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는 평범하게 살 수 없다-524화 (524/615)

524화 서울 정벌 (11)

각 도시의 시장들.

인천의 주요 인물들.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 갈 수뇌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로만 드미트리는 오래전부터 이와 같은 상황을 준비했고, 인천의 사람들과 논의를 끝낸 부분들을 말했다.

“앞으로 대한민국은 대한제국(大韓帝國)으로 이름을 바꿀 것이며, 나 로만 드미트리는 초대 황제로서 이 나라를 이끌 것이다.”

사람들이 당황했다.

대한제국이라니!

시작부터 감당하기 힘든 주제를 언급했다.

대한민국이 국호를 변경하는 순간, 세계를 지탱하는 강대국들이 적대적인 반응을 보일 것이다.

이미 국제법 위반으로 명분을 내어 준 상태.

대한민국과 같은 약소국이 스스로를 제국이라 칭한다면, 강대국들은 본인들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어떤 짓을 벌일지 알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중국은 본인들 외에 황제의 칭호를 허락하지 않았다.

이름을 바꾸었다는 단 하나의 사실로 인해, 대한민국은 공공의 적으로 여겨질 가능성이 있었다.

‘전생의 시작점과 같았다면 나는 차근히 기반을 다졌을 것이다. 하지만 현생은 그럴 필요가 없다. 내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는 것에 반발하는 그 무엇도, 대한제국의 미래를 방해할 수 없을 것이다.’

포부를 드러냈다.

대통령이라는 칭호로는 부족했다.

앞으로 전 세계를 통치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자리에 오를 필요가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변화는 격정적으로 이루어졌다.

“수도는 서울에서 인천으로 이전할 것이고, 인천은 중앙 정부와는 다르게 나라 전체를 다스리는 체계를 갖추어 대재앙과 같은 국가 위험 상황에 즉각 대응할 것이다. 그리고 서울은 앞으로 하나의 도시로 취급할 것이며, 새로운 서울시장으로는 청산의 구철호가 맡을 것이다.”

“구철호라니요.”

“수도의 이전은 이해합니다. 새로운 체계를 만드는 데 필요한 과정이라지만, 그래도 한때 수도였던 도시를 구철호에게 맡기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의 반응은 정상적이었다.

청산의 구철호.

특별한 임팩트가 없는 인물이다.

모두가 인천을 떠날 때 인천에 남은 유일한 길드라지만, 겨우 C등급 용병에 불과한 구철호에게 서울시장은 과분한 자리였다.

서울에는 현재 많은 기반이 남아 있다.

수도 이전을 진행할지라도 서울은 핵심 도시로 남을 것이기에, 그에 어울리는 합당한 인물이 맡을 필요가 있었다.

여러 문제.

선뜻 받아들일 수 없었다.

설명을 바라는 사람들의 눈빛에, 로만 드미트리가 좌중을 압도했다.

“너희가 구철호를 저평가하는 요인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지금의 서울에는 모두가 인정하는 뛰어난 인재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반란에 성공했으나, 불과 몇 개월 전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중앙 정부에 대항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중앙 정부는 인천을 배척했고, 중앙 정부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인천을 모두 떠나 버렸다. 그러한 상황에 청산은 인천에 남았다. 그것이 그들의 능력이다.”

요행이 아니다.

결과를 알면 쉬운 일처럼 느껴지겠지만, 청산과 같은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흔하지 않았다.

“그들은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길드의 명운을 걸었으며, 반란이 성공한 지금과는 다른 그때의 선택은 가치가 높을 수밖에 없다. 서울은 지금 혼란에 빠졌다. 각 구역을 담당하던 의원들이 모두 죽어 버렸고, 수도가 이전되는 상황에 그들은 중심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크다. 그렇기에 구철호를 적임자로 판단했다. 모두가 아니라고 말할 때도 현명하게 상황을 판단한 청산이라면, 어느 한 곳에 치우치지 않고 서울을 위한 판단을 내리겠지. 현재의 서울에 필요한 것은 눈부신 번영이 아니라 안정적인 체계다.”

