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는 평범하게 살 수 없다-597화 (597/615)

597화 마지막 재앙 (3)

순간.

카르가스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겨우 단 한 번의 일격에, 로만 드미트리는 감히 자신을 상대로 ‘과대평가’라는 단어를 입에 올렸다.

분노가 치밀었다.

스스로를 신이라 여기는 존재로서, 인간에게 평가받는 이 상황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오만하다 못해 멍청하기까지 하구나. 처음에는 적당히 가지고 놀아 줄 생각이었으나, 방금의 그 발언 한 번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지금 당장 네 육체를 갈기갈기 찢어발겨 주마. 육체가 사라지는 압도적인 고통 속에서, 너는 너로 인해 전 인류가 감당해야 할 고통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콰릉.

콰르르르르르릉.

카르가스의 마력이 들끓었다.

그가 양팔을 활짝 펼치며 본인의 힘을 분출하자, 사방에서 차원의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어디 한번 버텨 보거라.”

콰앙!

콰콰콰콰쾅!

차원의 경계가 동시다발적으로 폭발했다.

마치 퍼즐 조각이 우수수 떨어지는 것처럼, 차원의 경계가 무너지며 그 너머에서 엄청난 마력이 휘몰아쳤다.

화륵.

콰르르르르륵.

한 경계에서 시뻘건 용암이 해일처럼 밀려들었다.

카르가스가 경험한 가장 뜨거운 용암이었고, 그 밑바닥에 차원의 통로를 형성해 이 세상으로 용암을 불러들였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멀어 버릴 것 같은 열기였다.

용암에 닿는 모든 사물이 단번에 녹아내렸고, 시뻘겋게 몰아치는 용암의 해일은 인간의 육체로는 절대 감당할 수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콰앙!

콰콰콰콰콱!

다른 한쪽에서는 심해(深海)에서 끌어온 해일이 몰아쳤다.

깊은 바닷속, 엄청난 수압으로 똘똘 뭉쳐 있던 것이 단번에 폭발하며 주변의 모든 것을 휩쓸어 버렸다.

수백 개의 경계.

각기 다른 힘들이 몰아쳤다.

절대자는 차원을 다루는 권능을 타고났고, 그것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로만 드미트리를 중심으로 마치 세상이 멸망하는 듯한 광경이 펼쳐졌다.

지켜보는 사람들은 카르가스의 힘에 완전히 압도되었다. 그동안 절망을 훈련했는데도, 전의를 상실하는 기분이 들었다.

아득했다.

이를 어찌 막아 낸단 말인가.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순간, 로만 드미트리는 담담한 얼굴로 몰아치는 마력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번뜩.

콰콰콰콰콱!

자연의 기운을 베었다.

자연이라는 것은 물리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것인데도, 로만 드미트리의 일격에 용암이든 해일이든 모두 쓸려 나가는 모습을 보였다.

카르가스로서는 경악스러운 광경이었다. 로만 드미트리가 도달한 신의 경지.

자연을 동화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통제하는 그 경지에 이르면서, 자연의 힘을 다루는 절대자들의 권능은 로만 드미트리에게 그리 위협적이지 않았다.

우스웠다.

천마신공.

로만 드미트리가 세 번의 삶 동안 갈고닦은 그 힘은, 로만 드미트리를 완전히 다른 경지로 인도했다.

팟.

파파파파팟.

빠르게 치고 나갔다.

그에 따라 용암과 해일이 사방에서 몰아쳤지만, 로만 드미트리는 그것보다 빠르게 움직이면서 직접 맞닥트리는 자연의 힘들은 검으로 베어 버렸다.

카르가스는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그것이 공포라는 것을 그는 알지 못했고, 권능을 극한으로 발현하며 로만 드미트리를 처리하려 했다.

“죽어라!”

콰앙!

퍼퍼퍼퍼펑!

차원이 폭발했다.

로만 드미트리를 그대로 차원 너머로 보내 버리려고 했지만, 폭발의 압력 따위는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샐러맨더 대륙에서 이 세상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로만 드미트리는 차원의 경계를 떠돌았다.

