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68화
168화
군대라면 상명하복으로 일사불란하게 결정이 나기 마련이었지만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결정이 쉽게 나지 않는다.
더욱이 그 결정이 자신들의 몸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이라면 단번에 날 리가 없었다.
그렇게 창수는 최악의 상황에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을 예상하며 직접 여자 난쟁이들이 있는 곳을 수색해 보려고 했다.
다행히도 이제까지의 경계 수준은 싱겁기 짝이 없었다.
물론 특수부대원이라고 해서 무적의 존재는 아니었다.
사람들에게 큰 오해를 받는 것 중의 하나가 특수부대의 과도한 능력이다.
특수부대라면 일반 보병 부대 정도는 손쉽게 전멸을 시킬 수 있다는 인식과 오해가 있다.
분명 특수부대원 개인의 전투력은 일반 보병 부대의 병사들보다 뛰어났다.
하지만 특수부대 1개 팀이 보병 소대나 중대와 조우하여 전투에 돌입하게 된다면 압도할 것이라 자신할 수 없다.
오히려 특수부대가 전멸할 가능성이 컸다.
특수부대는 결국 경보병이기에 화력이 강화된 다수의 보병 부대와의 직접적인 전투는 자살 행위였다.
그 때문에 특수부대원들이 뮤턴트전에서 무용지물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대규모 뮤턴트전에서는 특수부대보다 기계화 장비의 지원을 받는 대규모 보병 부대가 더 전투력을 발휘하고는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수부대는 언제나 자신들의 존재 의미를 증명해 내고는 했다.
창수 또한 자신의 존재 의미를 몇 번이고 증명해 내었다.
그렇게 창수는 여자 난쟁이들이 갇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곳을 발견해 냈다.
‘여긴 생각보다 삼엄하네.’
창수는 생각보다 삼엄한 경계에 만만치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출에 성공하더라도 피해가 없이 성공하기에는 힘들어 보였다.
‘지붕 위에 저격수 하나, 입구에 두 명. 그리고 골목 안쪽에 하나인가?’
입구의 두 명만 신경 썼다가는 저격수의 저격과 골목 안쪽의 경계병에게 노출될 듯했다.
창수는 경계병들이 흐트러지지 않는 모습에 구출 임무는 실패라는 생각이 들었다.
벤잔이 아무리 불완전 뮤턴트인 드워프라지만 머리에 총알구멍이 나고도 살아남을 수 있을 리는 없었다.
잘 훈련된 저격수라면 접근조차 힘들었다.
‘뭐지? 왜 이런 놈들이 있는 거지?’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든 창수는 물러서려다가 왠지 모를 위화감을 느꼈다.
‘들켰다.’
자신의 존재가 적에게 들켰음을 직감했다.
외곽의 허술한 경계병들을 제압하기는 했지만 적의 본거지의 한복판이었다.
창수 혼자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자신 혼자 탈출을 하더라도 벤잔과 남자 난쟁이들은 위험했다.
그렇게 주변을 경계하며 물러서다가 창수는 자신에게로 다가오고 있는 인기척에 빠르게 달려들었다.
챙!
단번에 죽이기 위해 대검을 휘두른 창수였지만 그 대검이 가로막혔다.
“끄응! 죽을 뻔했잖아.”
상대는 간신히 막은 듯이 자신의 대검으로 창수의 대검을 밀어내며 숨을 골랐다.
‘엔젤을 먹었구나.’
이미 엔젤을 투약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창수의 상대는 아니었다.
상대가 적들에게 지금 상황을 알리기 전에 죽여야만 했다.
“잠시만. 어디 군 소속이야? 크윽!”
창수의 두 번째 참격이 적의 목을 베어버리려는 순간 어디 군 소속이냐는 말에 창수의 대검이 목 피부 바로 앞에서 멈추었다.
“호프.”
“호…… 호프? 당신 누구야? 이 정도 실력이면…….”
나름 무기 다루는 것에는 자신이 있던 남자는 자신을 뛰어넘는 검술 실력의 남자에 당황해하다가 때마침 비춰오는 달빛에서 창수의 얼굴을 보았다.
“캐…… 캡틴?”
“누구지?”
“호…… 호프 3팀의 파월리 중위입니다.”
“파월리 중위님?”
창수는 그제야 자신이 목을 베어버리려던 남자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1팀인 창수와 3팀은 합동 작전을 수행한 적이 없었지만 기지에서 돌아다니며 얼굴 정도는 익히고 있었다.
“중위님께서 여기는 왜?”
