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1화
11화
“왜 이리 잘해?”
“선출인가? 너 선출이냐?”
“아닙니다!”
“그래? 그럼 노래해 봐! 노래하면서 해 봐!”
“알겠습니다! 비 내리는 호남서언! 남행 열차에에!”
창수는 노래까지 하면서 공을 튕겼다.
이쯤 되면 실수할 법도 했지만 공은 바닥에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때 이 중위가 창수의 정체를 떠올렸다.
“아! 저 친구 전통 무예 유일 계승자라고 합니다.”
“전통 무예 계승자요?”
“예. 그래서 교육단에서 데리고 가려고 했다는데…….”
“야! 막내야!”
“하사! 최창수! 내 눈물도 흐르고오!”
“노래는 닥치고! 너 무술 하다 왔냐?”
“무술은 아직 사사 받지 못했습니다! 전역하고 난 뒤에 사사받기로 해서 무예는 전혀 못 합니다!”
교육단에서 창수의 전통 무예를 탐내기는 했다.
오직 스승과 제자만으로 전승이 되는 무예라고 했지만 군대에서 그런 것을 이해해 줄 리가 없었다.
하지만 군대 다녀오기 전에는 무예를 한 동작도 배우지 못했다는 창수의 말에 교육단장은 좌절해야만 했다.
대충 군대에서 뺏길 것이라 여긴 스승이 군대 문제 해결하고 난 뒤에 가르쳐 주려고 한다고 이해한 것이다.
그렇게 체력만 엄청난 괴물일 뿐인 창수에 교육단은 창수를 포기해 버린 것이다.
“아! 무예는 못하고? 그런데 몇 개까지 했냐?”
임 상사는 자신의 옆에 서서 구경하고 있는 김한기 하사를 빤히 바라보았다.
“예?”
“몇 개 했냐고?”
“아! 그…… 그게.”
창수의 볼 트래핑이 몇 개인지 세야 한다는 것에 김한기는 난감해졌다.
처음부터 자신보고 세라고 했으면 셌을 테지만 그런 말도 안 하고 묻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군대였다.
그렇게 오늘 저녁 고참한테 한 소리 들을 것에 한숨이 절로 나오려고 할 때 김한기를 구해주는 목소리가 들렸다.
“사백삼십 둘! 사백삼십 셋!”
“…….”
“…….”
창수가 자신이 볼 트래핑 숫자를 외치자 팀원들은 전부 괴물 보듯이 창수를 바라보았다.
중간에 노래도 부르고 임 상사의 질문에 대답도 하면서 트래핑 숫자까지 세고 있었던 것이다.
특전사들도 나름 괴물 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그래도 인간이었다.
인간의 범주를 넘는 것 같은 창수의 모습에 질려버리는 것이다.
“저게 정말 돼?”
“되는 것처럼 보이네요.”
“야! 옆 팀 김 상사한테 가서 한 판 하자고 해라! 다른 팀한테도 이야기하고. 에이! 팀별로 움직이니까 축구 하려고 할 때마다 쉽지가 않네.”
임 상사는 축구 감독은 아니었지만 당장에라도 창수를 써 보고 싶어졌다.
물론 자신들의 팀이 축구팀이 아니라 특전사 팀이었으니 창수를 제대로 써먹어 보려면 전장으로 가야 할 터였다.
하지만 군인들 중에 진심으로 전장에 가고 싶어 하는 이들은 없었다.
전역할 때까지 자신과 자신의 팀원들이 몸 건강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그렇게 두 개 팀이 한팀이 되어 축구 연습 경기가 열리게 되었다.
다른 특전여단과의 체육대회 경기를 위한 선수 선발도 해야 했으니 꼭 승패가 중요한 경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누구보다 승부욕 강한 진짜 사나이들이다 보니 생각보다 거친 경기가 될 수밖에 없었다.
“어이! 임 꺽정이.”
“시끄러! 김월남 놈아!”
임 상사의 이름은 임청주였지만 생김새가 산적 같아서인지 동기들이나 선배들로부터 임꺽정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었다.
후배들도 그가 없을 때는 산적 두목으로 부르는 듯했다.
당연히 임 상사는 그런 자신의 별명을 마음에 들어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생긴 것은 산적 두목같이 생겼기에 별수 없었다.
“갑자기 웬 경기?”
“저놈 실력 좀 보려고.”
“저놈? 누구?”
임 상사의 동기인 옆 팀의 김만준 상사는 임 상사가 손가락질을 하고 있는 창수를 보았다.
“처음 보는 앤데? 파견?”
“아니. 신병.”
“신병? 신병 실력 보자고 지금 전부 소집시켰냐?”
