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69화
169화
30여 명의 드워프들은 떠나기로 했다.
자신의 바뀌어 버린 몸을 만족하는 이들도 있었고 만족하지 못한 이들도 있었지만 더 이상은 인간들과 함께 살고 싶어 하지 않았다.
물론 몇몇 드워프들은 여전히 인간들과 함께 살고 싶어 했지만 인간들에게 자신들이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난쟁이의 모습에 비한다면 지금의 모습이 나았지만 여전히 정상적인 인간의 모습과는 달랐다.
“벤잔. 잘 지내요.”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미안할 것이 뭐 있어요.”
창수는 미안해하는 벤잔을 다독였다.
벤잔도 드워프들을 이끌고 창수와 함께 미국이나 멕시코까지 갈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곳에 간다고 달라질 것이 없음은 너무나도 잘 알 수 있었다.
인간의 이성을 가지고 있다지만 실험실의 실험동물 취급을 받을 것이 분명했다.
그럴 바에는 깊고 깊은 남미의 숲속에서 자신들만의 낙원을 만드는 것이 속 편할 것 같았다.
“세상의 버려진 사람들을 좀 더 모을 생각이야.”
드워프들을 더 늘릴 생각이라는 벤잔에 창수는 말릴 수도 없었다.
드워프들이 번식을 할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하나의 종족으로 살아남으려면 지금보다는 훨씬 많은 숫자가 필요할 터였다.
“그래도 동의는 받으시고 하세요. 막무가내로 하지 마시고요.”
“이번에는 급해서 그런 거야.”
“급하시다면서 여자 난쟁이분들한테도 동의 안 구하셨잖아요.”
남자들을 다 구하고 여자들에게 달려왔을 때도 동의 따위는 구하지 않았다.
여자 난쟁이들은 다들 어어 거리며 놀라다가 전부 드워프가 되어 버렸다.
물론 그러지 않고 동의를 구했다면 하루가 다 가도록 결정을 내릴 수 없었을 터였다.
결국 떠나는 것도 벤잔과 몇몇 드워프들의 결정에 의해 결론 내려져 버렸다.
‘드워프 왕국이 만들어지겠네.’
벤잔이 초대 드워프 왕국의 국왕이 될 것임은 분명해 보였다.
‘이거 엘프 같은 판타지의 종족들도 생겨나는 거 아닐까 모르겠네.’
물론 드워프라고 하기는 했지만 판타지 소설이나 영화에서 정의되는 드워프 종족과 같은 건 아니었다.
그냥 형태적인 유사성이 상상 속의 종족이나 존재와 비슷하기에 명칭되는 것이었다.
공식적으로는 1형 뮤턴트와 같이 형에 따른 구분과 알파벳과 숫자로 정식 명칭이 부여될 터였다.
물론 공식 명칭을 부여할 기구나 집단이 계속 유지가 될 경우에만 이었다.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게 된다면 별칭이 종족 명으로 불리게 될지도 몰랐다.
‘그렇게 수백 년이 지나고 나면 왜 그런 종족 명으로 불리게 되었는지 알 수 없게 되어 버리겠지.’
창수는 이대로 수백 년이 지나고 나면 사람들의 상상 속의 산물들이 현실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인류 문명이 완전히 무너지고 사라져 버린 곳도 상당했다.
그렇게 수백 년을 존속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지만 벤잔은 30여 명의 드워프들을 이끌고 깊은 밀림 속으로 사라졌다.
어디에 자리를 잡을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인간들이나 뮤턴트들이 없는 곳에 자리를 잡으려 할 터였다.
“정말 드워프는 아니죠? 캡틴?”
“몰라. 그런데 힘은 좋아. 대장장이 해도 좋을 것 같던데.”
“…….”
드워프라는 종족의 기원을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있는 듯한 느낌에 다른 대원들도 고개를 내저었다.
과거 호프 팀의 대원들은 창수를 따라 어떻게든 파나마를 넘어 멕시코로 가기로 했다.
“쉽지 않을 겁니다.”
“어떻게든 해 봐야지요.”
시작도 하지 않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 * *
파나마 운하의 총 길이는 80km 정도 된다.
미국 정부는 남미에 뮤턴트가 창궐하고 난 뒤에 파나마 운하의 남부와 북부에 80km의 출입구가 없는 장벽을 설치했다.