“그러는 캡틴은 여기에 왜? 저기 목이 따끔거리는데 좀 치워 주시죠.”
목에 닿지는 않았지만 왠지 피부가 따끔거리는 파월리 중위였다.
“아! 미안합니다. 파월리 중위님.”
자신에게 명령권도 없고 지금은 호프 팀도 아니었으며 같은 국가 소속도 아니었지만 계급적으로 자신보다 상급자인 파월리 중위에 사과하며 대검을 거둬들이는 창수였다.
“한국으로 돌아가신 거 아니었습니까?”
“맞습니다. 파월리 중위님께서는? 임무 중에 낙오되신 겁니까?”
“후우! 정확하게는 돌아갈 곳이 없어졌습니다. 그런데 무슨?”
“미군과의 연합 작전 중에 낙오되었습니다.”
“연합 작전이요?”
무슨 연합 작전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미군과 한국군의 연합 작전을 자신이 알 도리는 없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창수와 같은 거물 군인을 만나게 될 줄을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왜? 아! 설마 지금도 작전 중이십니까?”
“아니요. 여자 난쟁이들을 구출하려고 하는데. 파월리 중위님께서는.”
창수의 눈이 싸늘하게 식어갔다.
대검을 거두었지만 언제든 파월리 중위를 죽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런 창수의 모습에 파월리 중위는 침을 목구멍 너머로 간신히 넘기며 입을 열었다.
“저기 이야기가 깁니다. 저희는 절대 타락했다거나 그런 건 아닙니다.”
“저희?”
“아! 이봐! 이리 와 봐! 캡틴이셔!”
파월리 중위는 경계를 서고 있는 이들에게 손을 흔들며 외쳤다.
그런 파월리 중위의 외침에 입구에 서 있던 경계병 중 한 명, 그리고 골목길 안에 숨어 있던 병사 하나가 다가왔다.
따끔!
창수는 저격수인지 자신의 머리가 따끔거린다는 느낌이 잠시 느껴지다가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저격수의 총구가 머리를 훑은 듯했다.
“어! 안녕하십니까!”
“존 중사?”
“아! 기억해 주시는군요. 중위님. 왜?”
왜 이런 곳에 창수가 있느냐고 묻는 대원에 파월리 중위도 제대로 설명을 하기는 힘들었다.
“임무 중에 낙오하셨대.”
“캡틴이 낙오를요? 에이! 말도 안 되는 소리.”
창수가 낙오했다는 말에 믿지 못하는 이들이었다.
“몇 명이나 되는 겁니까?”
“아! 열한 명입니다. 다른 대원들은 안에서 쉬고 있습니다.”
“팀 단위로 낙오?”
“그게. 돌아갈 길이 사라진 데다가 돌아갈 곳도 없어졌습니다. 그 때문에…….”
생존을 위해 마피아들에게 몸을 의탁하게 된 유럽 쪽 특수부대원들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인신매매 쪽에…….”
“후우! 그게 사정이 있습니다. 저희도 처음에는 못할 짓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그게 아니라면 저 안에 있는 여자들도 생존 자체가 힘듭니다. 여기가 조금 사정이 나은 편이라지만 이곳 밖으로는 지옥입니다.”
현실 앞에서 그들도 어쩔 수 없었다고 말을 하는 것에 창수는 복잡한 심경이었다.
마피아들이 보호해 주지 않았다면 절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는 말에 창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 계속 마피아들과 협조를 하겠다는 겁니까?”
“그럴 리가요. 저희를 이끌어 주시는 분이 나타나셨는데요. 존. 자는 애들 깨우고 마피아 두목 잡아 와. 캡틴 오셨다고 전해.”
“알겠습니다.”
갑자기 자신을 따르겠다는 파월리 중위에 창수는 당황했지만 벤잔의 방법이라면 사고 수습은 그리 어려울 것이 없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미군이나 연합군과 연락을 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습니다. 연락만 되면 바로 이런 일도 그만둘 생각이었구요. 그런데 어디로 가려고 하신 겁니까?”
“멕시코 쪽이요.”
“아! 파나마를 넘으실 생각이셨나 보군요.”
창수는 파월리 중위와 함께 건물 안으로 들어가며 대화를 나누었다.
“그런데 엔젤 드신 거죠?”
“아니 안 먹었습니다.”
“아!”
파월리 중위는 엔젤을 먹은 자신이 엔젤을 먹지 않은 창수에게 죽을 뻔했다는 것에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흘러나왔다.
자신도 특수부대원으로 어디 가서 달리지 않는다고 생각을 했지만 상대는 소문대로 괴물이었다.
