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81화
81화
일상의 풍경이 바뀌었다.
과거라면 휴가를 가는 장병들이나 길거리에서 드물게 볼 수 있었지만 이제는 완전 무장을 한 병사들이 각 도시에 경계를 서고 있었다.
그런 모습에 다들 위압감을 느끼면서도 안도하고 있었다.
무시무시한 괴물이 어느 순간 나타나 사람들을 헤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더 이상 과거의 삶으로 되돌아가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과거의 평온했던 삶이 더 이상은 이루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충격적인 말은 절망스럽기까지 했다.
“엄마. 나 놀이터에 나가서 놀면 안 돼?”
“안 돼! 괴물이 나타날 수도 있단 말이야!”
“괴물 무서워. 그치만 나가 놀고 싶어!”
“안 돼. 집에서 놀아.”
몇 년 전 전 세계적인 전염병이 돌았다.
그때도 과거의 삶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갑갑한 집 안에서만 지내야 했으며 얼굴은 전부 마스크로 가려야만 했다.
그런 전염병 사태는 꽤나 오랫동안 이어져 전 세계인들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런 전염병 사태가 겨우 진정이 되고 겨우 일상으로 돌아가는 듯했다.
그렇게 안심하기도 얼마 지나지 않아 엔젤 사태가 터져 버렸다.
이번에는 전염병을 막을 백신도 그리고 치료약도 없었다.
누가 언제 괴물로 변해 사람들을 공격할지 알 수도 없었다.
“체온 확인하겠습니다.”
마스크는 필요 없었지만 사람들은 다시 마스크를 꺼내 썼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시키지도 않은 행동이었다.
전염병과는 달리 공기 중 전염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스크를 쓰고 사람들은 건물을 들어갈 때는 여지없이 체온을 쟀다.
하지만 과거 전염병 사태 때처럼 건물의 입구마다 설치되어 있는 체온계로는 정확한 체온을 잴 수 없었다.
더욱이 일부 체온이 정상 범위보다 높게 나온 때에는…….
“거기 경찰이죠? 체온이 비정상적으로 높게 나온 이가 있어요! 예! 빨리 와 주세요!”
“저…… 괴물 아닙니다! 그냥 감기라구요. 감기!”
엔젤을 먹은 이는 38도 이상의 고온일 때 그것도 뮤턴트는 사실상 인간으로 버티기 힘든 40도 이상의 고온일 때였지만 37도의 경계선 체온에서도 경찰이나 군인이 체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선생님. 협조해 주십시오.”
“나 아니라고! 이 새끼들아! 내가 무슨 괴물인 줄 알아!”
“마지막으로 말씀드립니다. 선생님. 협조 부탁드립니다.”
“웃기지…….”
퍼억!
과거였다면 무고한 시민을 공권력이 무참하게 억압한다고 여겼지만 전체의 생존이 걸린 상황에서는 묵인되었다.
뮤턴트는 아니지만 엔젤을 먹은 테러범으로 여겨져 강압적인 제압이 용인된 것이다.
“입안 살펴! 변이 물질을 섭취하면 뮤턴트가 될 수 있다.”
“저항하면 머리를 쏴! 머리를 쏴야 막을 수 있다!”
머리에 총구를 들이대고서는 단단한 쇠사슬로 몸을 묶는다.
그렇게 군용차에 끌려가 버린다.
이런 현상은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전 세계 각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었고 각국의 항구와 공항에서는 모든 입출입자는 전부 체온 검사와 수화물 정밀 검색이 필수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뮤턴트는 예기치 못한 장소에서 불쑥 나타나고는 했다.
크어어어어어!
“뮤턴트다! 도망쳐! 뮤턴트가 나타났다!”
1형 뮤턴트라면 차라리 다행이었다.
2형 뮤턴트 이상부터는 일반 시민들로서도 아니 일반 군인들도 막기 힘들었다.
“머리를 노려! 머리를 노리란 말이다!”
“너…… 너무 빠릅니다!”
커다란 몸에 달린 작은 머리는 연신 세차게 움직여졌고 소총으로 단번에 맞추기는 쉽지 않았다.
그렇게 뮤턴트가 나올 때마다 수십 명까지 사상자들이 나오고는 했다.
특히나 3형 뮤턴트가 나오는 경우에는 수백 명이 넘는 사상자가 나오기까지 할 정도였다.
“이 개자식들아! 왜 이제야 온 거야! 왜! 왜 이렇게 늦게 온 거냔 말이다!”
