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2화
212화
그다지 반갑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정든 얼굴이었다.
“고생이 많으신 거 같습니다.”
“자네는 어째 시간이 비켜 지나간 것 같군.”
박충렬은 칠레의 아리가에서 창수를 처음 보았을 때와 전혀 달라지지 않은 것에 질투심이 생기려고 했다.
자신은 나이에 비해 늙어 보이고 있었다.
뮤턴트 대응에 있어서 책임자의 위치에 있다 보니 하루하루 피가 말랐다.
그렇게 머리카락에는 새치가 생기고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했다.
“가끔 가다가 엔젤이라도 드시지요.”
엔젤을 먹으면 육체적 회복력이 올라가기에 노화에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다.
“먹었어.”
“예? 먹어도 그런 상태라고요?”
군인들이야 야외에서 자외선 노출도 많고 육체적인 고생도 많다 보니 나이에 비해 늙어 보이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엔젤이나 강화 물약을 먹은 특전사나 요원들은 과거보다 젊게 보이고 있었다.
엔젤이 노화까지 늦춰 준다는 연구가 있을 정도였다.
만일 온전한 세상이었다면 해당 연구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엔젤을 먹고도 얼굴이 삭았다는 박충렬의 말에 창수는 그가 엄청나게 고민을 하고 힘든 업무를 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과로와 야근을 약으로 버티고 있는 상태일 터였다.
평화로운 시기였다면 당장에라도 때려치우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도 없었다.
더욱이 책임감 강한 박충렬은 더욱더 일에 매달렸다.
자신이 아니라면 대한민국이 뮤턴트들에게 멸망을 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 박충렬 같은 인물들이 대한민국에 남아 있었기에 대한민국이 아직까지는 전대미문의 위기 속에서 간신히 버티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담배 피우나?”
“아니요.”
“그래. 본래 못 피우게 되어 있는데 한 대만 피우지.”
“그러시죠.”
창수가 알고 있는 정보들을 뽑아내야 할 박충렬이었다.
본래 이런 것은 이제 박충렬이 할 일이 아니라 다른 전문 요원에게 맡길 일이었지만 창수의 입에서 흘러나올 말들이 전문 요원에게조차도 새어 나가서는 안 될 정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직접 나서기로 한 것이다.
더욱이 창수와의 인연도 있었기에 박충렬은 직접 창수를 만나고 싶기도 했다.
“일단 고맙네.”
“해야 할 일을 한 거죠.”
“자네에게 해 줘야 할 이야기가 하나 있는데. 끝나고 듣겠나? 아니면 지금 듣겠나?”
창수는 별다른 감정의 동요가 없는 박충렬의 눈동자를 보았다.
분명 빛이 나고 있었지만 그건 허무의 빛이었다.
“뭡니까?”
“3팀이 임무 중에 다수의 사상자와 소수의 부상자가 나왔네.”
“…….”
3팀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는 창수도 바로 알 수 있었다.
특전사 국평단 22 특전대대 3팀.
창수가 군 생활을 하며 몸담았던 부대였다.
창수는 계속 군대에 있었지만 다른 팀원들은 뮤턴트 대응 특수부대인 삼별초에 속하면서 소속이 달라졌다.
뮤턴트의 위험한 임무에 전적으로 투입되는 부대였으니 언제 죽거나 큰 부상을 입을지 알 수 없었다.
오히려 지금까지 버텼던 것이 용하다면 용할 뿐이었다.
“…….”
창수는 자신에게 담배 한 대를 내미는 박충렬을 보았다.
딱히 담배를 피우지 않았지만 창수는 하나를 받아서는 입에 물었다.
취조실을 개조한 것인지 이제는 생산도 하지 않을 깜빡이는 백열등 하나가 천장에 달려 있는 방 안을 하얀 연기가 채웠다.
감정은 죽은 것인지 무덤덤했다.
“국립묘지로 가 보면 됩니까?”
“그래. 끝나고 바로 안내해 주겠네.”
죽으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냐 싶지만 그래도 나라와 국민을 위해 헌신을 했다면 그 정도 명예와 대우는 받아야 하는 법이다.
“시작합시다.”
창수는 피우지도 않은 담배가 필터까지 타들어 가고 나자 담배를 끄고서는 박충렬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 있었나?”
