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1화
211화
엔진이 고장 난 수송선 옆으로 대한민국 해군 함정이 정박했다.
기적처럼 살아남았다는 생각에 수송선의 특전사들은 서로 감격의 포옹을 했다.
이내 수송선에 실려 있던 물품들이 해군 함정으로 옮겨졌다.
처음에는 수송선을 살려 볼까 했지만 엔진이 완전히 망가져서 수리를 하려면 한국까지 끌고 가야만 했다.
거리가 거리인지라 그럴 수도 없었고 해군 함정도 수송선에 실려 있는 것에 대해 알고서는 한시도 낭비할 시간이 없음을 알게 되었다.
“자네가 최창수 원사인가?”
“충성! 그렇습니다. 함장님!”
중령 계급의 해군 함장에게 경례를 하는 창수였다.
소속은 달랐지만 같은 대한민국 군국 소속이었고 상대는 영관급이자 자신들을 구해 준 함선의 함장이었다.
박준구 함장은 엄청나게 유명한 창수를 신기한 듯이 바라보았다.
원사 계급이야 수많은 위험 임무를 수행하면서 특진에 특진을 거듭해서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다만 그런 것에 비해 창수의 외모가 무척이나 젊어 보였다.
나름 노련미가 얼굴에 깃들어 있어서 마냥 앳되어 보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20대 중반이나 될까 싶을 정도로 동안이었다.
아무리 동안이라고 해도 군대라는 곳이 힘들고 피부에 안 좋은 임무를 수행하다 보니 나이에 비해 겉늙어 보이는 경향이 있었다.
오죽하면 군대 복무를 하다가 전역을 하고 일 년쯤 지나면 군대 때보다 젊어 보이는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렇게 특수전 임무를 셀 수 없이 해냈던 창수는 젊어 보여도 너무 젊어 보였다.
‘그 엔젤인가 강화 물약인가 하는 것의 효과인 건가?’
해군으로서는 엔젤이나 강화 물약을 접할 일이 없었으니 엔젤과 강화 물약이 어떤 것인지 알 수는 없었다.
물론 해군 함정에도 일부 해군 특수전 임무를 수행하는 군인들이 있었고 그들은 엔젤이나 강화 물약을 지원받았다.
하지만 함장이 이런 물질을 접할 일은 없었다.
“그래. 이것이 엔젤이라는 마약의 원천 물질이라는 건가?”
“그렇습니다.”
창수가 어떤 임무 중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태평양 도서 지역을 점검하라는 해군사령부의 명령을 받은 박준구 함장이었다.
엔젤과 뮤턴트는 국방부 내에서도 최고 보안 사항이었으니 박준구 함장이라고 해도 접근 권한이 없었다.
위성 통신이 먹통이었으니 본국과 통신이 되지 않았지만 엔젤의 원천 물질이라면 즉시 임무를 중단하고 복귀하는 것이 맞을 터였다.
엔젤의 원천 물질뿐만 아니라 신종 뮤턴트의 조직 샘플까지 확보한 창수와 특전사 대원들이었다.
박준구 함장은 힐끔 어둠 속에 물들어 가는 이스터섬을 바라보았다.
이스터섬을 정찰하기 위해 꽤나 먼 거리를 왔지만 아쉬워할 때가 아니었다.
“즉시 해군사령부로 돌아간다!”
“알겠습니다!”
수송선에 있던 인원과 물품들을 옮겨 싣자 해군 구축함은 미련 없이 뱃머리를 돌렸다.
이스터섬의 특이 뮤턴트를 보고했지만 해군 함정은 뮤턴트 조사 임무를 받지 않았다.
“어떤 일로 이 먼 곳까지 오신 것입니까?”
“이주 지역을 찾고 있네.”
“예? 이주 지역이요? 멕시코가 있지 않습니까?”
창수는 자신이 탄 해군 함정이 이주 지역을 찾고 있는 중이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
이미 대규모 군대와 물자를 멕시코에 쏟아붓고 있었다.
그런데 또 무슨 이주 지역을 찾고 있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자세한 내용은 나도 모르네. 상부에서의 지시 사항이기에 따르는 것뿐이야.”
답답하기는 박준구 함장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일이 분명 일어나고 있는 듯했지만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었다.
단지 군인이기에 상부에서의 지시를 따를 뿐이었다.
‘한국의 상황이 그렇게 좋지 않은 건가?’
