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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는 평범하게 살 수 없다-546화 (546/615)

546화 약육강식(弱肉强食) (7)

중국 국경과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거리.

그곳에 존재하는 스코보로디노는, 중국이 언제 공격해 올지 모르는 불안감에 높디높은 성벽을 쌓아 올렸다.

성벽 위.

러시아의 지휘관이 불안한 눈빛으로 성벽 너머를 바라보았다.

박민우가 이르쿠츠크를 급습해 함락시켰다는 보고가 있었지만, 스코보로디노는 그곳과 달리 국경과 인접한 만큼 언제나 전투를 치를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러시아로서는 중국의 진군이 사실이 아니길 바랐다.

중국은 러시아와 비견되는 강대국이니만큼, 그들이 작정하고 밀고 올라온다면 막을 수 있다는 확신이 없었다.

하지만.

버텨야만 했다.

마르코프가 말하길, 단 이틀만 버텨도 세계 정부가 러시아의 편을 들어 줄 것이라고 했다.

“……저기 적들이 보입니다.”

“빌어먹을.”

병사들의 얼굴이 불안감으로 물들었다.

중국군.

그들이 진군하는 모습이 보였다.

엄청난 인구수만큼이나 새카만 파도처럼 밀려들었고, 그들이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시야에 보이는 적들이 코앞에 도달할 때까지는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그들은 공격 사거리가 닿지 않는 곳에서 정렬하더니, 한 존재가 인파에서 떨어져 나와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척.

걸음을 멈추었다.

오만한 얼굴로 성벽을 올려다보니,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는데도 귓속을 파고드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왕위룡이다.”

더는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다.

모두가 아는 이름.

왕위룡은 사나운 기세를 드러냈다.

“지금부터 너희에게 3분의 시간을 주겠다. 3분 안에 성문을 열고 항복한다면 모두 살려 주겠지만, 3분이 지나도록 성문이 열리지 않는다면 목숨을 걸고 항전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겠다.”

“우리는 절대 항복하지 않는다!”

“3분이다.”

성벽 위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무시했다.

이미 러시아군은 전투를 준비하는 모양새였지만, 왕위룡은 상황을 파악하고도 망부석처럼 가만히 지켜보았다.

굳이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박민우와 경쟁이 붙었다고는 하나, 3분의 시간이 대세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로만 드미트리를 상대로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왕위룡이지만, 전 세계를 기준으로 그는 이런 여유가 허락되는 존재였다.

스륵.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검을 뽑았다.

3분이 지났다.

왕위룡은 병사들에게 공격 명령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홀로 성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공격하라!”

“왕위룡을 막아라!”

팟.

파파파파팟.

성벽 위에서 화살이 발사되었다.

처음에는 천천히 걸어가던 왕위룡이, 화살을 쳐 내는 순간부터 엄청난 속도로 성벽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번 전쟁. 로만 드미트리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처음으로 자신을 증명하는 자리였다.

왕위룡은 확실한 전과를 바랐다. 단순하게 박민우를 넘어서는 정도의 전과가 아니라, 중국의 황제였던 왕위룡이 어떤 존재인지를 증명하는 전과.

로만 드미트리가 이번 전쟁을 통해 자신을 완벽하게 신뢰하기를 바랐다.

본래라면 병사들을 먼저 보내는 것이 맞다.

하지만 처음부터 자신을 드러낼 생각으로 선봉에 섰다.

어느새 성벽에 도달했고, 러시아의 마법사들은 마법 방어를 발현하며 왕위룡의 공격을 대비했다.

일촉즉발의 상황.

왕위룡의 마력이 폭발했다.

‘천마검법.’

콰릉.

콰르르르르르릉.

마력이 들끓었다.

로만 드미트리는 왕위룡의 천마검법이 가짜라고 말했지만, 이 세상의 기준으로 왕위룡의 천마검법은 감히 적수가 없다고 평가받는 기술이었다.

