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4화 기술 혁명 (1)
처음에는 별생각이 없었다.
미라클에는 하루에도 수백 명의 손님이 찾아왔고, 그중에서 정말 특별하다고 말할 수 있는 손님들은 사전에 예약 전화를 걸었다.
아무런 예고 없이 정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부터 그저 그런 손님이라는 의미였다.
하성태는 일상적으로 손님을 받으려고 했는데, 검을 확인하는 순간 묘한 느낌을 받았다.
착.
‘이것 봐라.’
손아귀에 안정적으로 감기는 느낌.
예사롭지 않았다.
어떤 검들은 검의 형태에 충실하지 못한 경우가 태반인데, 이 검은 사용자를 철저하게 배려한 느낌이 들었다.
사실 외형만 보더라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평범한 롱소드보다 약간 짧은 형태의 검은 사용자가 추구하는 전투 스타일을 의미했고, 검의 제작자가 맞춤형으로 만든 것이 분명했다.
조명에 검날을 살짝 비추자 빛이 매끄럽게 검 표면을 타고 흘러내렸다.
‘워우.’
감탄사가 새어 나왔다.
탄탄했다.
최근에 이만한 완성도의 검을 확인한 적이 없을 정도로, 장인이 피땀을 흘리며 제작한 노력이 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것을 상등품으로 구분할 수는 없었다.
단순히 검의 완성도만 놓고 보았을 때는 분명히 대단하나, 몬스터를 상대하는 혼란스러운 시대에서 철제 무기는 단순히 검의 능력만으로 평가받지 못했다.
바로 스킬 발현도.
마나를 얼마나 잘 받아들이냐에 따라, 비로소 무기는 진정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아마 이 무기는 무기로써의 완성도만 뛰어난 것이겠지. 참으로 아이러니한 현실이야. 제작(製作) 스킬로 스킬 발현도를 높이면, 스킬에 의존한 탓에 무기의 완성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지. 물론 그렇다고 스킬 발현도만 높다고 해서 상등품을 책정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로 완벽한 형태는 제작 스킬을 배제하고 오로지 직접 만들어 낸 무기일 가능성이 매우 커.’
그간의 경험.
하성태는 찰나의 시간에 결론을 내렸다.
담담한 얼굴로 스킬 발현도를 확인하는데, 마나석의 마나를 흘려보내는 순간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화악.
“……?!”
마나가 순식간에 빨려 들어갔다.
검이 영롱하게 빛을 발했고, 그 찬란한 형태는 눈앞의 검이 마나를 완벽하게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머릿속이 혼란스럽게 뒤얽혔다.
무기로서 완벽한 만큼 마나 무기로서는 결함을 드러내야 정상인데, 찰나의 순간이지만 확실히 정상 범주를 벗어났다. 그때부터는 사무적으로 대응할 수 없었다.
심각하게 검을 살피며, 이번에는 아까보다 주입하는 마나의 양을 늘렸다.
화아악.
처음에는 F등급의 마나를.
그것을 완벽하게 소화해 내자 E등급, D등급 C등급, 그렇게 차례로 마나를 늘려 갔다.
박철민의 무기는 아귀처럼 마나를 집어삼켰고, 어느덧 B등급에 해당하는 마나까지 꾸역꾸역 빨아들였다.
‘이런 미친.’
확실했다.
이 무기.
B등급에 해당했다.
일반 사람들은 그냥 좋은 무기 정도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직접 마나 무기를 제작하는 장인의 시각에서는 달랐다.
철제 무기로서 완벽하면서 B등급의 스킬 발현도. 사실 말이 B등급이지, 마나를 받아들이는 능력 자체도 B등급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대단했다.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이건 자신이 감당할 수준이 아니다.
당장 마스터를 불러야 할 문제였고, 하성태는 자신도 모르게 박철민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거 어디서 난 물건입니까?”
말하고도 아차 했다.
이런 대단한 물건의 제작자를 순순히 말해 줄 리가 없었다.
그런데.
“정부에서 보급받은 보급품입니다.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겁니까?”
“……이게 보급품이라고요?”
보급품.
전혀 생각지도 못한 단어에, 하성태의 사고가 완전히 정지되고 말았다.
* * *
지금, 이 상황.
박철민으로는 잘 이해가 되질 않았다.
이번에 대재앙과 전쟁을 치르면서, 로만 드미트리에게 검을 하사받은 직할대원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전부 감탄하는 반응을 보였다.
검의 진가는 전장에서 드러났다. 단순히 스킬 발현도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아무리 많은 적을 상대하더라도 검이 부러지거나 무뎌지지 않았다.
박철민 또한.
완전히 매료되었다.
