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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는 평범하게 살 수 없다-543화 (543/615)

543화 약육강식(弱肉强食) (4)

며칠 전.

러시아는 미국과 마찬가지로, 중국의 황제 왕위룡이 로만 드미트리를 만나기 위해 직접 찾아갔다는 정보를 확인했다.

러시아는 곧바로 비상 회의를 소집했다. 제2차 국제회의를 준비하는 상황에서, 왕위룡의 행보는 불안 요소를 의미했다.

수뇌부들이 말했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습니다. 중국과 대한민국, 두 나라가 모종의 거래를 맺은 것 같습니다.”

“만약 대한민국이 이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과 손을 맞잡은 것이라면…… 이는 러시아에 큰 악재입니다. 중국은 항상 대륙 정벌을 입에 올리며 주변 국가들을 호시탐탐 노려 왔습니다. 그나마 러시아는 강력한 국력을 갖추었기에 그들의 위협에서 안전할 수 있었지만, 중국이 대한민국을 흡수한다면 그때부터는 국경을 맞댄 다른 나라들을 노릴 것이 분명합니다.”

“어떻게든 두 나라의 관계를 견제해야 합니다. 이대로 무난하게 상황이 흘러간다면, 러시아는 좋지 않은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습니다.”

타당한 의견이었다.

중국의 성장은 러시아의 악재였고, 마르코프 대통령으로서는 이번 일을 절대 간과할 수 없었다.

마르코프가 말했다.

“십 년 전. 왕위룡이 처음 중국을 통일했을 때, 우리는 다른 문제가 더 중요하다는 이유로 중국의 행보를 방관했다. 그건 실수였다. 만약 그때 왕위룡이라는 선례를 확실하게 처리했다면, 러시아가 중국과 영토를 맞닿았다는 이유로 불안해할 이유는 존재하지 않았겠지. 우리는 과거의 실패를 답습해서는 안 된다. 러시아가 앞으로 세계제일의 강대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제2의 왕위룡으로 성장할 로만 드미트리의 존재를 어떻게든 사전에 처단해야만 한다.”

단 한 번의 잘못된 선택.

러시아가 심각하게 반응하는 이유였다.

마르코프는 분명히 중국을 사전에 무너트릴 기회가 존재했는데, 분열되어 버린 나라의 저력을 간과했다.

중국은 왕위룡을 중심으로 빠르게 제국의 위상을 갖추었다.

그때는 이미 아무리 공격해도 무너지지 않을 만큼 견고해졌고, 국제 사회는 중국을 세계적인 강대국 중 하나로 인정했다.

그때와 같았다.

중국이 대한민국을 합병하는 것을 방관한다면.

폭발적으로 세력을 확장할 중국이, 머지않아 러시아까지 집어삼키겠다고 이빨을 들이밀 것이 분명했다.

상식적으로 다른 선택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때만 하더라도 왕위룡과 로만 드미트리의 만남이, 왕위룡이 직접 찾아간 것인데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이 고개를 숙이고 들어갔다고 생각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왕위룡은 절대 고개를 숙이지 않을 호전적인 인물이며, 약소국으로 분류되는 대한민국과는 다르게 중국은 세계적인 강대국이지 않은가.

칼자루는 대한민국이 아니라 중국에 있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했다.

진실은 달랐으나.

마르코프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수뇌부들을 바라보며 사나운 눈빛을 보였다.

“만약 국제회의에서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얻어 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대한민국을 처단할 것이다. 중국이 대한민국을 통해 원하는 바를 절대 이루지 못하도록.”

“설마…….”

수뇌부들의 머릿속.

동시에 떠오르는 단어가 있었다.

마르코프는 그들의 생각을 현실로 만들었다.

“비밀리에 전쟁을 준비하라. 제2차 국제회의를 기점으로, 우리는 세상의 판도를 바꿀 것이다.”

* * *

그리고 현재.

콰앙!

마르코프는 신경질적으로 회의실을 나섰다.

예상과는 달랐다.

정보대로 중국과 대한민국 사이에는 모종의 거래가 있었지만, 설마 중국이 신하의 나라를 자처할 줄은 몰랐다. 머릿속이 완전히 엉켜 버리는 기분이었다.

상식적으로 중국의 태도를 받아들일 수 없기에, 기껏 준비했던 계획을 진행해야 할지 말지에 대한 확신도 생기지 않았다.

