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17화
117화
새가 날아든다.
지상이 불타오르자 치솟는 불길은 하늘까지 닿는다.
쉴 곳을 잃은 새들은 하늘 위에서 지상을 불태우는 이들을 분노에 가득한 눈빛으로 노려본다.
세상을 파괴해 온 인간이라는 종에 대한 자연의 분노인지도 모른다.
자연의 분노 앞에 인간은 미약한 허우적거림으로 저항을 한다.
“뮤…… 뮤턴트다!”
뮤턴트라는 말에 동서남북 고개를 돌리며 찾았다.
하지만 뮤턴트는 보이지 않았다.
휙 하는 소음과 함께 고통에 찬 비명이 하늘 위에서부터 내려왔다.
“하늘! 하늘 위에 뮤턴트다!”
처음 뮤턴트를 발견한 이는 두려운 눈빛을 한 채로 손가락을 하늘 위로 가리켰다.
다들 그 병사가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 미쳐버렸다고 생각을 했다.
“미친! 정신 똑바로 안 차릴래!”
광기는 전염병도 아닌 것이 전염이 된다.
전염된 광기는 잠복기도 없이 바로 증상이 발현된다.
초장에 광기를 잡아야만 주변으로의 전염을 막을 수 있었기에 노련한 지휘관이나 고참들은 광기보다 더 큰 공포로 전염되는 것을 막으려고 한다.
우악스러운 발길질이 광기의 시작점인 병사의 명치에 꽂아졌다.
“크윽!”
고통스러운 듯이 신음을 내지르며 땅바닥을 구르는 병사의 얼굴에서는 광기가 아닌 고통이 드러났다.
하지만 그건 광기가 아니었다.
“피…… 피해!”
땅바닥에 넘어진 병사를 발로 찬 고참을 향해 병사는 피하라고 다급하게 외쳤다.
자신을 발로 찼지만 고참을 미워하거나 화가 나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걱정스러운 듯이 피하라는 말을 했지만 고참은 아직 하늘 위를 올려다보지 못했다.
덥석!
“크윽!”
휴전선 인근의 군부대에서 군 복무를 하다 보면 독수리를 볼 수 있다.
군대의 허풍을 조금 보태서 휴전선의 독수리는 사람보다 더 크다.
아니 허풍이 전혀 없이 이미터는 족히 넘어가는 거대한 새가 있고 그 새는 길 잃은 강아지나 염소 정도쯤은 가볍게 낚아채서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
사람의 손보다 더 큰 발과 대검만 한 크기의 발톱들이 연약한 살을 파고들어 와서는 단숨에 숨을 끊어 놓는다.
고참의 두 어깨에 대검보다 더 크고 두꺼운 발톱이 파고들어 왔다.
너무나도 고통스러워서 입에서는 신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칼날이 몸 안에 들어오면 목구멍 안에서 비명 따위는 나오지 않는다.
그냥 몸이 파르르 떨리면서 점점 죽어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렇게 고참을 낚아챈 독수리는 거대하게 날갯짓하며 하늘 위로 떠올랐다.
“독수리?”
“아니야. 독수리가 아니야. 저건 뮤턴트다.”
판타지 소설을 즐겨보고 판타지 소설의 삽화들을 본 이들이라면 가장 먼저 하피라는 몬스터를 떠올렸을 터였다.
인간의 얼굴을 한, 날개를 가진 괴물.
하피는 본래 고대 그리스 신화에 처음 등장을 하는 괴물로 사실 괴물이라기보다는 신들의 자식으로 여겨졌다.
신화가 다 그러하듯이 상상 속의 산물이었지만 고대의 기록에서는 상상이 아닌 실존했던 괴물로 존재하기도 한다.
그런 괴물이 현대에 다시 등장하게 되었다.
케에에에엑!
심장이 오그라지는 듯한 통증을 유발하는 강렬할 저주파의 울부짖음 소리가 들리고 군인들은 공포에 질린 채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사…… 살려줘. 죽고 싶지 않아.”
자신이 왜 이런 곳에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신은 분명 지구라는 별에 있는 것이지 이름도 모를 괴물이 존재하는 이계의 어딘가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상황 앞에서 인간은 도망이라는 가장 단순하고 확실한 해결법을 찾아낸다.
“저게 뭐야?”
병사들의 동료를 막아야 하는 지휘관마저도 할 말을 잃게 만드는 하늘을 나는 뮤턴트.
공식 코드로 9형으로 명명된 9형 뮤턴트 하피가 등장했다.
듀라한과 함께 두 번째로 한국에서 등장한 대량 발생 뮤턴트였다.
소량 개체가 발견되면 특수 뮤턴트로 분류되지만 대량 발생을 하면 정식 형(形)을 지정받는다.