“…….”

사람들이 입을 다물었다.

로만 드미트리의 말.

일리가 있었다.

구철호는 작은 길드의 수장에 불과하지만, 박기태와 같은 사람들의 조언을 받아들여 로만 드미트리가 저평가를 받을 때 그의 라인에 탑승했다.

그것 또한 능력이었다. 서울의 혼란을 잠재우기 위한 적임자를 찾는다면, 천검의 민찬기 같은 인물이 아닌 청산의 구철호가 더 필요했다.

동의했다.

상황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모습에, 로만 드미트리가 말했다.

“이 나라는 격변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국제법을 어기고 국호까지 변경한 우리를 수많은 나라가 견제할 것이며, 어쩌면 그것들을 빌미로 전쟁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앞으로 우리는 끊임없는 공격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황제의 자리에 오른 이유는, 외부의 요인에 흔들리지 않는 강인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다. 강대국의 입김이라고 해서 이리저리 휘둘리는 나약한 나라가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우리의 기준에 맞추어야 하는 나라. 그러니 나를 믿어라. 불합리한 상황에서 나를 믿었던 그 이유를 떠올리고 내게 모든 것을 걸어라.”

강렬했다.

대한제국.

수도 이전.

구철호의 시장 선임.

예민할 수밖에 없는 모든 문제가, 로만 드미트리의 존재 하나로 해결되었다.

그를 믿었다.

반란을 성공한 순간부터, 로만 드미트리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신처럼 자리 잡았다.

“앞으로 대한제국을 위협하는 존재들은, 나 로만 드미트리로 인해 중앙 정부와 똑같은 참담한 최후를 맞이할 것이다.”

* * *

그날.

사람들에게 충격적인 소식이 전달되었다.

대한제국으로의 국호 변경과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오른 로만 드미트리.

몇몇 사람들은 불안한 기색을 보였다.

“……대한제국의 황제라니. 이러다 강대국들이 우리를 공격하면 대체 어쩌려고 그러는 거지.”

“로만 드미트리라는 존재를 믿어도 되는 걸까. 그는 광기(狂氣)가 보일 정도로 적대 인물들을 잔인하게 처벌했고, 백성이라느니, 황제라느니 현대 사회에 걸맞지 않은 표현들을 사용하잖아. 그가 만약에 극악무도한 독재자라면, 우리는 김정태 정부보다도 더한 고통을 겪을 거야.”

무조건적인 불신이 아니었다.

비상식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의 반응이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오히려 로만 드미트리를 지지했다.

“난 로만 드미트리 황제 폐하를 믿어. 모두가 지방을 외면할 때, 그분은 말뿐인 도움이 아니라 정말로 지방의 문제를 모두 해결해 주었잖아. 그분은 우리와 사는 세계가 다를 뿐이야. 엄청난 힘을 갖추었기에,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고 할지라도 강대국들이 전처럼 대한제국을 건드리지는 못할 거야. 생각해 봐. S등급 몬스터를 일격에 날려 버린 괴물을 대체 누가 적대할 건데?”

“로만 드미트리 님의 잔인함을 나는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아. 그분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했어. 내 사람들이 위험해질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적을 엄벌한다고. 우리가 ‘내 사람’에 해당하는데 대체 뭐가 걱정이야? 실제로 그분은 내란이 끝나자마자 피해를 본 사람들을 먼저 챙겨 주고 있잖아.”

사람들은.

로만 드미트리를 믿었다.

중앙 정부와는 다르게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를 믿고 따를 이유로는 충분했다.

수차례 반복되었던 대재앙.

대한민국이 이토록 평화롭게 문제를 해결한 적은 없었다.

내란으로 많은 피를 흘렸지만, 적어도 몬스터에 의해 도시가 멸망한 경우는 없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공통으로 동의하는 부분이 있었다.

