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88화
88화
덕유산 일대가 완전히 봉쇄되었다.
물론 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선생님! 사모님! 올라가시면 안 되세요! 뮤턴트 나와서 봉쇄되었어요!”
20살 남짓의 어린 나이의 군인들이 하는 일은 자신의 부모님 나이뻘의 중년의 등산객들을 막는 일이었다.
“아우! 괜찮아! 나 저기 위에 집이 있어서 잠깐만 갈게.”
“안 되신다니까요!”
“아! 진짜! 우리 강아지가 있는데! 그럼 그 강아지 굶겨? 그러다가 죽으면 책임질 거야!”
“괴물이 산속을 돌아다니고 있다니까요!”
“괴물인 건 알겠고. 나만 아는 길이 있어서 그리로 후딱 갔다 오면 된다니까. 그리고 그거 뭐야? 나 열 없어!”
“체온 무조건 재셔야 해요.”
“뭐야? 내가 지금 괴물이라는 거야? 지금 날 의심해! 어? 내가 누군지 알아?”
막무가내로 말을 안 듣는 사람들에 군인들은 답답했지만 보고가 되자 빠르게 경찰차와 군 차량이 달려와서는 덕유산 안으로 들어가려는 사람을 연행해 갔다.
“후우! 죽겠네. 죽겠어.”
“아니. 위험하다는데 왜 저리 말을 안 듣는 건지.”
“그러게 말이야.”
일반 병사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산으로 올라가거나 산에서 내려온 사람을 붙잡고 시간을 끄는 것이었다.
“그런데 정말 괜찮을까요?”
“뭐? 뮤턴트가 우리 쪽으로 내려오는 거?”
“예. 일반 병사들로는 못 잡는다고 들었는데.”
“그래서 우리는 산 아래에서 순찰만 도는 거잖아. 수색작업하고 뮤턴트 사냥은 특전사들이 하는 거고.”
수색 작업에 일반 병사들은 동원되지 않는다.
덕유산 일대에서 차단 작전만 진행하는 것이다.
“언제쯤 끝날까요?”
“모르지. 일찍 끝날 수도 있지만 덕유산이 워낙에 넓어야지.”
제법 많은 특전사들이 동원되었다지만 덕유산은 결코 작은 산이 아니었다.
국립공원으로 총면적만 219㎢에 달했다.
그 안에 민가와 절 등의 시설물들도 엄청난 숫자였으니 고스트의 위험성만 아니었다면 절대 민간인 소개 작전이 이루어질 수 없었다.
“아무튼 계속 순찰이나 하자고. 설령 뮤턴트를 목격해도 접촉하지 말고 상부에 보고를 올리라고 하니까.”
“예. 알겠습니다.”
병사들은 그렇게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덕유산 쪽을 올려다보며 순찰을 계속했다.
“군인들 갔다. 가자! 올라가자.”
“정말 괜찮겠지?”
“당연히 괜찮지. 안 괜찮으면 어쩔 건데! 뮤턴트만 찍으면 대박이 터질 거라니까.”
“처벌이 강할 거라고 하던데.”
“처벌은 무슨! 국민의 알 권리! 그게 더 중요한 거지.”
덕유산으로 올라가지 못하게 막고 있었지만 기어코 몰래 올라가려는 이들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몰래 덕유산 자락을 통해 덕유산으로 올라가는 이들을 전부 막을 수는 없었다.
뮤턴트뿐만 아니라 말 안 듣는 사람들과 숨바꼭질까지 해야 했다.
* * *
덕유산의 외곽에서부터 중심부까지 조여오며 수색 작전을 수행하는 특전사들이었다.
평소 이런 수색 작전은 훈련으로도 자주 하고 있었다.
물론 훈련이 아닌 실전이었고 고스트는 일반적인 방식으로는 제압을 할 수 없었기에 불안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었다.
더욱이 아무리 수색 작전을 치밀하게 한다고 해도 특전사들의 그물은 너무나도 헐거워서 그 사이로 빠져나갈 수 있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특전사 팀의 팀장은 무리하지 않았다.
상부에서도 수색지를 조여가는 임무를 부여받은 것이지 고스트를 생포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어둠이 찾아오면 수색 작전은 종료된다.
“조명 사방으로 켜고 대기.”
자신들의 위치를 드러내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알고 있었지만 자신들이 상대할 것이 일반적인 적이 아니기에 일반적인 대응을 할 수가 없었다.