인간이 살아남을 수 없는 환경에서 그 압박을 견디고 견뎌 완성된 육체는, 절대자의 상식으로는 절대 버티지 못할 차원의 폭발 속에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앞으로 치고 나왔다.

파스스스.

몸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인간의 한계를 초월했고, 절대자가 살아온 삶에서 이와 같은 상황은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다.

천적.

확실했다.

단순히 강함의 차이를 떠나서, 애초에 절대자들이 타고난 힘과 로만 드미트리는 천적의 관계였다.

자연재해를 통제하고 차원의 압력에 지장 받지 않는 인간. 사실 그건 인간이라고도 할 수 없었다.

절대자들 스스로가 신이라 생각하는 이유가 바로 그런 것들이기 때문에.

‘이건 아니야! 믿을 수 없어!’

카르가스가 눈을 부릅떴다.

코앞이었다.

자신을 향해 표출하는 강렬한 살의에, 카르가스는 로만 드미트리의 존재를 부정하듯 전력을 분출했다.

그런데 그 순간.

번뜩.

푸확!

끔찍한 통증이 일었다.

카르가스가 현실을 깨달았을 때는, 로만 드미트리의 검이 이미 그의 가슴팍을 베어 버린 뒤였다.

* * *

슈슈슈슈슉.

콰앙!

카르가스가 그대로 바닥에 추락했다.

곧바로 그는 가슴팍을 움켜쥔 채로, 마치 어린아이처럼 난리를 피우며 비명을 질러 댔다.

“아악, 아아아아아악!”

정신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육체적인 고통.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다.

차가운 금속에 살갗이 베어지고 피가 뿜어지는 광경에, 카르가스는 이것이 정말 현실인지 의구심이 들었다.

자신은 절대자다. 아니, 신이다. 신이라면 전지전능한 힘으로 모든 것을 뜻대로 해야 하건만, 그동안 자신이 학살해 온 생명체들처럼 고통 속에서 연약한 모습을 보였다.

의문이 들었다.

어쩌면 본인이 신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구심.

머릿속에서 엄청난 붕괴가 일어났다.

그렇게 비명을 질러 대던 카르가스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인기척에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왜지. 어째서 겨우 이 정도도 버텨 내지 못하는 거지?”

로만 드미트리 또한.

예상과는 다른 상황이었다.

절대자들이 발휘하는 엄청난 권능에 그들이 살아온 세월, 로만 드미트리는 절대자와의 결전을 준비하며 마왕보다도 압도적인 존재를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매일 피땀을 흘렸다.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내뱉은 말을 지키기 위해, 항상 보이지 않는 곳에서 스스로를 향해 채찍질했다.

그런데.

겨우 이 정도라니.

타고난 권능은 대단하지만, 단순한 파괴력은 마왕에도 미치지 못했다.

‘내가 정말 이들을 과대평가했단 말인가.’

우스웠다.

생각해 보면 마왕과 절대자.

그들은 서로 활동한 시기가 달랐다.

마왕은 태생부터 파괴적인 힘을 타고났고, 마계 역사상 가장 강력한 존재였다.

그가 삶에 무료함을 느끼고 지상계의 침공을 결심한 이유는, 고대의 기록에서 마계가 ‘미지의 존재’들에 의해 멸망할 뻔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이후였다.

고로 마왕을 기준으로 절대자의 강함을 판단한 것은 잘못되었다.

마왕은 과거의 예시를 가슴에 새기고 강해지기 위해서 노력했다면, 절대자들은 그때도 지금도 권능으로 차원을 멸망시키는 것을 즐기며 살았다.

스스로를 신이라 여겼고.

다른 존재들도 그들을 신이라 취급했다.

아무도 절대자들의 존재를 넘보지 않았기에, 절대자들의 밑바닥이 드러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그동안 멸망 당했던 생명체들이 절대자를 이길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마계의 마왕 또한 일대일의 싸움이라면 몰라도, 절대자 전체를 상대했다면 분명히 절대자들의 침공을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다.