“연합 작전부터 말씀을 드리지요.”
“그래.”
박충렬은 녹음기를 작동시켰다.
창수는 자신의 임무였던 지하 유적지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을 했다.
이미 어느 정도는 박충렬에게도 보고가 된 내용이기는 했다.
다만 창수만이 알고 있을 내용들도 있었다.
“고대 문명이 존재했고 엔젤은 고대 문명의 유산일 수도 있다는 거로구만.”
“고대 문명인지 외계인 놈들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럴싸한 영화의 설정처럼 지구 어딘가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뭔가가 있기는 있는 모양입니다.”
창수의 말에 박충렬은 고개를 끄덕였다.
신비한 일이고 신기한 일이었지만 멸망을 해 가고 있는 인류에게 그런 일이 뭐 중요할 것이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멕시코까지 오기 힘들었을 텐데.”
“예. 미군이 한 짓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파나마 넘는 것이 꽤나 힘들었지요.”
“미군이 할 짓이야.”
단정적으로 말을 해 주는 박충렬에게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창수는 한마디했다.
“참. 미군에게 칠레에 미해군 네이비씰 팀이 고립되었다는 것 좀 알려 주십시오.”
“씰 팀?”
“예. 저 밀가루 같은 원천 물질 얻는 일을 하는 동안 만났습니다. 다른 특전사 대원들에게도 들을 수 있을 겁니다.”
“알겠네.”
“그리고 장벽에 엔젤과 변이 물질의 혼합물을 살포하는 짓거리는 그만두라고 하십시오.”
“…….”
창수는 파나마 장벽의 일을 떠올렸다.
“육지는 그러려니 합니다만 바다 쪽에서 해왕류가 나온 이유가 그것 때문일 겁니다.”
“역시 그랬는가.”
박충렬은 창수의 말에 자신들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던 일에 대한 이유를 알게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창수는 우유니 소금 사막에서의 일도 이야기를 했다.
세계수와 세계수를 지키는 미쳐 버린 인도자의 이야기에서는 박충렬도 충격을 받아야 했다.
“헤인트의 두목이라는 놈이 끝까지 말썽이군. 그곳을 타격하는 방법은 없겠나?”
“불가능할 겁니다. 거대한 소금 사막과 하나가 되어 버린 상태더군요. 만에 하나 그놈을 없애려면 우유니 소금 사막 자체를 소멸시켜 버려야 할 겁니다. 지구를 다 뒤덮는 홍수라도 나면 그놈도 별수 없기는 하겠군요.”
우유니 소금 사막의 해발 고도를 생각하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창수는 박충렬을 노려보았다.
박충렬을 신뢰할 수 있느냐의 문제였다.
여전히 박충렬에게 좋은 감정이 생기지 않았다.
물론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은 창수도 이해했기에 미워하거나 증오하지는 않았다.
그런 감정을 배제한 채로 박충렬을 본 창수는 믿을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뭐 박충렬이 그놈들하고 한패라고 해도 어쩔 수는 없지.’
창수는 자신과 박충렬의 가운데 놓인 녹음기를 멈추게 했다.
박충렬은 그런 창수의 행동에 그다지 동요를 하지는 않았다.
뭔가 아주 중요하면서도 비밀스러운 것을 말해 줄 것 같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 자신을 믿는다는 것에 박충렬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세계수에 대해서 이야기해 드렸죠.”
“그래요. 최 원사.”
“세계수는 너무나도 거대해서 가지고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엔젤의 원천 물질은 뮤턴트 연구 시설로 옮겨졌다.
그곳에서 연구원들에 의해 연구가 이루어지게 될 것이었다.
다시 엔젤의 원천 물질을 구할 길이 없었으니 무척이나 중요하면서도 귀한 물질이었다.
엔젤의 원천 물질을 만들어 내는 기이한 나무인지 생명체인지 알 수 없는 세계수를 손에 넣을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이다.
“세계수의 묘목이 존재합니다.”
“묘목?”
“예. 그리고 이미 이 묘목은 누군가가 가지고 나간 뒤였습니다.”
“그 이야기는 엔젤이 어딘가에서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는 건가?”
“그럴 겁니다.”
박충렬은 창수의 말에 주름살이 새겨지도록 이마를 구겼다.
