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3화 살귀(殺鬼) (1)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했다.
마론교가 흔한 사이비 종교와 같이, 마론이라는 가상의 존재를 내세워 호의호식하는 그런 집단일지도 모른다고. 마론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의 의구심은 당연했다.
세바스찬은 다양한 방식으로 마론 드미트리의 존재를 증명해 왔지만, 결국에는 실제로 목격하지 못한 존재에 불과했다.
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어떻든, 세바스찬은 한순간도 진심이 아닌 적이 없었다.
최초의 대재앙이 발발하고 마론교를 창설했고, 사람들이 마론교를 인정하면서부터 확보되는 부와 명예를 ‘차원 이동 마법’에 재투자했다.
인류의 문명을 선도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러한 노력 덕분이었다.
마론 드미트리를 이 세상으로 불러들이겠다는 강렬한 열망으로 인해, 어떤 이들에게는 무의미하게 흘러갔을지도 모르는 20년 동안 마론교는 악착같이 기술 개발에 매달렸다.
차곡차곡.
기술을 발전시켰다.
세상에 드러난 것보다 더욱 발전한 기술은, 마침내 차원 이동 실험을 진행할 충분한 근거를 갖추었다.
“마법진을 준비하라.”
“1포인트, 준비 완료했습니다.”
“2포인트, 준비 완료했습니다.”
“3포인트…….”
거대한 공간.
그곳을 가득 메우는 마법진에, 마법사들은 각 포인트마다 위치하며 마법진과 자신을 동화시켰다.
거대한 흐름 속에 올바른 좌표를 향해 나아가도록. 동화(同化) 스킬은 수많은 의식을 바탕으로 차원 이동의 불안함을 안정시켰다.
실험이 실패로 돌아간다면 동화된 마법사들의 목숨이 위태롭겠지만,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인류를 위해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었다.
마법진 곳곳에는 수많은 마나석이 박혀 있었다.
마법사들의 동화, 동력으로 사용되는 마나석, 그리고 마법진 중심에 존재하는 작은 종잇조각.
바로 성서였다.
헨리 앨버트는 마론 드미트리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분명했고, 그의 세상과 연결하기 위해서 성서의 종잇조각을 활용했다.
마지막으로 화룡점정(畫龍點睛). 안드레스라는 이름의 마법사였다.
그는 다른 차원의 존재를 이곳으로 불러들이는 ‘강제 소환’ 스킬을 보유한 존재였고, 마론 드미트리의 소환은 유일무이한 안드레스의 스킬로부터 비롯되었다.
완벽했다.
준비는 끝났다.
세바스찬은 초조한 눈빛으로 실험을 지켜보았다.
‘이 한 번의 실험을 위해서 그동안 수많은 단계를 거쳐 왔다. 첫 시도부터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적어도 우리의 실험 방향이 옳다는 확신은 필요하겠지. 로만 드미트리와 같은 악마가 활보하는 이 세상에 필요한 것은,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존재한다는 작은 희망이다.’
마른침을 삼켰다.
결과는 확신할 수 없었다.
미지의 세계를 개척하는 지금, 앞으로 벌어질 모든 일은 신의 뜻이었다.
이윽고.
마법진을 가동시켰다.
마나석들이 마나를 분출하며 마법진의 문양이 환하게 물들었고, 동화 마법을 사용한 마법사들이 눈을 비롯한 모든 구멍에서 빛을 뿜어 댔다.
그리고 그 힘은 ‘안드레스’에게 전달되었다.
안드레스의 로브가 팔락이더니, 그는 감당할 수 없는 힘을 단 하나의 스킬에 집중했다.
“강제 소환!”
콰릉.
콰르르르르르릉.
세상이 번쩍였다.
거대한 공간이 무너질 것처럼 뒤흔들렸고, 상황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마력의 폭풍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 이를 악물어야만 했다.
시공간이 뒤얽혔다.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이 현실인지 의심이 생길 정도로 공간이 뒤틀렸고, 거대한 흐름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더는 확인할 수 없었다.
