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12화
112화
오늘 하루도 무사히만 보내길 바라게 되는 군대에서 오늘도 별다른 일 없이 지나가는 듯했다.
하지만 갑자기 울린 비상 사이렌 소리는 평온하던 일상을 산산이 깨트렸다.
“뭐야? 훈련이야?”
만에 하나 실전일 수도 있었지만 북한과는 벌써 수십 년 동안 휴전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더욱이 뮤턴트 사건 이후로 사실상 국가 간의 전쟁은 사라진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인간보다 월등하게 강력한 공동의 적을 놔두고 싸울 정도로 인간들이 무지하고 미련한 것은 아니었다.
물론 북한이 더 이상 전쟁을 수행할 수 있을 만한 경제력이나 군사력이 되지 않는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도 존재했다.
그렇게 실전이라기보다는 다들 훈련 상황이라고만 여기고 싶어 했다.
하지만 2대대의 지통실은 다급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아니 대한민국의 모든 군부대는 전시 상황으로 전환되었다.
“뮤트콘! 2단계 발령! 뮤트콘 2단계 발령!”
한미 연합사에서 북한군과의 군사 대비발령 체계는 데프콘으로 데프콘은 Defense Readiness Condition의 약자로 ‘전면전을 대비해 발령되는 전투준비태세’를 뜻한다.
하지만 뮤턴트 사태 이후 미군은 더 이상의 세계 경찰 국가로서의 지위를 유지하는 것을 포기했다.
당장 남미에서 올라오는 뮤턴트와 자국 내에서 수시로 발생을 하는 뮤턴트들에게 대응을 하려면 미군조차도 힘겨운 상태였다.
그로 인해 한미 연합사도 대폭 축소가 되었으며 전시 작전권은 한국군에게로 넘어왔다.
그렇게 북한군의 동향에 따른 전쟁은 데프콘으로 대응 단계를 불렀지만 뮤턴트에 대한 대비발령 체계의 필요성이 생겼다.
그것이 바로 뮤트콘으로 평시에는 3단계 상태를 유지하지만 소규모 뮤턴트가 나타났을 때는 2단계 그리고 대규모 뮤턴트 사태에서는 1단계가 발령이 되게 된다.
뮤트콘 2단계는 부대 인근에 10기 이상의 뮤턴트가 발생했다는 의미였다.
“무슨 일이야?”
“최 원사님! 뮤턴트입니다!”
“어딘데?”
“그게 휴전선입니다!”
“거기에 왜 뮤턴트가 나와?”
“모르겠습니다!”
뮤트콘 발령만 내려졌지 세부 사항에 대해서는 아직 예하 부대까지 내려오지는 않았다.
부대 내의 모든 병사는 뮤트콘 2단계에 따라 그동안 훈련을 했던 것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상부에서 또 다른 명령이 긴급하게 내려왔다.
“뮤트콘 1단계 발령! 뮤트콘! 1단계 발령! 지금 상황은 훈련 상황이 아닌 실제 상황이다! 뮤트콘 1단계 발령!”
지통실의 상황 전파병은 목이 터지라 고함을 질렀다.
뮤트콘 1단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기 때문이었다.
대규모 뮤턴트 발발.
휴전선 인근의 각 부대의 기갑 전력과 자주포 전력 등 모든 장비가 도로로 쏟아져 나왔다.
“빨리 움직여! 당장!”
주둔지 내의 모든 인원이 완전 무장을 한 채로 각자의 점령지를 향해 이동을 개시해야만 했다.
“뮤턴트 대응 소대 소집해서 무기고로 오라고 그래! 전용 탄환 탄약고에서 전부 분출해!”
“알겠습니다! 최 원사님!”
이것저것 물어볼 시간 따위는 없어졌다.
창수는 무기고에 고이 보관되어 있는 대뮤턴트용 무기를 분출하기 위해 무기고로 달렸다.
북한군과의 전쟁을 대비하는 것과는 다소 다른 양상이었다.
대대 주임 원사인 창수는 2중대장인 김명우 대위의 지휘 아래 부 지휘관으로 뮤턴트 대응 소대를 이끌게 되어 있었다.
기존의 2중대 병력은 각 중대에서 뮤턴트 대응 소대에서 빠져나간 중대로 편입되어 작전을 수행하게 된다.
그렇게 무기고에 모여든 대응 소대는 KM-2의 포장지를 뜯어내며 무기를 수령했다.
“제길! 이게 뭔 일이야! 이게 뭔 일이냐고! 한 번 밖에 쏴 보지도 못했는데!”
기존에 사용하던 소총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묵직한 총이었다.
총이라기보다는 포라는 느낌이었다.
