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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는 평범하게 살 수 없다-520화 (520/615)

520화 서울 정벌 (7)

조금 특이한 성동격서였다.

로만 드미트리가 대놓고 영등포를 공격하는 사이, 인천의 병력은 금천구로 향했다.

“……정말 괜찮을까요?”

이태성이었다.

로만 드미트리 홀로 영등포를 공격하겠다고 말했을 때, 박민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걱정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김정태는 극단적인 안전주의라 영등포에 서울의 전력을 배치해 두었는데, 그곳을 공격하겠다는 건 서울을 정면으로 맞닥트리겠다는 의미였다.

물론.

로만 드미트리를 믿었다.

하지만 그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일을 이렇게 어렵게 해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박민우가 웃었다.

“다들 제가 왜 로만 드미트리 님에게 충성을 맹세했는지 의문이 많으실 겁니다. 그분의 정의감에 매료된 것은 맞으나, 정확히는 제 전승 능력과 관련이 있습니다. 저는 로만 드미트리 님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고 있습니다.”

조금 전.

혼자 떠나 버린 로만 드미트리의 모습에, 박민우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같이 갈 줄 알았다.

로만 드미트리와 같이 날뛰고 싶었는데, 자신은 직할대와 같이 움직이라는 명령에 잠깐 풀이 죽은 모습을 보였다.

그러다 이태성의 말에 귀를 쫑긋거렸다.

로만 드미트리의 과감한 작전을 이해하지 못하는 반응에, 자신만 로만 드미트리의 진실(?)을 아는 특별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박민우의 입에서 이야기가 술술 흘러나왔다.

“무엇을 상상하든 로만 드미트리 님은 그 이상의 역경을 이겨 내신 분입니다. 중앙 정부? 그따위 것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강력한 적이 로만 드미트리 님을 핍박했는데도, 아무것도 아닌 기반에서부터 세력을 형성해 세상 전체를 집어삼켰습니다. 그때, 로만 드미트리 님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여러분들은 모를 겁니다. 그야말로 압도적이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뒤집히는 상황에서, 로만 드미트리 님은 절대적인 존재감을 드러내며 적들을 모조리 도륙했습니다. 그런데 그깟 중앙 정부가 뭐가 문제겠습니까. 중앙 정부가 아닌 강대국 전체가 나서도, 로만 드미트리 님 한 명을 감당하지 못할 겁니다. 아, 물론 현재의 로만 드미트리 님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제 전승(?)이 경험한 로만 드미트리 님의 전승(?)을 말하는 겁니다.”

“……로만 드미트리 님도 전승자라는 겁니까?”

“맞습니다.”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로만 드미트리가 전승 능력자라니.

처음 듣는 말이었다.

충분히 신빙성이 있었다.

드미트리의 능력자들이 ‘전승의 기억’을 공유하는 것처럼, 로만 드미트리라면 분명히 특별한 과거가 있을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백의의 마법사는 전승자라는 소문이 무성했던 존재.

발언하는 사람이 정의의 대명사인 만큼, 인천 사람들로서는 박민우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로서는 진실을 알 수 없었다.

박민우가 말한 로만 드미트리의 적.

중앙 정부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적이, 바로 ‘알렉산드르 황제’ 본인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직접 상대해 보았기에.

박민우는 단언할 수 있었다.

중앙 정부?

중국?

미국?

코웃음만 나왔다.

자신이 9서클 마법을 사용하며 마계의 악마들을 종으로 부렸을 때도, 로만 드미트리는 단 한 번도 전력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런 힘을 고스란히 유지한 존재에게 적들이 얼마나 많든 그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단언컨대 하루도 지나지 않아 모두 정리될 것이다.

박민우가 진심으로 행복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자신이 적이 아닌 아군의 포지션에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이런 멍청한 녀석들아. 너희는 알까. 천마 코인이 얼마나 달달한지.’

더는 말을 아꼈다.

박민우가 단호하게 말했다.

“로만 드미트리 님은 절대 패배하지 않을 테니, 우리는 우리의 임무에 충실하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때마침.

멀리 금천구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예상대로, 금천구는 아직 몬스터들의 공격을 받고 있었다.

* * *

레드 타임 마지막 날.

서울 근방에 세 개의 몬스터 웨이브가 생성되었다.

하필이면 그중 하나가 금천구였고, 영등포에 머물던 조달수는 황급히 금천구로 복귀했다.

그때부터 지옥 같은 나날을 보냈다.

매일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던 그는, 중국의 지원군이 합류한 이후 드디어 희망을 보았다.

“공격하라! 몬스터들을 물리치고 몬스터 웨이브를 소멸시켜라!”

마침내.

차원의 뒤틀림을 찾아냈다.

