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31화
31화
혹시나 싶어서 스스로 격리실로 들어간 김만춘 대위가 확보해 온 엔젤과 정체불명의 가루는 한석 중령에게 들어갔다.
한석 중령은 국정원의 일에 한발 물러서 있으려고 했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었다.
눈앞의 약들을 보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했다.
“이것이 엔젤이라는 그 약이고. 이 하얀 가루들은 뭔가?”
“확인 미상의 약제인 것 같습니다.”
“약?”
“예. 단장님.”
한석 중령은 점점 첩첩산중이라는 생각을 하며 뒷머리가 지끈거렸다.
자신은 그냥 지진으로 인해 재난 상황이 발생한 칠레의 대민 지원과 의료 부대 호위 임무를 부여받았을 뿐이었다.
다행히 좀비 사태는 아니었지만 좀비 사태나 다를 바 없는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그러니까 이 엔젤인가 데빌인가 하는 것하고 이 확인 안 된 약을 같이 처먹으면 저 의무대에 있는 그 괴물이 된다 이거지?”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그게 말이 돼?”
차라리 북괴군이 남한을 침공했고 자신의 부대가 평양에 투입된다고 하는 것이 더 말이 될 지경이었다.
“김만춘 대위와 임청주 상사 그리고 고준열 중사에게 엔젤을 투약했습니다.”
“그래. 뭐 그건 위기 상황이라 그렇다고 하지. 이제 그 친구들이 검증되지 않은 어떤 약을 같이 섭취하면 괴물이 된다는 거지? 아니! 특정 약이 아닌 아무런 약도 앞으로 사용할 수 없을지도 모르고?”
“아마도 그럴 겁니다.”
살아가다 보면 수많은 약을 사용하기 마련이었다.
당장 병사들이 가지고 다니는 응급 치료 키트인 모르핀도 부상자에게 사용하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다.
잘못하면 전투 중에 아군 병사가 괴물이 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마피아. 그러니까 칠레 마피아인 헤인트에서 이 엔젤과 확인 안 된 약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고.”
“그렇습니다. 3팀에서 구조한 민간인들의 증언을 확보했습니다. 그들이 헤인트라는 마피아 집단이고 엔젤을 캡슐로 만들어 전투 시에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인간 이상의 체력과 힘 그리고 스피드를 발휘할 수 있게 해 주는 물질이 엔젤임을 알게 되었다.
그 엔젤이 다른 것과 결합이 되면 괴물이 된다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이미 일비 부대의 단장인 한석 중령의 선에서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
“상부의 지시는?”
“확보하랍니다.”
“대체 무슨 방법으로 확보를 하란 말이야! 그런 괴물 놈들을 어떻게 상대하라고!”
특전사라고 하니까 무적의 불사신으로 알고 있는 듯한 상부에 울화통이 터지려는 한석 중령이었다.
자신의 유능한 부하인 김만춘 대위가 목숨을 걸고 엔젤을 복용해서는 괴물들을 처리했다.
창수의 활약도 대단했지만 김만춘 대위가 엔젤을 복용했다는 말에 김만춘 대위의 성과로 여겨지고 있었다.
“다음 주부터 다국적군 전투부대가 아리가에 전개하게 될 겁니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엔젤을 확보하기 어려워집니다. 당연히 대부분은 미군에게 넘어가게 될 겁니다.”
“우리가 미군과 싸울 것도 아니잖아!”
“모르는 일이지요.”
엔젤의 등장은 그동안의 규칙과 법칙을 뒤흔들 만큼 큰 충격을 안겨 줄 수 있었다.
행여라도 테러 단체의 손에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그때는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 될 터였다.
“그 괴물들을 상대하려면 엔젤이 필요하게 될 겁니다.”
“자네. 그거 악당들이 하는 대사하고 똑같은 거 아는가?”
“현실은 영화 속보다 더 참혹한 일이지요.”
박충렬의 말을 들은 한석 중령은 인상을 찡그리다가 이내 자신의 단장실을 나섰다.
한석 중령이 향한 곳은 김만춘 대위와 임청주 상사 그리고 고준열 중사가 격리되고 있는 곳이었다.
한석 중령이 격리실에 도착하자 격리실의 앞에 모여 있던 3팀의 특전사들이 곧장 몸을 일으켰다.
“단결!”
“단결. 김 대위는?”
“안에 있습니다. 단장님!”