“상대는 유령이다. 검은 안개나 기체가 다가오는지 확실하게 주시하고 동료가 이상하다 느껴지면 바로 비닐로 몸을 감싸라.”
다들 몸에 체온계를 달고 있었다.
기준치 이상의 온도가 되면 곧바로 체온계가 이상 반응하게 된다.
한마디로 특전사 한 명 한 명이 고스트에 대한 미끼가 되는 것이다.
고스트에 잡아먹히면 죽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하게 된 고육지책이었다.
그 때문에 특전사들은 자신의 총기에 실탄도 장전되어 있지 않았다.
고스트에게 먹혀 듀라한이 되어서는 아군에게 사격을 가할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렇게 특전사들은 맨몸으로 던져진 미끼였다.
물론 군의 귀중한 자원인 특전사들을 의미 없이 낭비해 버릴 수는 없었기에 창수와 넬시아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색 작전을 진행하고 있었다.
-피곤하지 않아? 피곤하면 좀 쉬고.-
-아니에요. 괜찮아요. 밤이라 조금 무섭기는 하지만…….-
창수나 2형 뮤턴트인 넬시아나 어지간한 일로는 지치지 않았다.
그렇게 밤낮으로 덕유산을 쏘다니고 있었다.
창수는 어두컴컴한 산속이라 무섭다는 넬시아에 이해도 가면서도 넬시아의 몸이 나무들 사이로 보일 때마다 어색한 미소를 지어야 했다.
멸종이 된 지 오래된 백두대간의 호랑이였지만 호랑이가 지금까지 살아있어도 넬시아의 모습을 보면 꼬리를 말고 도망을 갈지도 몰랐다.
-고스트를 잡으셨다고 하셨죠?-
-운이 좋았어. 도망을 치는 것보다 숙수를 습격하는 것을 더 우선하던 뮤턴트여서.-
연구원의 말로는 어느 정도의 지능은 있다는 것 같았다.
다만 대화가 통할 정도의 지능이나 이성은 없는 것인지 대화를 나눌 수는 없었다고 했다.
-그런데 왜 고스트가 왜 사람이 많지도 않은 이런 깊은 산에 숨어 있는 걸까요? 사람에 대한 공격성이 강하다는 뮤턴트라면 오히려 사람 많은 도시 속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넬시아는 이번 고스트가 불완전 변이체라고 생각하는 거야?-
-확실하지는 않지만…….-
넬시아는 자신의 생각을 확신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을 한다면 넬시아의 말이 맞았다.
창수도 덕유산에 숨어 있는 고스트가 어쩌면 불완전 변이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고 있었다.
‘문제는 너무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어.’
고스트 개체가 하나인지 둘인지 아니면 그보다 많은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속이 비어버린 시체가 홀로 움직이고 있었다는 흔적을 통해 한 개체로 여겨지고 있었다.
고스트인 상태에서는 흔적이 남지 않아 추적하기 힘들지만 듀라한일 때는 흔적을 역추적할 수 있었다.
불완전 변이체라고 하기에는 희생자들이 많았다.
‘그것이 아니라면 고스트 자체로 유지하는 것이 힘들다는 것이겠지.’
연구소 내에서의 고스트도 수시로 먹이로 동물을 넣어주고 있었다.
고스트 상태가 오래될수록 괴로워하고 난폭해지는 것에 동물을 넣어주고 있는 것이다.
-만일 고스트가 불완전 변이체라고 하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후우! 모르겠어. 고스트의 경우는 너무 위험해.-
물리적으로 막을 수 있는 다른 뮤턴트와는 달리 고스트는 통제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죽일 수 있는 방법도 없었으니 결국 봉인을 하는 것이 전부였다.
영원히 갇혀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에 넬시아는 고스트가 안타까웠다.
더욱이 불완전 변이체라면 자신처럼 인간의 기억도 그리고 감정도 가지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녀 또한 헤인트에 의한 희생양일 뿐인데.-
안타까워하는 넬시아에 창수는 아무런 말도 해 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자신이 뮤턴트에 있어서는 다소 특별한 군인이라지만 그 이상은 어떻게 할 수 있는 권한도 권력도 없었다.
-더 이상 무고한 희생만이라도 막아야 해.-
-예, 하지만 뮤턴트도 희생자라는 것을 잊지 말아 주세요.-
넬시아는 낯선 이국의 풍경이었지만 갑갑했던 연구실이 아닌 밖으로 나온 것에 한결 기분이 좋아졌다.