폭발적으로 분출되는 마력. 그것이 단번에 성문을 갈라 버렸다.

콰앙!

콰콰콰콰콰콰콱!

성문이 찢겨 나갔다.

단 일격.

마법사들의 방어는 무의미했다.

성문 너머로 경악으로 얼룩진 적군들의 표정이 보였다.

왕위룡이 안으로 뛰어들어 학살을 시작하자, 먼발치에서 지켜보던 중국군도 본격적으로 움직였다.

“진군하라!”

“대한제국을 위하여!”

“적들을 모조리 도륙하라!”

겨우 10분도 지나지 않은 시간.

스코보로디노가 피로 물들었다.

왕위룡은 적들을 무차별적으로 도륙하더니, 자신을 뒤따라온 병사들에게 강렬한 의지를 표출했다.

“러시아를 로만 드미트리 황제 폐하께 선물로 드릴 것이다. 그러니 단 한 놈도 살려 두지 마라!”

박민우에 이어.

왕위룡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 * *

그 무렵.

마르코프는 초조한 기색을 보였다.

지금쯤이면 게나찌트로부터 텔레포트 마법진을 확보했다는 연락이 도착해야 했는데, 계획과는 다르게 아직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불안한 마음이 팽배해졌다.

마법 통로를 확보하지 못하는 바람에, 이미 공격 준비를 끝마친 러시아의 전력이 모스크바에서 발이 묶였다.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건가.’

고개를 저었다.

실패를 의심하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주요 전력이라고 할 수 있는 로만 드미트리와 박민우는 국제회의에 참석한 상태였고, 대한민국에는 별 볼 일 없는 녀석들만 남았다.

그들만으로 게나찌트의 기습적인 공격을 막는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마르코프는 빠르게 대한민국을 함락시킬 수 있다는 판단에 전쟁을 결심했기에, 시간이 조금 걸릴 뿐 게나찌트가 금방 연락해 올 것이라고 믿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헐레벌떡 달려오는 통신병의 모습에, 마르코프는 당연히 기다렸던 승전보가 도착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대통령님! 이르쿠츠크가 함락당했습니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콰앙!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르쿠츠크가 함락당하다니!

뜬금없는 소식이었다.

어서 설명하라는 눈빛으로 쳐다보자, 병사가 숨을 헐떡이며 말을 이었다.

“조, 조금 전. 이르쿠츠크의 지휘관인 바실리예프로부터 ‘백의의 마법사’가 기습적으로 공격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통신이 끊겼습니다. 처음에는 통신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이르쿠츠크의 상황을 확인한 결과 아무래도 적들에게 당한 것 같습니다.”

“……이런.”

말을 잃었다.

눈빛이 흔들렸다.

이르쿠츠크에는 주요 전력이 배치되지 않았다.

기습적인 공격에 무너질 만한 곳이지만, 문제는 백의의 마법사 단 한 명이 한 개의 도시를 무너트렸다는 사실이었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백의의 마법사의 행적을 파악해서 대비하려고 했는데, 또 다른 소식이 마르코프를 충격에 빠트렸다.

“주, 중국이 스코보로디노를 함락시켰습니다!”

두 번의 소식.

두 번의 패배.

불안감이 현실이 되었다.

아무런 소식이 없는 게나찌트가, 어쩌면 임무에 실패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대한민국이 우리의 공격을 예상했던 말인가. 아니, 예상했다 할지라도 지금과 같은 반격은 정보부가 파악한 전력을 상회한다. 만약 이대로 기세에서 밀려 버린다면 이틀을 버티기는커녕 우리가 참패할지도 모른다.’

불안감을 가라앉혔다.

전쟁은 이제 시작되었다.

겨우 두 개의 도시가 무너진 것으로는, 러시아와 같은 강대국에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

마르코프가 말했다.