어디인들 좋은 상태의 지역이나 국가가 있을 리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답답함이 드는 창수였다.
그렇게 창수도 박준구 함장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 없었고 박준구 함장도 창수에게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을 말해 줄 수 없었다.
멕시코의 원정군 사령부가 목적지였다가 대한민국 본국으로 목적지가 달라졌다.
* * *
“이야! 해군이 확실히 먹을 건 잘 나오네.”
“그러게 말입니다. 특전사도 식사는 좋다지만 해군은 장난 아니네요.”
전투 식량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만들어 준 음식이 그리웠던 특전사 대원들이었다.
물론 물자 부족으로 인해 해군도 과거에 비해서는 부족했다.
하지만 다른 군대에서 보면 놀랄 정도로 잘 나오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함선 안에 냉동고가 있기도 했고 열악한 함정 생활에서 그나마 잘 먹기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서 해군의 식사는 꽤나 훌륭한 편이었다.
그렇게 특전사 대원들은 감동을 하며 함정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그런 창수와 특전사 대원들에게 해군 장병들이나 간부들이 호기심에 다가왔다.
“단결.”
“아! 충성.”
“해군 김명우 상사라고 합니다. 입맛엔 어떻게 맞으십니까?”
“아! 김 상사님. 정말 오랜만에 음식 같은 음식을 먹어 봅니다. 감사합니다.”
“에이! 감사는요. 더 좋은 걸로 드려야 하는데 저희도 한국에서 떠나온 지 제법 되어서 싱싱한 것은 별로 없어서 죄송할 뿐입니다.”
“아닙니다. 과일 먹어 본 것이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납니다.”
냉동 과일과 보관이 오래되는 과일이었지만 부식까지 나오는 것에 입이 즐거웠다.
“칠레에서 특수 임무 중이셨다면서요.”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특전사 대원들의 옆에 앉는 해군 김명우 상사의 모습에 다들 김명우 상사가 무슨 말을 듣고 싶어 하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당장 다른 식탁에 앉아 있던 해군 장병들도 식사를 하다 말고 특전사 대원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예. 뮤턴트 관련해서 수색 정찰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함장에게야 임무를 어느 정도는 밝혀야 했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밝힐 수가 없었다.
하지만 뮤턴트 관련된 임무라는 것 정도는 다들 예상했기에 대충 둘러대었다.
물론 해군 장병들도 특전사들이 정확하게 어떤 임무를 수행했는지를 궁금해하는 것은 아니었다.
“뮤턴트를 엄청나게 많이 보셨겠네요.”
“예? 뮤턴트요? 아! 뭐 지긋지긋하게 보죠.”
“그놈들 완전히 괴물이라면서요.”
군인이라고 해서 뮤턴트를 자주 보는 것은 아니었다.
더욱이 해군으로서는 뮤턴트를 보는 것은 무척이나 힘들었다.
해왕류와 바다에 서식하는 뮤턴트들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아직 만나 본 적이 없는 해군 함정들도 많았다.
“괴물이죠. 괴물. 후우! 소금 괴물에 외계 생명체 같은 괴물도 있고 아! 바다 고래 같은 거대 뮤턴트도 있는데. 남미 쪽 가시게 되면 조심하세요.”
“해왕류요?”
“아시네.”
“예. 보고받았거든요. 그래서 일정 크기 이상의 생명체가 접근하면 바로 공격을 하도록 지침이 내려와 있습니다. 뭐 해왕류인지 뭔지는 모르겠고 대부분은 고래인 듯하지만요.”
해군 함정의 공격을 받는 바다 생물체들은 해왕류보다는 고래나 상어 같은 대형 개체였다.
해왕류와 구분이 되지 않았기에 포착을 하자마자 공격을 하고 있었다.
자칫 고래가 멸종을 하게 되는 원인이 이 때문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해군 장병들은 특전사들에게서 뮤턴트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워낙에 다양한 뮤턴트들이 존재했기에 모든 뮤턴트들을 전부 알 수는 없었다.
나름 정부에서 도감을 만든다고는 하지만 그것도 정확하다고 보기에는 어려웠다.
일단 샘플을 온전하게 확보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렇게 만나기 불가능에 가까운 뮤턴트들이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들 특전사 대원들이 말을 해 주는 뮤턴트들의 생김새와 특징들을 머릿속에 새겼다.
물론 머릿속에 새겨 봐야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하! 그런 놈 만나면 그냥 죽었다 생각하는 것이 낫겠네.”