물론 그녀도 자신이 도망을 치려고 한다면 창수가 자신을 죽이거나 창수가 아니더라도 군인들이 자신을 죽일 것을 알고 있었다.
족쇄가 채워진 자유임을 알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불완전한 자유조차 그녀에게는 너무나도 소중했다.
그런 소중함을 자신과 같이 갇혀 있는 불완전 변이체들에게도 쥐여주고 싶어졌다.
‘어쩌면 그게 내가 해야 할 일인지도 몰라.’
창수가 자신에게 주문했던 것처럼 불완전 변이체의 선지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넬시아였다.
-저기가 의심스러워요. 저기로 가 보게요.-
-절벽인데?-
-고스트니까 사람 가기 힘든 곳에 있지 않을까요?-
가파른 절벽이 눈앞에 나타났지만 넬시아는 커다란 손으로 나무와 바위를 움켜쥐고서는 성큼성큼 위로 올라갔다.
그런 넬시아를 따라 창수와 빅도 함께 절벽을 올라가야 했다.
그렇게 쉬지 않고 덕유산 일대를 뒤지고 다녔다.
그러던 중 넬시아는 있을 수 없을 사람을 발견하게 되었다.
-최 상사님.-
-일단 대기하세요.-
창수도 넬시아가 발견한 사람을 발견하고서는 그 사람을 주시했다.
거리가 있어서 일반인인지 듀라한인지 확인하기 어려웠다.
분명 민간인 소개 작전은 이루어졌다.
덕유산 일대에 뮤턴트까지 있다고 전국에 방송까지 했으니 등산객들이 덕유산에 올 일은 없었다.
거기에 더해 덕유산 아래에서 군경이 통제까지 하고 있었으니 일반인일 가능성은 작아야 했다.
-앗! 도망가요.-
-큭! 일단 쫓겠습니다.-
뮤턴트인지 확인을 할 수 없었으니 일단 잡아야만 했다.
그렇게 도망을 가는 것인지 아니면 빠르게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기에 넬시아와 창수 그리고 빅은 도망가는 사람을 향해 달렸다.
커다란 덩치로 인해 땅을 울리며 달리는 넬시아는 너무나도 눈에 띄었다.
이동하던 남자도 뭔가가 달려오는 것에 뒤를 돌아보았다.
처음에는 멧돼지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커다란 괴물인 것을 알고서는 안색이 창백해져서는 있는 힘껏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으…… 으으! 으으으!”
본래부터 산을 잘 타던 사람인지 산도 잘 탈 뿐만 아니라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고 있었던 덕분인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산속을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문에 넬시아와 창수는 오해를 해 버리고 말았다.
-듀라한인 것 같아요!-
-크윽! 그런 것 같군요. 자길 잡으러 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일단 잡아요!-
-예!-
지금 반드시 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넬시아와 창수는 더욱더 빨리 다리를 놀렸다.
결국 체력 싸움이었다.
거리는 점차 좁혀졌고 마침내 넬시아는 도망을 치는 남자의 몸을 뛰어넘었다.
쿵!
넬시아의 커다란 몸으로 남자의 앞길을 막을 수 있었다.
“히…… 히익! 사…… 살려 줘요.”
남자는 뮤턴트가 덕유산 일대에 나타났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 넓은 덕유산 일대에서 뮤턴트와 만나겠냐 하는 안일한 생각을 했다.
그런 만용이 자신의 목숨을 잃게 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넬시아는 남자를 향해 자신이 가지고 있던 임시 포획기를 사용하려다가 남자가 살려달라는 말을 하자 반색을 했다.
“혹시 이성이 있으신가요? 너무 놀라지 마세요. 당신을 해치지 않아요.”
넬시아는 자신과 같은 불완전 변이체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반색하며 설득하려고 했다.
“저는 당신과 같은 존재입니다.”
“히익!”
남자는 넬시아가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공포로 인해 이성이 마비되어서는 넬시아가 어떤 말을 하든 알아들을 수 없는 상태였다.
그렇게 뮤턴트로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남자의 반응 속에서 창수가 뮤턴트나 크게 다를 바 없는 빅의 도움으로 남자가 뮤턴트가 아닌 일반인임을 확인한 뒤였다.
그리고 근처에 뮤턴트가 있음을 확인했다.
크르르르르!
쉿!
넬시아와 일반인이 산속에서 대치하고 있는 사이 한 정체불명의 여인이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여인의 향기를 맡은 빅에 의해 창수는 여인을 생포하기 위한 기회를 노리기 위해 기척을 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