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2화
22화
좀비 사태.
아니 아리가 사태의 진실과 실태가 아직 드러나지 못했을 때 아리가에 파병되어 있던 한국군 파병부대는 대한민국 정부의 긴급 지시를 받았다.
“본국 복귀는 중단되었네. 현지에서 재난 복구 및 지원 임무를 계속하라는 명령이네.”
“우리를 버리는 겁니까?”
“버리는 것이 아니라 본국을 지키려는 것이겠지. 정말 좀비라면 복국으로 복귀시킬 수는 없을 테니까.”
“그렇군요.”
단 한 명의 좀비로부터 국가의 붕괴가 벌어진다는 영화 속의 스토리는 너무나도 흔했다.
결국 한국 정부와 국방부는 아리가에 파병되어 있는 군인 전부의 국내 복귀를 승인하지 않았다.
그건 한국 정부뿐만 아니라 아리가에 인원을 지원한 모든 국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미군조차도 자국군의 국내 복귀를 승인하지 않았다.
“식량하고 물자 조사 시작하게. 곧 아리가 전체가 봉쇄될 거네. 아니 이미 봉쇄가 되었을지도 모르지.”
“본국에서 지원하지 않겠답니까?”
“아니! 지원은 올 걸세. 매주 군 수송기로 물자를 보내 줄 것이라고 하더군. 물론 넉넉하지는 않겠지만 말이야.”
“후우! 알겠습니다. 참. 주민들은 어떻게 합니까?”
창수가 구한 마을 주민들은 주둔지 내부에 수용하고 있었다.
언제 어디에서 좀비가 나타날지 몰랐기에 주둔지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주둔지 내로 수용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차마 현지 주민들을 밖으로 내보낼 수가 없었다.
내보내는 순간 좀비의 희생양이 될 것을 알기 때문이다.
결국 의료진들의 철저한 조사로 몸에 난 상처를 확인한 뒤에 수용하기로 결정을 했다.
물론 거의 가둬진 상태나 다를 바 없었지만 그것만으로도 현지 주민들은 안심했다.
“참! 좀비에 대한 사살 명령이 내려졌네. UN군 사령부와 칠레 정부의 승인이 떨어졌네.”
“그건 다행이군요.”
창수가 놀라운 무술로 좀비들을 제압할 수 있었지만 특전사라고 해서 좀비를 피해 없이 제압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머리. 확실하게 머리를 노리라고 해. 괜히 몸뚱이나 다리 노렸다가 물리면 끝장이니까.”
“알겠습니다. 확실히 교육하겠습니다.”
파견단장인 한석 중령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자신이 데리고 온 부하들을 살리겠다고 다짐을 했다.
아리가 지원 임무를 계속하라는 지시를 받았지만 좀비 사태가 터진 이상 끝까지 버티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그런데 혹시나 핵으로 이 지역 자체를 지워 버리지 않을까요?”
“뭐?”
“아니. 그렇지 않습니까. 좀비가 퍼져 나갈 수 있으니 민간인의 피해를 감안하고 아리가 자체를 지워 버리는 것.”
“빌어먹을!”
아직 확실한 정보가 없었기에 최악의 상황도 염두에 둬야 했다.
자칫 가만히 있다가 아무것도 모르고 죽을 수도 있었다.
“단장님! 소방지원 인력 보호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본국에서 아리가 남쪽 테로스에서 재난 지원 임무 중인 소방관들에 대한 보호를 요청해 왔습니다. 되도록 주둔지에 수용해 보호를 하라는 지시입니다.”
국평단과 의료 지원 부대뿐만 아니라 소방청의 소방대원들도 칠레 지진에 지원을 했다.
그 인원이 고립되었으니 즉시 구조를 하라는 임무가 떨어진 것이다.
“인원 총 몇 명이래?”
“이십육 명이라고 합니다.”
“차량 한 대로는 힘들 것 같은데.”
생각 이상으로 어려운 미션이 될 것임을 알 수 있었지만 자국민 구출 임무였으니 거부할 수 없었다.
“현지민들은?”
“공사관을 통해 연락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후우! 쉽지가 않겠어. 일단 소방대원들 데리고 올 방법 짜 봐. 흐음! 최 하사라고 했지?”
“3팀 말이십니까?”
“그래. 3팀을 구조팀으로 편성해. 지원팀 하나 붙여주고. 수송팀 하나 더 넣어. 정 안 되면 공항 쪽으로…… 후우!”
