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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는 평범하게 살 수 없다-564화 (564/615)

564화 살귀(殺鬼) (2)

보름 전.

한 사내가 창백하게 질린 표정으로 책상을 뒤졌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길은 물건을 계속 바닥에 떨어트렸고, 다급하게 서랍을 확인하던 그는 겨우 원하는 물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작은 약병이었다. 라벨조차 존재하지 않는 약병을 낚아채더니, 뚜껑을 열어 그 안에 있는 약 서너 개를 황급히 입에 털어 넣었다.

“후욱, 후욱.”

숨을 가쁘게 내쉬었다.

비처럼 흘러내리는 식은땀에 옷이 흠뻑 젖었고, 의사가 말했던 호흡법을 연신 내뱉는데도 몸 상태는 진정되지 않았다.

약효가 돌 시간이 필요했다.

사내는 몸을 조그맣게 웅크리더니, 사람이 사는지도 의심스러운 작은 방 한 칸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죽이며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고요했다.

어둠이 내려앉은 밤이라, 방 안에는 사내가 헐떡이는 숨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사내의 세상에서는 달랐다.

창밖 너머로는 아무도 지나가지 않았지만, 그의 귓속으로는 탁하고 거친 목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시끄러워? 시끄러워? 시끄러워?]

[밖으로 나가자. 네가 이러고 있을 이유가 없잖아. 모두 죽여 버리는 거야. 널 고통스럽게 만드는 모두를!]

[나가자! 나가자! 나가자!]

“닥쳐, 이 개새끼들아!”

눈을 질끈 감았다.

그의 이름은 장선호였다.

사람들에게는 이름보다 살귀로 유명한 인물.

대한제국에서 가장 호전적인 헌터로서, 전승 능력을 물려받은 A등급의 실력자.

그에게는 말 못 할 비밀이 있었다.

사람들은 전승이 엄청난 축복이라고 말하지만, 장선호는 처음 ‘전승의 기억’을 물려받은 날을 나락으로 떨어진 순간이라고 표현했다.

전승 능력은 확실히 강력한 힘을 부여했다.

아무것도 아닌 일반인에 불과했던 그가 순식간에 강력한 힘을 얻었고, 그런 장선호의 행보에 당시 중앙 정부를 구성하던 고위 인사들이 부와 명예를 제시하며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그 어떤 제안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확히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새로운 힘을 얻은 직후부터 장선호의 눈에는 실재하지 않은 존재들과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환각과 환청.

삶이 피폐해졌다.

잠을 깊게 자지 못해서 성격이 예민해졌고, 초창기에는 정의로운 헌터라고 불리던 그가 과격하게 행동하기 시작했다.

살귀라는 명성은 그렇게 형성되었다.

선을 넘는 존재들의 머리를 단번에 날리다 보니, 그의 손에 십수 명의 사람이 죽어 갔을 즈음 세상은 그를 배척했다.

살귀를 조심하라.

사람들에게 유명한 경고의 메시지였다.

그래도 남들 몰래 치료를 병행하며 정상으로 돌아가려고 노력했지만, 갑작스럽게 장선호의 광증(狂症)이 심해지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목소리가 끊임없이 들렸다.

어떤 것으로도 해소되지 않는 갈증이 일었고, 머릿속으로 밀려드는 이상한 기억들로 인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정신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정말.

정말 죽고 싶었다.

다시 정상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A등급에 해당하는 강력한 힘을 미련 없이 버릴 것이다.

[너는 다시 돌아갈 수 없어.]

[왜 네 책임이 없다고 생각해? 너도 즐겼잖아. 네가 그동안 해 온 일들은, 네 의지로 직접 행한 것이라고.]

[가증스러운 새끼. 역겨운 새끼.]

몸을 더욱 웅크렸다.

의식이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는 알 수 없었다.

보통은 약효가 돌아 정신이 돌아올 법도 한데,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장선호의 귓속에는 악귀의 목소리가 떠나질 않았다.

조금씩 정신이 무너져 내렸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인간의 본성을 유지하려던 그의 마음속에, 차라리 포기하면 삶이 편할지도 모른다는 작은 의문이 생겨났다.

그리고 처음에는 분명히 작은 의문이었던 것이, 정말 순식간에 정신 전체를 장악하는 균열로 번져 갔다.

마침내 보름이 되던 날.

“그래, 모조리 죽여 버리는 거야.”

장선호가 살의(殺意)로 번들거리는 눈빛을 보였다.

* * *

거리로 나갔다.

인천.

과거와는 달랐다.

로만 드미트리로 인해 사람들은 안정을 되찾았고, 사람들은 일상적인 삶을 즐기며 웃고 떠들었다. 장선호는 비틀거리며 인파 사이를 걸었다.

조금 전까지 환한 웃음을 보이던 사람들이 자신을 발견하고 슬쩍 피하는 모습에, 장선호는 비릿하게 웃으며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큭큭, 씨발 새끼들.”

억울했다.

그의 유년 시절은 비참했다.

