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0화 49일 (3)
쿠릉.
쿠르르르르릉.
세상이 요동쳤다.
거대한 먹구름이 밀려들며 마력이 넘실거렸고, 구름 너머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메테오의 모습에 미국의 마법사들은 넋을 잃은 표정을 보였다.
본능적으로 알았다. 저 강대한 마력을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렇기에 더더욱, 이렇게 넋을 잃고 지켜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빌어먹을.”
“어서 방어 마법을 사용해!”
마법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애초에 머릿수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수비의 역할을 부여받은 마법사들이 따로 있었다.
그들은 캐스팅을 이미 마친 상태.
거대한 하늘을 가로막듯 수많은 방어막이 형성되었다.
“그레이트 실드.”
“그레이트 실드.”
“그레이트 실드.”
우웅.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메테오와 그것을 막겠다고 동시다발적으로 형성되는 그레이트 실드.
방어에 특화되어 있는 수백 개의 그레이트 실드에, 마법사들의 머릿속에 희망이 싹을 틔웠다.
한두 개도 아니고 무려 수백 개다.
혹시 막을 수 있지 않을까.
그들의 희망 어린 생각은, 메테오와 그레이트 실드가 맞닥트리는 순간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콰앙!
콰콰콰콰콰콱!
콰르르르르르르르르르릉.
엄청난 마력이 휘몰아쳤다.
메테오가 그대로 그레이트 실드를 파고들며 맞닥트리는 족족 파괴했고, 우수수 떨어지는 잔여물에 사람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수백 개의 그레이트 실드가 ‘단 하나의 마법’을 막고자 전력을 발휘했다. 그랬다면 조금이라도 막히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메테오의 파괴력은 상식을 벗어났다.
파멸(破滅).
세상을 집어삼켰다.
그레이트 실드를 무참하게 헤집고, 지상으로 추락하는 모습에 병사들조차 달려들던 걸음을 멈추었다.
아니.
정확히는 더는 달려들지 못했다.
메테오가 발산하는 마력의 폭풍만으로도 일반 병사들이 휩쓸렸고, 근접 영향권에 존재하는 병사들은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모습을 보였다.
그 순간. 사람들의 머릿속에 오만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저 메테오가 바닥이 작렬한다면, 훈련이고 뭐고 모두 전멸해 버릴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
끝.
죽음.
각오했던 일이지만, 직접 눈앞에 맞닥트리는 건 다른 문제였다.
미국은 김판석이 절대 절망을 맛보일 만큼의 상대는 아니라고 생각했으나, 김판석은 사람들의 상식을 초월하는 존재였다.
아마도 절대자는 저보다 약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상대할 절대자가 어떤 존재인지 간접적으로 체감하는 순간이었지만, 그렇다고 그에 대한 깨달음을 얻지는 못했다.
눈앞에 파멸을 마주하는 것만으로 사고 회로가 완전히 정지되었다.
투두둑.
누군가는 무기를 떨어트렸고.
누군가는 뒷걸음질을 쳤다.
방어 마법을 사용해야 할 마법사들은, 마법에 해박하기에 오히려 빠르게 몸을 피신하려고 했다.
절망이 전염되었다.
훈련임을 잊어버렸다.
일단은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미국의 정예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일순간 오합지졸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에 대해 비난하는 사람들도 없었다.
냉철한 얼굴로 병사들을 진두지휘하는 리처드조차도, 김판석에게 머리가 짓밟힌 채로 눈앞의 광경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으니까.
그때였다.
“븅신들.”
팟.
땅에 닿기 직전.
김판석이 마나를 거두었다.
메테오의 위력이 급격하게 약해졌으나, 그렇다고 이미 발현한 마법이 완전히 소멸되지는 않았다.
이윽고.
콰앙!
콰콰콰콰콰콰콰콰쾅!
엄청난 폭발이 주변을 그대로 집어삼켰다.
* * *
파스스스스.
먼지구름이 가라앉았다.
폭발이 진정되고 시야가 확보되자, 사람들은 메테오가 작렬한 공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아.”
“세상에 이런 마법이 존재하다니.”
조금 떨어진 거리.
훈련을 위해 확보된 공간이 아니라, 사람 한 명 없는 거대한 공간이 메테오 한 방으로 인해 폐허가 되어 버렸다. 김판석은 분명히 마지막에 마법을 약화시켰다.
일부 마력을 회수했는데도 불구하고, 마치 핵폭탄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완전히 파멸해버린 공간에 사람들은 말을 잃었다.
그제야 알았다.
상식적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판단한 김판석은, 일반적인 상식을 완전히 초월한 존재였다.
소름이 돋았다.