“일단 상황을 파악하라. 두 도시가 기습적인 공격에 무너졌다고는 하나, 대한민국은 러시아 전체를 동시다발적으로 공격할 만큼의 전력을 갖추지 못했다. 문제는 중국의 북진 정도겠지. 차라리 그들에게 길을 열어 주고 ‘게나찌트’에게 연락해 어떻게든 마법 통로를 확보해야만 한다.”

“알겠습니다.”

승리의 가능성.

포기하지 않았다.

지도를 펴며 침착하게 다음 상황을 준비하려는데, 마르코프를 충격에 빠트리는 또 다른 소식이 들렸다.

“대통령님! 백의의 마법사가 이번에는 체렘호보를 공격했습니다!”

“뭐라고?!”

이건.

빨라도 너무 빠른 움직임이었다.

* * *

박민우.

그도 왕위룡의 연락을 받았다.

스코보로디노를 함락시켰다는 말에, 그의 심기가 단단히 뒤틀렸다.

‘그래, 어디 한번 해보자는 거지?’

명백한 도발이었다.

자신이 조금 자극했다고 해서, 왕위룡은 대놓고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곧바로 체렘호보를 공격했다.

이미 이르쿠츠크의 일로 그들은 지원 병력을 불러들였지만, 박민우는 굳이 시간을 끌지 않았다.

“다크 필드.”

풍덩.

어둠을 일으켰다.

사방을 캄캄하게 만든 뒤에, 다크 게이트를 열어 몬스터들을 밀어 넣었다.

“마, 막아!”

“크아아아아악!”

사방에서 비명이 들렸다.

박민우.

그야말로 일인군단이었다.

홀로 수천의 몬스터를 동원했고, 적들이 몬스터들을 상대하는 사이에 마법을 발현해 모조리 쓸어버렸다.

단순히 다수를 상대할 때는 박민우만 한 존재는 없었다.

왕위룡과 같은 검사들은 적들을 일일이 베어 버려야 하는 것에 비해, 박민우는 순식간에 시체로 산을 쌓아 버렸다.

물론.

호락호락하게 당해 주지는 않았다.

체렘호보는 지원 병력을 불러들였고, 그중에는 러시아를 대표하는 S등급 헌터도 존재했다.

하지만.

카앙!

카카카카카카캉!

“크으윽.”

박민우가 보유한 S등급 망자.

그건 자하르뿐만이 아니었다.

자하르가 얇고 날카로운 검으로 몰아붙이자, 그와 맞물리듯 또 다른 S등급 망자 고트가 거대한 철퇴를 휘둘렀다.

그야말로 숨이 막힐 듯한 연계 공격이었다. 러시아의 S등급 헌터인 엘란은 강철봉을 휘두르면서 대항했으나 순식간에 궁지에 몰렸다.

뭔가 이상했다. 망자들은 분명히 이지(理智)를 상실했는데도,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완벽한 호흡을 보였다.

그 순간.

엘란은 보았다.

자신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따라붙는 박민우의 시선을.

‘……설마.’

두 망자.

박민우가 그들을 컨트롤했다.

그들은 육신만 살아 있을 뿐, 그 능력을 온전하게 살리는 것은 바로 박민우의 능력이었다.

소름이 돋았다.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박민우가 백의의 마법사이기 전에, 오라 혁명을 일으켰던 알렉산드르 황제였다는 사실을 몰랐기에 엘란으로서는 눈앞의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박민우는 애초에 근접 전투에 대한 이해도가 다른 사람들을 압도했다. 그 능력이 두 망자를 통해서 고스란히 표출되고 있었다.

엘란이 밀리자.

일반 병사들도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상황을 타개하고자 엘란이 무리하는 순간, 그의 머리 위로 한 줄기의 벼락이 떨어졌다.

“그만 죽어, 다크 라이트닝.”

번뜩.

빠지지지지직!

끝이었다.

엘란이 실이 끊긴 인형처럼 무너졌다.

그러자 박민우는 엘란을 향해 다가가더니, 다크 게이트를 열어서 그의 시체를 그대로 집어삼켰다.

“드디어 네 번째 S등급 망자를 확보하는구나.”