차라리 일반적인 사람들처럼 몬스터들에게 부모를 잃었으면 모르겠는데, 그의 부모는 멀쩡히 살아서 자식을 학대하는 쓰레기였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이던 악의는 ‘전승 능력’을 받아 폭발했다.

자신의 마음대로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사실 그는 살귀라는 명성을 즐겼는지도 모른다.

약육강식의 세상.

힘은 절대적이었다.

손아귀에 강력한 힘을 쥐고 있는 삶은, 그에게 인간이기를 포기하게 했다.

[죽여.]

[모조리 죽여 버려.]

[저 새끼들은 너보다 행복할 자격이 없어.]

“그래, 너희 말이 맞아.”

고개를 들었다.

방금 걸음을 피하던 사내가 시선을 돌리는 순간, 장선호는 어느새 뽑아 든 검으로 사내의 머리를 날려 버렸다.

번뜩.

푸확!

피가 튀었다.

이질적이었다.

너무나도 평화로운 광경에, 갑자기 진한 빨간색이 도화지에 물감을 쏟듯 흩뿌려졌다.

“꺄악!”

“사, 살인이야!”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살인을 인식하자마자 다들 뿔뿔이 도망쳤고, 장선호는 기다렸다는 듯이 도망치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쫓아갔다.

그들과 원한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원하는 대로 행하지 않으면 당장에라도 타들어 갈 것 같은 갈증에, 그는 무차별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눈앞의 사람을 죽이고 나면, 곧바로 다른 목표를 찾아가서 우악스럽게 목숨을 끊어 버렸다.

퍽.

“끄르르륵.”

피거품을 물며 쓰러졌다.

물론 반항하는 사람들도 존재했다.

헌터랍시고 나타난 사람들은, 장선호와 몇 합 주고받지 못하고 머리가 날아가는 신세가 되었다.

번뜩.

후두두둑.

핏빛 비가 내렸다.

그것을 흠뻑 맞았다.

비릿한 향기가 코끝을 맴돌고, 피와 죽음으로 가득한 공간에 존재하면 이상하게 마음이 안정되는 기분이 들었다.

익숙했다. 전승의 존재는 이와 같은 삶을 살아간 것이 분명했다.

끊임없이 귓속을 괴롭히던 목소리도, 살인을 반복할 때만큼은 응원한다는 듯이 침묵을 지켰다.

환청의 존재.

이제는 상관없었다.

더는 멈출 수 없었다.

노선을 탈선해 버린 폭주 기관차처럼, 장선호는 자신의 앞길을 막아서는 사람들을 차례로 죽였다.

그때였다.

“멈춰라!”

강민호를 비롯한 수호대.

그들이 현장에 나타났다.

* * *

사건은 순식간에 전파되었다.

강민호는 사건 현장으로 이동하는 길에, 수하로부터 ‘범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에 대해서 전해 들었다.

“이름은 장선호. 나이는 39세로 사람들에게 ‘살귀’라고 알려진 A등급 헌터입니다. 평소에도 과격한 행보로 살귀라고 불렸는데, 조금 전부터 무차별적인 살인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던 그의 전승 능력이 아무래도 드미트리로부터 비롯된 것 같습니다. 그를 파악한 정보원에 따르면, 살귀가 드미트리의 기술인 수라 검법을 사용한다고 했습니다.”

“……드미트리의 전승자라니.”

살귀.

정말 미스터리한 인물이었다.

대한제국 하늘 아래에 그의 원수만 수천 명이 존재한다고 말할 정도로, 살귀로 인해 고통을 겪은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가 멀쩡히 활보할 수 있었던 이유는 명분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명분이 확실할 때만 과한 손속을 보였고, 대재앙이 발발할 때 나름대로 본인의 역할을 해내다 보니 쉽사리 처벌할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로만 드미트리의 존재로 대한제국이 강력한 국력을 갖추었지만, 대한민국 시절일 때는 A등급 헌터는 처리할 수 없는 인재였다.

문제가 심각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살귀가 작정하고 살인을 벌인다면 일반인들은 살아남을 방법이 없었다.

이윽고.

현장에 도달했다.

강민호가 소리쳤다.

“협공으로 살귀를 제압한다!”

“예.”

살귀와 자신.

둘 다 A등급 헌터였다.

하지만 살귀가 명백히 본인보다 우위라는 사실을 알기에, 강민호는 괜한 객기로 유리한 지점을 허락하지 않았다.

강민호의 명령에 수호대원들이 사방으로 퍼졌다.

살귀가 도망칠 만한 공간을 차단하면서, 동시에 강민호는 ‘수호문의 무공’을 사용해 살귀를 향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파팟.

파파파파팟.

마나가 요동쳤다.

빨갛게 물든 살귀의 시선이 강민호에게 닿는 순간, 강민호는 이를 악물고 검을 들어야만 했다.

카앙!

카카카카카캉!

빨랐다.

공간을 파고드는 검이 머리를 베었고, 강민호는 즉각 반응하며 간발의 차이로 공격을 막아 냈다.

