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61화
161화
높다란 방벽.
모든 생명체는 끊임없이 확장해야만 생존을 할 수 있다.
느려터진 달팽이조차도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야만 번식을 하고 종을 유지 할 수 있는 법이다.
실험실의 쥐 실험이 있다.
가로세로 10m의 꽤나 넓은 공간에 쥐들을 번식시키는 실험이다.
그곳에는 먹이가 전혀 부족하지 않게 끊임없이 공급을 해 준다.
놀이기구들도 있고 쾌적한 환경이 될 수 있게 청소도 해 준다.
당연하게도 천적도 없이 풍부한 식량과 깨끗한 환경으로 인해 쥐들은 엄청나게 늘어난다.
그렇게 늘어난 숫자만큼 식량과 물은 충분히 공급이 되었다.
그럼에도 기이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정신병이 걸린 쥐들과 번식을 포기하는 쥐들 그리고 주변의 쥐들을 공격하는 쥐들까지 나오면서 지상 낙원 같은 쥐의 나라는 붕괴되기 시작한다.
지구라는 갇힌 공간에서 인간의 운명은 어쩌면 쥐 실험의 쥐와 같을 수도 있었다.
그나마 인간은 혁신이라는 것으로 좁은 공간을 좀 더 넓게 쓸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멸망의 시간을 늦춰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씩 인간들은 자기 파괴적인 일을 벌이고는 했다.
“지난 세계 대전들로 인해 지구의 인간들은 조절될 것이라 믿었지.”
한 사내는 멀리 거대한 건물 높이만 한 장벽이 세워지고 있는 것을 빌딩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사내는 딱히 의미 없는 짓이라 여겼다.
장벽을 세워도 장벽 안에서도 뮤턴트가 나타나고는 했다.
경제가 쪼그라들면서 일거리는 터무니없을 만큼 줄어들었다.
기존에 존재하던 일들은 전부 사라졌고 대부분의 인간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냥 생존을 위해 나오는 약간의 배식들만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일부는 조금이나마 더 배식을 받기 위해 도시 밖의 농지에서 일했다.
과일 같은 것이나 향신료, 기호식품과 같은 작물들은 감히 바랄 수도 없었다.
쌀과 밀, 감자와 옥수수 등 오직 생존만을 위해 필요한 곡물 위주의 농사로 바뀌었다.
곡물을 너무 많이 먹는 가축들도 당연하게 기를 수 없었다.
당장 식량 부족으로 개와 고양이를 기르는 것도 금지될 정도였으니 인간들의 삶의 질은 중세 시대로 떨어진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아니 중세 시대라면 지금의 인구 숫자도 아니었으니 중세 시대보다 더 열악했다.
그렇게 희망을 잃은 사람들은 빛도 들지 않는 골목길에서 약에 의지해 숨만 쉴 뿐이었다.
“담배를 구할 수 있나?”
“그거보다 더 좋은 것이 있는데.”
“그거 말고 담배는?”
“미친놈. 담배가 지금 세상에 얼마나 귀한 것인지 몰라서 하는 소리야? 네깟놈이 있다고 해서 살 수나 있고!”
“술은?”
“술도 마찬가지야! 저기 공업용 알콜이나 처먹고 뒤지든지.”
“제길! 마약 같지도 않은 마약이나 팔면서!”
“뭐? 이 자식이 죽고 싶어!”
과거의 마약은 오히려 부작용이 없을 정도로 싸구려 공업용 약물이 퍼져 나갈 정도였다.
완벽한 디스토피아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사망한 지 얼마나 되었는지도 모를 시체는 무표정한 청소부들에 의해 어딘가로 치워질 뿐이었다.
그런 마약처럼 질 낮은 엔젤이 퍼져 나가는 것은 당연했다.
크르르르!
“뮤턴트다! 뮤턴트가 나타났다!”
뮤턴트가 나타나자 총을 든 무장 군인들이 나타나 뮤턴트와 싸운다.
또다시 몇 명의 군인과 민간인들이 살해되고 뮤턴트는 싸늘한 주검이 되어 또 어딘가로 사라진다.
괴물이 될 수도 있다는 공포가 있었지만 그 공포보다 절망감이 더 컸다.
“차라리 괴물이 되어 이 감옥에서 나갈 수 있다면 좋은 것이 아닐까?”
자유로운 괴물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이들도 하나둘 생겼다.
그렇게 장벽 안의 인간들은 병들어 가고 있었다.
빌딩의 사내는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점차 무너져 가는 인간 세상을 바라보며 순도 높은 엔젤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신이 된 듯하다.”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고양감이 들었다.