운하 자체가 천연의 장벽 역할을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불안했던지 20m의 장벽을 세워 버린 것이다.
과거 멕시코와 미국 사이의 국경지대에 설치한 장벽뿐만 아니라 파나마에 설치한 장벽으로 인해 북미로 넘어갈 수 있는 길이 막혀 버렸다.
“파나마 장벽까지 20km 정도 더 가야 합니다. 그 사이에 뮤턴트들이 꽤나 많습니다.”
“그런데 뮤턴트들이 그리 오래 버티지는 못할 텐데. 언제부터 뮤턴트들로 깔린 거지?”
“몇 달 되었습니다. 워낙에 많은 사람들이 파나마 운하를 넘으려고 했거든요. 저희도 시도하려다 포기했지만요.”
창수는 파월리 중위로부터 파나마 운하와 장벽을 넘기 힘들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일단 운하 가까이까지 가 보기로 했다.
파나마 운하는 최남단인 파나마 시티에서 최북단인 콜론이라는 도시와 연결되어 있다.
태평양과 대서양 쪽으로 나아갈 수 있는 카리브 해를 연결하는 운하로 가장 짧은 거리가 64km였지만 운하 공사는 생각보다 힘들었다.
중간에 있는 가툰 호수의 해발 고도가 26m에 이르기 때문이었다.
결국 갑문을 통해 선박들을 위로 올려가면서 파나마 운하를 넘어가야만 했다.
그런 난공사 구간과 기술적인 문제가 있었지만 무려 1만2천 킬로미터를 단축할 수 있는 파나마 운하의 경제적인 가치는 무척이나 컸다.
물론 지금은 파나마 운하가 사용되지 않고 있었다.
파나마 운하뿐만 아니라 수에즈 운하도 정상적인 작동을 하지 않고 있었다.
어차피 전 세계의 교역이 멈추다시피 했기에 작동을 하더라도 이용을 할 선박들이 많지 않았다.
운송할 물품들이 많지 않다 보니 대형 선박들은 거의 볼 수 없었고 중소형의 선박들 위주로 교역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나마 미국을 중심으로 동아시아 지역과 호주 그리고 대서양 쪽의 유럽 간의 중소형 선박들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파나마 운하 쪽으로 접근한 창수는 멀리서 높다란 장벽과 함께 장벽 가까이로 꽤나 많은 숫자의 뮤턴트들을 볼 수 있었다.
“저건 뭐죠?”
“아! 여기서는 뭉크라고 불리는 녀석입니다.”
“뭉크요?”
“예, 소형 포유류가 뮤턴트로 변한 겁니다. 개와 고양이뿐만 아니라 이곳 특유의 중소형 설치류 등의 포유동물들입니다. 가툰 호수 쪽과 연결된 콜론 쪽으로 가면 파충류가 뮤턴트로 변이한 놈들이 있습니다.”
“동물들이 변이되었다는 것은?”
“의도적인 것이지요.”
파월리 중위의 말에 창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동물들도 엔젤과 변이유발 물질에 변이한다는 사실은 창수도 알고 있었다.
다만 귀한 엔젤을 동물에게 먹일 이는 드물었다.
실험실이 아니라면 동물들이 뮤턴트로 변이가 될 일이 거의 일어나지 않았지만 파나마 운하의 장벽 근처에는 다수의 동물들이 변이되어 있었다.
“장벽에서 엔젤과 변이유발 물질이 뿜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 정부의 짓일까요?”
“확실하지는 않지만 가능성은 큽니다.”
창수는 엔젤의 원천물질이 정부 조직에 넘어갔다는 헤인트 조직원의 말이 떠올랐다.
어떤 국가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눈앞의 상황을 보건대 미국도 엔젤의 원천물질을 확보했을 가능성이 커 보였다.
‘한국 정부도 가지고 있을까? 하지만 무엇 때문에?’
창수는 혼란스러웠다.
세계 각국의 특수부대원들과 함께 뮤턴트 사태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썼는데 배후에는 세계 각국의 정부가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세계 각국의 정부가 찬란하던 인류 문명을 무너트리려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바다 쪽의 뮤턴트도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요.”
“예. 따라오시죠.”
육지 쪽의 뮤턴트들을 확인했으니 바다 쪽의 뮤턴트들을 확인하기로 했다.
