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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는 평범하게 살 수 없다-560화 (560/615)

560화 기술 혁명 (7)

발표회장이 들썩였다.

1조에서 곧바로 2조를 부른 것도 당혹스러운데, 마치 따라오면 돈으로 찍어 눌러 버리겠다는 듯이 3조를 연달아 외치는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사실 비합리적인 가격은 아니었다. 그동안 마나 무기 시장의 가격을 억제해 왔던 것은 철제 무기로서의 성능이었다.

천문학적인 액수에 구매할지라도 부서지면 아무것도 남지 않기에, 사람들은 암묵적으로 가격의 상한선을 받아들였다.

지금은 달랐다.

로만 드미트리의 레볼루션은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았다.

적어도 내구도에 대한 불안감은 많이 해소되었기에, 사람들은 금세 가격을 이해할 수 있었다.

“5조.”

존 해리슨이 따라붙었다.

중국의 수석?

미국의 대통령에게는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2조를 더 부르며 상대를 압박하려 했으나, 존 해리슨은 미처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왕위룡의 호가는 상식에 기반하지 않는다는 사실. 그것이 존 해리슨의 뒤통수를 강하게 때렸다.

“10조.”

“헉.”

“아무리 그래도 10조라니.”

상식을 벗어났다.

대재앙 직후 화폐의 가치는 급락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가치가 자리 잡았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조 단위는 천문학적인 액수. 존 해리슨도 섣부르게 10조 이상의 가격을 말할 수는 없었다.

로만 드미트리가 ‘마나 제작 기술’을 공개적으로 밝힌 상황에서, 굳이 S등급의 무기를 확보하자고 10조라는 엄청난 액수를 사용하는 것은 실리적이지 않았다.

당장 존 해리슨을 보좌하는 수뇌부들의 의견도 갈렸다.

“무조건 더 써야 합니다. 레볼루션은 새로운 기술의 집약체이지 않습니까.”

“안 됩니다. 무모한 소비는 비난을 받을 뿐입니다.”

“무모하다니요. 이건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중국이 자금력으로 미국을 찍어 누르려는 의도를 보였는데, 이대로 한발 물러나면 어떤 말이 나오겠습니까? 분명히 조롱하고 우습게 보는 사람들이 생겨날 것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10조라는 돈을 함부로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게다가 경매는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10조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든 낙찰받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왕위룡 주석을 쓰러트리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돈을 사용해야 할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두 의견.

팽팽하게 부딪혔다.

둘 중 틀린 의견은 존재하지 않았다.

미국은 대한제국을 따르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그렇다고 무조건적으로 충성하지는 않았다.

언제라도 최강국의 자리를 되찾겠다는 열망이 있기에, 먼 미래를 생각한다면 레볼루션을 낙찰해 기술을 분석할 필요가 있었다.

조금이라도 앞서 나가는 대가로 10조는 충분히 지급할 가치가 존재하지만, 문제는 왕위룡의 눈빛이 매우 위험해 보인다는 것이었다.

존 해리슨이 말했다.

“왕위룡의 의도는 노골적이다. 반드시 검을 낙찰받겠다는 열망을 보이는 상황에서, 우리도 끝을 볼 작정이 아니라면 지금 포기하는 것이 옳다. 치열한 접전 끝에 백기를 내건다면 패배자로 전락하겠지만, 적절한 순간에 발을 빼면 실리적인 판단을 했다고 보겠지. 왕위룡이 저렇게까지 나오는 것을 보면, 중국과 미국의 자금력을 떠나서 이건 상처 없이 이길 수 없는 싸움이다.”

“동의합니다.”

한발 물러났다.

대체 왜 왕위룡이 저렇게까지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최근 왕위룡의 행보는 미스터리였으나, 미국의 대통령으로서 감정적으로 휩쓸릴 수는 없었다.

그렇게 승부가 끝나는 듯 보였다.

갑작스럽게 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올 때까지는.

“20조.”

파격적인 금액.

사람들이 신음을 삼켰다.

왕위룡조차도 눈을 부릅뜨며, 사납게 목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했다.

* * *

조금 전.

사우디의 국왕 아흐메드는 상황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레볼루션에 대한 관심은 있지만, 굳이 큰돈을 들여 가면서까지 구매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번 발표회에서 핵심적인 부분은 대한제국이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는 것. 괜히 경쟁에 불필요한 지출을 할 바에, 그 돈으로 대한제국의 호감을 사는 것이 더 낫겠지. 그들을 통해 직접적으로 기술을 배울 수만 있다면, 우리는 자본력을 바탕으로 강력한 국력을 갖출 수 있어.’

