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8화
18화
콜레라를 포함한 수인성 전염병 예방 접종을 받으러 수많은 이재민이 모여들었다.
언제 어떤 사고가 터질지 알 수 없었기에 특전사들뿐만 아니라 칠레 경찰들의 협조까지 받고 있었다.
“자! 줄을 서세요! 모두가 다 맞을 수 있으니까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예방 접종을 받고 난 뒤에는 식량 박스를 드리고 있으니까 확인증 꼭 확인해 주세요.”
예방 접종을 독려하기 위해 얼마간의 식량과 생필품이 들어 있는 식량 박스를 주고 있었다.
아직 건물들이 전부 복구되지는 않았지만 기본적인 기반 시설들은 복구되어가고 있었다.
그 때문에 물자들은 제법 넉넉하게 도시로 유입이 되고 있었지만 역시나 모든 것을 잃어 물자를 구입하기 힘든 것이 문제였다.
그나마 칠레 정부에서 국토 재건을 위해 공공 근로 일자리를 제공하면서 어느 정도 돈이 돌기 시작하고 있었다.
물론 남미 특유의 비리와 범죄 조직의 개입으로 인해 꽤나 불안했다.
하지만 분명 상황은 점점 좋아지고 있었다.
“주사 맞은 자리 꽉 눌러 주시구요. 조금 있다가 떼면 돼요. 여기 확인증 있습니다. 오른쪽으로 가시면 식량과 생필품 나눠 줄 겁니다.”
간호장교인 이미연 중위는 온몸이 천근만근이었지만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하나라도 더 구하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예방 접종 주사를 놔두고 벌써 몇 번인지도 모를 말을 사람들에게 하고 있었다.
저녁이 되면 목이 쉬어서 목소리도 나오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자기 일에 그 누구보다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자! 다음 분.”
다음 사람이 들어오자 이미연 중위는 주의사항을 말했다.
“혹시 예방 접종을 하신 건 아니시죠?”
예방 접종을 끝내고 식량 박스를 받을 수 있었기에 한 번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두 번 세 번 계속 맞으러 오는 경우가 있었다.
그만큼 절박하다는 의미일 수도 있었지만 이런 이들을 걸러내야만 했다.
한국에서였다면 전산화가 잘 이루어져 있었기에 충분히 걸러질 수 있었지만 전산화가 붕괴된 재난지역에서는 힘들었다.
그 때문에 주사를 맞는 부위에 잘 지워지지 않는 잉크로 표시를 해두기도 했다.
몇 번이고 씻는다면 결국에는 지워지기는 하겠지만 물이 귀하다 보니 제법 오래 가는 잉크였다.
그렇게 대비를 하고 있어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기에 몇 번이고 주사를 맞기 전에 물어보는 것이다.
“자! 다음!”
이미연 중위의 옆에는 중무장을 한 특전사가 서 있었다.
주사를 맞는 사람이 갑자기 난동을 부리기라도 한다면 위험해지기에 대비를 위해 대기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잠시도 정신이 없어서 자신을 지켜 주는 특전사를 자세히 살펴볼 여력 따위는 없었다.
그래도 든든함이 느껴져 열심히 일을 할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예!”
대부분은 주사를 맞고 확인증을 받아서는 확 나가 버렸지만 종종 고맙다는 말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 이들의 인사에 이미연도 미소를 지으며 화답을 했다.
“잠시 쉬시죠. 이 중위님.”
“아니에요. 다음 분.”
창수는 쉬지도 않고 일을 하는 이 중위에 잠시 쉬라는 말을 했다.
한 십 분 정도 멈추고 숨이나 돌리라는 것이었지만 책임감 강한 간호장교는 그런 창수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렇게 또 다른 환자가 들어왔다.
그리고서는 몇 번이나 반복되었던 예방 접종이 끝나고 접종자는 천막 밖으로 나갔다.
우당탕탕!
“까아악!”
천막 밖에서 갑자기 넘어지는 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무슨?”
이미연 중위는 조금 전에 나간 접종자가 쓰러진 것 같은 상황에 황급히 천막 밖으로 나갔다.
예상대로 조금 전에 접종을 받은 이가 땅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입에는 거품을 물고 있는 것이 한눈에 봐도 위급 상황이었다.
주변의 사람들은 구경만을 하고 있을 뿐 어찌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이미연 중위는 곧바로 환자의 의식을 확인하고 기도를 확보했다.
“뭘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옷 좀 풀어주세요! 기도 확보 먼저 해야겠어요.”
“알겠습니다!”