문제는 상대가 로만 드미트리라는 것이다. 인간의 육신으로 마왕을 도륙한, 그리고 그 이상의 상대를 대비하기 위해 신의 경지에 올라선 존재.

로만 드미트리를 상대로.

현재의 절대자는 우스울 정도였다.

전력을 발휘할 필요도 없었고, 49일 동안 악착같이 대비해 온 시간이 허무해질 정도의 격차가 존재했다.

로만 드미트리가 말했다.

“너희는 정말 같잖은 존재로구나. 스스로의 위치도 파악하지 못하고, 날 상대로 목숨을 내어 주는 꼴이라니. 더는 상대할 가치가 없다.”

콰릉.

콰르르르르릉.

결론을 내렸다.

단 한 번의 일격.

그것으로 카르가스를 끝내고자 했다.

더는 상대를 파악할 필요성이 존재하지 않았고, 단 한 명이라도 개체를 줄이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콰르르르르릉.

엄청난 마력이었다.

로만 드미트리가 천마검법을 사용하려는 모습에, 카르가스는 ‘공포’라는 감정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몸이 미친 듯이 떨렸다.

그동안 본인들이 장난감처럼 다루었던 생명체들이 살려 달라면서 발악하고 소리 질렀던 모습이, 머릿속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며 그의 몸을 옥죄었다.

이것이 공포였다.

이것이 생존에 대한 욕구였다.

카르가스는 자신만만하게 혼자서 로만 드미트리를 처리하겠다고 말했지만, 지금은 체면을 챙길 때가 아니었다.

[동족들이여! 나를 도와다오!]

차원 너머.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황급히 공격을 막아 내려는 순간.

‘천마검법 후반부 이초식.’

번뜩.

콰콰콰콰콰콰쾅!

그대로 카르가스의 존재를 휩쓸어 버렸다.

* * *

절대자.

신이라 불리는 존재.

모두가 그들의 존재를 조금도 부정하지 않았건만, 눈앞의 광경은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파스스스.

카르가스가 소멸되었다.

그의 육체였던 것이 더는 존재하지 않았고, 먼지가 휘날리며 카르가스가 소멸되었음을 증명했다.

그때였다.

번뜩.

콰르르르르르릉.

사방에서 엄청난 빛이 일었다.

지상에 내리꽂히는 빛의 기둥 너머에서, 카르가스가 도움을 요청했던 동족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감히 카르가스를!”

“인간. 너는 절대 곱게 죽지는 못할 것이다.”

“네가 강하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하지만 네가 간과한 것은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무려 일곱.

그들은 카르가스와 우호적인 존재들이었다.

카르가스가 로만 드미트리를 농락하는 모습을 보려고 기다렸는데, 오히려 소멸당해 버린 상황에 들끓는 분노를 참지 못했다.

로만 드미트리의 압도적인 강함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일곱의 절대자를 동시에 상대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절대자들의 권능은 힘을 합칠수록 강해지는 경향을 보이기에, 그들은 본인들의 존재를 드러내며 강렬한 살의(殺意)를 표출했다.

스륵.

로만 드미트리가 검을 늘어트렸다.

절대자를 상대로도 무방비 상태를 드러내며, 눈에 보이는 존재들의 숫자를 확인했다.

“방금 죽은 녀석과 지금 나타난 일곱, 그리고 이전에 확인했던 볼피르를 생각한다면 너희는 최소 아홉이라는 의미겠지. 이해가 되지 않는 존재들이야. 그만한 권능을 타고난 존재들이 무려 아홉이 넘게 존재하다니. 만약 그보다 더 있다면 모두 불러들여라. 나 홀로 너희 전부를 상대해 줄 테니까.”

오만한 발언이었다.

동시에.

그건 의도적인 발언이기도 했다.

카르가스를 상대하면서 절대자들이 본인의 상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렇다고 인류가 감당할 수 있는 존재인 것은 아니었다.

만약 이 많은 개체가 게릴라 작전을 펼친다면? 그때는 엄청난 피해가 발생할 것이다. 차원을 다루는 능력은 전략적으로 활용할 요소가 넘쳐났다.

로만 드미트리의 발언.