“혼란한 시대에 자비롭고 유한 지도자는 필요하지 않아. 평화로운 시기에는 태평성대(太平聖代)를 이룰지도 모르나, 하루에도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어 가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는 나라를 강인하게 이끌어 줄 맹수 같은 지도자가 필요해. 로만 드미트리야말로 혼란한 시대에 어울리는 지도자야. 어떤 불안 요소가 있든 간에, 그가 6번째 대재앙에서 이 나라를 구원한 것은 사실이잖아.”

새로운 지도자.

로만 드미트리를 온전히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아직은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확신했다.

적어도 중앙 정부와는 다르게, 로만 드미트리가 다스리는 미래는 안전할 것 같다는 생각만큼은 동일했다.

대재앙의 혼란이 정리되는 시기.

대한민국은.

아니, 대한제국은 그렇게 변화를 맞이하고 있었다.

* * *

인생 역전의 드라마.

구철호가 그러했다.

옛날 같았으면 단순한 용역 업체로 취급받았을 중소 규모의 용병 길드를 운영하던 그가, 지금은 자신의 명판이 내걸린 집무실에 있었다.

서울 시장이라니. 머리가 팽팽 도는 기분이었다.

아드레날린이 미친 듯이 분비되었고, 로만 드미트리에 대한 충성심이 마구마구 폭발했다.

그런 그에게.

박기태가 신신당부했다.

“길드장님. 아니, 서울 시장님. 출세했으니 기쁜 건 이해하겠지만, 로만 드미트리 황제 폐하는 상벌(賞罰)이 확실한 사람이에요. 누가 봐도 파격적인 인사인데, 시장님이 제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로만 드미트리 황제 폐하에게 향하는 비난만큼이나 시장님이 추락하는 건 시간문제예요.”

“……그럼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하면 되지?”

“간단한 문제예요. 우리에게 부여된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하면 돼요. 서울은 수도 이전으로 혼란에 휩싸일 거고, 그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서 시장님이 선택되었어요. 사람들의 갈등을 해결하고 서울을 안정시키는 것만으로도, 로만 드미트리 황제 폐하는 우리를 유용하다고 판단하겠죠.”

박기태.

확실히 상황을 판단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로만 드미트리가 저평가를 받았을 때, 청산이 잔류한 이유는 전적으로 박기태의 조언 덕분이었다.

그리고 구철호는.

자신의 현실을 알았다.

박기태와 같은 인물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그는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정리했다.

“기태야. 나 정말 잘하고 싶다. 그러니까 내 옆에서, 내가 잘못하는 일이 있다면 바로 지적해 줘.”

“알겠어요.”

다음 날부터.

구철호를 찾는 행렬이 이어졌다.

격변의 시기를 맞이하면서 서울의 길드들이 본인들의 미래를 보장받기 위해 뛰어다녔고, 당연히 서울 시장 구철호는 제일 먼저 구워삶아야 할 존재였다.

그들은 구철호를 찾아가 다양한 방식으로 제안했다.

누군가는 길드의 전력을 제공하는 대가로 혜택을, 누군가는 길드의 힘을 내세워서 으름장을. 그렇게 자신을 압박하는 수많은 사람을 마주하며 구철호는 단호하게 말했다.

“불허합니다. 앞으로 서울은 이 도시를 위해 힘쓰는 길드들 위주로 혜택을 부여할 예정입니다. 그것이 못마땅하다면 서울을 떠나십시오. 로만 드미트리 황제 폐하가 말하는 새로운 미래에서, 개개인의 욕심으로 나라를 망치는 존재들은 이 구철호가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거대 길드들?

전혀 무섭지 않았다.

적대 세력의 머리를 단칼에 날려 버리는 로만 드미트리에 비하면, 겁을 먹일 이유가 전혀 없었다.

아무리 무섭다고 한들.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로만 드미트리만 하겠는가.

구철호는 AI 로봇과도 같았다.

로만 드미트리가 말한 체계를 완벽하게 따랐고, 본인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기에 박기태와 같이 각 분야에서 뛰어난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지금의 위치에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했다. 그렇기에, 로만 드미트리라는 동아줄을 꽉 움켜잡았다.

구철호의 부임.