수뇌부가 따라붙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계획은 취소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중국과 미국이 대놓고 대한민국을 지지하겠다고 선언하지 않았습니까. 만약 이대로 전쟁을 벌였다간 저희가 오히려 당할 수도…….”

“아니. 지금 한발 물러난다면, 우리는 과거의 실패를 답습하게 될 것이다.”

마르코프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생각을 거듭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를.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로만 드미트리의 건방진 태도를 보고 있노라면 한발 물러날 수는 없었다.

“로만 드미트리는 왕위룡보다 더한 시한폭탄이다. 그와 같은 인물에게 충분한 시간을 허락한다면, 대한민국은 머지않아 10년 전의 중국이 엄청난 성장을 이룩한 것처럼 러시아를 위협할 존재로 거듭나겠지. 이번에도 그따위 미래를 방관할 수는 없다.”

“문제는 파트리스 대통령입니다. 그는 참전을 망설이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파트리스는 원래 그런 인간이다. 항상 주도적으로 뭔가를 하는 척하지만, 정말 결단이 필요할 때는 한발 물러나 망설이는 겁쟁이. 그에게 필요한 건 계기다. 마론교의 교리에 따라 로만 드미트리를 적대하는 그로서는, 우리가 먼저 전쟁을 벌이고 판을 깔아 준다면 결국에는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겠지. 시기의 문제다. 처음에는 우리가 모든 것을 떠안는 그림이 되겠지만, 전쟁이 하루 이틀만 지나더라도 이번 전쟁은 전 세계로 번져 나갈 것이다.”

품을 뒤졌다.

타오르는 욕망에, 마르코프는 시가를 꺼내 입에 물었다.

연기를 깊게 빨아들였다.

코와 입에서 뿌옇게 내뿜어지는 연기에, 조금은 가라앉은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지금은 불을 지필 사람이 필요하다. 그리고 전쟁이란, 설마 할 때가 가장 위협적인 법이지.”

히죽, 웃었다.

대한민국.

그들은 방심하고 있을 것이다.

로만 드미트리가 자리를 비운 지금이야말로, 그들에게 제대로 한 방을 먹일 절호의 기회였다.

“로만 드미트리가 귀국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라. 그리고 지휘부에 연락해, 곧바로 대한민국의 수도를 공격하라.”

“알겠습니다.”

먼저 물러나는 수뇌부.

마르코프는 연기를 연거푸 빨아들이며, 아직 로만 드미트리가 나오지 않은 회의실을 비릿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 * *

로만 드미트리도 회의실을 나섰다.

이제 대한제국으로 복귀할 생각이었는데, 텔레포트 마법진을 담당하는 마법사로부터 부정적인 답변을 들었다.

“죄송합니다만, 지금 당장은 텔레포트 마법진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텔레포트 마법진을 구성하는 마나석에 문제가 생겼고, 이를 재정비해서 재가동하려면 적어도 2~3시간 정도가 필요합니다.”

“알겠다.”

일상적인 문제였다.

단순히 도시 몇 개를 뛰어넘는 텔레포트라면 몰라도, 대한제국에서 미국이라는 머나먼 거리를 이동하기 위해서는 텔레포트 마법진과 같은 시설의 도움이 필요하다.

마법사의 말대로라면 재정비할 시간이 필요한 상황. 로만 드미트리는 특별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한발 물러났다.

그로부터 10분 뒤.

박민우가 통신을 받더니, 굳은 얼굴로 로만 드미트리에게 다가왔다.

“황제 폐하. 조금 전, 러시아가 전쟁을 선포하고 인천을 공격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제2차 국제회의가 불발될 것을 대비해서, 미리 대한제국을 공격하기 위한 준비를 끝마친 것 같습니다.”

“예상대로 텔레포트 마법진이 고장 난 것도 우연은 아니겠군.”

“맞습니다.”

재밌는 상황이었다.

러시아는 교묘한 함정을 파 놓았다.

제2차 국제회의가 진행되는 장소는 미국이었고, 텔레포트 마법진을 담당하는 마법사 또한 미국의 사람이었다.

그런데 만약 그를 의심하고 핍박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지겠는가. 동맹국인 미국과 불화가 생길 수밖에 없다.