몸이 크게 흔들렸다. 수호문의 무공은 방어에 특화되었다.

그렇기에 별다른 충격 없이 공격을 막아 낼 수 있었지만, 살귀의 공격은 동급의 헌터들조차 막기 힘들 정도로 위협적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살귀가 득달같이 따라붙었다.

공격을 막은 것에 못마땅한 심기를 드러내듯, 그가 미친 듯이 몰아붙였다.

“죽어, 죽어, 죽어!”

콰앙!

콰콰콰콰쾅!

살의가 넘실거리는 공격이었다.

매 순간 강민호의 급소를 노렸고, 강민호는 최대한 방어적인 태도로 막는 것에 급급했다.

단순히 공격력만으로는 이태성을 넘어설 정도. 강민호가 궁지에 몰리는 모습에 수호대원들이 빠르게 살귀의 사각을 노렸다.

그동안 훈련한 것처럼 서로 맞물리는 완벽한 공격에, 그들은 살귀를 무너트릴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런데.

확.

“?!!”

간발의 차이.

기묘한 움직임으로 공격을 피해 냈다.

그것은 인간의 육체로는 불가능한 움직임이건만, 살귀의 시선이 정확히 수호대원의 모습을 포착했다.

“위험해!”

번뜩.

카앙-!

강민호가 이를 악물었다.

그가 순간적으로 몸을 날리지 않았다면, 수호대원은 머리가 날아갔을지도 모르는 상황. 하지만 강민호는 본능적으로 이것이 좋지 않은 선택임을 알았다.

허공에서 뒤얽힌 살귀의 시선은, 마치 이와 같은 상황을 예상했다는 듯이 웃음을 머금었다.

“멍청한 새끼.”

푸확.

피가 튀었다.

강민호의 팔뚝이 베어짐과 동시에, 살귀가 무차별적으로 주변을 둘러싼 수호대원들을 밀어붙였다.

압도적이었다.

그의 오라?

그의 스킬?

특별히 강력하지는 않았다.

분명히 A등급 수준에 해당하건만, 그는 등급을 초월하는 짐승 같은 움직임을 보였다. 마치 전투에 특화되어 있는 괴물인 것 같았다.

그가 공간을 파고들면 피가 흩뿌려졌고, 수호대원들의 반격에도 물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한 발 더 파고들면서 상대와 자신의 목숨을 건 치킨 게임을 시도했다.

“크악!”

하나, 둘.

수호대원들이 쓰러졌다.

강민호의 눈빛이 사납게 변했다.

더는 위험하다는 생각에, 그가 순간적인 틈을 노리고 자신의 전력을 펼쳤다.

콰릉.

콰르르르르르릉.

수호문의 비기(祕器).

오라가 넘실거렸다.

단번에 살귀를 베어 버리려는 순간, 살귀는 거대한 힘을 정면에서 맞닥트렸다.

히죽.

‘웃어?’

비틀리는 입가.

소름이 돋았다.

뭔가 잘못되었음을 알았다.

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강민호는 자신의 존재를 집어삼키는 거대한 폭풍을 마주했다.

콰앙!

콰콰콰콰콰콰쾅!

* * *

털썩.

“우웩.”

강민호가 피를 한 움큼이나 뱉어 냈다.

수호문은 방어에 특화되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방금의 공격에 그의 몸은 엉망이 되어 버렸다.

패배했다.

수호대원들을 대동하고도 이기지 못했다.

하지만 패배의 충격보다, 강민호의 뇌리를 장악하는 충격적인 진실이 있었다.

“너 설마…….”

흔들리는 눈동자로 살귀를 올려다보았다.

드미트리의 전승.

광기 어린 전투.

그리고 파괴적인 검법.

마론교가 드미트리에 대해 떠들어 댄 정보에서, 세 가지 조건에 부합하는 인물이 존재했다.

드미트리의 섬광 사무엘이 엄청난 활약을 펼쳤을 때, 그에 버금가는 전승 능력이라고 표현된 존재.

그는 바로.

‘드미트리의 악귀 케빈.’

확실했다.

그동안 살귀의 전승 능력은 베일에 휩싸여 있었는데, 그가 케빈의 능력을 물려받았다면 그간의 행보와 이런 말도 안 되는 전투 능력을 이해할 수 있었다.

문제는 케빈의 전승자가 미쳐 버렸다는 것이다.

이태성과 같은 인천의 전력이 나타나면 케빈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강민호는 본능적으로 그것이 해결책이 아님을 알았다.

“부족해.”

살귀가 하늘을 바라보았다.

피로 흠뻑 물들고도 갈증을 호소하는 그 모습에, 강민호는 목에 핏대를 세우며 병사들에게 소리쳤다.

“지금 당장 황제 폐하에게 보고하라! 드미트리의 악귀 케빈의 전승이 살육을 벌인다는 사실을!”

탁.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로만 드미트리.

그가 도착할 때까지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야 했다.

반드시.

그것이 수호대를 맡은 그의 역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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