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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는 평범하게 살 수 없다-569화 (569/615)

569화 단 1년간의 변화 (2)

철크럭, 철크럭.

분주하게 움직이는 병사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수레의 행렬.

일련의 상황을 바라보며, 아론 비다르손 대통령은 파르르 떨리는 눈빛을 보였다.

“……정말 이것들을 전부 무상으로 지원해 주시는 겁니까? 단순히 연합군이라는 이유만으로?”

“예. 사람들이 흔히 장비빨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습니까. 대대적으로 장비를 개선한다면, 아이슬란드로서도 몬스터들에 대항할 기반을 마련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세계 최고의 철제 무기 강대국인 대한제국에 이 정도의 지원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습니다.”

“허허.”

헛웃음이 나왔다.

경비대장의 말로는 대부분 C등급의 무구였다.

과거에도 C등급은 괜찮은 품질로 분류되었지만, 기술 혁명이 일어난 이후로 새로운 체계에서의 C등급은 그 이상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예전처럼 스킬 발현도만 높다고 높은 등급을 책정받지 못했다.

철제 무구로써의 조건도 무조건 동반되어야만 했고, 대대적으로 기준이 상향되면서 미국과 같은 강대국에서도 일반 병사들에게 ‘C등급의 무구’를 지급하지 못했다.

대한제국의 선물.

감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장윤태는 별일 아닌 것처럼 말했지만, 최소 수백을 무장할 무구라면 별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호들갑을 떠는 아론 비다르손.

장윤태는 말없이 웃었다.

상대가 진심으로 고마워하는데, 굳이 진실을 말해 줄 필요는 없었다.

‘빈말이 아닌데…….’

지난 1년.

대한제국은 그야말로 혁명을 일으켰다.

마나 무기 시장을 독식하더니 빠르게 발전했고, 그런 와중에 제주도와 북한을 차례로 토벌하면서 엄청난 기연을 얻었다.

북한에서 알래스카에 버금가는 마나석 광산과 수십 개의 철광석 광산을 발견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기술의 발전에 걸맞은 자원이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때마침 맞물리는 상황으로 인해 대한제국은 탄탄한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수백 명을 무장할 무구?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대한제국은 전국적으로 병사와 기술직에 대대적인 투자를 진행하면서, 하루에도 정말 엄청난 양의 무구를 쏟아 냈다.

그야말로 드미트리의 재림이었다. 마나 무기 시장의 독식으로 강대국으로서의 위치를 확실히 자리매김하며, 병사들에게는 가장 좋은 품질을 우선으로 지급했다.

훈련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과 뛰어난 품질의 무기는 전력을 상승시켰으며, 그로 인해 사기가 올라가면서 겨우 1년 만에 대한제국은 강대국에 걸맞은 전력을 갖추는 것에 성공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실상을 잘 알지 못했다.

내부에서 엄청난 격변이 일어나는 동안, 대한제국은 국제 무대에서는 특별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1년의 기한을 예고했기에.

한발 물러났다.

사람들이 뭐라고 떠들든 말든 자유를 부여했고, 로만 드미트리는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오죽했으면 로만 드미트리가 모습을 드러내는 공식 석상마다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 정도였다.

레드문, 중앙 정부, 러시아를 차례로 격파할 때만 하더라도 당장에 세상을 잡아먹을 것처럼 굴었지만, 지난 1년은 너무나 조용했기에 오히려 꿍꿍이가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장윤태가 말했다.

“대통령님. 아직 이 정도로 놀라시면 안 됩니다. 대한제국의 선물은 이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예?!”

아론 비다르손이 화들짝 놀랐다.

이게 끝이 아니라니.

대통령의 체면?

그딴 건 중요하지 않았다.

놀란 표정과는 다르게, 그의 입가는 기대감으로 씰룩이기 시작했다.

* * *

힐끗.

아론 비다르손이 옆을 바라보았다.

아이슬란드 최고의 실력자이며 A등급 헌터인 구드욘센도, 슬쩍 옆을 바라보다 눈이 마주쳤다.

“대통령님…….”

흔들리는 눈동자가 증명했다.

대한제국의 또 다른 선물.

장윤태가 건넨 책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대통령의 명령으로 선물을 확인한 구드욘센이, 파르르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진정시키며 말했다.

“이것들은 전 세계가 탐내는 보물입니다. 하나는 무공의 체계를 기록했으며, 또 다른 하나는 상위 단계의 마법을 기록했습니다. 대한제국으로서는 보존해야 할 보물인데, 단순히 연합군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런 보물을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시선이 장윤태로 옮겨졌다.

처음에는 아론 비다르손에게 설명하다가, 믿기지 않는 현실을 장윤태에게 물었다.

그들로서는 놀라는 게 당연했다.

전날.

로만 드미트리의 명령에 수뇌부들이 물었다.