“흑흑흑! 안 돼. 죽지 마. 도와주세요! 제발! 제발 도와주세요!”
인간이 집단을 이룬 이유는 외부의 위협에서부터 자신과 가족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집단이 그리고 국가가 자신을 외부의 적으로부터 보호해 줄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국가에 충성하고 희생을 하는 법이었다.
하지만 국가가 그리고 집단이 보호를 해주지 못한다고 한다면 더 이상 국가와 집단의 존재 필요성은 사라지는 법이었다.
시민들이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국가에 대한 신뢰를 잃어간다는 것은 공동체의 붕괴로 이어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 * *
“우리나라의 사정은 그나마 낫다고 하지만 벌써 주식시장부터 붕괴가 될 판입니다.”
“아직도 주식시장 걱정을 하나.”
단순한 경제 위기가 아닌 인류의 생존 위기였으니 인간 심리에 기반을 두는 주식시장이 멀쩡할 리가 없었다.
당장 세계 최고의 주식시장이라는 미국의 주식시장마저 마치 절벽처럼 수직으로 내려찍고 있었다.
전 세계의 주식시장 모두 언제 빨간 불이 들어온 적이 있냐는 듯이 연신 하락장만 계속되고 있었다.
“이러다가 뮤턴트에게 인류가 멸망 당하기 전에 경제가 멈춰서 인류가 멸망을 할지 모르겠네.”
“그러긴 하겠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가 당장 눈앞에 닥치고 있었다.
주요 식량 생산국들은 식량 수출을 머뭇거렸다.
신흥국이나 저개발국가들은 당장에 기아에 직면하면서 뮤턴트로 죽은 사람들 숫자보다 기아로 죽은 사람들이 더 많아질 지경이었다.
과거 전염병 사태에서도 비공식적으로 전염병으로 죽은 사람들보다 기아와 영양실조 그리고 의료 서비스 부족으로 사망한 사람이 더 많다고 할 정도였다.
이번 뮤턴트 사태도 마찬가지였다.
식량과 에너지 그리고 의약품 부족으로 인해 저개발 국가들부터 죽어 나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사이를 엔젤이 파고들어 왔다.
먹으면 괴물이 된다는 것을 알고서도 당장의 아픈 몸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엔젤이 필요했다.
-모두가 다 괴물이 되는 건 아니야. 아니 괴물이 되면 어때? 어차피 아무런 희망도 없는데.-
괴물이 되든 안 되든 희망이 보이지 않는 이들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인류는 수천 년 아니 수백만 년 동안 쌓아 올린 위대한 문명이 서서히 저물어 가고 있음을 체감할 수 있었다.
무너지는 모래성을 두 손바닥으로 막아 보려고 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래도 막아야 했다.
“지금은 쇼가 필요할 때야.”
“쇼요?”
“그래. 희망을 위한 쇼.”
작전명 호프(희망)
최고의 특수부대를 모아 뮤턴트로 인해 점령된 도시를 탈환하는 다큐멘터리 뮤비.
더 이상 군대도 그리고 정부도 사람들에게 비밀을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류에게 아직 희망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특수부대 호프가 결성이 되었다.
호프는 뮤턴트들을 학살했다.
마치 히어로 영화 속의 영웅들이 지구를 침공해 온 사악한 외계인들을 물리친 것처럼 호프는 당당하게 최후의 승리를 인류에게 안기는 것이다.
“사악한 테러단체인 헤인트를 박멸하면 더 이상의 뮤턴트는 만들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육중한 무기를 든 250파운드의 근육 몸의 소유자는 능숙하게 뮤턴트의 머리를 날려버렸다.
현실인지 영화인지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였지만 영상의 상단에서는 실제 상황임을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영상은 인간이 아닌 듯한 초인의 모습을 비춰주기도 했다.
“인류는 마지막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영화에 나오는 슈퍼 솔저 혈청 같은 것은 없지만 이렇게 강한 힘을 내주는 물약이 개발되었지요.”
붉은색 물약을 투약한 군인은 한주먹으로 거대한 2형 뮤턴트의 몸을 날려버렸다.
1형 뮤턴트 같은 것은 가지고 놀 정도로 손쉽게 처리해 버렸다.
물론 더욱 강한 뮤턴트도 있었다.
키에에에에엑!
온몸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괴성을 내지르는 3형 뮤턴트는 힘만으로는 제압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고작해야 대검 하나만을 들고서 3형 뮤턴트의 몸을 단번에 베어버리는 호리호리한 몸매의 동양인 군인도 있었다.
