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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는 평범하게 살 수 없다-577화 (577/615)

577화 남겨진 자들의 이야기 (1)

지금으로부터 한 달 전.

일반인들의 출입을 불허하는 금단(禁斷)의 영역에서, 드미트리의 마법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무언가를 준비했다.

그것은 수백 개의 텔레포트 마법진이었다.

텔레포트는 마법 문명에서 대중화된 이동 수단이지만, 이렇게 많은 마법진이 동시에 가동되는 것은 비상식적인 일이었다.

“준비 완료했습니다.”

“가동하라.”

“예.”

화아아악.

수백 개의 마법진이 동시다발적으로 세찬 빛을 발했다.

마치 용광로가 뜨거운 열기를 발산하는 것처럼, 마나로 넘실거리는 공간에서 마법사들은 메모리 스톤이라 불리는 마법 아이템을 차원 너머로 보냈다.

한 마법진당 천 개씩. 차원을 넘나들면 대부분 파괴되리라는 사실을 알기에, 단 하나라도 성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쏟아부었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하루였다.

익숙한 얼굴로 작업하는 마법사들의 모습에, 명령을 내렸던 마법사 옆으로 한 사내가 다가왔다.

“별다른 소식은 없습니까?”

“아, 크리스 님.”

사내의 정체.

크리스였다.

크리스를 발견한 마법사는 씁쓸한 웃음을 보였다.

“아직은 특별한 수확이랄 것이 없습니다. 몇몇 차원에서 이상 신호를 보내오긴 했지만, 로만 드미트리 황제 폐하와는 무관하다는 것이 저희의 결론입니다.”

“벌써 1년째입니다. 세간에서는 이곳에 소비되는 예산이 무의미하다는 말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황제 폐하의 수색 작업을 중단하자는 의미는 아닙니다. 하지만 ‘메모리 스톤’과 같은 실마리를 차원 너머로 보내는 것보다, 직접 찾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에 집중하자는 의견이 많습니다.”

“이해합니다.”

1년 전.

로만 드미트리가 실종된 이후, 피닉스의 마탑주인 펠렉스는 수많은 실험 끝에 ‘차원 너머’의 영역에 도달하는 것에 성공했다.

문제는 어떤 세상과 연결되는지 확신할 수 없으며, 생명체의 연약한 육신으로는 차원의 경계를 지나갈 수 없었다.

그래서 메모리 스톤과 같은 것들을 차원 너머로 보내는 방법을 택했다.

만약 로만 드미트리를 아는 사람이거나 본인이 메모리 스톤을 확보한다면, 수많은 차원 중 하나를 특정할 수 있도록 신호라도 받아 보겠다는 의도였다.

그렇게 1년이 흘렀다.

매일 같이 실험을 반복했지만, 특별한 소득은 없었다.

펠릭스가 말했다.

“매일 수백 개의 텔레포트 마법진을 가동하기 위해 수천 개의 마나석을 사용하고, 차원 너머로 보낼 수십만 개의 메모리 스톤을 만들어 내기 위해 지난 1년간 마법 실험실의 불은 꺼진 적이 없습니다. 처음에는 분명히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으나, 지금은 저 또한 반복되는 결과에 회의적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발렌티노 공작님을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실험에 사용되는 천문학적인 액수를 감당하는 분이기에, 사정을 설명하고 다른 방향을 찾으려 했습니다.”

마법 실험.

드미트리 제국에서 당연히 부담하는 부분이지만, 발렌티노 공작은 펠릭스의 실험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고 선언했다.

그것은 그야말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아무런 성과가 없는데도 투자를 끊지 않았고, 오죽했으면 사람들은 발렌티노 공작이 개처럼 벌어서 모든 돈을 로만 드미트리에게 투자한다는 말이 돌 정도였다.

물론 대륙 제일의 상단을 운영하는 만큼 어떻게든 돈을 다시 메웠지만, 펠릭스로서는 소득이 없는 성과에 미안함이 앞섰다.

그런데.

펠릭스가 찾아가자 발렌티노 공작은 이렇게 말했다.

“그분은 자신의 전 재산을 전부 탕진해도 좋으니 실험은 중단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의 우려가 소득이 없는 성과라면, 돈을 얼마든지 뱉어 낼 테니까 두 개 모두를 진행하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국에서는 전폭적으로 지지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떻게, 단 0.1%의 가능성이라 할지라도 이것을 포기하자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크리스가 시선을 돌렸다.

참담한 기분에 이를 악물었다.

모두가 노력하고 있었다.

제발 살아 있다는 흔적이라도 찾아낸다면, 사람들은 정말 기쁜 마음으로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도 포기하길 바라서 말한 것은 아니다.