그렇게 전쟁이 끝이 났다.
그동안 검을 잘 관리해 왔기에 외관상 특별한 문제는 없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수리 센터를 찾았다.
만약 검에 자신도 모르는 문제가 있다면. 그것을 방치해서 검이 부러지기라도 한다면, 박철민은 진심으로 억장이 무너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헌터로서의 삶.
이만한 무기는 처음이었다.
정말 애지중지하게 여기는 만큼, 인천의 수리 센터들을 내버려 두고 굳이 서울의 미라클을 찾았다.
그리고 지금.
황당한 상황에 직면했다.
미라클의 마스터.
대한제국 최고의 장인.
그가 하성태의 부름에 나타나, 진지한 표정으로 박철민을 바라보았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제가 한달음에 달려온 이유는 박철민 님의 무기가 예사롭지 않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스킬 발현도가 높은 무기는 세상에 많습니다. 저 또한 A등급의 무기를 직접 제작한 경험이 있는 만큼, 스킬 발현도가 뛰어난 것만으로는 이토록 놀라지 않았을 겁니다. 문제는 검 자체의 완성도입니다. 박철민 님은 ‘제작 스킬’에 대해 잘 아십니까?”
“……자세히는 모릅니다.”
“보통은 다 그렇습니다. 대재앙이 발발하고 대부분의 각성자가 헌터의 길을 택했지만, 저희와 같이 전투 능력이 배제된 각성자도 존재합니다. 제작 스킬은 마나 무기를 만들어 내는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일반적으로 철제 무기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뜨거운 화덕 앞에서 인고의 시간을 보내야 하지만, 이와 같은 방법으로는 마나 무기를 완성할 수 없습니다. 중간에 제작 스킬을 통해 마나의 길을 열어야 하며, 제작 스킬의 숙련도에 따라 마나 무기의 등급이 책정됩니다. 덕분에 인류는 몬스터를 상대할 강력한 무기를 얻었지만, 철제 무기를 제작하는 과정을 소홀히 하는 방식 때문에 마나 무기들의 단순한 물리적인 완성도 자체는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딜레마였다.
검의 완성도에 집중하자니 마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마나를 받아들이자니 검의 완성도가 떨어졌다.
그래서 네임드 장인들이 각광받았다.
그들이 만든 무기는 A등급 이상의 스킬 발현도를 나타냈으며, 동시에 무기 자체로서의 성능 또한 대단했다.
그런데 박철민의 검에서는 타협적인 부분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네임드 장인들이 만들어 낸 검은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마나 무기’라는 전제하에 평가받는데, 박철민의 검은 스킬 발현도와는 별개로 수십 년 전에 정말 검에 헌신한 장인들이나 만들어 낼 법한 퀄리티를 보였다.
고로.
믿을 수 없었다.
어떻게 이런 검이 보급품일 수가 있겠는가.
“박철민 님의 검은 완벽한 밸런스를 자랑합니다. 그러니 솔직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대체 어디에서 난 검입니까? 미치지 않고서야 이런 검을 보급품으로 뿌릴 리가 없지 않습니까. 만약 검의 비밀을, 아니 출처만이라도 알려 주신다면 충분한 사례를 해 드리겠습니다.”
마스터는 박철민이 진실을 숨긴다고 확신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장인들이 모두 군침을 흘릴 만한 보물이기에, 보급품이라는 단어로는 명검(名劍)의 출처를 설명할 수 없었다.
당황한 건 박철민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검.
정말 보급품이었다.
로만 드미트리는 서른한 개의 검을 제작해 직할대원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검의 퀄리티는 대단하나 보급품임은 명확했다.
물론 그때도 다들 대단하다고 난리가 났었다.
전쟁을 치르며 검의 가치가 더욱 확실해졌지만, 그들은 장인이 아니기에 검의 특별함을 완벽히 알지는 못했다.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박철민은 입을 다물었다.
상대가 보상을 제시해 왔지만, 이걸 만든 사람이 로만 드미트리라고 밝히는 것은 예민한 문제였다.
그런 생각을 읽은 걸까.
마스터가 말했다.
“고민하는 부분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강요하지 않겠습니다. 거절하신다면, 어쩔 수 없음을 받아들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왜 이렇게까지 간절하게 원하는지 그 마음은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검. 그야말로 혁명입니다. 이 세상이 정립한 마나 무기의 등급은 스킬의 발현도를 우선으로 책정하는데, 검의 완성도 또한 높인다면 등급의 체계는 완전히 달라질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 등급의 구분이 무의미할 정도이며, 현재의 기준으로는 B등급이나 박철민 님의 무기는 그 이상의 특별함이 있습니다. 그러니 부디 출처만이라도 말씀해 주십시오. 어떻게 만들어졌느냐에 따라, 기술 혁명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정말 간절한 목소리였다.