편안하게 상황을 관망했다.

자신과는 별개의 일이라 생각하는 그 순간, 갑작스럽게 아흐메드의 의식이 미지의 공간으로 빨려들었다.

화악.

세상이 뒤엉켰다.

천장이 바닥으로, 바닥이 천장으로.

복잡하게 뒤얽히는 세상에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오래전, 나는 블레이즈(blaze)를 1200골드에 낙찰받았다. 네 눈에는 이 검이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나. 단순히 검으로서의 성능만 따지자면 없다. 드미트리의 대장간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1200골드까지 지급하지 않더라도 비슷한 수준의 검을 구매할 수 있게 되었지. 그런데 말이야. 나는 누군가가 이 검을 3000골드에, 아니 5000골드에 구매한다고 제안해도 절대 판매하지 않아.”

아흐메드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건 각성이었다.

각성은 사람마다 다양한 종류로 나타나는데, 아흐메드는 ‘기억의 전이’를 통해 전승 능력을 물려받는 과정을 경험했다.

몸에 전율이 일었다. 일반인에 불과한, 정확히는 상류층으로서 살아온 본인이 전승자의 각성을 경험할 줄은 몰랐다.

“이 검에는 상징성이 있다. 황제 폐하가 처음으로 시중에 내놓은 검. 최초로 낙찰받은 영광스러운 기회를 내가 움켜쥐었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내 가치를 증명하지. 그때만 하더라도 1200골드에 사람들이 경악하는 반응을 보였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금액에 불과하거든. 그게 바로 옥석(玉石)을 가려내는 눈이다. 내가 가진 컬렉션들이 나의 능력을 증명하며, 사람들은 내게 옥석으로 보이기 위해 아득바득 노력하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했던 선택들이, 지금의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알아서 막대한 부를 안겨 준다는 의미다.”

사내의 정체.

바로 발렌티노였다.

발렌티노가 익살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말 예술적이지 않나. 이런 걸 알아보지 못하는 장님 새끼들은 돈을 벌 자격이 없는 거지. 나는 내가 죽고 나면, 거대한 무덤을 만들어서 황제 폐하의 컬렉션과 같이 잠들 생각이다. 도굴꾼들? 펠릭스 마탑주에게 부탁해서 그딴 개새끼들은 통구이로 만들어 주지.”

화악.

현실로 돌아왔다.

천장이 다시 하늘로, 땅이 다시 바닥으로.

눈이 팽팽 돌았지만, 아직 현실은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은 것 같았다.

“5조.”

“10조.”

경매가 한창이었다.

미국과 중국의 충돌에, 사람들은 감탄하며 누가 이길지 눈동자를 열심히 굴려 댔다.

아흐메드는 몽롱한 기분이 들었다.

전승 기억이 DNA에 스며들면서, 본인이 어떤 능력을 물려받았는지 하나하나 떠오르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전투 능력을 물려받은 사람들과는 달랐다.

옥석을 가려내는 눈.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변화했고, 동시에 단순히 기술의 집약체로 보이던 레볼루션이 완전히 다르게 보였다.

‘감정(鑑定) 스킬.’

최초라는 상징성.

새로운 시대를 개척한 위대한 결과물.

탐욕이 일었다.

저걸 그냥 흘려보내려고 했던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이 일었다.

그때부터는 본능에 의한 판단이었다.

강한 욕구가 동반되자, 그로서는 더는 관망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20조.”

경매의 판도가 뒤바뀌었다.

* * *

왕위룡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천마의 검.

반드시 낙찰받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20조를 말한 사내는, 절대 이와 같은 자리에서 경쟁자로 만나서는 안 될 인물이었다.

‘하필이면 아흐메드라니!’

그가 누구인가.

사우디아라비아.

석유를 바탕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나라의 국왕으로서, 대재앙 이전에 기업 가치를 선정하는 조사에서 사우디아라비아가 운영하는 국영(國營) 기업이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할 만큼 그야말로 차원이 다른 부를 갖추었다.

그것은 대재앙이 발발하고도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탄탄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세상에 적응했고, 하늘이 사우디아라비아를 축복하는 모양인지 대량의 마나석 광산이 발견되면서 부를 축적해 나갈 또 다른 방법을 찾았다.

사람들은 말했다.

그들의 재력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아직도 석유와 마나석이 필요한 이 세상에서, 사우디는 절대 돈으로는 이길 수 없는 괴물이었다.

하지만.

하지만…….

‘절대 포기할 수 없어.’