“그러게. 고통 없이 죽는 것이 다행이겠다.”
뮤턴트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암담하기만 했다.
“저기 보이시죠. 저분.”
“응? 젊은 애네요.”
“쉿! 그 유명한 최창수 원사님이십니다.”
“헉! 아! 그 최강 군인.”
타군이지만 창수는 꽤나 유명했다.
물론 소문이라는 것이 뼈대에 살이 붙기 마련이었기에 듣기로는 판타지 소설의 소드 마스터나 무협 소설의 초절정 고수 같은 활약을 했다고 알려졌다.
창수가 들어도 기가 찰 만한 일이었지만 소문은 이제 막기 어려운 수준으로 커져 있었다.
“정말이지 엄청나게 많은 뮤턴트와 상대를 하셨잖아요. 아마 최 원사님께서 상대한 뮤턴트는 수백 종류나 되실걸요.”
“와! 그 정도예요?”
특전사 대원들까지 창수를 엄청난 괴물로 여겼다.
수군거리는 소리도 귀가 워낙에 밝아져서 다 들리는 창수였다.
딱히 창피하다거나 하는 감정은 들지 않았지만 창수는 자신에 대한 헛소리에 인상을 찌푸리며 한마디했다.
“그 정도는 아니다.”
“아! 예! 수십 종류는 넘을 겁니다.”
“수십 종류도 엄청나네요.”
힐끔 자신을 바라보는 특전사 대원들과 해군 장병들의 시선에 한숨은 내쉬었지만 부정을 하지는 않았다.
수십 종류가 거짓말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수십의 단위가 앞쪽하고 뒤쪽하고 차이가 크긴 했으니 부정하지 않는 창수를 보며 백여 종의 뮤턴트는 상대해 봤으리라 여기게 되었다.
“그런데 뮤턴트가 정확하게 뭡니까? 엔젤 먹고 이상해진 놈들이 뮤턴트라는 것은 알겠는데. 왜 그 난리라는 건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비교적 평화롭던 세상이 뮤턴트로 인해 엉망이 되어 버렸다.
일부는 한 번도 뮤턴트를 본 적이 없어서 뮤턴트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데 정부의 음모로 인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믿는 이들도 있었다.
해군 장병들도 본 적 없는 뮤턴트여서 뮤턴트를 직접 상대해 본 특전사들을 통해 실감을 하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때 함정에서 비상벨이 울렸다.
-총원 전투 배치! 총원 전투 배치!-
비상 알림이 울리자 식당에 있던 해군 장병들은 즉시 자신들의 위치로 달려갔다.
“어! 우리는 어떻게 하죠?”
“우리가 뭐 할 일이 있겠냐? 그냥 가만히 있어. 수송선도 아니고 해군 구축함이다. 우리가 기관총 거치하고 쏠 정도면 이미 끝난 상황이야.”
“그렇긴 하겠죠? 그래도 혹시 모르니 위로 올라가 보는 것이 어떨까요?”
걱정이 된 특전사들은 갑판 위로 올라갔지만 접근 중이던 고래 떼가 다시 멀어지면서 경계 태세는 다시 낮춰졌다.
좀 더 접근을 했다면 어뢰나 미사일이 날아갔을지 모를 상황이었다.
그렇게 몇 차례 더 비상 상황이 울렸지만 대부분은 고래의 접근으로 판명이 났다.
아무래도 어뢰나 미사일을 보충받기 힘들기에 해군 함정들도 마음껏 무기를 사용하기는 어려웠다.
그렇게 이스터섬에서 진해 해군사령부로 복귀를 할 수 있었다.
창수와 특전사 대원들은 진해에서 엔젤의 원천 물질과 뮤턴트 조직 샘플을 가지고 대전에 위치해 있는 뮤턴트 특수사령부로 이동을 해야만 했다.
엔젤의 원천 물질을 생산해 낼 수 있는 세계수를 손에 넣지는 못했지만 엔젤의 원천 물질을 확보했다는 보고에 뮤턴트로 골치 아파하고 있던 한국 정부는 크게 반색을 했다.
잘만 하면 뮤턴트의 비밀과 대응 방법을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생긴 것이다.
국민들의 예상과는 달리 생각보다 상황은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오랜만입니다. 최 원사님.”
“당신은?”
그렇게 창수는 뮤턴트 특수사령부에서 잘 아는 얼굴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