아리가에서 발견된 1형과 2형을 시작으로 전 세계에서 보고되는 다른 형태의 뮤턴트들이 현재 8개가 등록되었다.
그리고 9번째가 한국에서 등장한 것이다.
“도망쳐!”
도망치라는 비명에 숨을 곳을 찾아 도망을 치는 병사들 뒤로 9형 뮤턴트 하피들은 사냥을 시작했다.
“자…… 장갑차에 타! 빨리! 장갑차에 타!”
장갑차에 타라고 했지만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장갑차에 타기란 쉽지 않았다.
사방으로 도망을 치며 하피에 의해 하나둘씩 죽어 나갔다.
모두가 도망을 간 것은 아니었다.
“이 망할 괴물 놈들아! 죽어!”
탕! 타타탕! 탕!
공포에, 분노에 이성도 감성도 마비가 되어 버린 군인들이 저항을 시작했다.
총구를 하늘 위로 겨누고 연신 방아쇠를 당겼다.
당연히 쉽게 맞지는 않았지만 전혀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탕!
“좋았어! 맞았다!”
눈먼 총알이 하늘을 날고 있는 하피의 몸에 맞았다.
하피는 몸을 후려치는 듯한 충격에 땅바닥을 나뒹굴었다.
아무리 뮤턴트라고 해도 기본적인 물리 법칙을 어길 수는 없었다.
덩치와는 달리 하피의 무게는 생각보다 가벼웠다.
인간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지만 신체 내부의 구조는 하늘을 날 수 있는 조류와 흡사했다.
하지만 뮤턴트였다.
파닥! 파닥!
몸에 총알을 맞은 하피는 이내 충격을 이겨내고서는 다시 몸을 일으켰다.
“뭐야? 안 죽어?”
몸에 구멍이 나 있는데도 죽지 않는 하피에 분노는 공포로 빠르게 뒤바뀌어갔다.
자신이 죽지 않는 괴물을 상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모두가 절망에 휩싸여 포기하려고 할 때 한 발의 총탄소리가 들려왔다.
탕!
퍼억!
머리가 터져 버렸다.
“머리를 노려!”
창수는 상대는 불사가 아닌 약점이 있는 괴물이라고 고함을 내질렀다.
물론 하늘까지 날아다니는 하피의 머리를 노린다는 것은 특전사들이라고 해도 무리였다.
탕! 탕! 탕!
창수는 연신 빠르게 하피의 머리를 노려 사격을 하고서는 병사들에게 외쳤다.
“장갑차에 타라! 빨리 장갑차에 타!”
보병사단이었다면 대책 없이 밀렸겠지만 5사단은 기계화 사단으로 대부분의 병력들이 장갑차나 수송 트럭을 통해 이동을 한다.
지속적으로 기계화를 해왔던 노력이 빛을 발하는 것이다.
“해치 열어! 빨리!”
병사들의 승하차를 위해 있는 뒷문 해치가 열리자 겁에 질린 병사들은 허겁지겁 들어갔다.
정원이 넘게 들어왔지만 누구 하나 나가지 않았다.
“문 닫아! 문 닫아!”
“빨리 문 닫으라고!”
강철의 문이 닫히고 나서야 다들 안도를 할 수 있었다.
하피의 날카로운 발톱도 장갑차의 장갑을 뚫지는 못했다.
그렇게 병사들이 장갑차에 탑승을 하고서는 숨을 죽인 채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이…… 이제 어떻게 합니까?”
공격을 안 받게는 되었지만 공격을 할 수도 없었다.
장갑차 밖에는 수많은 뮤턴트들이 가득했다.
좁은 장갑차의 차창 밖으로 수십 마리가 넘는 뮤턴트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여전히 밖에서 누군가가 싸우고 있는 것인지 총성 소리는 들리고 있었지만 과연 언제까지 싸울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대부분 죽지 않았으면 장갑차 안에 들어와 있었다.
사실 밖에 나와 있는 건 창수뿐이었다.
“생각보다 빠르진 않네.”
빠르지 않다고 해서 느린 것은 아니었다.
창수는 비록 하늘을 날고 있기는 했지만 총이라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는 하피를 향해 사격을 했다.
물론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하피의 머리를 정확하게 노리는 것은 창수도 무리였다.
하지만 몸에 맞으면 가벼운 몸 때문인지 죽지는 않아도 땅바닥을 나뒹굴었다.
그렇게 땅바닥에 나뒹구는 하피의 머리에 총알 한 발 먹여 주는 것은 창수에게 있어서는 어렵지 않았다.
당연히 하피들도 창수를 죽이기 위해 날아들었지만 창수는 날지는 못해도 하피보다 빨랐고 무엇보다 힘도 강했다.