그렇게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이동하자 때마침 선박 한 척이 바다를 빙 둘러 이동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육지에 막혀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국으로 가는 것을 포기했지만 모든 이들이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목숨을 걸고 바다로 돌아서는 파나마 북쪽으로 넘어가는 이들이 있었다.
그렇게 성공적으로 보였다.
과거였다면 초대형 선박들이 진을 치고 있을 운하 입구에 선박 한 척이 빠르게 북상을 했다.
고작해야 몇 킬로 정도 올라가면 운하 지역을 넘어갈 수 있으니 어렵지 않아 보였다.
“어! 성공하는 것 같은데.”
북쪽으로 올라간 소형 선박은 빠르게 장벽이 설치되어 있는 남쪽과 북쪽을 지나 육지로 상륙하려고 했다.
하지만 바로 그때.
철퍽!
“나왔다.”
처음에는 고래인 줄 알았다.
세상에서 가장 큰 고래인 흰수염고래는 최대 길이만 30m에 달하며 몸무게가 190톤에 달할 정도로 크다.
물론 흰수염고래가 적도 근처인 파나마에 나타날 일은 없었고 흰수염고래가 인간을 습격할 일 또한 없었다.
거대한 무언가가 육지로 향하고 있는 소형 선박의 몸을 후려쳤다.
쿵!
길이는 십여 미터는 족히 되어 보였다.
한두 마리가 아닌 듯이 소형 선박을 에워싸는 그림자에 선박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바닷속을 향해 연신 총알을 쏴대었다.
하지만 그다지 효과가 없는지 선박의 몸을 연신 후려치는 검은 그림자들에 의해 선박은 뒤집혔다.
“사…… 살려 줘!”
“죽고 싶지 않아! 죽고 싶지 않아!”
선박이 뒤집히면서 바다에 빠진 사람들은 연신 살려 달라며 고함을 질러대었지만 검은 그림자가 지나갈 때마다 물 위에서 사라졌다.
단 십여 분도 되지 않아 바다 위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잠잠해졌다.
검은 그림자들도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저놈들 대체.”
창수는 바다에 사는 뮤턴트라는 말에 호수에서 보았던 리자드맨들과 같은 종류라고 생각을 했다.
조금 낭만적으로 생각해 인어 같은 것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낭만은 없는 듯했다.
첨벙!
만족스러운 포식을 했는지 10m가 넘어 보이는 거대한 무언가가 바다 위에서 솟구쳤다.
“해왕류?”
창수가 본 것은 물고기라고 보기에는 무리인 괴물이었다.
“장벽에서 뿜어지는 물질에 바닷물고기들도 변이한 것 같습니다.”
의도해서 만든 것은 아닌 듯했지만 남미에서 북미로 올라가려는 것은 확실하게 막을 수 있는 듯했다.
“바다 멀리 돌아갈 수는 없는 겁니까?”
“꽤 남쪽에서부터 출발해서 먼바다로 간 이들도 있다고 하는데 저놈들 꽤나 집요하다고 하더군요. 뭐라고 할까 재미로 인간들을 습격한다고 할까요?”
잡아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들을 재미로 습격한다는 말에 창수는 바다의 해왕류가 생각보다 지능이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놈들한테 습격을 받지 않으려면 대형 선박을 이용해야겠군요.”
“그럴 겁니다. 단, 인근에서 대형 선박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있다고 해도 파괴되어 있습니다.”
북미로 넘어오는 사람들을 막기 위해 파괴했을 것이라는 말에 창수는 점점 암담해짐을 느꼈다.
“그럼 하늘밖에는 없는 건가?”
창수는 파란 하늘 위를 올려다보았다.
한국에서는 하피라는 공중형 뮤턴트가 있었지만 남미에서는 아직 공중형 뮤턴트는 보지 못했다.
공중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는 창수의 말에 파월리 중위가 입을 열었다.
“멀지 않은 곳에 버려진 미군 기지가 하나 있습니다. 그곳에 잘만 하면 수송 헬기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뮤턴트가 득실거리겠군요.”
“예. 이곳만큼은 아닙니다만 꽤나 많을 겁니다.”
“일단 가 봅시다.”
별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그곳으로 가야 할 듯했다.
물론 헬기가 있다고 해서 정상적으로 작동할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별수 없었다.
창수와 대원들은 버려진 미군 기지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