그때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서울은 내리막길을 걸을 것이며, 로만 드미트리의 무력과는 별개로 나라 운영은 아직 의심스럽다고.

그런데 사람들은 예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로만 드미트리.

두 번의 삶에서 두 번의 군림을 이루어 냈다.

수많은 백성을 다스렸고, 태평성대를 이루었던 그에게 나라 운영은 의심할 영역이 아니었다.

머지않은 미래.

사람들은 구철호와 같은 의문들이 느낌표로 변할 날이 찾아올 것이다.

* * *

며칠이 흘렀다.

짧은 시간이나, 대한제국은 빠르게 변화에 적응해 나갔다.

그중 중요한 포인트는 세 가지였다.

첫 번째.

인천의 번영이었다.

인천이 수도로 결정된 이후, 천검 민찬기와 같은 거대 길드들이 인천에 소속되기를 바랐다. 김준혁은 그들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들이 투자하는 돈으로 도시 발전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특히 강민호가 이끄는 수호대대를 창설하며 인천의 병사들을 본격적으로 훈련시키기 시작했다.

그것은 두 번째 포인트와 관련한 부분이었다.

로만 드미트리는 사람들에게 앞으로의 행보를 말했다.

“앞으로 지방의 체계를 안정화시키고, 식량과 같은 문제들을 나라 내부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형성할 것이다. 몬스터들의 존재는 두려워하지 마라. 새로운 중앙 정부는 대한제국 전체가 일상생활에 집중할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앞으로 6개월 뒤. 대한제국이 완벽하게 자리를 잡는다면, 몬스터들로 득실거리는 북한과 제주도 토벌을 진행할 것이다.”

북한과 제주도.

몬스터들에게 함락된 땅이다.

그래서 대재앙이 일어날 때마다 항상 활화산처럼 엄청난 위험 요소를 분출했는데, 로만 드미트리는 대한제국의 힘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선언했다.

파격적인 행보였다. 강대국들도 함부로 나설 수 없는 문제였는데, 로만 드미트리는 판단하는 과정에 망설임이 없었다.

마지막 세 번째.

이건 공개되지 않은 부분이었다.

로만 드미트리는 내란을 경험하면서, 중국의 존재를 다시 한번 눈여겨보게 되었다.

‘내가 살던 중원 무림과 중국은 다른 세계다. 실제로 그때 당시 중국의 황제는, 중원 무림을 눈엣가시처럼 여겨 무림인 말살 정책을 펼치기도 했지. 새로운 세상에서 나는 무림의 존재를 알아보았으나 역사에 그런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나와 있었다. 현세의 사람들 또한, 무림의 무공을 현세의 기술이 아닌 전승자의 기술로 받아들이고 있지. 하지만 내가 만났던 샤오룽이라는 인간은 분명히 무림인이었다. 무언가 있다. 그들에 대해 조사한다면, 무림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겠지.’

샤오룽의 태세 전환.

단순히 패배를 직감했기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무언가를 발견한 눈빛이었고, 로만 드미트리는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박기태를 중심으로 정보부대를 창설했다.

로만 드미트리는 박기태의 능력을 고평가했다.

앞으로 그는 구철호를 보좌하면서, 정보부대로서 샤오룽을 비롯한 중국에 관해 알아보기로 했다.

사실 북한 정벌은 중국과도 관련한 예민한 문제였다.

수뇌부들은 그에 걱정스러운 반응을 보였으나, 로만 드미트리는 중국의 존재를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만약 중국에 무림의 명맥이 남아 있다고 한들.

그들은 자신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중원 무림이 가장 꽃피웠던 시기에, 그 세상을 군림했던 존재가 바로 천마 백중혁이지 않은가.

격변의 시기.

빠르게 변화하는 그 무렵, 대한제국을 강타하는 소식이 들려왔다.

[LA가, LA가 무너졌습니다!]

미국은 레드 포인트였다.

몬스터들의 계속되는 공격에, 결국에는 LA라는 거대한 도시가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고 말았다.

한국은 평화를 되찾았다.

하지만 아직.

세계적으로 대재앙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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