창수는 이 중위의 지시에 따라 남자의 옷을 빠르게 풀고서는 이 중위를 도왔다.
“간질은 아닌 것 같은데.”
이 중위는 자신이 배웠던 의학 지식을 토대로 환자의 상태를 살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근처의 군의장교들이 달려올 터였지만 초분을 다투는 상황에서 환자의 상태를 확인해야만 했다.
문제는 간호장교이기는 하지만 경험이 그다지 많다고 볼 수 없는 그녀가 지금의 환자의 특이한 상황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무슨 일이야?”
“예방 접종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실신했습니다!”
“의식은? 기도 확보는 했어?”
“예! 했습니다!”
“나와 봐!”
소식을 들은 것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달려온 군의장교는 곧장 환자를 살피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 의료 천막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한 명 두 명씩 의식을 잃고서는 쓰러지기 시작했다.
“뭐? 뭐야? 갑자기 왜 이래?”
한두 사람도 아니고 십여 명이 그냥 길바닥에 쓰러지는 모습은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예방 접종 중단하고 비상 걸어!”
“예! 알겠습니다!”
예방 접종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체력적으로 힘든 사람들 중에 너무 오랫동안 서서 기다리다가 실신한 것일 수도 있었다.
그렇게 이유야 어찌 되었든 간에 실신한 환자들을 돌볼 의료 인력이 필요했다.
그게 예방 접종 중인 이들이었다.
“이봐요! 하사!”
“예!”
“쓰러진 사람들 의료 천막으로 옮겨…… 응?”
“으으으!”
“이봐요. 정신 차렸어요?”
창수에게 실신한 사람들을 의료 천막으로 옮기라고 말을 하려고 할 때 실신한 환자들의 의식이 돌아온 것인지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나마 의식을 회복하는 것에 안도하려는 순간 쓰러진 환자가 군의장교에게 달려들었다.
“까아악!”
바로 옆에 있던 이 중위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는 순간 창수의 손이 군의장교의 목을 물어뜯는 환자의 목덜미를 낚아챘다.
나름 바로 대처를 했다지만 이미 군의장교의 목덜미에서는 피가 솟구치고 있었다.
“제길! 뭐야!”
창수는 전혀 예상조차 하지 못한 상황에 환자의 몸을 밀어내버리고서는 군의장교를 바라보았다.
손으로 목을 움켜쥐고 있었지만 붉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문제는 군의장교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아아악! 살려 줘!”
“디에고! 왜 그러는 거야? 멈춰! 멈추라고!”
군의장교를 공격한 사람뿐만 아니라 실신했다가 깨어난 사람들도 주변의 사람들을 공격한 것이다.
“맙소사!”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창수는 잠시 멍해졌다가 이내 자신에게 달려드는 남자의 몸을 그대로 업어쳤다.
제법 큰 충격으로 잠깐은 정신을 차리지 못할 터였다.
“비상 발생! 비상 발생! 폭도…… 뭐야?”
창수는 곧장 무선기를 이용해 비상 상황이 발생했다는 것을 알렸다.
하지만 보고를 다 끝마치기도 전에 땅바닥에 업어 눕힌 남자가 다시 일어서서는 자신에게 덤비는 것을 보아야만 했다.
분명 몇 분간은 정신을 못 차려야 했지만 바로 공격을 해 오는 것이다.
이로 물어뜯으려는 것인지 입을 벌리고 덤비는 모습은 흡사 영화 속의 좀비와도 같았다.
하지만 완전 무장 중인 특전사일 뿐만 아니라 창수에게는 너무나도 느린 움직임이었다.
부웅!
창수는 이번에는 뼈 몇 개는 부러트릴 각오로 붙잡아서는 던져 버렸다.
총을 가지고 있었지만 총기 사용을 허가받지 못한 상태였다.
그렇게 총기가 아닌 힘으로 제압하려는 창수였지만 놀랍게도 4~5m는 날아간 남자는 바로 일어서서는 자신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이를 공격하고자 했다.
“뭐야? 저건? 괴물도 아니고.”
“하사님! 좀 도와주세요! 김 대위님께서!”
“예? 아! 예!”
목에서 피가 뿜어지고 있는 군의장교의 목을 꼬옥 붙잡고 있는 이 중위의 외침에 창수는 김 대위를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이미 주변에서 예방 접종을 하려고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은 전부 사라지고 없었다.
“도움 요청 좀 해 주세요!”
“아! 예! 비상사태 발생! 비상사태 발생! 환자 발생! 8번 천막에 위급 환자 발생!”