노쇠하던 몸에 활력이 들고 어둡고 무겁던 머리가 맑게 갠다.
정말이지 천사의 약이라 부르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치 젊음을 다시 얻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사내의 방에 또 다른 한 남자가 들어왔다.
“즐거워 보이는구만.”
“즐겁지. 너무나도 즐거워. 모험이 가득한 세상이 되어 가고 있지 않은가.”
“모험이라. 그것도 그렇군. 단지 너무 위험한 모험이 되어서 문제지.”
“인간들은 그동안 너무 오만했네. 마치 자신이 세상의 주인이라 여기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지.”
사내의 방으로 들어온 남자는 사내의 사상과 철학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동의하고 싶은 생각도 동의하지 않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단지 자신들의 손으로 만든 세상에 희열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새로운 엔젤이 만들어졌네.”
“신을 만드는 약이 마침내 만들어진 것인가?”
“불멸에 전지전능이냐고 한다면 아니겠지만 사람들에게는 신으로 여겨지기는 하겠군.”
“그렇다면 아직 미완성이로군.”
신이 되고 싶은 사내였다.
자신이 신이 될 수 있다면 세상의 모든 인간이 다 사라져도 상관없어할 사내였다.
일반인들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내의 생각이었지만 어차피 사내는 자기 생각을 이해받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원료는 부족하지 않은가?”
“자가 증식하는 놈이니 부족하지는 않네. 다만 세계 각 지역 간의 교역이 끊기면서 엔젤을 퍼트리기가 힘들어지고 있네.”
막대한 양의 엔젤을 만들고 보관하고 있었지만 엔젤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나눠 줄 수가 없었다.
“걱정할 필요 없어. 인간들은 말이야. 끊임없이 움직이려고 하는 존재들이거든. 선사시대에도 인간은 대륙을 넘어 다녔네. 그리고 우리는 인간들에게 구원을 주려는 것이지 인간을 멸망시키는 것이 목적이 아니야. 신께서 우리에게 엔젤을 주신 건 인간들을 구원하라는 것이야.”
남자는 사내의 헛소리에 역시나 관심이 없었다.
사내의 말처럼 장벽에 자신을 스스로 가두기 시작한 인간들은 처음에는 고립을 선택했지만 완전한 고립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더욱이 장벽만으로는 뮤턴트들을 완전히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 * *
“엔젤이요?”
“그렇소.”
“대가는 얼마요?”
“식량이든 무기든 생필품이든 뭐든지 받소.”
“주시오. 무기로 지불하겠소.”
무기로 지불하겠다고 했지만 총이나 총알은 거의 바닥이 난 지 오래였다.
엔젤이 필요한 이유.
그건 아이러니하게도 뮤턴트들을 상대할 무기가 사라져 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일반 인간의 힘으로는 뮤턴트를 상대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엔젤이 필요했다.
엔젤을 먹으면 일시적이기는 하지만 뮤턴트를 열병기 없이도 상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의약품 대용으로도 사용을 할 수 있었으니 어떻게 만들어지고 누군가 만든 것인지 모를 엔젤에 대해서 누구 하나 이야기하지 않았다.
엔젤을 먹고 건장한 군인들과 자경단의 대원들은 창과 검 그리고 도끼를 들었다.
당장 엔젤을 가지고 온 상인 집단들도 일부가 총을 가지고 있었지만 대부분은 창과 검 그리고 도끼가 주 무기였다.
강철판으로 만든 중세의 갑옷은 덤이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이런 세상이 올 줄은 상상도 못 했어.”
“그러게 말이야. 방 안에서 컴퓨터 게임에서나 보던 것들을 내가 직접 만들고 있다니. 기가 막히네.”
“다시 컴퓨터 게임을 할 수 있을까?”
“왜? 써보지도 못한 비트코인이 아까운가?”
“아깝지! 아까워! 망할! 내 비트코인!”
아직 전기가 들어오는 곳도 있겠지만 지구의 밤은 이제 어둠으로 뒤덮이고 있었다.
이대로 한 세기만 지나가면 과거의 유산은 잃어버린 기술로 사람들에게 잊혀 가게 될 것이었다.
남자들 중에서는 거대한 공장에서 자동차를 만들기도 했고 철강 공장에서 엄청난 양의 철강을 생산해 내기도 했으며 일부는 프레스기로 뭐든 만들어 내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꽉 잡아!”
“알았어!”
깡! 깡! 깡!