“혹시 엔젤 드셨으면 저희 전부다…….”
“아! 그랬을 수도 있겠네요.”
창수는 엔젤 먹고 자신이 혼자 다 쓸어버릴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갇혀 있는 여자 난쟁이들을 살펴본 창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눈에 익은 옛날 호프 팀의 동료들을 볼 수 있었다.
팀은 달랐지만 안면이 있는 이들도 있었다.
그렇게 다들 반가운 표정으로 창수에게 고개를 숙이며 아는 체를 하자 창수도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어 주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피아 두목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있었다.
“다…… 당신?”
“다시 보게 되었네. 빌려준 총알 다시 받으러 왔는데.”
“제길! 네놈들 은혜를 이렇게 갚을 거야?”
두목이라는 이는 창수가 아닌 창수의 주변에 있던 대원들에게 화를 내었다.
자신이 거두기는 했지만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는 놈들이었다.
그나마 자신을 보호해 준다는 것에 불만을 눌러 참고 있었다.
“네놈들 서로 아는 사이였던 거냐? 그래서 지금 나를?”
“미안하게 되었는데 우리도 어쩔 수 없어. 전 세계에서 가장 강한 군인이야. 우리 상관이기도 했었고.”
“뭐? 니들 상관? 젊은데?”
“생각보다 나이도 있으실걸. 아무튼 미안하게 되었네.”
다들 조금의 미안함도 없이 자신들을 도와줬던(?) 마피아의 두목을 배신하는 대원들이었다.
사실 어지간한 인물이 아니었다면 자신들을 도와준 마피아의 두목을 배신하지는 않았을 터였다.
‘문제는 어지간한 인물이 아니라는 거지.’
대원들이라고 해서 마음이 편할 리는 없었다.
마피아의 두목은 분명 나쁜 놈이기는 했다.
하지만 대원들의 눈에 그나마 덜 나쁜 놈이었다.
사실 마피아 두목은 파월리 중위에게 자신의 부하 둘을 죽인 창수를 찾아내어 죽여 달라고 부탁을 했다.
자신이 창수를 마주했을 때는 절대 자신의 상대가 아님을 느꼈기에 일단 물러섰지만 역시나 그냥 놔둘 수는 없었다.
“됐고. 파월리 중위님. 파나마 넘어갈 방법 혹시 없습니까?”
“육지 쪽으로는 힘듭니다. 수만 마리가 넘는 뮤턴트들이 득실거립니다.”
“바다로는요?”
“바다 쪽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다 쪽 뮤턴트들도 가득 있습니다.”
창수는 벤잔과 남자 난쟁이들이 올 때까지 파월리 중위뿐만 아니라 다른 대원들과 함께 파나마를 넘는 방법에 대해서 상의를 했다.
“그러면 결국 카리브 해 쪽으로 넘어가는 방법밖에는 없는 겁니까?”
“아니요. 그쪽으로는 더 힘듭니다. 미 해군하고 해안 경비대가 소속 확인도 하지 않고 공격한다고 합니다. 육지로의 상륙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창수는 도저히 올라갈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에 난감해졌다.
‘나도 그냥 드워프가 돼서 여기서 살아야 하나?’
그렇게 암담해 하고 있을 때 마침내 드워프로 전부 변이가 된 난쟁이들이 달려왔다.
“우리가 구하러 왔어!”
드워프의 반쯤은 넋이 나가 있었다.
억지로 끌려온 난쟁이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내 입구에서 창수와 다른 마피아 인간들을 보게 되었다.
“생각보다 빨리 설득했나 보네요. 여자 난쟁이분들은 알아서 설득하세요. 참! 벤잔, 가서 키나 씨하고 루사 씨 좀 데리고 오세요.”
“응? 뭔 일인가? 초이?”
“아! 아는 사람들이었어요. 그냥 풀어주기로 했으니까 걱정하지 마시고요.”
창수는 더 이상 드워프들에게 신경을 쓸 이유가 없어졌다.
이제 남은 것은 어떻게든 파나마 위로 올라가야만 한다는 거였다.
“저기 초이. 엔젤이 부족한데.”
“엔젤이요? 파월리 중위님. 혹시 엔젤 좀 남는 거 있습니까?”
“예. 그런데 저기…… 알겠습니다.”
파월리 중위뿐만 아니라 다른 대원들과 마피아들도 건물을 가득 채우고 있는 덩치 큰 난쟁이들을 의아한 듯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자 난쟁이들이 드워프로 변이하는 것을 경악스럽게 지켜봐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