“중대장님이 허락했다.”
“그래도 그렇지 이 미친놈이!”
거친 김 상사에도 임 상사는 몸을 풀고 있는 창수를 노려보았다.
움직임을 보고 있자니 임 상사의 본능이 창수가 물건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야! 최 하사! 오늘 지면 내가 가만 안 둘 거니까! 알아서 해라!”
“하사 최창수! 알겠습니다!”
창수는 임 상사의 외침에 큰 소리로 대답하고서는 경기 시작과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3보 이상 뛰기.’
자신의 바로 윗선임인 김 하사에게 듣기는 했지만 교육대에서도 이미 자대에 가면 삼보 이상은 무조건 뛰는 것이 원칙이라는 충고 겸 경고를 들었다.
물론 얼차려나 폭행은 지금의 창수에게 별다른 타격이 되지는 않았다.
신체적인 문제는 아무런 타격이 되지 않았지만 역시 군대는 정신적인 압박감인 법이다.
창수도 기왕이면 군 생활을 고문관이 아닌 에이스로 마치고 싶었다.
더욱이…….
‘뭐 계속 뛰는 것이 힘든 것도 아니고.’
창수는 경기가 시작되고부터 끝날 때까지 계속 달렸다.
“저…… 저거 야생마야?”
“저놈 왜 저렇게 계속 뛰어다니냐! 아이고! 죽겠다!”
체력이라면 어디 가서 떨어진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던 특전사들이었지만 창수의 움직임에 덩달아 뛰어다니다 보니 이내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템포 자체가 창수 때문에 극도로 빨라지는 것이다.
다들 전력 질주를 해가며 공을 쫓아야만 했다.
물론 그 전에 창수의 개인기에 다들 혀를 내둘러야 했다.
“쟤 선출이야?”
“아니라던데?”
“아니! 그런데 왜 저리 잘해? 특전사 올 것이 아니라 어디 상무 가야 하는 거 아니야? 아주 그냥 공이 발에 붙어 있는데?”
체력도 체력이었고 스피드도 있는 데다가, 공은 몸에 붙었다 하면 도통 자신이 차기 전까지는 떨어지지 않았다.
저런 실력으로 왜 특전사에 왔는지 도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이 자식이!”
어지간한 일에는 반칙이 아닌 것이 군대 축구였다.
망나니처럼 뛰어다니는 창수에 상대편의 덩치 좋은 중사가 우악스럽게 어깨로 치고 들어왔다.
자칫 크게 부상을 입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창수의 몸에 닿자 상대 팀 중사의 몸이 땅바닥에 나뒹굴어야만 했다.
“어이쿠!”
“괜찮으세요? 아! 죄송합니다! 제가 그냥 피할 걸 그랬나 봅니다!”
창수는 먼지가 풀풀 날리는 연병장에서 몇 바퀴인가를 굴러다니는 중사에 사과를 하면서도 공을 발에 붙이고서는 계속 뛰어다녔다.
“그만 뛰고 공 좀 넣어라! 제발!”
군대에서는 공을 넣는 이는 선임이어야 한다.
선수 출신의 신병이라도 신병 때는 딱 미드필드에서 패스를 뿌려주는 역할이었다.
당연히 신병 막내 때는 골키퍼를 하거나 아니면 수비수를 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그러면 창수의 실력을 보기 힘들었기에 임 상사는 창수를 나름 공격형 미드필더 위치에 세웠다.
물론 군대 축구가 체계가 있을 리 없었기에 포지션이 딱 정해져 있는 건 당연히 아니었다.
“패수! 패수!”
패스를 외치는 선임을 향해 킬 패스를 뿌려주는 창수였지만 선임의 골 결정력이 참담할 정도로 끔찍했다.
덕분에 쉴 사이 없이 뛰어다녔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골도 나오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창수는 상대 공격수에게서 공을 빼앗고 드리블이나 패스로 연신 전방으로 킬 패스를 뿌려대었다.
프로 축구 감독이 보았다면 창수 혼자 거의 모든 경기장을 뛰어다니는 것에 혀를 내두르며 스카우트를 하려고 안달이 날지도 몰랐다.
물론 생동성 시험에서의 수많은 약물로 인해 도핑 테스트의 결과가 걱정인 창수가 프로 축구 선수를 할 가능성은 없었다.
초인적인 힘을 가지게 되었지만 결국에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야 할 인간인 창수였다.
“야! 그냥 골 넣어! 골 넣으라고!”
임 상사의 외침에 마침내 창수는 상대 팀의 특전사들을 전부 제겨 버리고서는 마지막에는 골키퍼까지 제쳐버렸다.