절대자들을 제대로 자극했다.

카르가스와 가장 친밀하게 지냈던 크라켈이, 사나운 기세를 드러내며 힘을 끌어 올렸다.

콰르르르르릉.

“그래, 네 녀석을 죽여…….”

그때였다.

[멈춰라, 크라켈.]

차원 너머.

볼피르의 목소리가 들렸다.

* * *

볼피르와 카르가스.

절대자 중에 가장 발언권이 강한 존재였다.

볼피르는 절대자답지 않게 신중한 면이 있지만, 카르가스는 호전적이고 거침이 없었다.

그동안은 카르가스가 절대자들을 주도했다.

타고난 강력한 권능에 신중하게 계산할 필요가 존재하지 않았고, 억겁의 세월이 흐르며 카르가스와 뜻을 같이하는 절대자들이 많았다.

인간이든 뭐든. 전부 하찮은 생명체에 불과하지 않은가. 감히 신에 범접할 수 없는 존재들을 상대로 경계하고 대비할 필요는 없었다.

지금은 달랐다.

카르가스가 죽었다.

그가 소멸되어 버린 상황에, 볼피르의 음성은 흘려들을 수 없었다.

[내가 경고했던 대로 로만 드미트리는 만만히 볼 존재가 아니다. 그는 카르가스를 상대로도 전력을 발휘하지 않았고, 그와의 전면전에서 우리가 승리할지는 확신할 수 없다. 나조차도 로만 드미트리가 이 정도로 강할 줄은 몰랐지만, 진실을 확인한 이상 전략을 바꿀 필요가 있다.]

‘그럼 어떻게 하자는 거지?’

[크라켈. 우리는 그동안 수많은 차원을 무너트리며 우리의 존재를 드러낼 필요가 없었다. 차원의 경계 너머.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도록 조성된 세상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은, 차원이 붕괴되는 것만으로도 멸망하는 것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지. 이번에도 다르지 않다. 유희 방식을 바꿔 보는 것이 어떻겠나. 로만 드미트리를 배제하고, 철저하게 이 세상을 무너트리는 거지.]

순간.

크라켈이 웃음을 보였다.

다른 절대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로만 드미트리가 카르가스를 소멸시켜 버릴 만큼의 괴물이라면, 굳이 그를 상대로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었다.

생각할수록 괜찮은 전략이었다.

로만 드미트리는 자신의 사람들을 매우 아끼는 인물처럼 보였고, 그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기 위해서는 전면전보다 볼피르의 전략이 끌렸다.

의식 너머.

수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것은 실제로는 찰나의 시간에 불과했고, 대화가 끝나자 갑자기 크라켈이 자신의 권능을 발현했다.

“로만 드미트리. 지금부터 우리는 재밌는 게임을 시작할 생각이다.”

콰릉.

콰르르르르르릉.

차원의 경계가 무너졌다.

처음에는 수십 개였던 것이 수백, 수천 개로 늘어나면서, 대한제국 수도 한복판에만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통로가 생겨났다.

그리고 그 너머로 몬스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일반 병사들이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의 몬스터들부터 시작해서, 수백 마리에 달하는 S등급의 몬스터까지.

압도적인 광경이었다.

사람들은 그 모습에 몸을 떨었고, 크라켈은 본인의 판단이 옳았다는 확신에 활짝 웃음을 보였다.

“어디 한번 버텨 보거라. 우리 모두를 죽일 때까지, 이 게임은 끝나지 않을 테니까.”

번뜩.

파파파파팟.

절대자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사라졌다.

크라켈을 포함해 적의를 드러내던 일곱의 존재가, 갑자기 빛무리에 휩싸이며 자취를 감추었다.

그들이 사라진 자리.

사방에서 살의 어린 눈빛들이 번들거렸다.

로만 드미트리의 도움 없이는 감당하기 힘든 숫자였다.

그리고.

-크, 큰일 났습니다. 미국에 절대자가 나타났습니다!

-중국에 절대자가 나타났습니다!

-호주에…….

사방에서 빗발치는 연락.

마지막 재앙.

그것은 지금부터가 시작이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