“우리는 싸울 겁니다. 그리고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수많은 위기가 있었지만 결국 인류의 저력으로 극복했던 것처럼.”
허우적거리는 3형 뮤턴트의 머리를 대검으로 박아넣는 군인의 모습은 숭고해 보이기까지 했다.
“한국군 특전사다.”
“우리나라에 저런 군인도 다 있었어?”
얼굴을 다 가리고 있었기에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한국군 특전사 군복을 입고 있는 사내였다.
희망이라는 다큐멘터리 뮤비에 등장하는 군인들은 다양한 국적을 가지고 있었다.
국민들은 자국군 특수부대의 복장을 보고서는 반가워하면서도 자부심에 어깨가 으쓱여졌다.
그렇게 다국적 특수부대 호프는 수많은 뮤턴트들을 쓰러트리고서는 도시를 탈환했다.
각종 최첨단 장비를 총동원한 채로 싸운 호프였다.
“전장은 저희에게 맡기시고 일상으로 돌아가십시오. 헤인트와 뮤턴트들은 인류의 분열을 노리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함께 싸운다면 반드시 이겨낼 수 있습니다.”
전 세계에 송출된 희망이라는 다큐멘터리 영상은 안도와 함께 실낱같은 희망을 안겨 줄 수 있었다.
* * *
우걱! 우걱! 우걱!
“빅토! 그것 좀 줘 봐.”
“그래. 창쑤.”
“창수라니까.”
창수는 고약한 땀내 나는 외국 군인들 사이에서 연신 칼로리 높은 음식을 먹어대었다.
갑자기 광대 같은 영상물의 배우가 되어야 했다.
물론 영화의 장면이 아닌 실제 장면이었다.
뮤턴트를 쓰러트리고서는 낯 간지러운 대사를 해야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분열되어 가는 인간들을 다시 모으기 위해서라는 취지에 못한다고 할 수도 없었다.
세계 각국은 초법적이고 초월적인 지위를 가진 군사집단을 창설하기로 결정했다.
자국에서 뮤턴트가 계속 나오는 것에 헤인트를 우선 박멸해야 한다고 의견이 모인 것이다.
그렇게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함께 작전을 수행하지 않았던 러시아의 스페츠나츠 대원인 빅토와도 친해졌다.
중국의 특수부대도 이 전투에 참여하고 있었다.
워낙에 많은 각국의 특수부대원들이 모이다 보니 영상에 다 담지 못해서 자국군 특수부대원이 나오지 않는 것에 대해서 실망하는 국가 네티즌들마저 있을 정도였다.
당연히 한국군 특수부대원에는 창수가 들어가 있었다.
세계 최고의 특수부대원들 중에서도 창수는 특별했다.
약의 성능에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단독으로 3형 뮤턴트를 상대할 수 있는 것은 창수가 유일했다.
“그런데 창수. 이 전쟁 끝나고 나면 뭐할 거야?”
“전역해야지.”
“오우! 전역하고 난 뒤에 뭐 할 건데?”
“흐음! 모르겠네. 학교 복학할까? 아니 늦으려나?”
“학교? 대학교?”
“어.”
“와! 창수 인텔리였네. 대학 다녔다니.”
“…….”
한국에서야 개나 소나 다 대학을 갔지만 해외에서 대학을 가는 것은 그리 많지는 않았다.
특히나 군인들 중에서는 대학을 나오거나 다니는 이들은 상당히 드물었다.
물론 간부들은 아니었지만 부사관급의 특수부대원들 중에 대학을 나온 경우는 많지 않았다.
그렇게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이 끝난 뒤의 미래를 꿈꾸는 특수부대원들이었다.
“자! 이동한다!”
자신들을 태우고 갈 수송 헬기가 도착하자 다들 입안에 남은 음식들을 쑤셔 넣고서는 몸을 일으켰다.
“빅!”
창수의 외침에 꽤나 큰 비글 한 마리가 수풀에서 달려 나와서는 창수가 탄 수송 헬기에 탑승했다.
“빅. 오늘 대단했어.”
으르르!
“오우! 창수 말고는 낯을 너무 많이 가리는 빅이라니까.”
창수 외에 다른 이의 손이 닿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창수의 비글이었다.
고작 개였지만 그 개가 2형 뮤턴트 하나를 제압할 수 있다면 그냥 개라고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