엔젤이 더 이상 만들어지지 못한다면 결국 세상은 정상으로 되돌아가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사라지는 것이다.
“또 다른 테러 집단인가?”
“아니요.”
“그러면……. 후우!”
창수의 말에 박충렬은 대충 짐작이 간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지긋지긋한 음모론이 현실이 되는 상황이었다.
“한국 정부 내에서도 그들이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역시나 문제는 그것이었다.
한국 정부 내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집단이 암약을 하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대체 무슨 이유로?’
상식적으로 보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더 이상 상식적이지 않았다.
엔젤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세계수의 묘목이 지구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박충렬은 자신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자신의 능력과 조직의 힘으로 세계수 묘목을 탈취하거나 제거하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를 판단하는 것이다.
“망했군.”
다시 담배를 꼬나무는 박충렬을 보며 창수도 그럴 것 같다는 듯이 마음을 편하게 먹었다.
대충 그럴 것이라 짐작했다.
한반도나 멕시코 남부에서 무력을 발휘하고 있다지만 기본적으로 한국은 대외 팽창이 가능한 국가가 아니었다.
전 세계를 무대로 특수 임무를 수행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미군도 힘든 일이었다.
한국 정부가 세계 평화를 위해 정체도 모를 집단과 싸울 것이라 확신하긴 어려웠다.
현재는 국민의 생존 문제만으로도 모든 국력을 다 쏟아붓고 있었다.
문제 해결법을 알고 있어도 점차 망해 가는 것을 지켜보며 말라죽어 가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보였다.
그렇게 창수는 박충렬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전부 이야기를 해 주고 난 뒤에 자신이 없는 동안의 국내 소식을 물었다.
정보 보안 등급이 매우 높은 박충렬이었기에 국내의 거의 모든 이상 징후와 사건들은 알고 있었다.
물론 창수에게도 전부 이야기를 해 줄 수는 없었지만 대충 중요한 일들에 대해선 이야기해 주었다.
“중국과 국경 지역에서 거미형 뮤턴트들이 장벽을 넘어오고 있더군.”
“장벽? 거미형?”
“신종 뮤턴트지. 장벽이 언젠가는 뚫릴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너무 이르게 뚫리고 있어. 그 때문에 멕시코로의 이주가 진행이 되고 있는 중이고.”
“멕시코 쪽도 그다지 좋은 상황이 아닙니다.”
창수는 폭탄 뮤턴트뿐만 아니라 다른 뮤턴트들도 떠올리며 말을 했다.
“알고 있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의 국민이라도 살리기 위해서는 최대한 퍼트리는 수밖에 없으니.”
결국 한국 정부는 정부 기능이 붕괴가 되는 것까지도 예상하고 있었다.
“더욱이 동물들이 뮤턴트화가 되고 있음을 확인했지. 산맥 속에서 인간형 뮤턴트와 전쟁을 벌이고 있더군.”
창수는 박충렬의 말에 빅이 떠올랐다.
이 이야기를 박충렬에게 해야 하나 고민을 했다.
‘인간이 뮤턴트와 공존을 받아들일지도 알 수 없는데 동물형 뮤턴트와의 공존이라.’
아무래도 쉽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빅과 동물형 뮤턴트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기로 했다.
이미 박충렬은 자신이 해 준 이야기만으로도 정신적으로 한계에 달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한국의 상황이 다른 지역이나 국가에 비해서는 안정적이기는 했지만 아슬아슬한 상태임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을 박충렬에게 전달하고 난 창수는 박충렬의 도움으로 임무 중에 전사를 한 옛 전우들이 쉬고 있는 국립묘지에서 참배를 할 수 있었다.
“다들 오랜만입니다.”
소주 한 병을 구했다.
이제는 돈이 있어도 구하기 힘들 정도의 사치품인 소주였다.
창수는 옛 전우들의 묘에 소주를 부어 주었다.
시체라도 찾아 국립묘지에 안장된 것은 꽤나 운이 좋은 편이었다.
뮤턴트에게 뼛조각 하나 남기지 않고 잡아먹히는 경우도 있었고 들판에 회수되지 못한 채로 널브러져 야생 동물에게 먹히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창수는 자신도 전우들의 옆에 묻힐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