“25조!”

눈을 부릅떴다.

살기 어린 눈빛으로 아흐메드를 바라보며, 앞으로 자신을 적대하기 싫으면 이쯤에서 순순히 물러나라는 강렬한 신호를 보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돈이 많을 뿐이지 중국만큼 강하지는 않았다.

중국이 마음먹고 지랄을 해 댄다면, 그들로서도 돈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겪을 것이다.

비겁하다는 비난은 개의치 않았다.

왕위룡은 승리만을 바랐다.

그리고 그러한 마음은.

“30조.”

‘이런 미친.’

압도적인 금액에 꺾였다.

열망을 드러내는 왕위룡의 눈빛만큼이나, 30조를 부르는 아흐메드의 눈빛은 정말 위험하게 반짝였다.

아흐메드가 이렇게 미친놈이라는 사실을 오늘 처음 알았다.

가진 것이 많아서 최대한 안정적으로 산다고 들었는데, 그는 왕위룡이 살기를 드러내든 말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아아, 정말 아름답구나.’

레볼루션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드미트리의 전승자들이 수라 검법을 스킬로 사용하는 것처럼, 아흐메드는 발렌티노의 안목을 감정 스킬로 터득했다.

발렌티노의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자 레볼루션에 대한 갈망이 들끓었다.

나라 전체를 말아먹더라도, 저걸 차지하지 못하면 당장에라도 죽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본인으로서도 알 수 없었다.

발렌티노의 광기.

로만 드미트리의 컬렉션을 모두 구매하겠다는 생각으로, 대륙 전체를 집어삼켜 버린 욕망의 근원.

광기의 선순환이었다.

컬렉션을 사기 위해 돈을 벌고, 돈을 벌어서 컬렉션을 사고, 컬렉션을 사니까 돈이 모자라고, 돈이 모자라니까 돈을 벌고, 더 비싸진 컬렉션을 사려면 더 많은 돈이 필요하고,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세계 무대에 진출하는 등, 광기의 선순환을 통해 발렌티노는 대륙 제일이 되었다.

상황을 압도했다.

왕위룡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의 광기가 옅어지며, 더는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샤오룽도 옆에서 덧붙였다.

“……아무래도 아흐메드 국왕이 제대로 꽂힌 것 같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금전적으로 부딪치면 저희로서도 승산이 없습니다. 주군. 한발 물러나야 할 때입니다. 더 따라가는 건 무모합니다.”

이를 악물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천마의 검이 눈앞에 있었다.

평생의 소원을 이룰 수 있는 순간이건만, 이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에 악감정이 치밀었다.

결국.

“…….”

낙찰을 포기했다.

왕위룡이 입을 다물자, 김준혁이 소리쳤다.

“30조. 30조에 아흐메드 국왕님께서 레볼루션을 낙찰받으셨습니다!”

왕위룡은 생각했다.

이런 참담함은 두 번 다시 경험하지 않겠다고.

다음에도 오늘과 같은 기회가 생긴다면, 그때는 반드시 승리하겠다고 스스로에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물론 그로서는 알 수 없었다.

아흐메드와의 악연.

그것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는 사실을.

* * *

박광덕의 발표.

레볼루션의 경매.

충격의 연속이었다.

이제 발표회가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김준혁이 덧붙인 말에 사람들은 당황하는 반응을 보였다.

“잠시 자리에서 기다려 주십시오. 곧바로 2부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뒤늦게 생각났다.

이번 발표회.

1부와 2부로 나누어졌다.

1부는 기술 발표회라고 명시되었다면, 2부의 내용은 정확히 말해 주지 않아서 사람들의 관심을 자아냈다.

수많은 추측이 있었으나 그것은 추측일 뿐. 사람들이 숨죽이고 무대를 바라보았다.

1부의 임팩트가 대단했기에, 대체 2부라고 따로 명시한 주제가 무엇인지 너무나 궁금했다.

그때였다.

저벅저벅.

“?!”

“어?”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무대 위로 오르는 사내.

익숙한 인물이었다.

사내는 무대 중앙으로 걸음을 옮기더니, 단번에 시선을 집중시키는 목소리로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백의의 마법사 김판석입니다. 여러분들로서는 궁금하실 겁니다. 마나 무기 시장의 혁명을 일으킨 대한제국이, 대체 이번에는 어떤 것을 발표할지를. 지금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번 주제는…….”

김판석은 확신했다.

이번 발표회.

사람들은, 전 세계 인류는 결코 오늘을 잊지 못할 것이다.

“진짜 ‘마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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