덥석!
창수는 하피의 날개 깃을 움켜쥐고서는 그대로 땅바닥에 내려찍었다.
충격에 파닥이는 하피의 머리를 군홧발로 짓밟아 버렸다.
“뼈의 강도는 그다지 강하지 않네. 총알도 관통해 나가버리는 것 같고.”
다른 이들에게는 까다로웠지만 창수에게는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2형 뮤턴트보다 수월한 듯했다.
그렇게 홀로 하피들을 상대하고 있을 때 지원 요청을 받은 것인지 후방에서 장갑차 몇 대가 나타나더니 이내 맹렬하게 사격을 가했다.
다다다다다다다다!
나타난 장갑차는 30mm 쌍열 자주 대공포인 비호였다.
분당 600발의 탄환을 쏟아낼 수 있는 비호는 사실 대뮤턴트전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여겨졌다.
그나마 북한군의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기계화 사단에 섞여 있었지만 사단 사령부 방공을 위해 배치되어 있었지 일선 부대에 배치하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하늘을 나는 뮤턴트가 공격해 온다는 소식에 황급히 달려온 것이다.
고속의 전투기에는 그다지 효과적인 무기 체계가 아니었고 드론과 같은 저속의 비행체에 효율적인 무기인 비호는 하피에게는 재앙과도 같았다.
“저 괴물 놈들! 다 죽여! 다 죽여 버리라고!”
비호 내부의 차장의 고함이 탄환 소리보다 더 커서 승무원들의 귀가 아파왔지만 탐지 레이더에 잡힌 하피를 향해 각 포당 600발의 30mm 탄환을 토해냈다.
머리에 맞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두세 발만 제대로 맞아도 몸은 고기조각이 되어 폭죽처럼 터져 버렸다.
단 몇 분도 되지 않아 하늘 위에 날아다니는 하피는 단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땅바닥에는 수십 마리의 하피들과 희생된 장병들의 시체만이 가득했다.
그렇게 전투가 끝나고도 한참 동안 장갑차 안에 타고 있던 병사들은 장갑차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하피들을 다 처리한 비호는 혹시라도 다시 나타날 하피들을 상대하기 위해 차량을 이동시켜서는 장갑차들을 보호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장갑차에서도 상부 해치를 열고 나온 기관총수가 머리만 살짝 내밀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렇게 하피가 더 이상 보이지 않고 나타나지 않자 그제야 다들 장갑차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죽어 있는 하피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창수를 볼 수 있었다.
“주임 원사님?”
“빌어먹을 세상이네.”
창수는 하다 하다 이런 괴물까지 나오는 것에 치가 떨려왔다.
대응책이 만들어질 만하면 인간들을 비웃듯이 새로운 뮤턴트들이 계속 등장을 한다.
앞으로 어떤 뮤턴트들이 계속 나오게 될지 감도 잡히지 않을 지경이었다.
* * *
5사단을 습격한 9형 뮤턴트 하피의 등장은 한국군과 정부에 엄청난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일반 보병들로서는 속수무책일 정도로 하피는 무서운 뮤턴트였다.
결국 모든 부대에 대공포나 자주대공포를 배치하게 되었다.
땅뿐만 아니라 하늘 위까지 걱정을 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한국에서 처음 등장을 했지만 하피는 세계 곳곳에서 목격됐다.
처음에는 새로 여겨졌지만 새가 아닌 하피였다.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들. 거기에 더해 뮤턴트까지 공격하는 하피는 이내 지구에서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을 하기에 충분했다.
물론 하피라고 무적은 아니었다.
으적! 으적!
“이거 치킨 맛이로군.”
컹?
한 무리의 들개들이 하피를 사냥해서는 식사를 했다.
들개들 사이에서 그다지 크지 않은 중소형 개 한 마리가 하피의 살점을 먹어치우며 인간의 말을 하고 있었다.
들개들은 자신들보다 덩치도 작은 개를 두려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렇게 하피 한 마리를 전부 먹어치운 개는 몸을 부르르 떨더니 이내 등에서 날개가 돋아났다.
날개를 펄럭이는 개.
아니 이제는 개라고 할 수 없는 정체불명의 괴생명체는 자신의 등에 돋아 난 날개를 펄럭였다.
“좀 더 연습을 해야겠군.”
단번에 날아오르지는 못하겠다는 듯이 펄럭이던 날개를 접은 개는 자신의 등에서 돋아났던 날개를 다시 몸 안으로 집어넣어 버렸다.
“나는 잠시 주인에게 갔다 올 테니까. 사냥이나 하고 있어라.”
빅은 자신의 부하들에게 사냥을 명령하고서는 창수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중간에 커다란 멧돼지가 길을 막아섰지만 빅은 최악의 포식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