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60화
160화
눈앞의 이들이 어느 한 종의 기원이 될지는 알 수 없었지만 괴물과 같은 모습을 한 존재들의 입에서는 언어가 튀어나왔다.
“셰일을 구해주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예. 군인들에게 쫓기던 셰일 군을 도울 수 있었습니다.”
“동양인이시군요. 그리고…….”
창수의 뒤로 보이는 두 마리의 뮤턴트와 한 명의 인간 여인.
꽤나 특이한 조합이었지만 셰일의 말처럼 위험하지는 않아 보였다.
적어도 완전히 인간으로 된 조합이나 하나의 뮤턴트 종족으로 된 조합보다는 위험하지 않다는 의미였다.
더욱이 자신들과 같이 이성이 있는 뮤턴트들이라는 셰일의 말에 리자드맨들은 경계하면서도 어떤 동질감을 느꼈다.
‘우리는 한때 같은 인간이었다.’
치안이 좋지 않은 남미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인간으로서의 연대감이나 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대도시가 아닌 중소 도시나 시골 마을의 주민들은 때로는 순박해 보일 정도였다.
만일 뮤턴트 사태가 벌어지지 않았다면 피부 하얀 동양에서 온 손님에게 많은 관심을 보였을 터였다.
“멕시코로 가신다고 들었습니다.”
“예.”
“저희가 도와드릴 수 있는 것은 많지는 않습니다만 이대로 육지로 가시는 것보다는 호수를 가로질러 강을 거슬러 오르시는 것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리자드맨의 지도자인 칸타바는 물갈퀴가 있는 손으로 호수의 끝에 보이는 강줄기를 가리켰다.
자신들의 종족의 생명의 은인이었다.
이미 괴물이 되어 버린 이상 그런 게 무엇이 중요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들은 괴물이기 전에 인간이었다.
언제 인간으로서의 가치관과 존재감이 사라질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직 인간이었다는 자각이 남아 있는 이상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잃을 수는 없었다.
“저희가 도와 드리겠습니다.”
창수는 인간의 눈동자가 아닌 도마뱀의 오싹한 눈동자를 보았다.
‘이들을 믿을 수 있을까?’
물속.
육지와는 달리 완전한 무방비 상태가 될 것이었다.
마녀인 키나의 힘도 무용지물일 것이 분명했다.
벤잔은 말을 할 것도 없고 창수도 물에 완전히 특화된 리자드맨들을 물속에서 이길 방법은 없을 터였다.
그나마 아룬이 다른 이들보다는 제약이 덜 할 터였지만 수영을 하지 못한다면 아룬도 위험할 터였다.
상대를 믿는다고 해도 모험을 하는 것은 그다지 현명하지 않았다.
현실은 동화 속의 세상이 아니었다.
더욱이 리더는 예측할 수 없는 모험을 해서는 안 된다.
“괜찮습니다.”
창수의 단호한 거절에 리자드맨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선의에 의한 것이었지만 자신이 생각해도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신 어떻게 이성을 가진 채로 리자드맨이 되신 건지 알려 주실 수 있을까요?”
창수도 무례한 질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자신들의 약점이 될 수도 있는 비밀이었다.
하지만 창수는 너무나도 궁금했고 알아야 할 중요한 샘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창수의 질문에 칸타바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창수에게 알려준다고 해서 딱히 문제 될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습한 정치인이라거나 정보기관의 사람들이라면 알고자 하는 것을 무엇 하나 알려주지 않으려고 할 터였지만 칸타바는 일반인이었다.
더욱이 상대는 자기 아들을 구해 준 사람들이었으니 그 정도 알려준다고 해서 문제가 될 건 없어 보였다.
“엔젤과 수나타를 먹었습니다.”
“수나타?”
이미 셰일에게서 들었지만 그게 원주민들의 언어로 지칭하는 식물인지 아니면 창수가 모르는 수많은 식물들 중에 하나의 명칭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행히 수나타라고 하는 식물을 선물로 받을 수 있었다.
“엔젤과 이걸 먹으면 리자드맨으로 변이를 할 수 있다는 겁니까?”
“예. 단, 그대로 먹으면 안 됩니다.”
역시나 뭔가 다른 방법이 있는 듯했다.
“수나타의 독성을 중화시켜야 합니다.”
“독성을 중화시킨다고 한다면?”
“살짝 뜨거운 물에 데쳐서 먹으면 됩니다.”
“아!”
고사리나 피마자의 독성을 제거하기 위해 물에 데쳐서 독성을 제거하는 것을 떠올리는 창수였다.
강한 독성을 제거하면서 뇌까지 변이되는 것을 막은 듯했다.
‘일종의 불완전 변이를 유도한 거로군.’
대체 누가 이런 것을 시도했는지 신기할 노릇이었다.
