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5화 서울 정벌 (2)
똑같은 패턴이었다.
울산시장 이명환을 설득했던 것처럼, 차영민은 단도직입적으로 반란에 가담할 것을 제안했다.
그런데.
반응은 완전히 달랐다.
정문호는 본인의 귀를 의심했다.
“그게 지금 무슨 개소립니까? 감히 중앙 정부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키자고요?”
황당했다.
반란이라니.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중앙 정부가 모든 권력을 틀어쥐고 있는데, 그들을 상대로 반란을 일으키자는 발언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격하게 튀어나온 음성과 험악하게 일그러진 표정.
대놓고 거절하겠다는 의사를 드러내는 모습에, 화면 너머의 차영민이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반란의 이유는 우리 모두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앙 정부는 본인들만의 잇속을 챙기는 이기적인 집단입니다. 서울을 제외한 지방 사람들은 항상 후순위로 밀렸고, 우리는 대한민국의 현실에 불만이 있으면서도 중앙 정부의 도움이 필요하기에 그동안 입을 다물어 왔습니다. 만약 중앙 정부가 개인의 이득을 추구해도 되는 집단이었다면. 반란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지는 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민생(民生)을 돌봐야 하는 대한민국의 정부기에, 더는 지금과 같은 행태를 지켜볼 수만은 없습니다.]
“여보세요. 그런 발언은 매우 위험합니다. 당신들이 그렇게 생각한다고, 다른 사람들마저 일반화하지 마십시오.”
[지금의 현실에 만족하신다는 겁니까?]
“그야 당연한 거 아닙니까? 중앙 정부는 대한민국의 안위를 위해 최선을 택했을 뿐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약소국이라고 불리는 나라의 전력으로 모두를 보호하려 한다면, 분명히 여기저기에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선택의 문제입니다. 일단 가장 중요한 서울을 보호하고 차근히 도와주겠다는데, 다른 독재 국가들처럼 아예 외면하는 것도 아닌데 대체 뭐가 문제입니까?”
목에 핏대를 세웠다.
하남은 울산과 똑같이 위험했다.
몬스터들의 공격에 매일 밤을 고통으로 보냈지만, 울산과는 다르게 고민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사람의 성향일까?
물론 그것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차영민으로서는, 정문호가 설득되지 않는 이유를 알았다.
[같은 지방 정부라 할지라도 서로의 사정은 완전히 다릅니다. 부산과 울산 같은 지역들은 서울의 안전이 확보되더라도 지원을 받으려면 한참의 시간이 걸리지만, 하남과 같은 서울 인근의 지역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해합니다. 중앙 정부의 우호세력으로서 최우선 도움을 보장받는 하남의 시장으로서, 반란에 가담해 기존의 혜택을 포기하는 것은 어렵겠지요. 하지만 명심하십시오. 하남은 서울을 제외한 지역 중에서 최우선일 뿐입니다. 결국에는 서울에 밀릴 수밖에 없으며, 언젠가는 그 사실이 하남을 멸망의 길로 빠트릴 것입니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할 문제입니다.”
[알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정말, 반란에 가담하지 않으실 생각입니까?]
정문호가 표정을 와락 일그러트렸다.
치부를 들쑤셨기 때문일까.
그가 소리를 질러 댔다.
“어디서 헛바람이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남은 중앙 정부에 반하는 그 어떠한 선택에도 동조할 생각이 없습니다. 오히려 내가 충고 하나 하겠습니다. 아니, 충고 하나 할게. 야 이 병신 같은 새끼야. 넌 지금 내게 내뱉은 말을 수습하기 위해 처참한 대가를 치러야 할 거야. 대한민국의 안위를 위해 동분서주하는 중앙 정부를 이기적인 집단으로 매도한 순간, 부산 정부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어. 알겠어? 너희와 인천은 이제 끝이라고!”
툭.
통신을 끊어 버렸다.
더는 대화를 나눌 이유가 없었다.
“병신들.”
반란.
참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중앙 정부는 대재앙 이후 대한민국의 힘을 독점했고, 그것은 일개 도시 몇 개가 연합한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물론 로만 드미트리라는 괴물이 나타났다는 말은 들었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국가 단위의 힘을 감당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상식적인 판단이었다.
정문호는 곧바로 어딘가로 연락을 걸었다.
상대는 김정태 대통령.
반란에 가담하지 않은 만큼, 그는 확실하게 반란을 망쳐 버릴 생각이었다.
* * *
서울.
비상 회의가 소집되었다.
굳은 표정으로 자리한 수뇌부들의 모습에, 김정태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금 전. 하남시장 정문호가 인천의 반란 사실을 알렸다. 현재 부산과 울산을 비롯한 몇몇 지방 정부가 인천에 가담한 상태이며, 그들은 머지않아 중앙 정부를 공격할 것이라는 계획을 밝혔다.”