“탄약 챙겨! 빨리! 탄약 전부 수송 트럭에 실어라!”
탄환을 사격으로 소모하면서 대대에서 보관하고 있는 탄약의 숫자는 만팔천 발 정도 남아 있었다.
오십 명의 병사들이 사용하기에는 꽤나 부족했다.
병사 한 명당 350발 정도만 지급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소규모 전투라면 충분할지도 몰랐지만 대규모 뮤턴트 발발인 뮤트콘 1단계가 발령되어 있었다.
그 때문에 대응 소대는 KM-2 뿐만 아니라 기존에 가지고 있던 소총과 탄환도 가지고 있어야 했다.
“아우! 이래가지고 어떻게 뛰어다니라는 거야!”
“야! 빨리 움직여! 지금 장난인 줄 아냐! 최 원사님 좀 봐라! 원사님 좀!”
무거운 KM-2 총기 박스를 혼자 무기고에서 집어 던지듯이 꺼내고 탄약고에서 수십 상자의 탄약을 트럭에 싣고 있는 창수였다.
“정말 특전사라고 하시더니. 정말이신가 보네.”
혀가 내둘러질 만큼 창수의 움직임은 대단했다.
“저 정도는 돼야 뮤턴트를 상대할 수 있는 건가?”
“윽! 그러면 끔찍한데.”
죽었다 깨어나도 창수 같이는 못 할 것 같은 병사들이었다.
그렇게 불가능할 것 같은 작업이 끝났고 병사들을 태운 트럭과 장갑차들은 이동을 시작했다.
이미 휴전선 인근의 도로란 도로는 전부 군용 장비들이 채우고 있었다.
“거기 비켜! 지금 전시 상황이야! 비키라고!”
“아니 대체 어디로 비키라고!”
도로로 쏟아져 나온 군용 차량들에 일반 승용차가 고립되어 버리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과거였다면 군인들에게 거친 소리를 토해냈겠지만 지금은 세상이 달라졌다.
“야! 뭐해! 밀어내 버려!”
과거였다면 민간인들의 민원이 두려웠을 터였지만 지금은 달랐다.
장갑차 한 대가 길을 막고 있는 승용차를 도로 밖으로 그냥 밀어내 버렸다.
보상은 기대하기도 힘들었으니 자동차 주인은 운이 참 없었다고 여겨야 했다.
그렇게 각자의 점령지와 대기 위치로 향하고 있을 때 포탄 소리가 전방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쾅! 쾅! 쾅!
움찔! 움찔!
아득히 들려오는 포탄 소리에 수송 차량에 탑승하고 있던 군인들의 몸이 움찔거렸다.
실전이라는 느낌이 온몸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최 원사님.”
“예. 중대장님.”
“2형은 어떤 놈들입니까?”
“2형입니까?”
“예. 휴전선 일대에 대규모 2형 뮤턴트들이 남하 중이라고 합니다.”
“장갑차를 뒤집을 수 있을 만한 괴물들입니다.”
“정말 괴물이군요.”
“대신 장갑차의 화력이면 고깃덩어리로 만들어 줄 수 있습니다. 흐음! K9 자주포 사격이지요?”
“예. 화력은 끝내주는 놈이지요.”
“그럼 별걱정 안 하셔도 될 겁니다.”
창수는 불안해하는 중대장을 안심시켰다.
창수의 말처럼 2형 뮤턴트들은 자주포 공격에 박살이 나고 있었다.
보병 개인 무기로 제압이 안 된다는 거지 기갑 장비의 펀치력까지 버틴다는 것이 아니었다.
수십 대의 전투 헬기들이 휴전선 인근으로 날아 들어갔다.
북한과의 분쟁이나 갈등에 잠시 동안 망설여졌지만 수백 마리가 넘는 2형 뮤턴트들이 대규모로 비무장 지대를 지나 남하하자 한국 정부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도시로 내려오기 전에 박멸해야만 했다.
그렇게 화력 쇼를 선보이며 움직이는 뮤턴트는 고기조각이 될 때까지 쓸어버렸다.
실제 보병들이 나설 일은 없었다.
“전방에 뮤턴트 하나!”
“2형 뮤턴트는 방어력이 장난 아니라고 하니까 철갑탄으로 날려버려!”
“철갑탄 장전!”
“쏴!”
전차에서 철갑탄이 허우적거리고 있는 2형 뮤턴트의 몸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수십 대의 전차들이 포신만 내밀고서는 온통 연기가 올라오고 있는 황무지의 뮤턴트들을 노렸다.
물론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황무지가 아닌 곳이었지만 자주포와 야포 공격으로 황무지가 된 장소였다.