다만.

누군가는 현실을 말해야 할 뿐이었다.

크리스가 다시 응원의 말을 건네려는데, 멀리서 한 병사가 헐레벌떡 달려오는 모습을 보였다.

“크리스 님! 크리스 님! 확인하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다급한 목소리.

크게 부릅뜬 눈.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병사의 모습에, 크리스는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 * *

바닥에 한 사내가 쓰러져 있었다.

죽은 사람처럼 미동도 없는 모습에, 크리스는 초조한 얼굴로 한때 성녀라 불렸던 이사벨에게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인 겁니까?”

“아무래도 헨리 앨버트 님의 영혼이 누군가에게 소환당한 것 같아요. 처음에는 급사(急死)를 의심했지만, 신의 힘을 빌려 확인한 결과 육체가 살아 있는 상태에서 영혼만 사라진 것이었어요. 아직 섣부른 판단일 수도 있겠지만, 육체에 남아 있는 마법의 연결 고리로 보았을 때 인위적으로 소환되었다고 판단하고 있어요.”

“그 말은…….”

“예. 차원 너머, 드디어 누군가가 우리의 간절함에 반응했다는 의미겠죠.”

순간.

감정이 울컥 치밀었다.

그동안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크리스는 애써 감정을 억누르며 재차 물었다.

“그런데 왜 헨리 앨버트 님인 겁니까?”

“단순한 우연일 수도 있겠지만, 헨리 앨버트 님이 특정되었다고 가정한다면 ‘일대기’의 존재가 헨리 앨버트 님과의 연결 고리를 형성했다고 추측할 수 있어요. 아시다시피 헨리 앨버트 님은 본인의 사비를 털어 일대기를 제작하고 차원 너머로 보냈어요. 차원 너머의 누군가가 일대기를 매개체로 삼았다면, 매개체에 가장 많은 흔적을 남겼던 헨리 앨버트 님이 특정되었겠죠.”

“……결국에는 헨리 앨버트 님이 일어나야 확실히 확인할 수 있다는 뜻이군요.”

“맞아요.”

일말의 가능성.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미지의 무언가라도 기대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쁜 마음이 들었다.

헨리 앨버트의 소식은 곧 대륙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사람들은 헨리 앨버트를 직접 보겠다고 찾아왔고, 그중에는 세상을 방랑한다고 알려졌던 케빈도 존재했다.

로만 드미트리를 찾겠다는 결론을 내린 이후. 케빈은 다시 드미트리 제국을 떠났다.

혹시 세상 어딘가에 실마리가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동안 세상을 방랑하며 살았다.

이제 케빈은 헨리 앨버트의 곁을 지켰다.

육신이 죽어 버리면 영혼이 돌아오지 못한다는 사실에, 그는 곁을 지키며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제가 지키겠습니다.”

차분한 얼굴.

차분한 음성.

케빈은 망부석처럼 헨리 앨버트의 곁을 지켰다.

보름의 시간이 지나면서부터는 크리스가 제발 휴식을 취하라고 말했지만, 완강하게 버티는 케빈을 말릴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로만 드미트리 외에는 통제할 수 없는 인물. 그가 바로 케빈이었다.

크리스는 케빈의 마음을 이해하기에, 애초에 그 이상으로 통제하려고 들지도 않았다.

시간이 흘렀다.

처음에는 희망적이었던 사람들이, 이대로 헨리 앨버트가 죽는 것이 아니냐는 걱정을 보였다.

모두가 찾아왔다.

모두가 헨리 앨버트를 향해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제발 살아 돌아오라고.

제발 실마리를 찾아와 달라고.

그렇게 한 달.

사람들이 언제나처럼 헨리 앨버트를 찾았을 때, 시체처럼 누워 있던 그가 마침내 눈을 떴다.

* * *

탁한 목소리.

곧바로 알아듣기에는 불분명한 목소리였지만, 사람들은 헨리 앨버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파악했다.

“로, 로만 드미트리 황제 폐하를 만났습니다. 드디어 그분을 만났습니다.”

그 말에.

“아아아아아아!”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거대한 공간이 환호성으로 물들었다.

사람들이 열렬한 환호성을 보냈고,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자리에 주저앉으며 신을 향해 감사한 마음을 표출했다.

로만 드미트리의 생존. 사람들이 간절하게 바라 왔던 희망이었다.

로만 드미트리가 살아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감사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기쁜 건 크리스와 케빈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들은 기쁨에 눈물을 흘리기보다는, 무언가를 알고 있는 헨리 앨버트를 붙잡고 물었다.

“로만 드미트리 황제 폐하는 무사하십니까?”

“거기가 대체 어딥니까?”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차원을 이동할 방법을 찾은 겁니까?”