번쩍거리는 빛과 아득하게 밀려드는 마력의 폭풍. 1분 1초가 억겁처럼 느껴지는 시간이 지나고, 태풍 후에 맑은 하늘처럼 순식간에 주변의 마나가 소멸되었다.
번뜩.
마나가 단번에 날아갔다.
동화 마법을 사용한 마법사들이 실이 끊긴 인형처럼 쓰러지자, 세바스찬은 황급히 주변을 살폈다.
‘실험은……!’
하늘에 빌었다.
제발.
실험의 결과물이 존재하기를.
하지만 금세 얼굴이 실망으로 물들었다.
주변을 아무리 살펴도, 차원 너머에서 넘어온 존재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때였다.
파스스스.
“교주님! 뭔가 있습니다!”
안드레스의 외침.
세바스찬이 시선을 돌리자, 에메랄드빛으로 빛나는 작은 돌멩이 하나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 * *
1차 실험.
결과는 실패.
차원 이동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세바스찬을 비롯한 사람들은 완전한 실패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에메랄드 빛깔의 돌.
그것은 희망이었다.
안드레스가 말했다.
“실험 결과, 성서와 이것이 같은 세계에서 비롯되었음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이건 평범한 돌이 아니라 메모리 스톤(memory stone)인 것 같습니다. 내부에 각인된 메모리 마법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분명히 차원 이동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메모리 스톤이라니.”
그날부터 마론교의 마법사들은 메모리 스톤에 매달렸다.
무려 보름의 시간이 걸렸고, 그들은 메모리 스톤에 각인된 영상과 언어를 해석하는 것에 성공했다.
팟.
마법을 발동시켰다.
환한 불빛과 함께, 메모리 스톤의 기억이 살아났다.
[……반드시……실패……문제점을…….]
음성은 뚝뚝 끊겼다.
어떤 대화가 오가는지 확인하기 힘들었지만, 영상만큼은 명확하게 일련의 광경을 눈앞에 선보였다.
그곳 또한.
거대한 공간이었다.
세바스찬의 실험처럼 거대한 공간에 수많은 사람이 존재했고, 그들은 분주하게 움직이며 수백 개의 마법진을 동시에 가동했다.
엄청난 불빛이 주변을 물들였다.
마치 용광로가 뜨거운 열기를 발산하는 것처럼, 그들은 마나로 넘실거리는 공간에서 무언가를 계속 시도했다.
순간.
세바스찬의 눈에 ‘무언가’가 발견되었다.
마법사들은 그냥 마법진을 발동시키는 것이 아니라, 메모리 스톤을 마법진 너머로 보내고 있었다.
[……우리를……드미트리…….]
전율이 일었다.
성서의 내용이 떠올랐다.
-이 책을 매개체로 우리를 그쪽 세상으로 인도해다오. 우리는 여전히 그분을 추억하고 있으며, 그분의 백성이기를 바란다.-
헨리 앨버트의 성서는 우연히 이 세상에 떨어진 것이 아니다. 명확한 목적을 지녔고, 그렇다면 메모리 스톤이 보여 주는 광경은 하나의 사실을 의미했다.
마론 드미트리의 세상인 샐러맨더 대륙. 그곳의 사람들이 지금 마법 실험을 통해 차원 이동을 시도하고 있었다.
마론교가 그동안 노력해 왔던 것처럼, 차원 너머에서도 이곳과 똑같은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감정이 벅차올랐다.
마론 드미트리는 실존하는 것이 분명하며, 무엇보다 마론교의 실험은 틀리지 않았다.
‘메모리 스톤의 존재는 우리가 마론 드미트리 님의 세상에 도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머지않았다. 샐러맨더 대륙의 사람을 불러들여 마론 드미트리 님의 소지품을 확보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강제 소환 스킬로 마론 드미트리 님을 강림시킬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정말 그것이 현실로 이루어진다면. 샐러맨더 대륙이 그랬듯, 이 세상의 인류 또한 구원받을 수 있다.’
영상은 완벽하지 않았다.
메모리가 일부 손상되었지만, 마론교 사람들에게 앞으로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세바스찬이 말했다.