망치로 단단한 쇳덩어리를 두들겨 강철검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후우! 그거 알아?”
“뭘?”
“쇳물에 엔젤을 넣고 강철검을 만들면 강철검이 더 강해진다는 거?”
“헛소리!”
“키키키키! 맞아. 헛소리지. 하지만 지금 그렇게 만들고 있다고.”
“그럼 정말이야?”
“몰라. 빌어먹을! 그냥 그랬으면 좋겠다는 거지! 아까워 죽겠지만 영주님한테 말을 하니 귀가 솔깃해하더구만! 빌어먹을! 영주는 무슨 놈의 영주인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자신들의 지도자를 자신들의 투표로 뽑았다.
지도자라고 해도 몇 년의 시간이 지나면 자신들과 다를 바 없는 시민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민주주의니 뭐니 하는 것은 사치인 세상이 되었다.
자신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지도자가 왕이 되고 싶어 하면 왕이 되고 영주가 되고 싶어 하면 영주가 되었다.
그 왕과 영주의 아래에서 시민들은 영지민이 되어 버렸으니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상현실의 게임 속에 들어와 역할 수행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그 누구도 상상해 보지 못한 세상이 온 것이다.
그렇게 엔젤은 성이나 마을의 지도자들에게 퍼져 나갔고 엔젤을 가진 지도자들은 당연하게도 권력을 쥘 수 있었다.
영주와 기사는 엔젤을 통해 영지민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뮤턴트들을 물리쳐 준다.
과거 중세 시대의 계약이 다시 생긴 것이다.
“무기는 이 정도면 되려나?”
“내 듣기로는 인근 영지하고 같이 툴루즈 탐사 간다던데.”
“쓸만한 것이 있으려나? 거기 뮤턴트들로 완전히 점령된 곳 아니야.”
“모르지. 철 덩어리도 이제 슬슬 바닥이 나고 있어서 고철들을 더 구해야만 해. 더욱이 석탄도 부족하고.”
“고철이야 도시에 널리고 널렸다지만 석탄은 구하기 힘들 텐데. 후우! 전기만 들어왔으면 이딴 강철검이야 하루에도 수백 수천 자루는 만들었을 텐데.”
“그러게 말이야. 우리 애들은 알기나 하려나 모르겠네.”
“엄청난 세대 차이가 나겠구만.”
“크크크! 그러게 말이야. 옛날에는 나이 먹으면 노땅이라 했는데 이제는 어린 애들이 아는 것이 없어지는 세상이라니.”
“비참한 거지.”
고전적인 대장간에서 만들어진 무기들은 군인 아니 이제는 병사라고 불려야 할 이들의 손에 쥐어져서는 과거의 유산이 된 인근의 대도시로 목숨을 건 탐사에 이용되었다.
“뮤턴트 조심하고 쓸만한 거 찾아봐!”
“여기 옷가게 있습니다!”
“쓸 만한 거 조금 있나?”
“제법 쓸만해 보이는 것이 많은데요.”
“좋아! 교역품으로 사용하게 전부 챙겨!”
흔하기 짝이 없던 옷들도 이제는 생산할 수 없는 귀한 물품이었으니 전부 챙겨야만 했다.
“식량은 아무래도 힘들 것 같습니다. 멀쩡한 것들이 없습니다.”
“어쩔 수 없지. 다 되었으면 고철도 챙기게!”
“차량 부품하고 연료도 필요합니다!”
“근처에 정비소 있나?”
“제가 알고 있습니다.”
“그럼 조심해서 갔다 와. 위험해지면 바로 물러나고.”
“알겠습니다.”
“언제까지 차를 사용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직은 괜찮다지만 이대로 가면 더는 힘들어질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어떡해? 옛날처럼 말이라도 키워야 한다는 거야? 말은 어디서 구해.”
“어떻게든 구해 봐야지요.”
“상인들이 그런 것도 팔려나?”
“대장! 말입니다! 저기 말입니다!”
“뭐? 말이라고? 잡아! 무슨 일이 있어도 잡아!”
“너무 빠른데요!”
“엔젤 먹더라도 잡아!”
엔젤을 사용하면서까지 말을 잡은 이들은 엄청난 횡재를 했다.
말과 소 그리고 돼지 등 야생화된 가축들을 도시에서는 포기했지만 작은 규모의 마을에서는 어떻게든 다시 확보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리고 당연히 그런 가축들의 가격은 대단히 높았다.
어딘가에서는 아직도 비행기가 날아다니고 있었지만 어딘가에서는 문명이 아주 뒤로 밀려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