그때였다.

끼익.

문이 열렸다.

봉인되어 있던 입구가 열리더니, 생각보다 깨끗한 외관의 한 사내가 안으로 들어섰다.

강민호였다.

그가 말했다.

“레드 타임이 끝났습니다. 최소한의 안전이 확보되었으니, 지금부터 밖으로 나오셔도 좋습니다.”

* * *

충격적이었다.

레드 타임이 끝났다니.

강민호의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사람들은 문자 그대로의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몬스터 웨이브가 비껴 나간 건가. 그게 아니고서는 이렇게 평화롭게 레드 타임이 지나갔을 리가 없어.’

확실했다.

천운(天運)이 작용했을 것이다.

인천은 생각보다 위험하지 않았던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헐.”

“이게 다 몬스터야?”

사람들이 당황했다.

밖으로 나온 그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엄청난 숫자의 사체였다.

성벽 너머.

조금 전까지도 성벽을 넘어오려던 몬스터들이, 뜨거운 김을 뿜어내며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얼마나 많은지 숫자를 헤아릴 수가 없었다.

눈앞의 광경만 보더라도 몬스터 웨이브가 들이닥쳤던 것은 사실일 텐데, 인천의 전력만으로 이 위기를 넘겼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강민호가 말했다.

“모두 로만 드미트리 님 덕택입니다. 그분이 몬스터 웨이브를 소멸시켰고, 인천 근방에 나타난 S등급 몬스터 그린 드래곤도 처리해 주셨습니다. 지금은 안전합니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블러드 레인이 재차 발생했으나, 인천의 방어 체계를 견고하게 형성했기에 별문제 없이 몬스터들의 공격을 막아 낼 수 있었습니다. 레드 타임은 끝났습니다. 앞으로 특별한 변수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판단했기에, 시민 여러분들이 밖으로 나오도록 쉘터의 문을 개방했습니다.”

“지금부터 여러분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성벽 아래로 내려가서 사체를 치우는 것을 도와주십시오.”

다들 넋을 잃었다.

귓속에 들어오는 모든 말들이 충격적이었다.

일단은 명령에 따라 성벽 아래로 내려갔고, 산처럼 쌓인 사체를 치우면서 강민호의 말을 되새겼다.

로만 드미트리.

그는 대체 어떤 인물이란 말인가.

몬스터 웨이브를 소멸시켰을 뿐만 아니라, S등급 몬스터인 그린 드래곤을 처리하다니.

확실했다.

인천은 안전하다.

로만 드미트리가 인천에 평화를 안겨 주었다.

중년 사내가 말했다.

“로만 드미트리 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그분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분을 뵙게 해 주십시오.”

모두가 동조했다.

인천 시민들에게 로만 드미트리는 구세주였다.

몰려드는 사람들.

그들을 바라보며 강민호가 웃음을 보였다.

“머지않아 그분을 만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로만 드미트리 님은 인천의 안전을 확보한 직후, 곧바로 부산을 도와주기 위해 백의의 마법사님과 같이 부산으로 이동한 상태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로만 드미트리 님께서는, 만약 인천이 위험해진다면 다른 곳의 상황은 후순위로 미뤄 두고 곧바로 텔레포트 마법으로 인천으로 복귀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든든했다.

강민호의 얼굴에는 로만 드미트리에 대한 믿음이 보였다.

“지금의 그 마음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는 로만 드미트리 님 덕분에 이렇게 살아남을 수 있었으니까요.”

* * *

레드 타임이 끝났다.

그것은 대재앙의 종결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새로운 변수가 생겨나진 않더라도, 이미 현세에 들이닥친 문제들은 감당해야만 했다.

퍽.

푸확.

몬스터의 머리를 날렸다.

간신히 머리를 베어 낸 차영민은, 피로 범벅이 된 얼굴로 거친 숨을 내쉬었다.

“하악, 하악.”

성벽 위.

참혹했다.

부산을 지키겠다던 수많은 사람이 싸늘한 시체가 되었고, 아직까지도 끊임없이 밀려드는 몬스터로 인해서 시간의 개념을 잊어 갔다.

몸도 정상이 아니었다. 여기저기가 뜯기고 베였지만, 밤낮으로 전투를 벌이면서 고통조차도 느끼지 못하는 몸이 되었다.

캬악!

크르르르륵.

또다시 몬스터들이 성벽 위로 올라섰다.

마법 폭탄은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였기에, 힘겨운 몸을 이끌고 달려드는 몬스터들을 상대해야 했다.

“모두 포기하지 마라! 우리는 살아남을 수…….”

순간.

차영민의 눈이 요동쳤다.

성벽 너머.

이전보다 더 많은 몬스터들이 밀려들고 있었다.

지금쯤이면 몬스터 웨이브가 약해질 법도 한데, 몬스터 웨이브는 오히려 더 강력한 마력을 발현하며 지금까지 처리한 몬스터보다도 많은 숫자를 토해 냈다.

절망적인 순간이었다. 이건 인간의 힘으로 막아 낼 수 없었다.

만약 중앙 정부가 지금 당장 부산을 도와준다고 할지라도, 파도처럼 밀려드는 몬스터들과 같이 휩쓸리고 말 것이다.

‘끝인 건가.’

절망에 빠졌다.

눈에서 생기를 잃었다.

로만 드미트리와의 약속.

힘겨운 시간에 잊어버렸다.

처음에는 그를 기다렸으나,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한계에 직면하며 이미 마음으로 죽음을 받아들였다.

꽈악.

‘이대로 죽을 운명이라면 한 마리라도 더 데리고 간다.’

이를 악물었다.

억울했다.

인간들이 대체 뭘 잘못했단 말인가.

죽음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잔인한 현실에, 차영민을 비롯한 부산의 헌터들이 아득바득 발악했다.

“공격하라! 절대 물러나지 마라!”

“죽음을 각오하고 맞서 싸워라!”

아비규환(阿鼻叫喚).

부산은 지옥으로 변했다.

앞으로 몇 시간이 지나고 나면.

대한민국 사람들은 한때는 부산이라 불렸던 이 도시가 멸망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을 것이다.

그때였다.

차영민이 몬스터에게 물어뜯겨 비명을 지르는 그때, 하늘에서 공간이 뒤틀리더니 무언가가 나타났다.

‘설마…….’

눈을 부릅떴다.

확실했다.

그 무언가의 정체는 바로 로만 드미트리였다.

* * *

착.

로만 드미트리와 박민우가 지상에 착지했다.

부산행.

둘만 나섰다.

언제든 인천으로 돌아가는 기동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로만 드미트리는 일부러 박민우만을 대동했다.

캬악!

캬아아아악!

몬스터들이 달려들었다.

그들은 새로운 인간을 향해 사나운 이빨을 들이밀었지만, 뭘 해 보지도 못하고 단번에 머리가 날아갔다.

푸슈슈슉.

사방에서 뿜어지는 피.

로만 드미트리가 차영민의 존재를 확인했다.

어느새 검을 뽑아 든 로만 드미트리는, 차영민에게서 시선을 거두며 몬스터들이 들끓는 공간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약속을 이행할 차례다. 박민우.”

“예.”

“길을 열어라.”

무모한 명령이다.

하지만 박민우는 망설이지 않았다.

앞으로 걸어가며, 그가 폭발적인 마력을 일으켰다.

“명을 따르겠습니다.”

단 두 명의 합류.

반전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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