“우리는 옳았다. 우리는 틀리지 않았다. 마론교 교도들에게 말하라. 우리가 고대하던 순간이 머지않았으니, 앞으로의 실험을 위해 더 많은 것을 바치라고. 마론교에 얼마나 헌신했느냐는 내가 기억할 것이며, 위대한 업적에 헌신한 존재들을 마론 드미트리 님에게 고할 것이다. 그리고 인류에게 주어질 새로운 미래에, 마론교를 따르는 사람들은 가장 먼저 구원받을 것이다.”
“아아, 믿습니다.”
“믿습니다!”
열광하는 사람들.
사람들의 환호 속에서, 세바스찬은 강렬한 열망을 표출했다.
* * *
그 무렵, 대한제국.
기술 발표회라는 충격적인 행보 이후, 전 세계에서 실력 있는 헌터들이 대한제국으로 향했다.
이유는 명확했다.
“앞으로 인류의 미래는 대한제국에 있어. 기술 발표회에서 증명되었듯이 대한제국은 사람들이 상상치도 못했던 기술을 개발해 냈고, 그것을 자국의 인재들에게 대가 없이 전수한다는 소문이 파다해. 그렇다면 앞으로의 미래가 어떻게 변하겠어? 대한제국에 소속되었느냐 소속되지 않았느냐로, 사람들은 그 사람이 강한지를 구분할지도 몰라.”
새로운 미래.
새로운 기술.
대한제국을 중심으로 급변하는 상황에, 강함을 갈망하는 사람들로서는 대한제국행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국적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대재앙이 발발한 이후로 생존이 우선시되는 상황에서, 대한제국이 인류를 선도한다면 기꺼이 귀화(歸化)를 택하겠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A등급 헌터 블랜드.
그도 마찬가지였다.
유럽에서 제법 명성을 떨친 그는, 대한제국의 기술을 배우겠다는 열망으로 마법진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웬걸?
대한제국의 반응은 담담했다.
블랜드의 방문에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대한제국은 무분별하게 사람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정기적으로 시험을 진행할 예정이니, 대한제국에 소속되고자 한다면 그 시기에 맞춰 방문해 주십시오. 시험은 일 년에 총 2번, 다음 시험은 앞으로 3개월 뒤에 있습니다. 그전에는 ‘용병의 신분’으로 시험에 가산점을 줄 활동 이력을 확보하시는 것을 추천해 드립니다.”
황당했다.
A등급이면 어느 나라든 두 팔을 벌려 반겨야 하건만, 대한제국은 블랜드의 존재를 그리 대단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때부터 심기가 매우 불편했다.
대한제국을 떠나자니 고향에서 내뱉은 말이 있었기에, 그는 대한제국에 머무는 동안 괜히 일반인들에게 시비를 걸었다.
콰앙!
“야 이 새끼야. 너 내가 누군지 몰라? 내가 바로 A등급 헌터 블랜드야. 다른 손님들처럼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명백한 시비였다.
일반 술집에서 맥주를 시켰는데, 맥주를 내려놓는 직원의 행동이 블랜드의 심기를 건드렸다.
특별히 예의 없이 행동한 것은 아니었다.
맥주를 내려놓자마자 다른 손님의 부름에 뛰어가는 모습을 확인하고는, 그것을 마치 자신을 우습게 보고 다른 손님을 대우한다고 받아들였다.
“이런 같잖은 새끼들이!”
팍.
콰다당!
난리가 났다.
블랜드가 탁자 위의 물건들을 쓸어서 내팽개쳤고, 요란스러운 소리에 사람들의 시선이 단번에 집중되었다.
블랜드는 그들에게 보란 듯이 무기를 들었다. 그에게는 익숙한 상황이었다.
세상이 변하면서 실력 있는 헌터들은 어디에서든 대우를 받았고, A등급 헌터나 되는 사람이 이렇게 분노한다면 일반인들은 벌벌 떠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
“…….”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겁을 먹지도, 그렇다고 특별하게 반응하지도 않았다.
이상했다.
상식적이지 않았다.
자신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데, 너무나도 침착한 사람들의 반응에 술이 깨는 기분이 들었다.
그때였다.