‘뭐 복 요리도 먹는 법을 연구한 것이 인간인데 이 정도면 신기하지도 않네.’
복요리뿐만 아니라 고사리나 피마자도 마찬가지였다.
특히나 피마자라 불리는 아주까리는 청산가리의 6,000배나 되는 독을 가지고 있었다.
그걸 먹을 생각을 한 인간이 있다는 것에 혀가 내둘러질 지경이었다.
그렇게 리자드맨의 비밀에 대해서 알게 된 창수는 샘플을 자신의 짐 가방에 넣었다.
도움이 될지 안 될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일단 보고를 하고 볼 생각이었다.
그렇게 육지로 돌아서 북쪽으로 가려고 할 때 칸타바로부터 한 마디 주의사항을 들어야 했다.
“육지 쪽으로 가시려면 차툰 호수를 지나가셔야 할 겁니다.”
“차툰 호수요?”
“예. 로샤르 강과 연결된 호수인데 그 호수 쪽에 저희와는 다른 뮤턴트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당신들과 같이 이성이 없다는 말인가요?”
“예. 그렇기에 저희가 호수를 건널 수 있도록 도와 드린다고 했던 겁니다.”
또 다른 고민거리가 생겼지만 역시나 물에서 상대하지 않는 것이 안전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물가 쪽으로 붙지 말라는 말이시겠군요.”
“예. 특히나 밤에는 조심하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다른 도마뱀들처럼 햇빛이 강한 낮보다는 어두운 밤에 더 활동성이 좋아지는 리자드맨 뮤턴트였다.
그렇게 칸타바로부터 주의사항을 들은 창수는 육지를 통해 올라가기로 했다.
* * *
뮤턴트뿐만 아니라 군인과 인간들까지 위협의 대상이 되었다.
언제 공격을 받을지 알 수 없었기에 긴장을 한 채로 북쪽으로 올라갔고 칸타바가 이야기했던 차툰 호수라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넓네요.”
“그러게. 그냥 리자드맨들의 도움을 받을 걸 그랬나?”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이 돌아가야 할 것 같았다.
만일 창수 혼자였다면 모험을 해 볼 생각도 들었지만 동료들이 있는 이상 역시나 몇 번을 생각해도 모험을 할 수는 없었다.
특수부대원들은 다른 군인들도 마찬가지지만 목숨을 걸고 임무 수행을 하는 존재가 아니라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쳐야 하는 존재였다.
그렇기에 임무도 중요하지만 퇴로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조심해서 가자고.”
“그러지. 응? 초이! 저길 봐봐!”
차툰 호수 둘레를 돌아 올라가던 창수의 파티는 얼마 지나지 않아 기묘한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저거 리자드맨이죠?”
“그런 것 같은데. 뭔가와 싸우는 건가?”
리자드맨들이 뭔가와 싸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거리가 있어서 정확하게는 잘 보이지 않았고 리자드맨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면 그냥 호수에 사는 악어인 줄로 알았을 터였다.
수면에서 살짝살짝 보이는 리자드맨들은 악어와 크게 다르지 않게 보였다.
그렇게 리자드맨들이 혈투를 벌이며 싸우는 대상에 대해서 궁금해질 때 곧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왕수달이군.”
“예?”
“자이언트 수달이라는 녀석이야. 매우 포악한 녀석이지. 물에서는 저놈이 왕이야.”
한국에서의 순둥순둥한 수달을 떠올리던 창수는 몸길이만 1.7m에 달하는 남미의 수달의 모습과의 괴리감에 당황해야 했다.
남미의 악어들도 남미 수달들에게는 한 수 접어준다고 할 정도로 무서운 맹수였다.
그런 맹수가 리자드맨들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영역 싸움인가?”
뮤턴트이기에 다른 생물종보다 월등하게 우월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건 또 아닌 듯했다.
양쪽 다 호수에서 밀려날 수 없었기에 치열하게 싸웠다.
그 광경이 너무나도 신기해서 다들 한참을 지켜봐야만 했다.
승부는 쉽게 가릴 수가 없었던 것인지 결국 서로 물러나는 것으로 끝이 나는 듯했다.
물론 언제 다시 전쟁이 벌어질지는 알 수 없었다.
서로 공존을 선택하든 그것이 아니라면 둘 중 하나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계속될 듯했다.
뮤턴트들도 이미 생태계에 완전히 동화되어 생존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 * *
육체적으로 강한 것이 생존에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환경에 얼마나 적합하게 진화했느냐가 생존 경쟁에 더 유리한 법이었다.
하지만 육체적인 강함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더 유리한 건 사실이었다.
지구상에서 가장 강한 생명체일지도 모를 강아지 한 마리와 어린 소녀 하나가 북쪽으로 걷고 있었다.