“좋아. 쉬고 있게나.”
쉬고 있으라고 했지만 3팀의 특전사들은 자신들의 동료들을 보호 겸 감시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만에 하나 엔젤을 먹은 동료들이 괴물로 변이하기라도 한다면 자신들의 손으로 막기 위한 것이었다.
아직까지는 아무런 변이도 일어나지 않고 있었지만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튼튼하게 만들어진 격리실 안으로 들어간 한석 중령은 자신을 본 세 특전 용사들이 침대에 누워 있다가 몸을 일으키려는 것을 보았다.
“임 상사하고 고 중사는 그냥 그대로 있게나.”
“단장님.”
“빨리 나으려면 가만히 누워 있게.”
“감사합니다.”
아프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부상이 없는 건 아니었다.
임 상사의 경우는 몇 달은 병원에 누워 있어야 할 만큼의 큰 부상이었다.
물론 엔젤의 영향인지 일반적인 회복 기간보다 훨씬 빠르게 회복되고 있기는 했다.
엔젤의 남은 효력이 부상 회복으로 돌려지고 있는 것이다.
며칠 뒤면 부상 회복 효과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터였지만 아직은 눈에 띌 정도의 호전 상황이 아니었기에 알지 못하고 있었다.
“김 대위.”
“예! 단장님.”
“잠시 이야기 좀 하지.”
“위험하실 수도 있습니다. 단장님.”
“나도 특전대원이야!”
“죄송합니다.”
김만춘 대위는 이제는 특전 임무에 투입이 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어지간한 젊은 대원들 못지않다는 한석 중령의 외침에 사과를 했다.
격리실에서 나온 김만춘 대위는 잠시 한석 중령과 박충렬 셋이서 주둔지 한편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엔젤의 위력은 직접 사용을 해 본 김만춘 대위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반드시 필요합니다. 적에게만 있고 우리에게 없다면 절대 이길 수 없습니다.”
“그 정도야?”
“예. 마피아 조직원들이야 훈련되지 못한 자들이라 허둥대다가 당한 것이지 전문적으로 훈련된 이가 사용한다면 절대 막을 수 없습니다. 몇 킬로 밖의 적도 지금의 눈으로 찾으라면 찾을 수 있을 지경입니다. 더욱이 밤에도 희미한 빛만 있다면 훤하게 보일 정도입니다.”
야시경을 쓰지도 않았음에도 밤에 훤하게 보인다는 김만춘 대위의 말에 한석 중령은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엔젤이 전술 및 전략적으로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할지를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많지 않아. 곧 미군이 투입될 걸세. 한국군이 오기에는 시간도 많이 걸리고 미국의 지휘를 받게 될 것이라 엔젤을 손에 넣지 못할 가능성이 커.”
“예상하고 있습니다.”
“타국의 특수부대들도 이미 작전 중일 가능성이 크네.”
“예.”
“자네하고 자네 팀이 나서 줘야겠어.”
“알겠습니다.”
이미 김만춘 대위는 각오를 하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엔젤의 제조법을 알아내야만 했다.
“공식적인 일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겠지?”
“임무가 끝나면 포상 휴가라도 챙겨 주십시오.”
“그건 걱정 말게. 내 월급 털어서라도 돌아가면 회식까지 시켜 줄 테니까.”
“저희 쪽에서 대외비로 어느 정도는 지원해 드릴 수 있을 겁니다.”
돈 때문에 하는 일이 아니었기에 한석 중령과 김만춘 대위는 박충렬을 흘겨보았다.
“마피아 조직의 아지트가 어디인지 파악이 우선입니다.”
“그건 빅토 씨를 통해 알아내었습니다.”
“아! 그 친구 말입니까?”
“예. 엔젤의 초기 유통을 헤인트에서 했던 모양입니다. 헤인트에서 엔젤을 만든 것인지 아닌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만 가장 유력한 집단입니다.”
“대구경의 장비가 필요합니다.”
김만춘 대위는 자신들의 장비로는 괴물들을 상대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박충렬도 예상을 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나 싶어서 급하게 장비를 요청해서 확보했다.
전투가 아닌 주둔지 보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파견되었기에 특전사들의 화력이 빈약했다.
* * *
화력을 보강한 3팀은 헤인트 마피아의 본거지가 있는 곳으로 출발했다.