기술의 유출은 예민한 사안인데, 연합군이라 해도 이렇게 퍼 주는 것이 맞는지를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신뢰 관계를 형성하며 상대에게 무조건적인 희생을 바란다. 자신은 상대의 진위를 의심하면서도, 상대는 자신을 맹목적으로 신뢰하기를 바란다. 내 방식은 다르다. 신뢰를 배반하는 자들은 엄벌하되, 나는 먼저 신뢰를 증명함으로써 관계를 형성할 것이다. 아이슬란드는 유럽 연합에서 배척되면서 불안한 미래에 놓였으나, 그들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앞으로의 세월이 아니라 당장 눈앞의 현실로 증명할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가진 것을 베풀어라. 그리고 겨우 ‘일부’를 베푸는 것으로 불안해하지 마라. 대한제국이 가진 것을 베푸는 순간은, 그것으로 인한 그 어떠한 변수도 우리의 안위를 해칠 수 없다는 의미다.”

로만 드미트리의 발언.

모두가 인정했다.

현재의 대한제국은 강했다.

아이슬란드에 제공한 기술은 기초적인 것에 불과했고, 대한제국은 그보다 월등히 높은 기술을 기반으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었다.

설령 비슷한 수준의 기술이었다 할지라도. 로만 드미트리를 필두로 발전하는 사람들은, 다른 환경에서는 절대 따라잡을 수 없는 성장력을 보였다.

장윤태가 말했다.

“황제 폐하가 바라는 것은 상생(相生)입니다. 그런데 연합군이 강해지는 것을 왜 싫어하겠습니까? 어떤 이들은 대한제국의 의도를 의심하나, 편견을 한 꺼풀 벗겨 내고 나면 연합의 관계가 상생을 추구한다는 것을 모를 수가 없습니다. 기술 혁명도, 연합군에게 지급되는 이 모든 것도. 대한제국의 안위만을 생각했다면 절대 허락할 수 없는 일입니다.”

“……옳은 말입니다.”

아론 비다르손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대한제국의 진심 어린 태도에, 그는 더는 유럽 연합을 탈퇴했다는 사실에 불안함을 느끼지 않았다.

그들은 곧 움직일 것이다.

아이슬란드를 엄벌하려 할 것이지만, 아론 비다르손은 앞으로 어떠한 상황이 찾아오든 대한제국을 배신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인구 30만의 작은 나라. 대한제국으로서는 아무것도 아닌 연합국에 불과한데, 그들의 진심은 앞으로 대한제국에 충성해야만 하는 확실한 명분을 주었다.

그때였다.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형성되던 그때, 사람들에게 절망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대통령님! 지금 레이캬비크가 몬스터들의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 * *

황급히 걸음을 옮겼다.

안정기에 몬스터들의 공격은 흔하지 않았다.

하지만 흔하지 않을 뿐이지, 세계 곳곳에 숨어든 몬스터들이 본인들의 영역에서만 숨을 죽이고 사는 것은 아니었다. 예외는 존재했다.

아이슬란드는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예외에 고통을 받는 나라였고, 이번에는 다른 때와는 다르게 대규모 병력이 수도 레이캬비크를 공격했다.

그렇게 도착한 상황.

아론 비다르손은 불바다로 변한 풍경을 바라보며 넋을 잃었다.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며 화염을 발사하는 몬스터는, A등급으로 분류되는 그리핀(griffin)이 분명했다.

독수리의 얼굴.

사자의 몸통.

하늘을 가득 메운 그리핀들이, 빠르게 내리꽂히며 병사들을 낚아챘다.

콰직.

“크아아아악!”

병사들의 육체가 찢겨 나갔다.

하늘에서 후두둑 떨어지는 피에, 그리핀들이 사방에서 달려들어 발톱에 붙잡힌 병사의 육체를 사정없이 물어뜯었다.

숨이 턱 막힐 수밖에 없는 광경이었다. 그리핀은 A등급인 만큼 매우 강력한 몬스터인데, 언뜻 보아도 수십 마리의 그리핀이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아이슬란드의 전력이라면 막을 수는 있겠지만, 저 많은 그리핀을 죽이는 대가로 큰 희생이 필요했다.

이를 악물었다.

아론 비다르손이 황급히 말했다.

“대, 대한제국에 지원군을 요청해 주십시오. 아이슬란드만의 힘으로는 버겁습니다.”

부끄러웠다.

S등급도 아니고 A등급도 막지 못하는 현실.

약소국의 초라한 현실이었지만, 아론 비다르손은 아이슬란드를 위해서 체면을 차릴 때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애초에 도움을 구하기 위해 연합을 맺었다. 대한제국으로서는 아이슬란드가 그리 의미 있는 동맹은 아니겠지만, 아이슬란드의 입장은 달랐다.

유럽 연합을 버렸다.