“어디서 감히!”
“대통령님. 반란 세력들을 처벌해야 합니다!”
수뇌부들이 분개했다.
대재앙 이후.
이와 같은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중앙 정부는 막강한 권력으로 대한민국을 장악했건만, 정체도 확실하지 않은 존재가 나타나 대한민국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고 있었다.
수뇌부들은 김정태의 눈치를 연신 살폈다.
간단한 항명 따위도 허락하지 않는 엄격한 존재이기에, 그의 분노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 최대한 비위를 맞추었다.
김정태가 말했다.
“우리가 몬스터들의 공격에 고전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겨우 그 정도의 틈에 반란을 일으키는 것이라면, 인천을 비롯한 반란 세력은 처음부터 불순한 의도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겠지. 지금 당장 지방 정부 전체에게 내 의지를 전달하라. 인천 정부에 가담하는 세력들은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나중에 잘못된 선택이었다며 무릎을 꿇고 사죄할지라도, 반란을 결정한 지방 정부의 수장들을 비롯한 그의 핏줄을 모조리 죽여 버릴 것이다.”
눈빛이 사납게 변했다.
강렬한 살의를 분출했다.
“특히 반란을 부추긴 부산시장 차영민은 반란 세력을 어떻게 처벌하는지 본보기로 삼을 것이다. 감히 내게 대항하려고 했다는 점. 그 하나만으로도 그는 평안한 죽음을 허락받지 못할 것이다.”
의도가 명백했다.
로만 드미트리와 인천.
그들은 반란을 주도하는 세력이기에 처벌이 당연하다면, 부산과 같이 뒤늦게 동조한 세력들을 본보기 삼아 반란에 가담하지 못하게 만들려는 의도였다.
수뇌부들은 김정태의 발언을 빈말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한다면 하는 사람이고, 대한민국은 곧 불바다로 뒤덮일 것이다.
“그리고 중국에서 답변을 보내왔다. 레드 타임이 끝났기에 앞으로 며칠 안으로 중국의 지원군이 도착할 것이다. 그들은 서울을 공격하는 몬스터들을 토벌하는 것을 넘어서, 대한민국의 내란을 부추기는 로만 드미트리와 같은 극악무도한 존재들을 처벌하는 일에도 힘을 보태겠다는 의사를 전달해 왔다. 그러니 인내하라. 서울의 문제들은 곧 해결될 것이고…….”
사람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피했다.
“반란 세력들은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 * *
하남은 시작일 뿐이었다.
김정태의 메시지가 전달되면서 서울 근방의 지방 정부들은 반란에 가담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반란 계획이 발각되는 바람에 흉흉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사실 이와 같은 상황을 예상했던 차영민은, 하남을 비롯한 우호 세력은 계획에서 배제하자고 말했었다.
그때.
차영민의 주장은 분명히 타당했다.
“대한민국의 지방 정부들은 단 한 곳도 예외 없이 중앙 정부에 반발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반란에 가담한다는 확실한 보장은 아닙니다. 서울 근방의 지방 정부와 저희같이 멀리 떨어진 지방 정부들은 사정이 다릅니다. 그들은 서울의 안전이 확보되면 가장 먼저 도움을 받으며, 반대로 반란 세력에 가담할 경우 가장 먼저 공격당할 확률이 높습니다. 그들로서는 혜택을 저버리면서까지 반란에 동조할 이유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로만 드미트리 님. 제안을 거절할 것이 명백한 몇몇 세력은 계획에서 배제해야 합니다. 일단 반란을 성공시키고, 그 이후에 전체를 통합해도 늦지 않습니다.”
부산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반란은 반드시 성공해야만 하기에, 차영민은 현실적인 상황을 파악해서 필요한 조언을 말했다.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차영민의 생각에 동의했다.
하지만.
로만 드미트리는 달랐다.
“그것이 내가 바라던 바다.”
고개를 들었다.
당황한 눈빛으로 바라보자, 로만 드미트리가 본인의 생각을 밝혔다.
“내가 말한 3일의 기준은 적아를 구분하기 위함이다. 똑같은 전제에서 내게 협력하는 사람들은 앞으로 나와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갈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미래는 배제해 버릴 것이다. 그러니 모두에게 똑같이 제안하라. 나 로만 드미트리를 따르라고. 그들에게 당장의 도움과 미래를 보장했는데도 따르지 않는다면, 그들에게 허락된 미래는 그 정도일 뿐이다.”
오만한 자신감이었다.
이로 인해 불리해진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결국.
불안은 현실이 되었다.
하남이 반란 사실을 중앙 정부에 알려 버렸고, 중앙 정부는 지방 정부에게 경고 메시지를 보내는 등 빠르게 대응했다.