“그만하시죠. 그러다가 큰일 납니다.”
옆 테이블 일반인의 말.
심기가 완전히 뒤틀렸다.
이 나라는 대체 뭐란 말인가.
A등급 헌터인 자신을 받아 주지 않고, 일반인들조차 자신의 위협에 동요하지 않는 모습이라니. 블랜드로서는 알지 못했다.
기술 발표회 이후 시간이 제법 흘렀다.
그동안 대한제국에서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벌어졌는데, 그것들로 인해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인식이 생겼다.
대한제국.
특히 이곳 인천은 완전한 안전지대라는 인식.
아니나 다를까, 블랜드가 소란을 피우자 일련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끼익.
“실례합니다. 사건이 발생했다고 해서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바로.
대한제국의 수호대였다.
* * *
눈앞의 광경.
상황이 뻔히 보였다.
엉망이 된 술집과 무기를 든 블랜드의 모습에, 수호대원이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
“블랜드 씨. 더 소란 피우지 말고 저희와 함께 가시죠. 대한제국에서 일반인들을 공격한다면,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으실 겁니다.”
“이 새끼들이 진짜.”
순간.
블랜드는 짜증이 치밀었다.
수호대에 대해서는 들었다.
그들의 수장인 강민호가 대재앙에서 대단한 활약을 펼쳤다지만, 얼굴도 모르는 수호대원들은 자신의 상대가 아니었다.
그런데 그들조차도 자신을 상대로 여유로운 표정을 보이다니. 괜한 반발심에, 이대로는 참아넘길 수가 없었다.
“그래, 날 무시한다 이거지. 언제까지 그따위 태도를 보이나 보자.”
탓.
콰르르르르릉.
땅을 박찼다.
돌진 스킬이었다.
A등급에 걸맞게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고, 그의 검이 단번에 수호대원의 가슴팍을 갈라 버렸다.
죽일 생각은 없었다. 자신이 얼마나 강한지만 증명할 생각이었는데, 예상과는 다르게 경쾌한 소리가 들렸다.
카앙!
“?!”
공격이 막혔다.
동시에 수호대원이 소리쳤다.
“제압해!”
팟.
파파파파팟.
대원들이 주변으로 퍼졌다.
특별히 어떻게 하겠다고 명령한 것이 아닌데도, 그들은 협공(挾攻)에 적합한 포지션을 점하더니 서로 맞물리듯 공격을 펼쳤다.
블랜드로서는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다. 단 한 번의 공방만으로 상대가 B등급에도 못 미치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렇다면 단번에 제압당해야 정상인데, 탄탄한 방어력과 사방에서 몰아치는 공격은 순식간에 그를 궁지에 몰았다.
상식 밖이었다.
말이 되지 않았다.
떨거지들을 단번에 제압하려고 했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블랜드는 팔이 베인 채 무릎을 꿇고 있었다.
쿵.
“포박해.”
“휘익.”
“역시 수호대야.”
짧은 시간.
사람들이 인천을 안전하다고 느낀 이유였다.
대한제국의 병사들은 빠르게 강해졌고, 그중 유독 수호대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로만 드미트리가 수호문의 무공을 전수한 덕분도 있지만, 대한제국에서는 매일 실전과 같은 훈련이 진행되었기 때문이었다.
1대1 대결, 1 대 다수의 대결, 감당하지 못한 적을 상대하는 방법 등등. 로만 드미트리의 경험이 전수되었다.
방금도 블랜드를 1대1로는 절대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하자마자, 수호대원은 방어적으로 상대하며 천천히 갉아먹는 방법으로 승리를 쟁취해 냈다.
당연한 결과였다.
기술 발표회 이후, 대한제국의 병사들은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생겼다.
세상을 선도하는 기술력만큼이나, 본인들이 더는 약소국의 구성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상황을 정리했다.
블랜드를 포박해 데려가려는데, 갑작스럽게 무전기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삐빅.
[비상, 비상이다! 지금 B 구역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전승자가 폭주한 것으로 추정되며, 상대가…….]
마지막 말.
수호대원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드미트리의 전승자인 것으로 파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