몬스터들을 어느 정도 정리하고 몬스터 웨이브를 소멸시킨다면, 금천구는 평화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조달수는 나름대로 전장에서 병력을 진두지휘했다.

기껏해야 몬스터들이 절대 도달할 수 없는 거리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정도였지만, 그는 자신을 대단한 명장이라 생각했다.

‘이건 오히려 내게 기회야. 몬스터 웨이브를 해결한다면, 대통령님도 나를 다시 보는 계기가 되겠지.’

로만 드미트리.

그로 인해 인생이 망가졌다.

상대를 잘못 건드리는 바람에, 김정태는 조달수를 희생양으로 삼으려 했다.

다행히도 로만 드미트리가 반란을 일으키면서 목숨을 구제할 수는 있었지만, 한번 버림받았기에 언제 똑같은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조달수는 중국으로 가서 중국의 도움을 끌어냈다.

그것만으로는 공이 모자란다는 생각에, 이렇게 전장까지 나와서 자신의 존재 의미를 증명하려 했다.

승리가 코앞이었다.

목소리를 더욱 높였다.

그렇게 한참 열이 올랐을 그때.

“파이어 레인.”

화륵.

화르르르륵.

콰콰콰콰콰콰쾅!

갑작스럽게 하늘에서 화염이 떨어져 내렸다.

금천구의 병사들이 비명을 질렀고, 조달수는 당황한 얼굴로 황급히 주변을 살폈다.

“이, 이게 대체 뭐야? 마법이라니? 설마 마법을 사용하는 몬스터라도 나타난 거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무리 봐도 그런 몬스터는 보이지 않았다.

순간.

멀리서 인간 무리가 포착되었다.

바로 박민우와 그 일행이었다.

“이런 미친 새끼들이.”

로만 드미트리는 병력을 효율적으로 운용했다.

본인은 영등포를 직접 공격하지만, 인천의 병력은 아직 위기를 해결하지 못한 금천구로 보냈다.

직접 금천구를 쓸어버리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이이제이(以夷制夷).

금천구는 한참 몬스터와 전쟁을 벌이는 도중이다.

병력을 함부로 움직일 수 없는 그들에게, 백일과 박민우가 멀리서 마법을 사용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비겁하다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로만 드미트리는 전쟁을 완벽하게 주도하기 위해서, 영등포를 제외한 곳에서도 적을 흔들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조달수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어떻게든 대항해야 하나, 몬스터들을 상대하는 상황에서 박민우를 처리할 방법이 없었다.

화륵.

화르르르륵.

“살려 줘!”

“크악!”

병사들이 죽어 나갔다.

몬스터들도 기세등등하게 병사들을 밀어붙였다.

“빌어먹을.”

이를 악물었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아무리 중국의 지원군이 합류했다고 한들, 이대로라면 상황이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

‘중국의 핵심 전력은 모두 영등포에 있다. 일단은 퇴각해서 그들의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그로서는 알지 못했다.

영등포.

그곳이 이미 쑥대밭이 되었다는 사실을.

조달수가 소리쳤다.

“퇴각하라! 일단 물러나서, 전열을 재정비할 것이다!”

* * *

30분?

아니, 절반인 15분도 지나지 않았다.

영등포 광장이 피로 물들었다.

억겁(億劫)처럼 느껴질 뿐, 정말 짧은 시간에 로만 드미트리는 수많은 생명의 목숨을 앗아 갔다.

“……괴, 괴물!”

“다가오지 마!”

병사들이 더는 달려들지 못했다.

그제야 알았다.

로만 드미트리가 차원이 다른 존재임을.

분명히 머릿수로 압도할 수 있다고 믿었는데, 아무리 공격해도 유의미한 공격을 성공시키지 못했다.

주변에 널브러진 시체들.

일반 병사들이 아니다.

대부분은 일반 병사들이 맞지만, 서울에서 명성을 떨치던 실력자들의 현실도 일반 병사들과 다르지 않았다.

뇌우(雷雨)라고 불리던 번개 능력자? 머리가 날아간 채로 바닥에 널브러졌다.

수많은 실력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고 알려진 스펙터(specter)? 사지가 찢겨 나갔다.

분명 개개인의 능력만 따지면 대단한 존재들인데, 그들이 일반 병사1에 불과한 최후를 맞이했다.

압도되었다.

검에서 뚝뚝 흘러내리는 피.

대적할 수 없는 존재였다.

홀로 영등포 한복판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부터, 그에게 자신감의 원천이 있음을 알았어야 했다.

로만 드미트리가 말했다.