임 상사와 고 중사가 자신들도 갈 수 있다고 우겼지만 명령이라며 놔두고 출발을 하게 되었다.
“절대 무리하지 마라.”
“걱정 하지 마십시오. 그나저나 맛은 어떱니까? 팀장님?”
“먹을 생각하지 마라니까.”
“에이! 저희도 팀장님이나 최 하사처럼 무적의 군인이 되고 싶습니다.”
창수가 엔젤을 먹은 것은 아니었지만 날아다니면서 괴물들을 때려잡는 모습에 그동안 부러워하던 대원들이었다.
가. 그런데 자신의 팀장이 그런 슈퍼 솔저가 되어 버렸다.
“야! 최 하사.”
“하사! 최창수!”
“조용히 하고. 너도 그 뭐냐? 대환단이나 공청석유 같이 영약 먹었지?”
“예?”
“아니! 전통 무예 유일 전승자 정도면 무협지에 나오는 영약 같은 거 하나쯤은 줘서 먹어 봤을 거 아니야.”
평소 무협지에 관심이 많던 선임의 질문에 창수는 기가 찼다.
평소였다면 다른 선임들도 어이없어할 터였지만 엔젤이라는 약을 알고 나자 그런 것이 실제로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엔젤 같은 게 정말 있기는 있는 거구나.”
“그러게 말이야. 엔젤인가는 부작용 있는데 그런 건 수천 년 전통으로 만든 거니까 부작용도 없겠지?”
“사람 몸이 아무리 단련했다고 그렇게 강해질 리가 없지. 약 썼네. 약 썼어.”
약을 쓰긴 썼으니 창수로서도 할 말이 없기는 했다.
‘뭔 약물인지도 모를 생동성 시험을 하기는 했으니 약을 쓰긴 했지만…….’
그게 무협지에 나오는 영약이 아니라는 것이었지만 효과는 비슷하기는 했다.
“엔젤 쓸 생각 하지 마라. 잘못하면 괴물 돼서 되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김만춘 대위는 단단히 경고를 했지만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고 엔젤을 확보했다면 자신의 부하들이 망설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창수가 엔젤 쓰면 어떻게 되는 거야?”
“…….”
“…….”
동료의 혼잣말에 다들 깊은 침묵에 빠져들었다.
엔젤을 사용하지 않은 상태로도 총알은 파고들어 가지도 않는 근육 뮤턴트를 가지고 놀던 창수였다.
얼마나 괴물이 될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더욱이 특수 약제까지 함께 사용을 해서 근육 뮤턴트가 되기라도 한다면 얼마나 괴물이 될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핵무기 막으려나?”
“그 건 무리지 않을까?”
“일단 저격총으로는 못 잡을 것 같은데.”
“C4 챙기기는 했는데.”
창수는 어떻게 하면 자기를 죽일 수 있을까 심각하게 토론하고 있는 선임들을 보며 의무 복무만 끝나면 바로 전역을 해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도착했다. 여기서부터는 걸어서 이동한다.”
편하게 트럭으로 이동한 3팀은 트럭에서 하차를 하고서는 목표 지점까지 이동을 시작했다.
제대로 된 작전도 없이 진행이 되는 것이었지만 다들 얼마나 중요한 임무가 될지 알고 있었기에 불평은 없었다.
이번에는 창수가 아닌 김만춘 대위가 선두로 병력을 이끌었다.
엔젤의 효과가 영원히 이어지는지 아니면 일시적인 것인지 아직 알 수는 없었지만 인간 이상의 감각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김 대위는 차츰 옅어져 가는 감각에 엔젤이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아님을 느끼고 있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려나?’
격리실로 들어가기 전에 혈액과 소변을 의무장교에게 제출한 김 대위였다.
자칫 평생 그 어떤 약도 먹으면 안 될지도 모른다고 걱정을 했지만 그 정도까지는 안 되어도 될 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그렇게 마피아들의 본거지 인근까지 이동한 김만춘 대위는 방문자들이 자신들뿐만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사냥개들이 꽤나 냄새를 맡은 모양이군.”
우려를 했던 것처럼 세계 각국의 특수부대들도 헤인트의 본거지를 노리고 있었다.
“저런 위험한 것을 범죄 조직 따위가 가지고 있게 놔둘 수는 없지.”
자신들이 가질 수 없다면 차라리 파괴해 버려야만 했다.
그것이 각국의 정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