공항으로 보내서 군 수송기를 통해 본국으로 보내는 것이 가장 좋았지만 좀비 사태로 인해 소방대원들도 본국 복귀가 불가능할 터였다.
결국 어떻게든 주둔지 내에서 수용을 해야만 했다.
소방대원들에 대한 구조 임무가 창수가 있는 3팀에게 떨어졌다.
주둔지 밖으로 나간다는 것에 특전사들은 불안해했지만 자국민 구조 임무라는 것에 결의를 다졌다.
“10분 준다. 가족들에게 남길 편지 작성 후에 출동 준비한다.”
중대장인 김만춘 대위는 자신의 팀원들에게 마지막 유서를 남길 시간을 주었다.
긴급한 임무였기에 많은 시간을 줄 수도 없었다.
팀원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곧장 자신의 앞에 놓인 편지지에 가족들에게 남길 유서를 작성했다.
한국에서 유서 작성은 이미 하고 왔지만 이번에는 정말 죽을 수도 있는 임무였기에 진심을 담은 짧은 유서를 남기는 것이다.
“다 끝났나? 탄환 확실히 챙기고 분명히 말하지만 좀비 출현 시 머리를 노린다. 방심하는 순간 동료가 죽는다는 것 명심해라. 알았나?”
“예!”
“좋아! 출발한다.”
소방대원들은 임무 수행 중인 곳으로 출발했다.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네요.”
“다 숨어 있겠지. 언제 좀비한테 공격받을지 모르니까.”
차량으로 움직이기 힘들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길거리에 사람 한 명 보이지 않아서인지 이동은 어렵지 않았다.
특전사들은 건물의 유리창 안으로 사람들이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몇몇 도와 달라는 비명을 지르며 건물 밖으로 나오는 이들도 있었지만 수송 트럭은 조금도 속도를 줄이지 않고 지나쳐 갔다.
건물 밖으로 나온 주민들은 멀어져 가는 군 수송 트럭에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이내 건물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언제 좀비들이 자신들에게로 달려들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어느 정도 가던 중 구조팀은 도로 전체를 막고 있는 검문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중무장을 한 수십 명의 군인이 철저하게 지키고 있는 군 검문소는 좀비이든 주민이든 가리지 않고 공격을 할 기세였다.
“정지! 정지!”
“한국군 지원 부대입니다!”
“이동 확인서 보여주시오!”
“여기 있소!”
타국군이라고 할지라도 이동 확인서가 없다면 절대 통과를 허락해 주지 않을 기세였다.
한국 정부에서 칠레 정부에 강력하게 요청을 해서는 아리가 내의 이동 확인서를 발급받았다.
한국군뿐만 아니라 타국군도 자국민들을 구출하기 위해 칠레 정부와 협의 중이거나 이미 구출 작전을 시행하고 있었다.
“좀비가 돌아다니고 있소?”
“보시오. 정확하게 얼마나 돌아다니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조심하는 것이 좋을 거요.”
김만춘 대위는 검문소 주위로 사살된 주민들의 시체를 볼 수 있었다.
그 시체들이 좀비인지 아니면 일반 주민들인지는 알 수 없었다.
적아가 확연하게 구분이 되지 않는 것이 좀비와의 전쟁에서 무서운 점이었다.
“여기 있소. 위험하면 즉시 임무를 중단하시는 것이 좋을 거요. 괜히 희생자만 만들지 말고.”
박 대위는 자신들의 손으로 자신들을 죽이는 귀찮은 짓을 하지 말라는 속뜻을 알 수 있었다.
“통과! 참! 그리고 부상자는 어떤 이유에서든 통과시킬 수 없으니 그리 아시오.”
좀비에 물려도 좀비가 되지 않았지만 그러한 사실을 알 리 없었기에 검문소의 책임자는 부상자는 그 어떤 이유에서도 통과를 시켜 줄 수 없다고 이야기를 했다.
“문 열어!”
검문소 책임자의 외침에 검문소 문이 열렸다.
세 대의 군용 트럭이 통과하고 난 뒤에 검문소의 문이 굳게 닫혔다.
“무선 연락해 봐.”
“예! 여기는 한국군 일비 파병부대 구조팀. 모아 소방대는 들리십니까?”
약속된 비상 무전 주파수를 통해 연락하는 통신 주특기의 한국영 중사였다.