“황제 폐하는…….”

그야말로 질문 살인마였다.

헨리 앨버트는 아직 빙의의 여파가 가라앉지 않아 현기증이 일었지만, 그렇다고 간절한 눈빛을 외면하고 싶지는 않았다.

역하게 올라오는 기운을 참았다. 지금 당장은 모든 질문에 대답할 수는 없겠지만, 이들에게 필요한 대답이 무엇인지는 알았다.

입술에서 통증이 일었다.

메마른 입술이 쩍쩍 갈라졌지만, 헨리 앨버트는 힘겹게 드미트리를 위한 희망을 말했다.

“로만 드미트리 황제 폐하는 건재하십니다. 그리고 그분이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아직도 선명했다.

자신을 향해 말하던 로만 드미트리의 모습이.

“황제 폐하 또한, 저희에게 돌아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요.”

* * *

드미트리 경비대 소속 알베스.

그가 긴장한 표정을 보였다.

경비대에 처음 배정돼서, 드미트리 제국의 출입을 관리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았다.

모든 이에게 처음은 매우 중요한 일이니만큼, 알베스는 오늘을 생각하며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잘하자, 잘할 수 있을 거야.’

1,000 : 1의 경쟁률.

수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이 자리를 쟁취한 만큼, 알베스는 오늘 하루를 정말 멋있게 마무리하고 싶었다.

나중에 자신의 자식들에게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맡았는지를 자랑할 수 있도록.

하루를 마무리하고 집에 돌아가면, 부모님이 자신을 바라보며 자랑스러워할 수 있도록.

마음을 다잡았다.

선임은 특별한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부분 일반 시민들의 출입을 관리하는 것이기에, 금방 적응할 수 있다며 웃음을 보였다.

그리고 지금.

경비대에 비상이 걸렸다.

알베스는 첫날부터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다.

“발렌티노 공작님이 입성하십니다!”

“파비우스 후작님이 입성하십니다!”

“로렌스 백작님이 입성합니다!”

.

.

드미트리의 거물들.

그들이 속속들이 나타났다.

그것만으로도 눈이 팽팽 돌 지경인데, 앞으로 벌어질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카이로 국왕께서 입성하십니다!”

“헥토르 국왕께서 입성하십니다!”

“크로노스 황제께서 입성하십니다!”

“발할라 황제께서 입성하십니다!”

정말이지.

감당하기 힘든 거물들이 계속 출몰했다.

처음에는 고위 귀족들의 이름에 호들갑을 떨었는데, 각국의 지도자들이 나타나자 그때부터는 귀족의 명함 가지고는 심장이 벌렁거리지도 않았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알베스는 경비 임무에 집중한 탓에 드미트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지 못했다.

분명히 예삿일은 아닌 것 같았지만, 이제 막 부임한 신입이 감히 선임에게 궁금한 점을 물어볼 수는 없었다.

‘대륙 전쟁이라도 벌어진 건가.’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녹초가 되어서도 업무를 이어 나가는 모습에, 드미트리의 경비대장을 맡은 사내가 다가와 말했다.

“알베스.”

“예? 예?!”

화들짝 놀랐다.

경비대장은 그런 알베스를 바라보며 웃었다.

“너에게는 정말 힘든 날이라는 사실은 이해한다. 아직 업무가 익숙하지도 않은데, 평생 만나기도 힘든 인물들을 하루에 전부 상대하니 많이 힘들겠지. 하지만 이 순간을 즐겼으면 좋겠다.”

시선을 돌렸다.

대단한 인물들인데도, 그들은 드미트리의 절차에 따르는 모습을 보였다.

“지금은 고되기만 한 첫 근무일지 몰라도, 훗날 너에게 이날을 자랑스럽게 여길 날이 찾아올 것이다. 우리가 마주하는 이 풍경이. 이 나라의 주인인 로만 드미트리 황제 폐하를 생각하는 사람들의 진심이니까.”

그 말에.

알베스는 멍한 표정으로 경비대장을 바라보았다.

이때는 그 말의 의미를 알지 못했지만, 경비대장의 말처럼 그는 이 순간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 * *

드미트리의 회의실.

드미트리 제국, 그리고 각국의 거물들이 모두 참석했다.

그야말로 대륙 전체를 대표한다고 말할 수 있었고, 그들은 차분한 얼굴로 ‘한 사람’을 기다렸다.

로만 드미트리의 실종 이후.

황제의 자리는 공석이 되었다.

그동안 누군가가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아닌, 대리인(代理人)으로서 나라를 이끈 존재가 있었다.

끼익.

“로드웰 드미트리 국왕께서 입장하십니다.”

아르카디아의 왕.

그가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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