마르코프는 로만 드미트리가 곧바로 복귀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면서, 미국인 스파이를 내세우는 방법으로 2중 함정을 파 놓았다.

이대로 시간을 지체한다면.

인천은 위험한 상황에 놓일 것이다.

마르코프는 전쟁을 주도할 완벽한 팔을 깔았다고 생각했지만, 문제는 상대가 로만 드미트리라는 점이었다.

대한제국을 떠나며.

모든 가능성을 계산에 넣었다.

로만 드미트리는 담담한 얼굴로 박민우에게 말했다.

“존 해리슨 대통령에게 통신을 연결하라.”

“알겠습니다.”

빠르게 준비했다.

이미 로만 드미트리가 어떻게 반응할지를 예상했기에, 존 해리슨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통신기를 넘겼다.

[방금 러시아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텔레포트 마법진을 담당하는 마법사가 러시아의 스파이인 것 같습니다. 제가 대한제국으로 복귀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며, 동시에 미국과 대한제국의 관계를 망치려는 속셈이겠죠. 제게는 스파이의 정체를 증명할 시간적인 여유가 허락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 자리에서 그를 처리하고, 후에 관련 자료를 보내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예민한 문제였다.

텔레포트 마법진을 담당하는 마법사.

미국 소속이다.

심증만으로 그를 처리한다는 것은 잘못된 일이었지만, 로만 드미트리는 대담하게도 존 해리슨에게 이와 같은 상황을 강요했다.

사실 단순히 심증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로만 드미트리는 얌전하게 재정비 시간을 기다린다고 말했지만, 박민우는 이미 담당 마법사가 의도적으로 시간을 지연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 순간부터 대한제국 정보부에서 마법사에 관련한 정보를 확보하기 시작했지만, 로만 드미트리는 그 사실을 굳이 존 해리슨에게 설명하지 않았다.

연합의 관계.

누가 우위인지를 드러냈다.

로만 드미트리의 차가운 음성에, 존 해리슨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사람을 잘못 관리한 탓입니다. 원하는 대로 일을 처리하시고, 관련 자료는 따로 필요하지 않습니다.]

“예,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툭.

통신을 끊었다.

더는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로만 드미트리가 걸음을 옮겼고,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마법사가 곤란하다는 얼굴로 앞을 막아섰다.

“죄송합니다만, 마법진을 고치려면 충분한 시간이…….”

번뜩.

퍽.

피가 튀었다.

머리가 날아갔다.

주변 사람들이 당황하며 놀란 얼굴을 보였지만, 로만 드미트리는 검에 묻은 피를 털어 내며 차갑게 말했다.

“박민우. 텔레포트 마법진을 재가동하라.”

“좌표는 어디로 설정할까요?”

일련의 상황.

로만 드미트리는 사전에 만일의 가능성을 계산했다.

미국과 중국의 배신.

혹은 프랑스와 러시아의 공격 등등.

스스로의 힘을 맹신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중 러시아가 독단적으로 움직이는 상황에, 로만 드미트리는 어떻게 대응할지 이미 계산을 끝냈다.

“우리는 지금부터 러시아로 간다.”

* * *

그 시각, 인천.

일련의 사람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러시아의 특수부대, 게나찌트(геноци́д)였다.

그들은 작전을 실행하기 며칠 전부터 비밀리에 대한제국에 입국했고, 명령이 떨어질 때까지 일반인들 틈에 숨어서 때를 기다렸다.

게나찌트는 부대원 전원이 A~B등급으로 구성되어 있다.

S등급과 같은 특별한 힘은 갖추지 못했지만, 그들은 걸음마를 떼는 그 순간부터 특수 임무를 위해서 단련되어 왔던 존재.

단순히 등급으로 표현할 수 없는 그 이상의 ‘무언가’를 갖춘 존재들이었다.

게나찌트의 수장.

파벨이 탁한 목소리로 부대원들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우리는 두 개 조로 나누어 1조는 인천 정부 건물을 공격해 인천 시장 김준혁을 처리하고, 2조는 텔레포트 마법진을 점령해 본대가 인천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길을 열 것이다.”

“알겠습니다.”

명령은 간결했다.

대규모 병력을 이동시키기 위해서는 텔레포트 마법진 점령이 필수였고, 그와 더불어 김준혁의 암살을 임무 순위에 올려놓았다.