LA 사태.

그때도 사실 S등급 헌터들의 시체를 확보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때는 워낙 보는 눈이 많았기에, 박민우는 눈물을 삼키고 싸늘하게 식어 버린 시체를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달랐다. 엘란과 같은 녀석들의 시체가 사라진다고 해서 그 누구도 자신에게 따져 묻지 못할 것이다.

강력한 마법에 소멸(?)되었다고 하면 그만이기에, 박민우는 겸사겸사 시체를 챙겼다.

영혼을 잃은 시체를 망자로 만들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리지만, 자신을 따르는 자하르와 고트처럼 엘란 또한 매우 소중한 전력으로 변하게 될 것이다.

체렘호보도 끝이었다

상황이 마무리되자, 박민우는 다크 필드를 해제하고는 핸드폰을 들어 어딘가로 문자 한 통을 보냈다.

[체렘호보 함락. 다음 도시로 이동. ㅎ]

의도적이었다.

생각해 보니 통신병을 통해 전하는 것보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문자로 보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수신자는 중국의 통신 센터.

하지만 문자는 분명히 왕위룡도 확인할 것이다.

핸드폰을 챙긴 박민우는, 잔뜩 신난 얼굴로 다음 도시로 이동했다.

* * *

이르쿠츠크.

스코보로디노.

체렘호보.

경악스러운 소식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또 다른 소식이 마르코프를 강타했다.

“중국의 진군이 생각보다 빠릅니다. 틴다에서 병력을 물리고 후퇴하자, 네륜그리까지 진군해서 그곳을 함락시켰습니다.”

장군과 멍군.

양쪽에서 난리였다.

백의의 마법사가 전과를 세우면, 왕위룡의 중국군 또한 밀리지 않겠다는 듯이 다른 도시를 무너트렸다.

마르코프로서는 정신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왕위룡은 그렇다 치더라도 백의의 마법사가 이 정도로 강한 줄은 몰랐으며, 문제는 아직 로만 드미트리의 행적이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애초에 이번 전쟁은 로만 드미트리와 중국군을 대비했는데, 로만 드미트리가 움직이지도 않은 시점에 이렇게까지 밀린다면 답이 없다. 백의의 마법사. 일단 그부터 처리할 필요가 있다.’

백의의 마법사.

일당백이었다.

LA 사태 때 백의의 마법사는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지만, 지금 러시아를 상대로 보여 주는 행보는 그것조차도 전력이 아니었음을 증명했다.

아직도 게나찌트는 연락이 없었다. 모스크바의 전력을 대한민국으로 보낼 수 없는 상황이라면, 일단 러시아의 안전을 확보해야 했다.

마르코프가 말했다.

“지금 당장 파트리스 대통령에게 전하라. 우리는 지금부터 대한민국을 상대로 전력을 다할 것이다. 만약 대한민국을 견제할 생각이라면, 러시아의 힘을 빌릴 기회는 지금밖에 없다고 말해라.”

“알겠습니다.”

끼익.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휘를 맡을 생각이었다.

우선 러시아의 전력을 움직여 백의의 마법사를 처리하고, 파트리스 대통령이 본격적으로 참전하겠다는 의사를 드러낸다면 그때부터는 왕위룡의 중국군과 로만 드미트리의 대한민국을 차례로 처리할 것이다.

순서의 문제다.

마르코프는 승리를 의심하지 않았다.

러시아가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그는 확신을 가질 만한 충분한 근거를 경험해 왔다.

하지만.

그는 걸음을 멈추어야 했다.

이번에도 충격적인 소식이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마, 마르코프 대통령님! 로, 로만 드미트리가, 로만 드미트리가 지금 대통령님을 만나겠다고 찾아왔습니다!”

“……그게 무슨.”

눈을 부릅떴다.

로만 드미트리!

러시아가 처리해야 할 1순위 대상.

그가 직접 모스크바를 찾아오다니.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건 상식을 완전히 벗어나는 행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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