결국.
박철민이 한참을 고민한 끝에 말했다.
“……출처를 밝히고 말고는 제가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제게 하루의 시간을 주십시오. 제가 아는 진실을 말해 드릴지 말지, 충분히 고민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 * *
“……이렇게 된 상황입니다.”
김준혁이었다.
박철민에게 보고받은 그는, 보고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로만 드미트리에게 전달했다.
미라클의 요청.
그들은 간절했다.
출처를 밝히는 대신 대가를 요구한다면, 간과 쓸개라도 전부 내줄 것처럼 굴었다.
사실 김준혁으로서도 의외의 상황이었다.
그도 제작에 관해서는 문외한이었고, 로만 드미트리가 단순히 뛰어난 검을 만들었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그것이 설마 미라클 정도 되는 단체를 이렇게 안달 나게 할 줄은 전혀 몰랐다.
로만 드미트리가 말했다.
“처음 대한제국에 대해 알아가며, 나는 이 나라의 역사가 참으로 험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면이 바다에 주변에는 강대국들이 득실거리는 땅. 그리고 적은 인구에 자원마저도 제한적이지. 김준혁 시장. 대한제국의 이 작은 땅덩어리로 전 세계를 통치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막강한 군사력(軍事力)이 필요합니다. 혼란한 시대에, 실질적인 힘을 넘어서는 것은 없으니까요.”
“그렇다. 이 나라는 강해져야만 한다. 외부의 힘을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이 나라 자체가 강해지기 위해서는, 대한제국의 구성원들이 성장할 배경이 필요하다. 그래서 직할대를 중심으로 무공을 전수하는 것이다. 직할대, 수호대, 백일. 세 개의 단체를 중심으로 대한제국은 성장할 것이며, 머지않은 미래에 이전과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군사력을 갖추게 되겠지.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전 세계를 통치할 수 없다. 이 나라가 강하다고는 하나, 대한제국의 지리적인 여건상 모든 자원을 다른 나라에 기댈 수밖에 없다. 일정 부분을 자급자족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지.”
슥.
시선을 돌렸다.
창밖 너머로 도시가 보였다.
대한제국으로 국호를 변경하며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렸다.
직할대에 검을 전달한 것도, 단순하게 그들에게 필요한 무기를 내어 주는 의미로만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만의 무기가 필요하다. 이 나라를 중심으로 세계 시장이 돌아갈 수밖에 없도록 만들 강력한 무기가. 미라클의 반응은 그러한 가능성을 의미한다. 내가 만들어 낸 한 자루의 검이 마나 무기의 판도를 뒤바꾼다면, 생존이 간절한 세상에서 사람들은 새로운 마나 무기를 구하기 위해서 혈안이 되겠지. 바다를 건너 이 땅에 찾아와, 우리가 바라는 모든 것을 내줄 정도로.”
새로운 세상.
이 세상의 근간에는 거대한 구멍이 뚫려 있다.
헌터들은 몬스터에 대항하기 위해 강해졌으나, 그들은 본인들이 어떻게 강해졌는지를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시스템에 의한 발전. 직접 무공을 만들어 내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경험하는 등, 피땀 어린 노력이 아닌 시스템이라는 간편한 방법으로 단시간에 새로운 문명을 형성했다.
제작 또한 마찬가지였다.
제작 스킬에 의해 마나 무기가 완성되었고, 인류는 몬스터에 대항할 무기를 얻은 대신 디테일을 잃었다.
화덕의 뜨거운 열기, 강철을 두드리는 방식, 스킬이 아닌 직접 보고 느껴야 하는 감각의 영역들.
물론 좋은 마나 무기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그만한 노력이 필요하나, 과거의 노력과는 의미가 조금 달랐다.
현생의 무기들을 확인하며 확신했다.
직할대와 수호대에 전수한 무공이 파란을 일으킨 것처럼, 제작 기술 또한 혁명을 일으킬 수 있음을.
이곳 대한제국에서.
로만 드미트리는 새로운 드미트리를 꿈꾸었다.
드미트리의 근간이 강철을 제련하는 기술이었다면, 현생 또한 대한제국을 꽃피울 기술이 머릿속에 있었다.
기술의 발전.
그 중심에 대한제국이 있을 것이다.
로만 드미트리는 단순히 군사력뿐만 아니라, 대한제국의 입지를 다질 새로운 미래를 그려 나갔다.
고로.
“박철민에게 전해. 그 검, 내가 만들었다는 사실을 밝히라고.”
언제나 그랬듯.
로만 드미트리는 진실을 숨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