“김정태 대통령. 이제 의미 없는 소모전은 그만하고 모습을 드러내라. 너는 내가 체력이 떨어지길 원하겠지만, 아무리 많은 병사를 희생시킨다 한들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나는 적으로 규정한 이들을 모조리 죽일 것이다. 결과가 정해진 상황이라면, 네가 승리했을 때 널 따르는 사람을 한 명이라도 더 살려야 하지 않나.”

팟.

피를 털어 냈다.

검이 날카롭게 번들거렸다.

공포에 질린 시선을 마주하면서, 로만 드미트리는 숨 한번 흐트러지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네게 약속하지. 도망치는 것으로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걸음을 옮겼다.

그때였다.

로만 드미트리가 다시 전투를 시작하려는 모습에, 병사들 너머로 한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멈춰라!”

김정태.

대한민국의 대통령.

그가 드디어 전면에 나섰다.

* * *

일련의 상황.

김정태는 경악했다.

영등포 한복판에 나타날 때만 하더라도 로만 드미트리가 스스로의 무덤을 팠다고 생각했는데, 그가 보여 준 모습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단 한 명을 감당하지 못했다. 사방에서 비명이 들렸다.

처음에는 차분하게 상황을 지켜보던 그는, 이대로라면 병사들만 전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절대 허락할 수 없었다.

병사들의 목숨이 소중해서가 아니라, 로만 드미트리를 제거한 이후의 미래도 생각해야 하지 않은가.

병사들은 자신의 권력.

김정태가 앞으로 나섰다.

정확히는 병사들 뒤에 있었다.

혹시라도 로만 드미트리가 자신을 공격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는 친위대의 보호를 받으며 소리쳤다.

“로만 드미트리! 네가 뭐라고 떠들든 내가 그동안 대한민국을 위해 한 일들을 부정할 수는 없다. 만약 내가 중앙 정부를 창설하지 않았다면. 대통령으로서 대한민국을 이끌지 않았다면. 이 나라가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으리라고 생각하나? 천만에!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의 목소리.

일반 시민들이 들었다.

그들은 먼발치에 숨었으나, 고개를 내밀어 광장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지방 사람들의 희생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대한민국과 같은 약소국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우리로서는 어떤 것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더 필요한 일인지를 판단해야만 했다. 결국에는 살아남지 않았나. 나는 대한민국을 위해, 그 누구도 하지 않으려는 책임을 떠안았을 뿐이다.”

그의 말.

옳을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은 그의 선택 덕분에 살아남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로만 드미트리는 결과론적인 옳음을 옳다고 말하지 않았다.

“네가 옳았다면 전쟁은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 나라를 구성하는 대부분이 나를 지지하지 않았다면, 나는 기존의 체계를 따랐을지도 모른다. 이 전쟁은 너와 내가 존재하기 때문에 발발했다. 너는 네가 옳다고 믿고, 나는 네가 옳지 않는다고 믿는다. 둘 중 하나가 죽어야만 끝나는 싸움이며, 네가 존재하고 너를 따르는 사람이 있는 한 나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사나운 음성이었다.

김정태는 확신했다.

로만 드미트리를 죽이지 않는다면.

자신이 살아남을 수 없음을.

김정태가 악에 받쳐 소리쳤다.

“친위대는 명을 받들라!”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지금 당장 로만 드미트리를 처단하라! 목숨을 바쳐서라도 저 극악무도한 존재를 죽여라!”

착.

착착착.

친위대가 앞으로 나섰다.

수백 명의 헌터들.

모두 수준급의 실력자들로 구성되었으며, 그들의 선두에 있는 친위대장은 십수 년 전에 A등급에 오른 괴물이었다.

소문으로는 이미 S등급의 수준을 갖추었으나 전력을 감추기 위해 시험을 보지 않는다는 존재. 그들이 로만 드미트리를 향해 무기를 겨누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샤오룽 님. 부탁드리겠습니다.”

“당연히 도와드려야지요.”

샤오룽.

중국의 헌터였다.

그가 나타났기에, 김정태는 로만 드미트리를 상대로 모습을 드러내도 된다고 판단했다.

샤오룽을 필두로 중국의 헌터들이 무기를 뽑아 들었다.

샤오룽이 웃었다.

그의 말은 마법 아티팩트로 자연스럽게 통역되었다.

“네가 강하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하지만 대국(大國)에 비할 바는 아니다.”

스륵.

그의 자신감.

허황된 것이 아니다.

샤오룽의 이름을 들은 순간, 친위대도 자신감을 얻었다.

“내 이름은 샤오룽. 너를 죽일 사내의 이름이다.”

중국의 S등급 헌터.

대혼란의 시대에 홀로 십만 명을 도륙했다는 사내.

검귀(劍鬼) 샤오룽이 바로 그의 정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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