대한제국을 조사하면서 김준혁은 위험인물로 분류되었다.

강한 존재들만큼이나 머리를 쓸 줄 아는 지휘관은 귀찮은 존재였고, 로만 드미트리가 자리를 비운 상황에서 김준혁을 먼저 처리한다면 빠르게 대한제국을 함락시키리라 판단했다.

지금부터는 실행으로 옮길 차례.

파벨이 하이드(hide) 스킬을 사용하며 모습을 감추었다.

“러시아의 영광을 위하여.”

“러시아의 영광을 위하여.”

파스스스-

아직 밖은 햇볕이 비추는 낮이었다.

하지만 파벨과 게나찌트의 부대원들은 하이드 스킬로 몸을 숨겼고, 두 개 조로 나뉘어 순식간에 목표한 장소로 이동했다.

파벨은 1조를 맡았다. 김준혁 주변에 호위 병력이 있을 것을 대비, 그들을 빠르게 처리하고 2조에 합류할 계획이었다.

푹.

“컥.”

경비들을 순식간에 처리했다.

파벨은 빠르게 길을 열었고, 미리 파악한 대로 김준혁이 머무는 집무실로 이동했다.

그렇게.

목적지에 도달했다.

은밀하게 문을 열고 들어선 파벨과 부대원들은, 의자에 앉아 업무를 처리하는 김준혁의 모습을 발견했다.

“네가 김준혁 시장인가.”

파벨이 모습을 드러냈다.

더는 숨길 이유가 없었다.

경비병들을 처리하면서 행적이 드러난 상태였고, 어차피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으로 병력이 몰려들 터. 그때 김준혁은 죽은 목숨일 것이다.

김준혁이 제법 머리를 사용한다고는 하나, 헌터로서의 능력을 조금도 갖추지 못한 일반인이 게나찌트의 암살에서 살아남을 방법은 없었다.

김준혁이 고개를 들었다.

주변을 포위하는 암살자들의 모습에, 담담한 표정으로 품 안에서 권총 한 자루를 꺼냈다.

“겨우 권총 따위로 우리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세간의 평가와는 다르게 참으로 어리석구나.”

슥.

파벨이 단검을 들었다.

그가 걸음을 옮기자, 김준혁은 권총의 탄창을 확인했다.

“네 말처럼 사람들은 항상 내게 그런 질문을 하더군. 왜 몬스터들에게 통하지도 않는 권총을 지니고 다니냐고. 어차피 너 정도 지위에 있는 사람이 위험할 때는, 권총은 전혀 통하지 않을 거라고.”

웃었다.

묘한 분위기였다.

목숨이 경각에 달했는데도, 암살자들이 거리를 좁혀 오고 있는데도 전혀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탈칵.

탄창에는 6발이 있었다.

그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탄창을 결합했다.

“이건 사선에서 물러나지 않겠다는 내 의지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투쟁하다, 정말 끝이라는 판단이 들었을 때는 붙잡혀 고문을 당할 바에 내 머리를 직접 쏴서 죽어 버리겠다는 의지.”

슥.

총을 들었다.

그 순간.

파벨과 암살자들은 더는 듣지 않겠다는 듯이 김준혁을 향해 맹렬하게 달려들었다.

탕!

타타타탕!

권총이 열기를 뿜어냈다.

5번의 총성.

파벨의 입가가 씰룩였다.

김준혁은 살기를 포기하고, 마지막 한 발을 본인의 머리에 발사하려는 의도라고 파악했다.

그런데.

타앙!

팍.

마지막 한 발마저도 발사했다.

파벨은 아무렇지도 않게 총알을 튕겨 냈지만, 김준혁의 싸늘한 얼굴을 보고는 순간 불길함이 엄습했다.

뭔가가 잘못되었다.

권총이 통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방금 의지에 대한 발언을 내뱉고도, 6발의 총알을 전부 자신들에게 발사할 이유가 없었다.

걸음을 멈추었다.

소리를 질러 경고하려는 그 순간.

파팟.

파파파파파팟.

세상이 뒤틀렸다.

땅과 천장이 뒤집히며 미지의 세계로 빨려들었다.

환영(幻影) 진법.

환영에 완벽하게 빠져들기 전, 김준혁의 목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환영한다. 대한제국의 본거지에 발을 들인 것을.”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