“제압 완료!”
“전차 한 대 보내서 살아 있는 놈 있는지 확인해!”
육중한 전차로 안 그래도 고기조각이 되어 있는 2형 뮤턴트들을 압착했다.
그렇게 보병들이 할 일은 사실 없는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KM-2는 실수로 오발을 낸 병사가 쏜 탄환 하나만 사용되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휴전선을 밀고 내려온 수백 마리의 뮤턴트들은 제압되었다.
꽤나 맥없는 상황이었지만 별다른 피해가 발생하지는 않았다는 것에 다들 안도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전투가 끝나고 경계 태세가 낮추어졌다.
여전히 비상 태세였지만 병사들은 자신들의 주둔지로 복귀할 수 있었다.
뮤턴트들을 직접 눈으로 본 병사도 일부 있었지만 대부분의 병사들은 뮤턴트를 구경도 해 보지 못했다.
창수의 2대대도 뮤턴트를 구경하지는 못했다.
대기 위치에서 대기하던 2대대 병력은 다시 주둔지로 복귀했다.
“무기 반납하고 수량 확인 철저하게 해라!”
탄환을 하나하나 세어가며 숫자가 맞는지 확인을 하고 KM-2도 전부 총기 보관 박스에 다시 넣어 뒀다.
긴장감이 풀려 다들 몸이 천근만근이었지만 별문제 없이 넘어갔다는 안도감에 표정들은 다들 밝았다.
“뮤턴트라고 해서 괜히 걱정했습니다.”
“도시에서라면 까다롭지만 개활지에서는 그리 두려울 건 없을 겁니다.”
크고 강하기는 하지만 개활지에서라면 단지 큰 표적에 불과했다.
“그런데 수백 마리의 뮤턴트가 자주 나오는 겁니까? 최 원사님?”
“2형 뮤턴트라면 자주 나오지는 않는데…….”
대규모의 1형 뮤턴트와는 달리 2형 뮤턴트가 대규모로 나온 건 창수에게도 조금 의외였다.
물론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으니 딱히 뭐라 말을 해 주기는 힘들었다.
“문제는 북한 쪽에서 내려왔다는 건데.”
한두 마리의 뮤턴트도 아니고 수백 마리의 뮤턴트들이 몰려다닌다는 것이 문제였다.
창수는 박충렬이나 별기군에 있는 전 동료들에게 연락해서 물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별일 없었으면 좋겠는데.’
창수의 기대와는 달리 북한 쪽의 상황은 꽤나 심각했다.
* * *
“북한 지역은 이미 해처리화 된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걸 지금 이제야 알았다는 거요!”
해처리화.
그건 뮤턴트에 의해 완전히 장악되어 버렸음을 의미했다.
일본의 도쿄가 대표적인 뮤턴트 해처리였고 일본 정부는 거의 포기 상태에 가까웠다.
북한 지역을 그렇게 주시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뮤턴트 해처리화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에 한국 정부로서는 절망적이었다.
“북한 정부와 연락은 해 보았습니까?”
“그것이, 연락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뮤턴트에 모든 관심이 다 쏠렸다고는 하지만 북한에 대한 감시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은 직무 유기였다.
“그 짧은 시간에 북한이 정말 망하기라도 했다는 겁니까?”
“그건 아닌 듯합니다만 만일 국제 테러 조직인 헤인트가 개입한 것이라면…….”
“뭐요?”
“완전히 해처리화가 되기 전에 북한 지역을 접수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 그 말 북쪽으로 밀고 들어가자는 말이오?”
“예!”
북한이 완전히 해처리화가 된다면 대한민국은 감당하기 힘든 위기에 직면할 수 있었다.
일본이야 바다로 가로막혀 있었지만 북한은 육지로 연결되어 있었다.
“2형에 브레인이 나타난다면 일본 때보다 상황이 좋지 않게 될 수도 있습니다.”
1형에 비해 월등하게 강한 2형 뮤턴트였다.
그런 2형 뮤턴트들이 일사불란하게 밀고 내려온다면 매우 위험했다.
“정전 협정은 개나 줘 버려야겠군.”
대한민국은 생존을 위해 북한 땅으로 진격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에 대해서 고심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 고심은 두 번째 뮤턴트들의 대규모 남하로 끝이 났다.
북한 땅의 완전한 해처리화를 막고 북한 주민들을 구하기 위해 대한민국군은 북한 땅으로 진격을 하기로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다행이라면 한반도의 주변 국가들 누구도 이 일에 개입을 할 여력이 없다는 점이었다.
대한민국이 처음으로 북한 문제를 스스로 결정 내릴 수 있는 기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