창수는 무전기로 위급 상황임을 전했다.
마음 같아서는 바로 옆 천막의 군의장교나 간호장교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싶었지만 자신이 천막을 나서는 순간 폭도가 들어와 김 대위와 이 중위를 공격할 수도 있었기에 자리를 비울 수 없었다.
타탕!
“까아악!”
천막 밖으로 총소리까지 들렸다.
최대한 총기 사용을 자제하도록 했지만 상황이 악화되자 총을 사용한 듯했다.
물론 국평단의 특전사가 아닌 칠레 경찰이 발포를 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혼란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환자 있다면서!”
“박 소령님! 김 대위님께서!”
“뭐 하는 거야! 당장 수술 준비해! 혈액! 혈액 가지고 와! 빨리!”
8번 천막으로 들어온 박 소령은 조금만 늦으면 위험한 상황의 김 대위에 긴급 수술을 지시했다.
군의 장교와 간호장교들이 달려오는 동시에 특전사들도 달려왔다.
“무슨 일이야? 이 하사!”
“환자가 습격해 왔습니다.”
“환자가 습격해 왔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예방 접종을 끝내고 나갔던 이가 갑자기 실신해서 군의장교님께서 살피시는 도중에 갑자기 공격을 해 왔습니다.”
“자네는 그러는 동안 뭘 한 거야!”
“죄송합니다!”
“일단 주변을 경계하고 그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게 해!”
“총기 사용을 허락해 주시는 겁니까?”
“미쳤어! 민간인한테 총기를 사용하게! 맨몸으로 상대해!”
역시나 민간인에게 총기를 사용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자기 보호를 한다지만 군인이 민간인을 그것도 타국의 민간인에게 총기를 사용하는 것은 정치적 외교적인 문제가 될 수 있었다.
창수는 곧바로 천막 밖으로 나갔다.
군의장교들과 간호장교들로 가득 차서 더 이상 천막 안에 있을 수도 없었다.
그렇게 천막 밖으로 나온 창수의 눈에는 온통 피와 시체가 널브러진 참혹한 광경이 들어왔다.
“미친!”
절로 욕이 튀어나올 만큼 끔찍한 상황이었다.
창수뿐만 아니라 특전사들 모두가 그 참혹한 광경에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할 때 몇몇 사람들이 특전사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대부분은 주둔지 밖으로 도망을 치는 사람들을 쫓아 밖으로 나갔지만 일부가 남아 있다가 특전사들을 보자 달려든 것이다.
“멈추세요! 스톱!”
특전사들은 일단 멈추라는 권유를 했지만 이미 이성이 날아가 버린 것인지 막무가내로 달려들어 왔다.
“전부 제압해!”
전부 제압하라는 명령에 특전사들은 폭도들을 막았다.
고된 훈련으로 단련된 특전사들이었고 숫자도 특전사들이 더 많았으니 어렵지 않게 제압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건 얼마 지나지 않아 잘못된 생각임을 알게 되었다.
“윽! 뭐야? 뭔 힘이 이리 강해?”
덤빈 상대의 덩치가 제법 크기는 했지만 그다지 크게 차이가 나는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숨이 턱 막힐 만큼 강한 힘에 밀려나다가 넘어져야만 했다.
“으아아아!”
맨살이 보이는 얼굴을 향해 이를 들이미는 남자에 자칫 큰 부상이 발생할 상황이었다.
덥석!
얼굴을 물어뜯으려는 그 순간 폭도의 몸이 뒤로 들어 올려졌다.
쿵!
살짝 폭도의 몸이 뒤로 들어 올려졌다가 땅바닥에 처박혔다.
“이놈들 힘이 장난 아닙니다! 두셋이 덤벼야 합니다!”
창수는 엄청난 힘으로 저항하는 폭도의 팔을 강제로 꺾었다.
팔이 부러지는 듯한 소리가 들린 듯했지만 제압을 하려면 어쩔 수 없었다.
“선배님! 손 좀 묶어 주십시오!”
“그래! 이 하사! 꽉 잡아!”
창수가 힘으로 팔을 꺾어 강제로 제압한 남자의 두 손을 포승줄로 포박했다.
그런 창수처럼 다른 특전사들도 둘 셋이 매달려서는 폭도들을 하나둘씩 제압을 하기 시작했다.
“입을 막아! 입을 막으라고!”
팔다리를 포박했음에도 불구하고 몸을 비틀면서 물어뜯으려는 폭도들에 결국 입까지 재갈을 물려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쉬지 않고 발버둥을 치는 모습에 혀가 내둘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