당장 바다 건너 존재하는 연합국이 아니라, 머나먼 거리에 존재하는 대한제국의 손을 맞잡았다.

그렇기에 확실한 도움을 바랐다.

자신들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할 만한 도움을.

장윤태가 말했다.

“지원 요청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 그게 무슨…….”

“정식 주둔군이 배정될 때까지는 저희가 아이슬란드의 문제를 도와드릴 생각입니다.”

순간.

의구심이 들었다.

장윤태라고 했다.

백일의 소속이라고는 하나 처음 듣는 이름.

그렇다면 무명이라는 의미인데, 그가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장윤태가 앞으로 나섰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무엇을 상상하든, 대한제국은 그 이상의 전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콰릉.

콰르르르릉.

들끓는 마력.

장윤태의 눈빛이 사납게 변했다.

* * *

지난 1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예전에도 백일의 마법사들은 김판석을 통해 강해졌지만, 지난 1년은 그들의 세상을 완전히 뒤바꾸었다.

김판석은 단순히 뛰어난 마법사가 아니었다.

그가 ‘알렉산드르의 지식’을 공유하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하루가 다르게 폭발적으로 발전할 정도로 격변의 시간을 보냈다.

김판석.

알렉산드르.

삶의 밑바닥이었던 존재가 9서클 마법사가 되었다.

그는 어떻게 성장하는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았고, 장윤태는 격변의 흐름 속에서 한계를 초월했다.

“라이트닝 레인(Lightning Rain).”

빠직.

빠지지지지직!

하늘에서 번개가 내리쳤다.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다니는 그리핀으로서는 최악의 공격이었고, 벼락에 맞은 그리핀들이 몸을 부르르 떨며 지상으로 추락했다.

순간 그리핀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마력의 흐름이 장윤태로부터 비롯된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그들이 빠르게 날아들며 장윤태를 공격하려고 했다.

“막아!”

“장윤태 마법사님을 보호하라!”

척척척.

대한제국의 병사들이었다.

그들이 순식간에 방벽을 형성했다.

방패를 높게 올리더니, 그리핀들의 공격을 막아 냈다.

카앙!

푸푸푸푹!

키에에에에에엑!

그리핀들이 비명을 질렀다.

그들의 공격에도 마나를 머금은 방패는 뚫리지 않았고, 그 사이로 오히려 창을 찔러 넣으며 그리핀을 난도질해 버렸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침착한 반응이었다.

장윤태를 보호하는 병사들은 겨우 일반 병사에 불과한데, 서로 힘을 합쳐 A등급 몬스터에 대항하는 모습을 보였다.

상식 밖.

말이 되지 않는 광경이었다.

일반 병사들조차 무공을 배웠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로서는, 대체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패러사이트(parasite).”

콱.

꾸르르르륵.

장윤태가 그리핀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아직 죽지 않은 그리핀이 몸을 떨어 댔고, 찢겨 나간 상처 부위가 검붉은 마력으로 빠르게 엉겨 붙었다. 흑마법이었다.

김판석은 장윤태에게 웬만해서는 흑마법을 보여 주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장윤태는 그의 명령을 다르게 생각했다.

웬만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언제든 공개하라는 의미. 지금은 확실한 임팩트가 필요하기에, 과감하게 흑마법을 발현해 그리핀을 통제했다.

캬아아악!

그리핀이 날개를 펄럭였다.

기생충으로 감염시킨 그리핀의 뒤에 올라타더니, 하늘로 날아올라 마법을 미친 듯이 분출했다.

“익스플로전(Explosion).”

콰앙!

화륵, 화르르르륵!

전장을 압도했다.

장윤태와 일부 병사들만 합류했을 뿐인데, 아이슬란드의 병사들은 큰 문제 없이 공격을 막아 냈다.

애초에 장윤태의 파견은 의도되었다. 김판석, 이태성, 강민호 등. 세계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존재들이 문제를 해결한다면, 사람들은 대한제국의 활약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하지만 장윤태는 달랐다.

무명의 인물.

대한제국에 그만한 존재가 얼마나 많을지 장담할 수 없다.

그래서 장윤태는 아이슬란드행에 당첨되었고, 계획한 대로 자신의 전력을 마음껏 드러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이게 대체…….”

“제 눈이 의심스러울 지경입니다. 무명의 마법사조차 이토록 강하다니. 대통령님. 저희는 어쩌면 차악이 아닌, 최상을 택했는지도 모릅니다.”

아론 비다르손과 구드욘센이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그들은 확신했다.

지금 보는 광경.

이것은 곧 전 세계에 알려질 것이다.

대한제국이 연합군을 특별하게 대우하며, 그들은 무명의 인물조차 상상 이상으로 강하다는 사실을.

예상대로였다.

아이슬란드의 일은 전 세계에 알려졌다.

1년간 잠잠했던 대한제국으로 인해, 세상이 다시 들썩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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