김판석이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절대 절대자만큼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49일 뒤에 인류가 상대할 절대자는 김판석을 능가하는 파괴력을 보일 것이고, 인류는 그것을 상대로 생존해야 한다는 사실이 뒤늦게 머릿속을 장악했다.
다리에 힘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그동안은 단순하게 로만 드미트리를 따라 투쟁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김판석과 같은 괴물을 마주하니 투쟁이고 뭐고 이건 애초에 불가능한 전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로만 드미트리가 의도하는 바였다.
이와 같은 절망이 머릿속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상황에도, 어떻게든 버텨야만 생존할 수 있다.
김판석의 시선이 로만 드미트리를 향했다.
전음으로 ‘무언의 명령’을 들은 그가, 다시 미국의 병사들에게 시선을 돌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실력이 조금이라도 있는 녀석들이라면, 내가 마지막에 전력을 다하지 않고 마나를 거두어들였다는 사실을 알겠지. 그게 너희의 현실이야. 너희가 얼마나 많든, 미국의 소속으로 그동안 얼마나 대단한 업적을 이루었든. 절대자와 같은 초월적인 존재를 쓰러트리기 위해서는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희생을 감당해야 할 거야. 참 재밌지 않나. 하늘이 얼마나 높은지 모를 때는 멋모르고 달려들더니, 막상 하늘을 경험하자 그 아득한 높이에 겁에 질린 표정들을 하고 있잖아.”
슥.
발을 거두었다.
리처드가 기침을 내뱉었다.
속이 완전히 뒤집혔지만, 엉망이 몸 상태보다는 전의를 잃은 눈빛이 미국의 현실을 증명했다.
결국.
개미일 뿐이었다.
절대자가 인간들을 개미로 취급한 것처럼, 지금의 인류는 초월적인 존재에 비해 아무것도 아니었다.
김판석이 존 해리슨을 바라보았다.
“대통령님. 지금부터는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을 생각인데, 어떻게 훈련을 계속 진행하시겠습니까?”
* * *
일련의 상황.
존 해리슨 대통령은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시각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충격적인 상황에, 눈을 부릅뜬 채 그 어떠한 말도 내뱉지 못했다.
“…….”
이 자리에.
미국의 전력을 불러들였다.
리처드, 호크 아이, 볼케이노뿐만 아니라 미국을 대표하는 특수 부대들이 모두 자리했고, 수적으로도 ‘단 한 명’을 상대하기에는 과분할 만큼 불러들였다.
승리를 자신했었다. 김판석이 10초의 여유를 부릴 때도, 미국을 우습게 본 대가를 톡톡히 치르리라고 속으로 김판석을 비웃었다.
그런데.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미국의 마법 부대가 전략적으로 김판석의 마법을 차단했는데도, 혼자서 수백의 마법 방해를 모두 파훼하는 경악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분명히 사람은 하나고 머리도 하나일 텐데, 김판석은 마법 방해를 차례로 해제함과 동시에 공격 마법으로 병사들을 쓸어버렸다.
압도적이었다.
리처드를 제압하고.
메테오를 사용하는 마지막 장면까지.
그레이트 실드가 산산이 부서지는 광경을 바라보며, 존 해리슨의 상식 또한 처참하게 부서지고 말았다.
‘인류가 앞으로 다가올 재앙을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절대자는 단순히 등급으로 구분하는 파괴력을 지닌 존재가 아니라, 백의의 마법사가 사용한 마법처럼 손가락 하나로 우리 모두를 쓸어버릴 수 있는 괴물이다. 인류는 그런 괴물과의 결전을 앞두고 있는 것이고, 로만 드미트리 황제는 우리의 안일한 마음을 확실하게 지적하기 위해 이번 훈련을 마련한 것이겠지.’
패배감이 밀려들었다.
의도를 알아채고 의욕을 보이고 싶었지만, 오히려 이번 훈련은 그에게 깊은 절망감을 선사했다.
대체 어쩌란 말인가.
김판석은 그래도 인간이기에, 머릿수를 계속해서 밀어 넣는다면 언젠가 체력이 떨어질 가능성이라도 있다. 하지만 절대자는 아니다.
절대자는 신적인 존재이며, 그들은 한 명이 아니라 십수 명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이미 증명되었다.
김판석을 압도하는 괴물 십수 명을 상대한다고 생각하자, 인류의 생존을 부르짖는 것이 아니라 전의가 상실되는 기분이 들었다.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포기하고 싶었다.
김판석을 상대로 무의미한 희생을 할 바에, 참담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맞게 행동해야 했다.
“……포기하겠습니다.”
백기를 들었다.
미국의 병사들이 고개를 떨구었다.
한때는 세계 제일 국가라는 자부심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 누구도 그 선택을 비난할 수 없었다.
동의했다.
불가능한 승부였다.