일비 부대 주둔지와 거리가 떨어져 있는 소방 지원 부대인 모아 소방대 간에 매일 두 차례 통신 연락을 하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모아 소방대가 기지가 아닌 임무 중에 고립이 되었고 일반 전화기는 칠레 정부가 정보 통제라도 하려는지 아니면 좀비들로 인해 통신망이 붕괴된 것인지 전화 연락이 되지 않았다.
기지 내의 통신도 되지 않았기에 고립된 소방대의 위치와 가까워지자 단파 무선 통신을 시도하는 것이다.
지지직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한국 정부를 통해 지원 요청을 받았을 때까지만 해도 다들 무사하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그때로부터 시간이 꽤나 지나 있었기에 어떤 상황인지는 알 수 없었다.
“여기는 일비 파병부대 구조팀! 모아 소방대 들리십니까?”
긴장된 침묵 속에서 소방대원들의 생존에 대한 불안함이 짙어질 때쯤 무전기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는 모아 소방대 단장 권혁신입니다. 들립니다. 구조팀입니까?-
“예! 들립니다. 구조팀입니다. 다들 무사하십니까?”
무전기 너머에서 한국어 목소리가 들리자 구조팀의 특전사들의 입에서 작게 탄성이 들렸다.
이역만리 떨어져 있는 이국에서 고국의 사람들이 무사하다는 것에 구조팀 특전사들은 모두를 다 구조해 내고야 말겠다는 다짐을 했다.
-부상자가 몇 명 있습니다! 나머지는 일단 전부 무사합니다.-
부상자가 있다는 말에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일단 다들 무사하다는 말에 구조팀 대원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정확한 위치를 알려 주십시오.”
-예! 여기는…….-
소방대 권혁신 단장이 알려준 위치를 아리가의 지도를 통해 확인하는 김만춘 대위였다.
“그리 멀지는 않군.”
“중대장님! 더 이상 차량으로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길이 막힌 거야?”
“예! 차량들로 인해 길이 막혔습니다! 여기에서 도보로 이동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후우! 별수 없군. 전원 하차! 지원팀은 저격 위치 잡고 구조팀은 구조 작업 들어간다.”
“예!”
차량이 멈추고 혹시라도 있을 좀비들의 습격을 막기 위한 저격수 배치와 수송 트럭 보호를 하는 지원팀과 수송팀이었다.
구조팀인 3팀은 완전 무장을 하고서는 곧장 차량에서 하차를 해서는 모아 소방대가 고립되어 있는 곳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최 하사. 후우! 선두에 서라. 할 수 있겠지?”
“예! 맡겨 주십시오.”
보통이었다면 막내인 창수가 선두에 서게 하지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좀비들을 너무나도 간단히 쓸어버리던 창수의 실력에 선두를 맡긴 것이다.
물론 창수의 바로 뒤로 노련한 김영훈 상사가 서포트를 하기로 했다.
후방은 임청주 상사와 최혁준 중사가 맡기도 하면서 12명의 특전사 3팀은 구조 지역으로 신속하게 이동을 시작했다.
조준 사격 자세로 빠르게 움직이는 특전사 구조팀은 무척이나 은밀하게 움직여서 마치 유령과도 같았다.
폐허 속에서 인기척조차 느껴지지 않는 곳에서 특전사 구조팀만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이동하던 중에 창수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창수는 대열의 중간에 있던 김 대위에게 수신호로 앞에 좀비가 있음을 알렸다.
김 대위는 자신의 부대원들을 경계 자세로 전환 시키고서는 창수에게로 다가왔다.
“몇 명이야?”
“하나입니다.”
“하나? 위치는?”
“골목 안쪽입니다.”
“흐음!”
지도를 살핀 김 대위는 우회를 해야 할지 좀비를 공격하고 돌파를 해야 할지를 결정해야만 했다.
물론 되도록 돌파보다는 우회를 선택하는 것이 현명했다.
총을 사용하든 아니면 무력을 사용하든 주변에 얼마나 있을지 모를 좀비를 끌어들일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구조 임무는 완전히 실패를 하게 되는 것이다.
“우회한다. 오른쪽 대로를 통해 이동한다.”
“알겠습니다.”
시야가 공개가 된 대로는 되도록 피하는 것이 좋았지만 골목길을 막고 있는 좀비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창수는 좀비 한 마리 정도는 자신의 능력으로 충분히 제압을 할 수 있다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꾸욱 참았다.
자신은 지휘관이 아니었기에 이런 임무에서는 지휘관의 지시를 따라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