철석!
완벽한 판타지 스타.
너무나도 압도적이라 화가 나기보다는 경이로울 정도라 다들 창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미치겠네, 쟤 진짜 군대 왜 왔냐?”
“난들 아냐! 그래도 프로 선수들 사이에서는 일반인 되지 않겠냐? 우리가 뭐 특전사라고 축구를 전문으로 한 것도 아닌데.”
“그러긴 하지. 아무튼 이번 특전사령부 체육대회는 우리가 우승인 것이 중요하지.”
자신들의 비밀병기의 파괴력을 알게 되었으니 임 상사는 입이 찢어질 만큼 기뻤다.
자고로 군대의 에이스는 사회에서 축구 좀 하던 막노동꾼이었다.
물론 일반병에 한한 이야기였지만 특전사 때도 사회에서 운동 좀 하면서 현장 일 하던 이가 최고였다.
“우와! 너 군 생활은 앞으로 걱정하지 마라! 아니! 혹시 누나 있냐?”
“없습니다!”
“아! 아쉽긴 한데. 그래도 괜찮아! 너 우리 팀 에이스다! 에이스야!”
“최 중사님!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창수 누나 있었으면 매형은 무조건 잡혀 살아야 할걸요.”
“아! 맞네!”
창수가 혹시라도 누나가 있는지 탐을 냈던 선임들은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사실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창수의 가족들을 보지는 못했지만 흐릿한 실루엣으로 엄청난 존재들이 서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팀원들이었다.
그렇게 너스레를 떠는 선임들에 창수는 자신의 평범한 부모님을 떠올리고서는 실소를 해야 했다.
생동성 시험의 부작용이 아니었다면 창수는 평범보다 오히려 부족한 체력을 가지고 있었을 터였다.
‘후우! 아무튼 첫 단추는 잘 맞춘 듯하네.’
군대에서는 너무 튀지 말라는 말을 들었지만 특전사에서는 이를 악물고 발버둥을 쳐야 보통이나 될 것이라는 말을 들어왔기에 창수는 최선을 다했다.
왠지 너무 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창수였다.
체육대회의 선발로 결정이 된 창수는 자신의 팀원들에게 인정을 받으며 팀원으로 녹아들어 갔다.
하지만 특전사가 축구 선수도 아니었기에 결국 훈련과 각종 작전 교육이 주가 될 수밖에 없었다.
각종 장비를 다루는 방법과 요인 경호부터 대민작전 지원까지 외워야 할 것도 많았고 몸에 숙달시켜야 할 것도 많았다.
당연히 신병이 제대로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처음 팀원으로 들어오면 한동안은 폐급 소리 들으면서 고생을 해야 했다.
물론 일반적인 경우가 그랬지 창수하고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다 외웠어?”
“예!”
“해 봐!”
단 한 번만 가르치면 되었다.
사실 한 번만 가르치고 난 뒤에 못 하면 갈궈서 몸과 뇌에 새겨 넣으려고 했다.
그런데 창수에게는 두 번 가르칠 필요가 없었다.
“어…… 잘하네.”
“감사합니다! 선배님께서 잘 가르쳐 주신 덕분입니다!”
창수를 보고 있자니 자신의 막내 생활 때가 계속 떠오르고는 했다.
화장실에서 남몰래 얼마나 눈물을 흘려대었는지 눈물 젖은 빵을 몇 번이고 먹으며 울음을 참아야 했다.
‘뭔가 엄청 억울하다.’
너무 잘하니까 갈굴 수도 없었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이 존재한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이토록 완벽한 인간이 존재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런데 눈앞에 완벽한 인간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적이 아닌 것이 다행인가?’
창수가 와서 막내를 벗어나게 된 김 하사는 창수의 후임으로 올 애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창수는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이 빠르게 익혀야 할 것을 익힐 수 있었다.
해외 파병 임무를 담당하는 국평단이었기에 영어 외에 제2외국어들도 필수 아닌 필수였다.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창수는 어렵지 않게 하나하나 익혀나갔다.
그렇게 고된 생활이었지만 창수는 진심으로 특전사에 온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에서는 그다지 크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지만 창수는 꽤나 많은 것을 배우고 익힐 수 있는 것에 만족한 것이다.
일반병으로 갔다면 그냥 시간이나 때우다가 전역을 하고 아르바이트나 하다가 복학을 했을 터였다.
하지만 자신의 강화된 몸을 쓰는 방법부터 각종 기계류 및 언어, 심리학까지 배울 수 있게 되었다.
더욱이 훈련 일과 후에는 자신이 공부하고 싶은 것도 배울 수 있다는 것도 창수를 만족스럽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