겨우 훈련에 사상자가 발생할 바에, 현실을 인정하고 로만 드미트리를 통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가르침을 받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자존심이 미친 듯이 상했다. 겨우 단 한 명을 감당하지 못한 현실에, 존 해리슨은 고개를 떨구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그런데 그때.
“아니, 너희에게 선택권은 없다.”
상황을 지켜보던 로만 드미트리가 나섰다.
* * *
로만 드미트리가 말했다.
“존 해리슨 대통령. 너는 49일 뒤의 결전이 무엇이라 생각하나.”
“……인류의 생존이 걸린 문제입니다. 마지막 결전에서 패배한다면, 인류는 멸망하고 말겠지요.”
“그래. 네 말처럼 그 싸움에 인류의 명운이 걸렸다.”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생각해 보면 로만 드미트리는 메테오의 영향권에 있었는데도, 조금도 타격을 입은 것 같지 않았다.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김판석의 앞.
수많은 인파를 마주 보며, 로만 드미트리가 목소리를 높였다.
“아무리 압도적으로 밀린다고 한들, 이 자리에서 죽는다는 사실을 안다고 한들. 인류의 명운이 걸린 싸움에서 너희에게 선택권은 존재하지 않는다. 절대자들은 지금의 백의의 마법사처럼, 손아귀에 너희의 생사여탈권(生死與奪權)을 쥐고 있겠지.”
“……대체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저희는 황제 폐하처럼, 백의의 마법사처럼 강하지 않습니다.”
“내가 절대자와의 결전을 거론하며 처음에 말했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절대자의 손아귀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현실은 똑같다고. 너희는 장난감으로서 죽길 바라지 않기에 나를 따르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렇다면 포기하지 마라. 끝까지 싸워라. 검을 들었기에 죽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메테오에 그대로 자신이 소멸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단 한 걸음도 물러나지 마라.”
곧 있을 싸움.
인류에게 바라는 것은 생존에 대한 열망이었다.
힘을 잃고 현실을 받아들이는 게 아닌, 아무리 불리한 승부일지라도 끝까지 투쟁하기를 바랐다.
“절대자들에게 인류는 하찮은 개미에 불과하다. 그들의 손가락질 한 번에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겠지만, 너희가 목숨을 걸고 투쟁한다면 적어도 그들은 단 1분 1초라도 너희에게 발이 묶일 수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너희의 역할이다. 절대자와의 싸움에서 너희가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길 바라는 게 아니라, 그들을 상대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는 강렬한 열망을 보여라.”
스릉.
검을 들었다.
햇볕을 받아, 검이 강렬한 빛깔을 뿜어냈다.
“절대자와의 싸움은 내가 결정 지을 것이다. 너희가 버티고 버티는 동안, 나는 절대자들을 모조리 도륙하고 반드시 인류의 평화를 되찾을 것이다. 그러니 나를 믿고 포기하지 않는 방법을 훈련하라. 절망적인 현실에 절대 살아남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본인의 죽음이 반드시 인류의 생존으로 직결되리라는 확신을 마음에 품어라. 이 싸움은 나로 인해 승리할 것이나, 전쟁이 완전한 종지부를 찍을 때까지는 너희가 감당해야 할 희생을 내가 모두 막아 줄 수는 없다. 그동안 인류가 파악한 정보대로라면, 절대자는 한 명이 아닌 여럿일 테니까.”
이번 훈련.
아직 끝나지 않았다.
로만 드미트리의 바로 뒤에서, 김판석이 마력을 끌어올리며 사나운 눈빛을 보였다.
“지금부터 백의의 마법사와 나 둘을 동시에 상대하라. 1시간 동안 나는 이 자리에 있는 모두의 사지를 부러트릴 것이며, 만약 겁을 먹고 도망치는 존재들이 있다면 그 시간은 늘어날 것이다. 1시간. 내가 절대자들을 쓰러트리고 돌아오길 바라는 희망처럼, 너희는 1시간만 버티면 된다. 존 해리슨 대통령. 미국의 대통령으로서 훈련을 속행할지 선택하라.”
존 해리슨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선택의 기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
김판석에게조차 압도당한 상황에서, 로만 드미트리와 백의의 마법사 조합을 미국이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제야 알았다.
김판석은 맛보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김판석도 감당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식시킨 뒤에, 더한 절망으로 사람들의 정신을 완전히 무너트리려 했다.
이를 악물었다.
사느냐, 죽느냐.
선택지는 없었다.
선택의 기로에서,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일 멍청이는 없었다.
“하겠습니다.”
“좋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검을 늘어트린 로만 드미트리가, 시야를 빼곡히 메운 미국의 병사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지금부터 어떻게든 버텨라.”
담담하게 내뱉은 음성.
그 차가운 말에는, 미국의 승산 따위는 조금도 고려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