그리고서는 창수가 만났던 것과 같이 비슷한 뮤턴트를 만났다.
물론 완전히 같은 종은 아니었다.
아니 다른 종이었다.
다리는 일단 없고 크기도 훨씬 컸으며 비슷한 것이라고는 피부가 비늘로 뒤덮여 있는 파충류 과라는 것이었다.
“뱀이네요.”
“그래. 뱀치고는 너무 크기는 하지만.”
“아! 용!”
“용? 그게 뭐지?”
“어머! 빅이 모르는 것도 다 있네요. 용은 세상을 수호하는 신수에요. 하늘을 날 수 있고 비를 내리게도 할 수 있대요. 뭐 아직 용이 된 것 같지는 않지만요.”
밍밍은 언젠가 들은 적이 있는 용이라는 상상 속의 괴물을 떠올렸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빅과 밍밍이 보고 있는 뱀의 크기는 수십 미터는 족히 되어 보였다.
먹이도 어지간한 것은 간에 기별도 가지 않을 것 같아서 커다란 사슴을 먹어치우고 있었다.
용이라기보다는 이무기에 가까운 괴물이었지만 인간이 엔젤을 먹었다고 저런 괴물로 커졌으리라는 생각은 도무지 들지 않은 외모였다.
그렇게 정말로 전설 속의 이야기처럼 천 년을 살면 용이 되어 날아갈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포악한 뮤턴트에 불과할 뿐이었다.
이성은 없고 먹이만을 노리는 괴물에 불과했으니 용이 된다거나 할 일 따위는 없었다.
다만 아주 먼 과거에 발견되었다면 어떤 지역에서는 신이 될 수도 있고 악마가 될 수도 있었으며 전설의 괴물이 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물론 뮤턴트가 발견되기 전의 현대인들에게 발견되었다면 새로운 거대 뱀으로 박물관에 전시되었을지도 몰랐다.
물론 지금은 인간이 이 거대 뱀의 먹이가 되고 있었다.
“일단 잡아먹자.”
“먹게요?”
“그래.”
처음부터 잡아먹기 위해 온 것이었으니 빅은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자신의 몸의 수십 배, 아니 수백 배는 족히 될 만큼 컸다.
마치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만했지만 빅은 그냥 덩치만 큰 뱀이 두렵지는 않았다.
단지 저 뱀 뮤턴트를 먹으면 자신이 얼마나 더 강해질까 궁금할 따름이었다.
“저기 이기실 수 있으시겠어요? 너무 큰데요.”
밍밍은 그동안 봐온 빅이 강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눈앞의 뱀의 크기에 조금 걱정이 되었다.
빅의 이빨이 아무리 날카롭고 강력해도 거대 뱀의 비늘 하나 뜯어내는 것이 전부일 것 같았다.
“확실히 지금 내 몸이 너무 작지?”
“예?”
“그럼 크게 해야지.”
빅은 자신의 몸을 아주 크게 부풀렸다.
순식간에 4~5m는 족히 될 몸길이로 커졌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대 뱀에 비해서는 작았지만 크기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빅은 덩치만 큰 거대 뱀의 목을 물고서는 몸 안에 자신의 기운을 쏟아 넣었다.
잠시 저항은 있었지만 이미 수많은 뮤턴트들의 유전 정보를 몸 안에 새긴 빅은 정말 신화 속의 괴물과 같은 존재가 되어 있었다.
거대 뱀의 머리를 뜯어먹던 빅은 밍밍에게 거대 뱀의 살덩어리 하나를 던져 주었다.
“먹어.”
“더 이상 먹어도 빅하고는 달리 제 능력이 더 늘지는 않아요.”
“알아. 혹시나 해서 두 번 먹여 봤더니 몸이 터져 죽어 버렸지.”
다섯 번의 뮤턴트의 유전 정보를 얻은 밍밍은 여섯 번째 이후의 뮤턴트들을 먹어도 더는 능력이 는다거나 몸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자신과는 다르게 밍밍의 변화가 더는 늘지 않는 것에 빅은 야생동물 하나를 붙잡아 자신의 살덩어리를 먹이고서는 끌고 다니며 다섯 개의 뮤턴트의 살점을 먹이고 또다시 자신의 살덩어리를 먹어 보았다.
한 번 더 먹이면 또다시 다섯 번의 능력을 추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결론은 다섯이 한계였다.
두 번째로 먹인 빅의 살덩어리는 먹은 야생동물의 몸을 터트려버렸다.
그렇게 밍밍은 진화의 한계에 도달했다.
이제는 혼자 다녀도 어지간한 인간이나 뮤턴트에게 위협을 받지 않을 정도로 강해졌다.
그럼에도 밍밍은 계속 빅과 함께 여행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