아직도 그들이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몬스터들의 공격을 막느라 그들은 정신이 없었지만, 대재앙이 끝나고 나면 그들의 분노는 인천을 비롯한 반란 세력을 단번에 쓸어버릴 것이다.
“……서로 물러나지 않는 싸움은 한쪽이 멸망해야만 끝이 나겠지.”
창밖을 보았다.
맑았다.
혼란이 휩쓸고 지나간 부산의 풍경에, 그는 황당하게도 조금도 불안한 마음이 들지 않았다.
‘내가 확인했던 그 모습. 나는 그것을 믿는다. 로만 드미트리 님이 패배하는 모습은 떠오르지가 않아.’
믿었다.
믿어야만 했다.
자신은 이미 로만 드미트리의 승리에 모든 것을 걸었으니까.
차영민은 시선을 돌리더니, 거절당할 것을 알고도 지방 정부들에게 연락을 돌리기 시작했다.
* * *
3일.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로만 드미트리는 박민우와 함께 하루에도 십여 개의 도시를 구해 주었고, 그렇게 하나둘씩 반란 세력에 가담하면서 순식간에 몸을 부풀렸다.
중앙 정부도 가만히 지켜보지만은 않았다.
그들은 몬스터들을 상대하는 와중에도 하남시장 같은 인물들을 포섭, 곧 벌어질 반란 세력과의 격돌을 대비했다.
그리고 현재.
로만 드미트리가 화상 회의를 진행했다.
반란에 가담한 지방 정부들은 자리를 떠날 수 없기에, 그들은 화상을 통해서라도 얼굴을 비추었다.
로만 드미트리가 말했다.
“내가 말한 기한이 모두 지났다. 나는 이 자리에 얼굴을 비춘 너희를 나의 사람으로 받아들일 것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적으로 규정할 것이다.”
대한민국.
반으로 쪼개졌다.
중앙 정부를 따르는 사람들, 로만 드미트리를 따르는 사람들.
예외는 존재하지 않았다.
혼란한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확실한 선이 필요했고, 사람들은 3일이라는 짧은 시간에 본인의 미래를 맡길 사람을 결정했다.
대부분은 반란 세력에 가담했다.
의정부와 파주 같은 세력들도 로만 드미트리를 따르면서, 사실상 서울 근방을 제외하고는 모두 로만 드미트리를 따랐다.
이해관계로 인한 결과였다.
언뜻 보면 북쪽의 도시들은 중앙 정부를 따를 것 같지만, 그들은 북한에서 밀려드는 몬스터들을 상대하면서도 항상 중앙 정부의 외면을 받아 왔다.
그간의 불만이 폭발했다.
중앙 정부에게 공격받아 멸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대한민국의 판도가 바뀌길 바란다는 것이 그들의 입장이었다.
사람들이 모인 자리.
강렬한 열망이 로만 드미트리에게 집중되었다.
“현재 중앙 정부는 아직도 몬스터들과의 사투를 이어 가고 있다. 지금 그들과 전쟁을 벌이는 것은 국제법에 위반되나, 나는 눈앞의 기회를 지켜볼 만큼 자비로운 사람이 아니다. 중앙 정부를 공격할 것이다. 그들을 무너트리고, 타국의 개입을 허락하지 않는 새로운 왕국을 건설할 것이다.”
왕국.
새로운 미래였다.
로만 드미트리가 말하는 미래에는, 중앙 정부와 같은 무책임함은 존재하지 않았다.
“너희는 나를 따르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 과정에서 너희에게 바란 것은, 중앙 정부의 부당함에 반발하고 나를 따라 목숨을 바치겠다는 의지다. 지금부터 너희는 각자의 도시에서 자리를 지켜라. 도시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하며,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차분하게 기다려라.”
[……전쟁을 미룬다는 의미입니까?]
차영민이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반란 세력을 기껏 끌어모았는데, 반란 세력에게 기다리라고 있으라니.
인천 사람들만 아는 진실이었다.
로만 드미트리는 그들과 처음 서울 정벌을 논의할 때, 전쟁의 승리에 지방 정부는 그리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지방 정부들은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가기 위한 퍼즐일 뿐. 승리의 퍼즐은 아니었다.
그 말의 의미.
그것을 말했다.
“아니. 이번 전쟁은 인천의 힘만으로 진행할 것이다. 너희가 따르는 인천이, 그리고 나 로만 드미트리가.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 가기 위한 충분한 자격을 갖추었다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하라.”
화면 너머.
모두가 놀랐다.
너무나도 파격적인,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발언이었다.
“그 시작은 하남이다. 지금부터 중앙 정부에 가담한 세력들을 모조리 섬멸하고, 서울로 진격해 중앙 정부를 무너트릴 것이다.”
현생의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로만 드미트리.
그가 어떤 존재인지를.
그의 반대편에 선다는 것의 의미를, 사람들은 머지않아 뼈저리게 경험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